모세 오경이 한 명의 저자에 의해 지어진 수많은 단편 들을 결집한 것이 아니라 몇몇 저자들이 상당한 정도로 같은 종교적인 맥락을 유지하면서 각기 다른 시대에 독 립적으로 저작하였다는 것과, 이 독립된 문헌들이 역사 적인 과정을 거치면서 서로 결합되어 현재와 같은 오경 의 형태가 이루어졌다는 이론.
I . 정의 및 판단의 기초
[정 의] '그라프-벨하우젠 가설' (Graf-Wellhausen hypo- thesis)이라고도 하는 이 가설은, 수 세기 동안 수집되고 개정된 기록 문헌들은 다양한 역사적 · 신학적 관점을 바 탕으로 그 발전 과정에 따라 비교적 정확하게 기록된 연 대와 그 장소를 추정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문학 비평에 서는 역사적인 차원을 목표로 다루어지기 때문에 본문 비평(textual criticism)을 저등 비평(1ower criticism)으로, 문 헌 비평(documentary hypothesis)을 고등 비평(higher criti- cism) 혹은 역사 비평(historical criticism)이라고 부른다. 예 를 들어 야훼 전승 문헌(J)은 다윗 · 솔로몬 시대에 있었 으리라고 여겨지는 국가적인 자부심과 영토에 대한 개념 등을 바탕으로 하면서 그 문헌의 저자가 의도적 또는 무 의식적으로 현재의 문헌을 구성하였을 것으로 보고 그 정황을 밝히려는 것이다. 그래서 J문헌을 해석할 때에는 언제나 다윗 · 솔로몬 시대의 국가적 영웅심, 영토 개념, 국가 이념, 종교적 · 사회적 · 정치적 여건들을 염두에 둔 다. 반면에 문학 비평은 등장 인물 · 문학적인 구성 · 상 징 · 사상적인 영향 등을 연구하기 때문에 종교 문헌으로 서의 성서의 메시지는 소홀해지게 된다. 그런데 문헌 비 평에서는 모세 오경이 본래는 뚜렷하게 달랐던 4개 혹은 그 이상의 다른 문헌들이었지만, 여러 세기를 거치면서
몇몇 편집자들에 의해 하나의 작품으로 합쳐졌다고 본 다.
〔판단의 기초] 문헌들이 모세 오경으로 결합되기 이전 에 독립적으로 존재했었는지를 가려내기 위한 기초로서 다음과 같은 사항들을 지적할 수 있다.
단어나 문체의 차이 : 문헌들이 독립적으로 존재했다 는 사실은 단어나 문체의 차이로 알 수 있다. 이들 가운 데 제일 먼저 나타나는 것이 '엘로힘' 과 '야훼' 라는 하 느님 이름인데, 이는 각기 다른 저자들이 자신이 선호하 는 하느님의 이름을 사용하였을 것이라는 주장에서 비롯 되었다. 또 시나이 산(J,P)과 호렙 산(E,D), 가나안인(J) 과 아모리인(E), 모세의 장인 이름인 르우엘(J)과 이드 로(E) 등에서도 마찬가지로 이러한 차이가 드러나 있다.
같은 이야기의 반복 : 대표적인 예가 성서 인물의 부 인이 토착민의 왕에게 위험을 당하는 이야기로 창세기 12장 10-20절과 20장 1-18절과 26장 6-16절에 각각 등장한다. 앞의 두 개는 사라를 동반한 아브라함이 거짓 말을 한 경우이고, 마지막의 것은 이사악이 아내 리브가 에 대하여 거짓말을 한 경우이다. 세부적으로는 조금 차 이가 있지만 사건 그 자체는 같다. 이외에 두 가지 창조 이야기(창세 1, 1-2, 4a와 2. 4b-25)도 비슷하다. 만일 이 두 개의 이야기를 같은 저자가 썼다면 이렇게 되풀이하 지는 않았을 것이기 때문에, 다른 저자와 다른 자료에 기 인한 것으로 보는 것이다.
같은 문단 안에서의 세부 사항 반복 : 어떤 구절들은 부적절하게 반복되는 경우들이 있다. 예를 들어 노아 홍 수 이야기를 언급한 창세기 6장 5-7절(J)에는 "주님께서 는 사람들의 악이 세상에 많아지고, 그들 마음의 모든 생 각과 뜻이 언제나 악하기만 함을 보시고, 세상에 사람을 만드신 것을 후회하시며 마음 아파하셨다. 그래서 주님 께서 말씀하셨다. '내가 창조한 사람들을 이 땅 위에서 쓸어 버리리라. 사람뿐 아니라 짐승과 기어 다니는 것들 과 하늘의 새들까지 쓸어 버리리라. 내가 그것들을 만든 것이 후회스럽구나!"라고 되어 있다. 반면에 6장 11- 12절(P)에는 "세상은 하느님 앞에 타락해 있었다. 세상 은 폭력으로 가득 차 있었다. 하느님께서 내려다보시니, 세상은 타락해 있었다. 정녕 모든 살덩어리가 세상에서 타락한 길을 걷고 있었다" 라고 기록되어 있다.
문맥 속의 이질적인 자료 : 이 경우의 대표적인 예가 창세기 38장(J)에 나타나는 유다의 이야기로, 유다와 그 의 며느리가 어떻게 다윗의 조상이 된 베레스를 낳게 되 었는지를 언급한 부분이다. 그러나 37-50장(JE)의 요셉 에 관한 문맥에서 이 부분은 전체 문맥과 전혀 관련이 없 는 구절이다.
모순된 사실의 진술 : 같은 내용 안에서도 서로 모순 된 사실들이 드러나는 경우가 있다. 출애굽기 20장 24 절에는 어디에서나 희생 제사를 드릴 수 있다고 하였으 나, 모세가 선포한 내용을 똑같이 언급한 신명기 12장 13-14절에서는 오직 하느님이 선택한 곳에서만 제사를 드리도록 되어 있다. 또 창세기 7장 17절에는 홍수가 40일 동안 계속되었다고 기록된 반면에, 창세기 7장 24
절에는 150일 동안 물이 계속 불어났다고 하였다.
문화적 · 종교적 관점의 차이 : 각기 다른 문장이 각기 다른 문화나 역사적인 배경을 나타내고 있는 것으로 여 겨지는 경우들이 있다. 즉 계약의 책(E, 출애 20, 23-23. 33)이나 레위기(P)나 신명기 법전(D) 등은 사회적 · 문 화적으로 서로 상당히 다른 사상적인 배경을 드러내고 있다. 또 신명기 17장 14-20절에서는 이미 왕국을 경험 하였거나 이상적인 왕국으로의 개혁을 의도하고 있다는 느낌을 주는 반면에, 레위기 등에 나타난 사제계 문헌 (P)에는 왕에 대한 언급이 전혀 없는 것으로 보아 유배 시기 때의 상황을 반영한 것으로 여겨진다. 또 창세기 1 장(P)은 발달된 하느님 개념을 내포하고 있지만, 창세기 2-3장(J)에 나타난 하느님의 모습은 신인(神人) 동형론 적인 신관을 보이고 있다. 이러한 사실들이 각기 다른 문 헌들이 존재했던 것으로 간주되는 단적인 예들이다.
II . 모세 오경의 저자에 대한 의문과 문헌 가설
[모세 오경의 저자에 대한 의문] 모세가 오경을 저술 하였다는 전통적인 견해에 대한 의문은 교부 시대 이후 끊임없이 제기되어 왔다. 즉 정말 모세가 오경을 저술하 였느냐는 질문이 학문으로서의 구약학에서 최초로 제기 된 문제였던 것이다. 왜냐하면 오경 안에 모세가 기록할 수 없는 말들이 들어 있기 때문인데, 그러한 예는 다음과 같다.
첫째, 오경의 맨 끝 장인 신명기 34장 5절 이하에서 모세의 임종과 죽음 후에 있은 백성들의 애곡과 장사지 낸 사실에 대한 글은 모세가 쓸 수 없는 것이다. 둘째, 모세 자신이 오경을 기록하였다면 왜 '나' 라는 1인칭을 사용하지 않고 3인칭( '모세가' 혹은 '그가' )을 사용하였을 까? 셋째, 아브라함의 장정들이 성읍 '단' 까지 적들을 추적하였다는 기록(창세 14, 14)은 모세 시대가 훨씬 지
난 후대에 와서야 '단' 이라고 불리게 되었다는 기록(판관 18, 29)과 모순된다. 넷째, 창세기 36장 31절의 "이스라 엘의 자손들을 임금이 다스리기 전에, 에돔 땅을 다스리 던 임금"이라는 말은 이미 이스라엘에 왕이 있던 시절을 상정하고 있으므로 저작 시기를 모세 시대라고 보기에 불가능하다. 다섯째, "요르단 건너편, 아라바에 있는 광 야에서"(신명 1, 1)라는 말은 이스라엘 백성이 요르단 강 의 건너편인 가나안 땅에 이미 있었음을 분명히 하고 있 다. 여섯째, "세일에는 전에 호리인들이 살았으나 에사 오의 자손들이 그들을 내쫓고 멸망시킨 뒤, 그들 대신 그 곳에 살고 있었다. 이는 이스라엘이, 주님께서 자기들에 게 소유지로 주신 땅에 한 것과 똑같다"(신명 2, 12)라는 구절은 가나안 땅에 들어가 보지 못한 모세가 이미 가나 안 땅이 정복되었음을 상정한 것이다.
〔문헌 가설의 역사〕 아스트뤼크의 견해 : 이러한 문제 들을 해결하고자 노력한 사람 중 하나가 하느님을 '엘로 힘' 과 '야훼' 라는 다른 이름으로 불렀다는 사실을 지적 한 독일 목사 비테르(H.B. Witter)였다. 1711년에 펴낸 책에서 그는 창세기 1-2장에서 전승을 구별하기 위한 방 법으로 하느님의 이름을 사용한 것으로 알려져 있으나, 그의 가설은 그 후 2세기 동안 묻혀 있었다. 그 영향력을 제대로 행사한 인물은 프랑스 왕 루이 15세의 주치의였 던 아스트뤼크(J. Astruc, 1684~1766)였는데, 그는 출애굽 기 3장에서 야훼라는 하느님의 이름이 계시되기 이전인 창세기와 출애굽기 2장까지 왜 하느님의 이름이 하나는 야훼이고 다른 하나는 엘로힘인가에 대해 의구심을 가졌 고, 결국 두 문헌 즉 하느님을 엘로힘이라고 부르던 신앙 공동체의 성서와 야훼라고 부르던 문헌이 합해져서 오늘 날과 같은 오경이 되었다고 보았다. 그리고 이것은 J 문 헌과 엘로힘 전승 문헌(E)이라고 명명되는 기초가 되었 다.
그러나 그는 당시의 스피노자(B. Spinoza, 1632~1677) 같은 학자들처럼 모세의 오경 저작설을 부인하기 위해서 이러한 주장을 편 것이 아니라 오히려 방어하기 위해서 였다. 아스트뤼크는 이 자료들이 뒤섞여 나타나고 있는 이유를, 모세는 본래 초기 자료들을 공관 복음서들처럼 나란히 배치하였으나 전해지는 과정에서 순서들이 뒤섞 여 이렇게 되었다고 보았다. 이 이론은 아이히호른(J.G. Eichhorn, 1752~1827)에 의해 수정 · 보완되어 자신의 저서 《구약성서 개론》에 언급되었으나, 그 이후로도 J와 E 중 어느 것이 더 고대의 자료인지에 대한 논쟁은 계속되었 다. 벨하우젠(J. Wellhausen, 1844~1918) 이전에는 E 문헌 이 더 고대의 것이라는 견해가 지배적이었으나, 1878년 에 벨하우젠이 J 문헌이 더 고대의 자료라고 주장한 이후 부터는 이 견해가 더 인정을 받게 되었다. 그리고 그 근 거로 J 문헌의 내용이 더 순박하고 신인 동형론적인 고대 의 사고 방식을 더 많이 갖고 있으며 신학적으로나 윤리 적으로 E 문헌이 더 발전된 형태를 보이고 있기 때문이 라고 하였다. 또 출애굽기 20장에 나오는 E의 십계명은 더 윤리적이고 후대의 발전된 형태를 보이는 반면에, 출 애굽기 34장에 나오는 J의 십계명은 더 원시적이고 제의
적인(cultic) 색채를 보인다고 하였다.
J와 E의 의존 문제에 대해서는 창세기 26장(J)과 20장 (E)에 나타나는 공통점을 바탕으로 E가 J에 의존하고 있 다는 견해도 있었으나 확실한 증거 부족으로 단명에 그 치고 말았고, 홀친거(H. Holzinger, 1863~1944) 같은 학자 들의 견해가 노트(M. Noth, 1902~1968) 등으로 이어져 지 배적인 견해를 형성하게 되었다. 그의 이론에 의하면 E 는 창세기 1-11장에 나오는 J의 원역사를 전혀 알지 못 하고 있었으므로 J와 E는 독립적으로 전해졌던 자료로 보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드 베테의 견해 : 이러한 이론은 그 후 드 베테(W.M.L. de Wette, 1780~1849)에 의해 3개의 문헌 이론이 되었는 데, 그는 신명기가 오경 중에서 가장 나중에 이루어진 책 이라고 주장하였다. 또 그 이전의 여러 학자들이 열왕기 하 22-23장에서 발견되었다고 주장하던 그 율법서가 바 로 신명기라고 하면서, 여기에 나오는 아세라 목상을 비 롯한 우상 파괴와 과월절 준수 등 종교 개혁 내용이 바로 신명기 내용과 일치한다는 것을 그 근거로 내세웠다. 이 러한 이유로 신명기는 다른 오경 문헌과는 독립된 문헌 으로 보게 되었으며, 그의 주장으로 소위 세 문헌설이 이 루어지게 되었다.
벨하우젠의 견해 : 이러한 가운데 후프펠트(H. Hupfeld, 1796~1866)는 E 문헌이 본래 두 개의 독립된 자료로 되 어 있었다고 주장하면서 이것을 E1과 E2라고 불렀으며, 그 후 이 이론은 벨하우젠에 의해 수용 · 발전되어 4자료 설이 되었다. 이러한 이론에 기초하여 각 문헌의 연대는 그라프(K.H. Graf, 1815~1869)에 의해 그 순서가 정립되었 는데, 그는 당시까지의 주장과는 달리 E1인 P가 가장 오 래된 자료가 아니라 가장 나중의 자료라고 주장하였다. 이러한 근거로 그는 기원전 7세기에 나타난 신명기 문헌 (D)이 J와 E2를 상정하는 반면, P 혹은 E1을 상정하고 있지는 않다고 하였다. 이러한 그의 견해는 같은 시대의 인물이었던 네덜란드의 구약학자 큐넨(Abraham Kuenen) 의 의견에 힘입은 것이었다.
이 4개의 문헌이 육경이 되기까지의 과정을 종합적으 로 정립한 사람은 그라프의 견해를 받아들인 벨하우젠이 었다. 즉 그는 좀더 조직적이고 종교적인 E1이 P가 되 고, E2가 현재의 E가 됨으로써 그 순서대로 소위 J, E, D, P의 네 자료설을 정립하였던 것이다. 벨하우젠에 의 하면 예호비스트(Jehovist JE)라고 불리는 편집자가 먼저 J와 E를 결합하였는데, 그는 단순한 편집자가 아니라 필 요에 따라서는 자유롭게 창작까지 한 육경의 형성자였던 것 같다고 하였다. 그 후 신명기가 JE에 결합되었고 맨 나중에 P가 결합되었다고 보았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 하고 벨하우젠은 최종의 육경이 형성되기까지에는 많은 사람들의 기여가 있었다고 여겼다. 이후 드 베테는 신명 기가 요시야 왕 때 발견된 모세의 법 문헌이라고 주장하 여 지금까지 정설에 가까운 호응을 얻고 있으며, 신명기 12-26장에 나오는 법 문헌과 열왕기 하 22-23장에 언 급된 개혁 조치가 같다는 것을 발견하였다. 요시야의 종 교 개혁은 대사제 힐기야가 발견하고 여예언자 훌다가
인정한 법 문헌에 따라 진행된 것이었으므로, 이 문헌이 바로 요시야 왕 때의 역사적인 정황을 잘 반영하고 있다 고 보았던 것이다. 이 문헌은 현재 신명기에 나와 있다. 그리고 이러한 이론들은 벨하우젠 이후 여러 차례 수정 과 보완 단계를 거쳤다.
각 문헌의 설립 연대와 순서 : 현재 정설로 인정받고 있는 문헌들의 단계는 다음과 같다.
① 가장 초기의 작품은 J 문헌이다. 이것은 창세기 2장 4b절에서 시작해서 창세기, 출애굽기, 민수기, 그리고 신명기에 있는 몇몇 구절들을 포함하고 있는데, 이 J문 헌이 여호수아서와 그 이후에까지 나타나는지는 논란의 여지가 있다. 단지 레위기에는 전혀 나타나지 않는다. J 문헌은 솔로몬의 성전 봉헌 직후인 950년경(1열왕 6, 37-38)이나 남북 왕국 분리 이전(기원전 926)에 기록된 것 으로 여겨진다.
② E 문헌은 창세기 15장 혹은 20장에서 아브라함 이 야기와 더불어 시작되어 J와 같은 방식으로 진행되고 있 다. 대략 여로보암 2세 때의 기원전 8세기 문헌 예언자 들의 등장 이전에 기록된 것으로 여겨진다.
③ J와 E는 JE 편집자(RE)에 의해 결합되었으며, 이 편 집 과정에서 J와 E의 일부가 생략되는 현상이 빚어졌는 데 E가 특히 그러하였다. 기원전 722/721년 북이스라엘 이 멸망한 후 남부 유대 쪽에서 이루어진 편집물로, 너무 정교하고 창조적으로 이루어져 있어 두 개의 문헌을 분 리하기가 어렵다.
④ D 문헌이라고 불리는 이 문헌은 이름 그대로 신명 기를 지칭한다. 노트 이후 원신명기는 신명기 4-30장을 일컫는 것이 통례이다.
⑤ D 문헌은 두 번째 편집자인 신명기 역사가(RD)에 의해 JE에 연결되었는데, 이 과정에서 D 문헌의 문구가 사경에 있는 JE 문헌 몇 군데에 삽입된 것으로 추정된다. 이 작업은 예루살렘 함락 후인 기원전 550년경에 이루 어진 것으로, 편집자는 신명기와 신명기계 역사(신명기~ 열왕기 후서)를 결합한 인물이었다. 이 편집자는 신명기의 본문 · 문장 · 단어 · 문체 등을 도입하여 신명기계 역사 를 저술하였는데, 신명기의 사상을 그대로 이어받고 있 다. 하지만 이 편집자를 신명기와 사경을 결합한 인물로 본다면 왜 P가 민수기까지만 가필을 하였는지에 대한 의 문이 남게 된다. 반대로 왜 이 편집자가 신명기계 역사를 만들면서 사경에는 가필을 하지 않았는지에 대한 의문도 생긴다.
⑥ 최종 작품인 P는 창세기 1장 1절에서 시작하여 J와 나란히 창세기 · 출애굽기 · 민수기에 골고루 나타나는 데, 특히 출애굽기 25-31장 및 35-40장과 레위기 전체 가 순수한 P 문헌이다.
⑦ P 문헌은 세 번째 편집자인 사제계 편집자(R")에 의해 JED와 결합되었는데 이것이 바로 현재의 오경을 형 성하는 결합이었다. 이 편집자는 이미 결합되어 있던 JE 문헌을 P와 결합하였거나 P의 틀 속에 JE 문헌을 삽입한 것으로 여겨진다. 대부분의 학자들은 이 편집자가 P 문 헌을 저술한 사람일 것으로 보고 있다.
그러나 창세기 14장과 같은 구절 등은 위의 네 문헌으 로부터 온 것이 아니고 독자적인 것으로 인정하고 있다. 이것들이 언제 첨가되었는지를 규명하는 것은 사실 불가 능하며, 이러한 특수 자료 이외에 다른 문장들도 오경이 완성된 후에 첨가되었다.
: Ⅲ . 문헌의 구분
〔야훼 전승 문헌〕 특징 : 오경은 많은 부분이 이야기로 구성되어 있으며, 하나의 긴 이야기는 다른 작은 이야기 들이 연결되어 이루어지고 있다. 예를 들어 창세기 1-11 장의 원역사는 천지 창조, 에덴 동산 이야기, 카인과 아 벨의 이야기 등 많은 이야기들로 이루어져 있다. 이런 이 야기들로 구성된 부분을 J 문헌 즉 '야훼 전승 문헌' 이라 고 부른다. 그래서 궁켈(H. Gunkel, 1862~1932)은 이 J 문 헌을 민담(folk tale)이라고 불렀다. J 문헌은 세속적인 삶 을 살아가는 청중을 상대로 선포한 말씀으로, 그들의 구 체적인 삶 속에서의 희로애락을 때로는 풍자적으로 때로 는 준엄하게 전달하고 있다. 그러므로 J 문헌은 용어 사 용에 있어서 어떤 특정한 단어를 사용하지 않았으며, 문 체는 단순 명확하고 직접적이며 극적이다. 또한 카수토 (U. Cassuto)는 이것을 드라마나 극적이고도 생생한 이야 기(전설, 무용담, 신화 등)로 보았다.
한편 슈페이서(E.A. Speiser)는 J의 특징을 다음과 같이 지적했다. "J의 문체는 명확하고 직접적이다. 그러나 이 러한 단순성은 예술적이고도 극적인 면을 갖고 있으며, 돌출하지 않는 말이나 구절 등이 이러한 특성을 드러내 는 수단으로 동원되고 있다. J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상당 한 깊이를 가지고 움직이고 있다. 한결같이 그들의 내적 인 삶이 독자들의 관심을 끌고 있다. 그러나 저자는 이를 단순히 묘사를 하는 것이 아니라 행동을 통해 그것을 내 보이는 데 성공하고 있다. 그로 인해 독자는 펼쳐지고 있 는 드라마의 극중 인물이 된다. 더구나 P와는 정반대로 J 의 세계는 상당히 세속적이다. 그의 세상은 매우 자연적 이고도 솔직 담백한 배역들로 채워져 있음으로 인해서 심지어 야훼와의 관계도 인간적인 척도로 축소되어 버리 고 하느님 자신조차 신인 동형론적으로 그려지고 있다."
민담은 크게 전설 · 무용담 · 신화로 나눌 수 있다. 전 설이란 롯의 아내가 소금 기둥이 되었다거나 에덴 동산 이야기 등이고, 무용담은 아브라함이나 야곱이 하느님의 천사와 싸우는 이야기 등이며, 신화는 하느님의 아들들 이 인간의 딸들의 아름다움을 보고 결혼하여 고대의 용 사를 낳는다는 이야기 등이다(H Gunkel, Genesis, vii~Ixxxi)
범위 : 학자들은 J 문헌이 창세기 2장 4b절의 에덴 동 산 이야기에서 시작된다는 것에 의견을 일치하고 있지 만, 그 끝이 어디냐에 대해서는 견해가 분분하다. J가 사 경에 제한되어 나타난다고 본 노트는, 여호수아의 땅 정 복 이야기 이후의 역사는 기록 당시 분실되었다고 주장 하였다. 그러나 다윗 · 솔로몬 혹은 여호사밧 때 문자화 된 것으로 보이는 J가 왜 판관기나 사무엘 상 · 하권에까 지 혹은 솔로몬의 성전 봉헌 이후로까지 내려가지 못하
는지에 대해서는 논쟁들이 많았는데, 이는 오늘날까지도 계속되고 있는 J 문헌설의 약점이자 쟁점이다. 사경에서 비교적 독립된 J의 이야기는 에덴 동산 이야기(창세 2, 4b -3, 24), 카인과 아벨(4, 1-16), 카인과 셋의 자손(4, 17- 26), 바벨탑 이야기(11, 1-9), 소돔과 고모라(18-19장) , 이사악과 아비멜렉 이야기(26장), 야곱이 축복을 훔치는 이야기(27장), 하란에서의 야곱 이야기 대부분(28, 10- 35, 22a) , 요셉의 형제들이 이집트에 두 번째로 내려가서 시험을 받는 이야기(43-44장) 시나이 산에서의 황금 송 아지 이야기(출애 32-34장) 등이다(M. Noth, Pentateuchal Tradi- tions, pp. 262~276) .
작성 연대 : J 문헌은 보통 다윗과 솔로몬 시대에 작성 된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 이스라엘 민족에게 있어서 이 시대는 피지배 민족의 오랜 압박에서 벗어나 다윗을 통 해 가나안의 주인으로서의 역할과 자긍심을 가지고 있던 시기였다. 창세기 12장 2절과 사무엘 하 7장 9b절을 통 하여 내적인 외적 통일성을 지적한 소긴(J.A. Soggin)은, 이 두 문장에서 아브라함과 다윗의 "이름을 떨치게 하겠 다" 라는 말이 나오고 창세기에는 "너를 큰 민족이 되게 하겠다" 라는 말이 나오는데, 여기에서 국가 개념보다 더 큰 '민족' 이라는 단어를 사용하고 있기 때문에 아브라함 이라는 인물 안에서 다윗 왕국의 개념을 그려 내고 있다 고 보았다. 이런 내적인 통일성을 부여함으로써 아브라 함에게 약속한 축복이 다윗에게 이루어졌음을 설명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또 창세기 2장 40절과 열왕기 상 11 장 14-22절을 비교해 보면, 솔로몬 통치 말기의 유다와 에돔의 왕 하닷과의 관계가 잘 드러나 있다. 하지만 이러 한 증빙 자료들은 유추에 기인한 것이므로 충분한 증거 가 되기에는 부족하다.
저술 장소 및 저자 : 대부분의 학자들은 J가 유대 땅에
서 이루어졌다고 하였다. 또 포러(G. Fohrer)는 아브라함 의 이야기나 유다와 요셉, 야곱의 축복 등에서 볼 때 다 윗 왕조를 상당히 긍정적인 입장에서 보았다고 해서 그 저자를 왕실 서기관이라고 하였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 로 J는 유다와 다말의 이야기 등에서 다윗 왕조의 권위에 대해 부정적이거나 객관화하려는 입장을 보이기도 하였 다. 또 J의 오경 문맥은 아브라함을 남쪽에 있는 헤브론 의 성소에 위치시키면서 소돔과 고모라에 대해 언급한 반면, E는 이에 대해 전혀 언급을 하지 않았다. 그리고 요셉 이야기(창세 37-50장)에서 J는 주된 역할을 유다에 게 돌렸지만, E는 르우벤에게 그 역할을 돌리고 있다. 창 세기 38장에 나오는 유다와 다말의 이야기는 유다 지파 에게 호의적인 평가를 보여 주고 있다. 그래서 모빙켈(S. 0.P. Mowinckel, 1844~1965)은 왕실 역사가 혹은 왕실의 지혜인을 저자로 보았다.
〔엘로힘 전승 문헌〕 범위 : '엘로힘 전승 문헌' 즉 E 문헌은 하느님의 이름을 '엘로힘' (Elohim)이라고 쓴 본 문에서 유래한 명칭이다. 그러나 내용적으로 J와 구별되 지 않을 뿐더러 구별해 놓았을 경우 이야기의 연결성이 깨져, E는 독립된 문헌이 아니거나 단지 J 문헌을 보충하 기 위한 것으로 여겨지기도 했다. E 문헌을 구별하는 가 장 큰 특징은 J 문헌의 반복이다. 아이스펠트(O. Eissfeldt, 1887~1973)나 휠셔(G. Hoelscher)는 E 문헌의 범위가 열왕 기까지 계속된다고 보았으나, 노트를 비롯한 대부분의 학자들은 창세기 15장에서 시작하여 20장(아브라함 · 사 라 · 아비멜렉의 이야기) 이후 산재되어 나타나며 민수기 23장에 언급된 발람의 축복에서 끝난다고 여겼다. 창세 기 15장부터 시작되었다는 것에는 의견의 일치가 이루 어졌으나, 그 끝이 어디인지에 대해서는 J와 마찬가지로 의견이 다양하다. 이렇게 의견이 다양한 이유는 예호비
스트 전승 문헌이 사제계 전승 안으로 들어가면서 정복 설화 부분이 잘라져 상실되었다고 본 노트의 견해가 설 득력을 갖지 못하였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E는 창세기 15장에서 시작되어 민수기 23장까지 간헐적으로 나타나 고 있는 것으로 보는 것이 일반적이다.
비교적 뚜렷한 E의 특성을 보이는 본문들은 다음과 같 다. 아브라함 사라 · 파라오의 이야기(J, 창세 12, 10-20) 는 아브라함 · 사라 · 아비멜렉(E, 창세 20장)이라는 형태 로 반복되고, 하갈의 추방 이야기(J, 창세 16, 1-14)는 창 세기 21장 9-21절(E)에서 비슷한 이야기의 형태로 반복 된다. 그리고 아브라함이 이사악을 번제로 드리는 이야 기(창세 22, 1-19), 야곱과 라반의 이야기(창세 31장), 요 셉의 꿈 해몽(창세 40-41장), 야곱이 에브라임과 므나쎄 를 축복함(창세 48장), 이드로의 모세 방문(출애 18장), 십 계명과 계약의 책(20-23장) 등이다.
특징 : '엘로힘' 이라는 하느님의 이름 외에 E 문헌의 또 다른 특징은 윤리적(ethcal)이라는 점이다. 윤리는 상 호 생존을 위한 질서 즉 사회법을 의미한다. 사회법에는 형법과 민법이 있는데, 구약에서 형법은 십계명이었다. 보상으로는 해결될 수 없고 범하면 처형되는 법이었기에 형법이다. 반면에 보상에 의해서 해결될 수 있는 민법은 계약의 책(출애 20, 22-23, 33)에 나타나 있다. 예를 들 어 남의 황소나 양을 훔쳐다가 잡아먹거나 팔았을 경우 황소 한 마리에 다섯 마리, 양 한 마리에 네 마리를 배상 하여야 한다는 식으로 보상법이 적용되었다. 이러한 법 은 당시 4대 문명 세계(그리스, 이집트, 소아시아, 바빌론)의 중심 무역항이었던 페니키아의 도시 시돈과 티로를 통하 여 도입된 시민법의 영향을 받은 것이다.
이러한 E 문헌의 윤리적 성격은, J 문헌으로부터 분리 해 내기 어려운 많은 E 문헌의 특징에도 불구하고 학자 들간에 의견의 일치를 보고 있는 창세기 20장에 잘 드러 나 있다. J 문헌(창세 12장)이 족장 아브라함이 어떻게 기 근의 시대에 대제국 이집트에서 위기를 넘기고 생존을 위한 재산을 얻었는가에 관심을 두고 윤리적인 차원에는 관심을 두지 않은 반면에, E 문헌(창세 20장)은 사라가 아비멜렉에게 범함을 당하지 않았음을 분명히 상기시키 고 사라는 사실상 아브라함의 이복 누이임을 강조함으로 써 아브라함이 윤리적으로 거짓말을 하지 않았음을 분명 히 하고 있다(창세 20, 12). 이러한 도덕적인 성격은 요셉 이 보디발의 아내에게 한 말에도 잘 드러나 있다(창세 39, 9). 이런 의미에서 발달된 윤리적 개념은 도덕적 선 각자들인 기원전 8세기 예언자들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간주되며, 이러한 예언자적인 성격은 모세(신명 34, 10) 와 아브라함(창세 20, 7)을 예언자로 지칭한 것에서도 잘 드러난다. 특히 J가 원시적 신개념인 신인 동형론적인 개 념(창세 3, 8)을 구사한 반면에, E는 반드시 천사(창세 31, 11)나 꿈(창세 20장 : 22, 1-3 : 28, 12 : 31, 24) 또는 예언 자와 같은 중개자를 동원하여 인간과 하느님과의 관계를 연결시키고 있다. 또 J는 다윗 · 솔로몬 때의 정책과 같이 가나안 사람들의 풍습이나 종교에 관심을 두지 않은 반 면에, E는 이에 대해 강한 반발을 나타내고 있다(창세
35, 1 이하 : 출애 32장 ; 민수 24, 24 이하) .
기원과 결합 : E 문헌은 예언자적인 성격으로 인해 북 쪽에서 기원한 것이라고 주장되어 왔다. 출애굽기 32장 의 금송아지 숭배, 열왕기 상 18장의 엘리야와 바알 예 언자의 대결, 호세아서 4장 2절 등에 나타난 십계명에 대한 암시, 아모스의 부유층에 대한 윤리적 비판 등으로 볼 때 E는 여로보암 2세 때의 기원전 8세기 문헌 예언자 들에게서 생성된 것으로 추측된다. 또한 열왕기 상 12장 에 나타난 황소신의 숭배 등은 이 문헌의 고향이 북쪽임 을 말해 준다.
폰 라트(G. von Rad, 1901~1971)는 시나이 산 이야기의 율법 전승은 세겜에서 행해졌던 신년 축제 즉 초막절에 선포되었던 법에서 기인한 것이고, 땅 정복 전승은 길갈 에서 행해졌던 무교절 혹은 추수절의 축제 안에서 행해 졌던 것으로 보았다. 그리고 노트는 J와 E가 공통 전승 (Glundlage)에 기초하고 있다고 주장하였다. 이러한 견해 를 종합해 볼 때, J 전승은 길갈 무교절 축제에서 전해 오던 전승으로 거슬러 올라가고, E의 율법 전승은 세겜 의 초막절 즉 신년 축제를 통해서 성장해 온 전승으로 유 추할 수 있다. 이 두 전승은 계약의 궤가 사막에서 요르 단 강을 건너서 길갈과 세겜을 거쳐 들어옴에 따라, 길갈 의 추수 감사절 전승과 세겜의 신년 축제 전승을 흡수하 였고, 다시 실론을 거쳐 예루살렘에 이르는 동안 야훼 종 교 전승과 연결되어 성장했다고 유추할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전승은 솔로몬 이후 나라가 남북으로 갈라지면서 갈등이 심화되는 상황과 예언자들의 종교적 활동의 격차 가 문화적 영향의 차이를 배경으로 벌어짐에 따라 E는 J 와 매우 다른 신학적인 면을 발달시키게 되었을 것이다.
그 후 E 문헌은 북쪽에서 문자로 고착되었으나 곧 북 이스라엘의 멸망으로 북쪽의 종교인들이 남쪽으로 대거 이동하게 됨에 따라 J와 E가 융합되는 현상이 나타났고, 이러한 현상은 히즈키야 개혁 때 제1차 신명기 운동의 현상으로 나타나게 되었다. 그리고 므나세의 종교 탄압 시기를 거쳐 요시야 개혁으로 이어졌고, 남부 유다가 멸 망한 후에 신명기 역사가들에 의해 본격적으로 신학화되 고 역사화되었다. 이러한 역사관은 제2 성전을 중심으로 하는 종교 회중을 중심으로 종교적 규정인 P로 더 승화 되었다.
〔사제계 문헌〕 범위 : '사제계 문헌' 즉 P 문헌은 가장 현저한 문헌으로, 성전에서 행해진 예배나 사제와 평신 도들이 준수해야 할 제반 종교 규정 및 그와 관련된 문헌 이다. P의 범위는 창세기 1장 1절부터 신명기 34장 1a절 과 7-9절까지 계속되는데(Kaser, Intro., p. 103), 그 내용은 대략 다음과 같다. 창조 이야기(창세 1, 1-2, 4a), 아담 부터 노아에 이르는 족보(창세 5장), 노아 계약의 결론 부 분(창세 9, 1-17), 아브라함의 계약(창세 17장), 막벨라 동 굴의 구입(창세 23장), 아브라함의 죽음과 이스마엘의 후 손(창세 25장), 야곱의 이집트 정착(창세 46, 6-27), 성막 규정 계시(출애 25-31장), 성막 건축의 실행(출애 35-40 장), 레위기 전체, 시나이 산에서의 종교적 계시(민수 1, 1-10, 10), 아론계 사제들의 규정(민수 17-18장), 모세
의 죽음(신명 34장) 등. 이렇게 보면 P 문헌은 모두 성막 건축에 관련된 것들이고, 또 다른 부분은 성직자의 정결 에 대해서 규정하고 있는 레위기의 문헌이다. 그리고 모 두 종교적인 규정일 뿐만 아니라 사제와 성전에 관련된 문헌들이다. 대표적인 P 문헌은 성전 그 자체와 관련된 출애굽기 25-31장과 35-40장이다. 또 레위기는 성전에 서 봉직할 사제들이 행할 규정들을 기록하고 있으며, 평 신도와의 관련을 염두에 두고 있는 대부분의 민수기도 이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
특징 : P 문헌의 특징은 왕이 등장하지 않는 대신 통치 자의 역할을 사제가 한다는 점이다. 또 여러 성소보다는 유일한 성막이라는 중앙 성소의 개념을 통하여 종교 생 활이 이루어지고 있음을 시사하고 있고, 창세기 1장 1절 부터 2장 4a절에 나타난 것처럼 바빌론 유배 시기 이후 에 강조된 안식일을 중심으로 만물의 창조와 통치 체계 가 이루어졌다. 또한 바빌론 유배 때 이스라엘 백성에게 강조된 할례(창세 17장)도 저작 시기의 시대 배경을 잘 드러내 주고 있다. 한편 범우주적인 사고 방식 - 아마도 바빌론 유배 때의 세계관-과 탈신화화(dedivinization)의 현상도 뚜렷이 드러내 보이고 있는데, 이러한 탈신화화 혹은 비신화화의 개념은 천지 창조 때 만들어진 해와 달 을 비롯한 모든 만물을 통하여 여실히 드러난다. 바빌론 이나 주변 근동 세계의 자연 종교가 해와 달을 신으로 생 각하였던 것과는 달리 구약성서에서는 더 이상 신으로서 의 역할을 하기보다는 단순히 피조된 물체로서의 역할로 전락하였다(창세 1장). 또 다른 특징으로는 성전 혹은 성 막 안에서 종교인들의 계급화가 뚜렷이 나타나고 있다는 점인데, 아론과 대사제, 칠십인 장로, 사제, 사제를 돕는 레위인, 평신도, 이방인 평신도 등이었다.
작성 시기와 핵심 내용 : P 문헌은 에제키엘서나 역대 기와 가장 근접한 문헌으로 알려져 있다. 이 시대적인 배 경 즉 일반 백성을 왕이 아닌 사제가 이끌던 시기는 대부 분의 학자들에 의하면 예루살렘 멸망 이후 특히 기원전 515년 제2 성전 건축 이후의 종교 생활을 대변하는 것 으로 여겨지고 있다. 이렇게 볼 때 P 문헌이 쓰여지고 정 리된 장소 역시 예루살렘 성전과 예배 규정을 배경으로 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J 문헌의 핵심이 세상에서 세속적인 이웃에게 복의 근 원이 되는 것이라면(창세 12, 1-3), P 문헌의 핵심 즉 중 심 메시지는 종교적 백성 안에서의 축복이라고 할 수 있 다. 이러한 축복은 안식일로부터 시작되며(창세 2. 3) 성 전에서 이루어지는 것으로서(출애 39, 43 : 레위 9, 22-23 ; 민수 6, 22-27), 속죄 제물과 정결(출애 39, 30-32)을 통 해서 사제가 선포하는 종교적인 세계관을 보이고 있다.
〔신명기 문헌〕 범위 : 모세 오경 중 신명기는 문헌 가 설의 관점에서 볼 때 거의가 '신명기 문헌' 즉 D 문헌에 속한다. 노트는 신명기 5-30장을 원신명기로서 D 문헌 으로 보았는데, 설교체로 되어 있고 반복적인 구절을 사 용하고 있다는 것이 이 문헌의 특징이다. 결국 신명기는 모세가 이스라엘 평신도 백성에게 2인칭 단수 혹은 복수 로 전하는 설교의 형식으로 되어 있다. 하느님을 향한 사
랑을 강조하는 "너는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의 하느님을 사랑해야 한다" (6, 6), 중앙 성 소의 개념을 강조하는 "주 너희 하느님께서 당신의 이름 을 두시고 당신의 거처로 삼으시려고, 너의 모든 지파 가 운데에서 선택하신 곳" (12, 5), 하느님의 능력을 강조하 는 "강한 손과 그분의 뻗은 팔"11, 2), 인류애를 강조하 는 "고아와 과부와 이방인을 가엾이 여길 것" (25, 17- 22), 의인이 받을 영육간의 복에 관한 것 등이 특징적인 신명기 문구로 지적되고 있다. P에서는 신년 축제가 강 조된 반면에 신명기와 신명기 역사에서는 과월절이 강조 되었다. 또 하느님이 지상의 성전에 계신다는 사상보다 는 하느님의 이름이 땅 위에 계시고 하느님 자신은 하늘 에 계신다고 하는 소위 성명 신학이 지배적으로 나타나 고 있다.
기원 : 학자들 사이에서는 일반적으로 신명기 전승이 북쪽에서 기원한 것으로 의견의 일치를 보고 있다. 실제 로 지배적인 사상은 남쪽의 다윗 왕조 사상보다는 북쪽 의 시나이 산 전승과 E 전승에 더 밀접하게 사상과 문학 적인 관련성을 보여 주고 있다. 또 예언자와의 관계에 있 어서도 남쪽의 예언자들보다는 호세아나 예레미야와 더 밀접한 관련성을 보여 주고 있다. 그래서 신명기가 본래 북쪽에서 기원했으리라는 것에는 의견이 일치하고 있으 나, 과연 현재의 형태로 문자화된 장소가 어디였는가에 대해서는 학자들간에 다소 의견의 차이가 있다. 알트(A. Alt, 1883~1956)는 북이스라엘의 레위인들이라고 보았고 폰 라트는 남부 유다의 지방 레위인들이 요시야 개혁을 지지하기 위한 개혁안으로 만든 것으로 보았다. 또 바인 펠트(M. Weinfeld)는 신명기가 지혜 문학적인 특성과 국 제 종주권 조약의 형식과 유사함에 근거하여 요시야 왕 때의 국제적인 조약문이나 공문서 작성에 익숙하였던 궁 중 서기관들이 만들었을 것으로 여겼다. 그리고 니콜슨 (E.W. Nicholson)은 북이스라엘 멸망 때 남쪽으로 내려온 예언자들에 의해서, 히즈키야 때 만들어졌던 것이 므나 쎄의 통치 기간에 잠복해 있다가 요시야 때 발견된 것으 로 보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견해들 역시 뚜렷 한 증거를 제시하지 못하였다.
여기에서 생각해 볼 것은 신명기나 신명기계 역사는 북쪽과 남쪽의 사상을 동시에 가지고 있는 JE와 같은 선 상에 있다는 것이다. 북쪽의 사상은 시나이 산 계약에 나 타나는 조건적 계약이 바탕을 이루고 있는데(출애 19, 3- 8), 다시 말해서 이스라엘 백성이 순종하면 하느님의 백 성이 되고 순종하지 않으면 징벌을 받을 것이라는 내용 이다. 이러한 조건적 계약은 E 문헌나 북쪽 예언자들의 사상에 지배적으로 나타나는 것으로, 신명기계 역사서에 속하는 다윗 계약 본문(2사무 7장)에 다윗 계약이라는 영 원한 계약과 나란히 나타나 있다. 또 이러한 북쪽의 사상 은 신명기에서도 남쪽의 다윗 계약 사상과 결합되어 나 타난다. 남쪽의 사상은 시온의 선택과 다윗 왕조의 선택 인데, 이는 신명기 역사서에는 분명히 나타나지만 신명 기에는 함축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이렇게 볼 때 D는 당 시 근동 제국 문명의 두 눈과 같았던 페니키아와 인접해
있던 북쪽에서 기원하고 발달된 계약 사상을 담고 있으 나, 예루살렘 중심의 다윗 왕조 사상이 지배적이었던 남 쪽에서 기록되었던 것 같다.
저자 : 국가 정신의 기초로 고안된 개혁안은 히즈키야 개혁 때 초안된 것이 요시야 개혁 때 확충되어 완성된 것 으로 보아야 한다. 그러나 이러한 개혁 사상은 폰 라트가 주장하는 것처럼 남쪽 지방 레위인들이 지방 유지들의 사주를 받아서 이루어 낸 것이라고 볼 수는 없다. 왜냐하 면 자신들의 생업 근거지였던 지방 산당을 스스로 철폐 하는 어리석은 일은 하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 서 소위 자유 예언자들(free prophets)이라고도 하는 자유 설교가들(free preachers)에 의해서 이루어졌을 것이라고 여기고 있다. 그들은 기원전 722/721년에 북이스라엘 이 멸망한 후 단과 베델에 있던 중앙 성소에서 호국 종교 적 임무를 수행함으로써 생계를 유지하던 북이스라엘의 예언자들로서, 자신들의 생업을 잃고 스스로 지방 성소 를 개척함으로써 자신들의 생업을 이어 가던 자들로 추 측된다. 중앙 성소에서 근무하던 레위인들이 일시에 생 업의 근거를 잃고 떠돌이가 될 수밖에 없었음은 신명기 에서 불쌍한 레위인들을 고아나 과부 혹은 이방인과 같 은 수준으로 취급한 데서도 잘 드러난다.
북이스라엘이 멸망한 후 궁중 지식인이었던 이들은 히 즈키야 왕 때 대거 남쪽으로 이동하여 히즈키야 개혁이 라고 불리는 제1차 신명기 운동을 일으켜 남쪽을 계몽하 고 자극하였고, 이러한 현상은 요시야 왕의 개혁 때까지 이어졌다. 이때 개혁의 선봉에 섰던 인물들은 모두 북쪽 출신과 밀접한 관련이 있었다. 그리고 히즈키야의 갑작 스런 사망과 므나세의 아시리아 사대 정책으로 위축되어 있던 이들은, 요시야 왕 때에 이르러 개혁의 불꽃을 당겨 요시야를 통한 남북 왕조의 융합과 그를 통한 이스라엘 의 독립을 꾀하게 되었다. 이러한 일에 앞장선 인물은 신 명기 역사가와 밀접한 관련을 가졌거나 익명의 신명기 역사가였던 예레미야를 통해서 잘 드러난다. 하지만 요 시야의 전사와 남부 유대의 멸망으로 남쪽의 궁중 예언 자들도 북쪽의 궁중 예언자와 똑같은 전철을 답습하게 되었다. 이때의 실상은 예레미야서나 멸망 후의 종교 활 동을 잘 보여 주는 에제키엘서에 잘 드러나 있다.
이들의 정신은 신명기 역사가로 여겨진다. 이들은 국 가의 정치적 · 종교적 개혁안이었던 신명기를 신명기 역 사의 서두에 삽입하면서 역대 왕들을 자신들의 종교적 관점에서 자유롭게 평가함으로써 긴 신명기 역사를 완성 하였다. 그리고 이때가 바로 기원전 550년경으로 원신 명기(신명 5-30장)가 현재의 위치에 삽입되었다고 학자들 간에 의견이 모아지고 있다. 또 신명기 17장이나 사무엘 상에서 열왕기 하에 이르는 왕에 대한 자유로운 평가를 통하여 이들이 왕국이 멸망한 후에 이루어졌음을 알 수 있다.
IV 의미와 동향
[현대적 의미] 아스트뤼크 이후 벨하우젠 때부터 본격
화된 문헌 가설은, 현대에 와서 한편으로는 설득력을 잃 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오경에 대한 입체적인 연구의 대 안이 없기 때문에 학계에서는 계속 수정 · 보안되는 형태 로 수용되고 있다. 그리고 앞으로도 변함없이 각도를 달 리해서 오경 연구를 위한 도구로 수용될 것으로 여겨진 다.
사실 성서는 연설의 형태로 되어 있는데, 이들 네 개 문헌들의 성격을 분석해 보면 각기 나름대로 종교 생활 의 단면들을 대변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위에서 말한 대로 J는 세속적인 민담을 대변하고 있고, P는 종교인들 의 세속적인 삶의 문제를 이야기 형태로 대변하고 있으 며, E는 세상에서의 윤리적인 삶을 대변하고 있다. 그리 고 신앙인들이 지켜 온 종교적인 면을 대변하고 있는 P 는 성전의 규정 · 사제들의 역할 · 평신도들이 지켜 나가 야 할 도리와 의무 · 제사와 예배 규정 등을 말해 준다. 이러한 측면을 모두 종합해서 전달하는 것이 설교 형태 로 되어 있는 D 문헌으로, 신명기에는 위에서 언급한 세 가지 문헌의 단면들이 모두 섞여 있음을 알 수 있다. 즉 세상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한 일들, 이스라엘 백성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지켜야 할 윤리적인 규정, 종교 생활 을 하는 데 있어서 성직자 계층인 레위인들과 평신도들 이 지켜야 할 종교적인 규정들이 모세의 설교 형태로 전 달되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볼 때 오경은 물론 전기 예언서까지 포함해서 하나의 커다란 설교라고 볼 수 있다. 오경은 하느님의 직 접 연설이나 모세의 연설 형태로, 전기 예언서는 예언자 들의 예언 형태로 선포된 말씀이다. 이러한 설교 안에는 세상에서의 삶 가운데 일어나는 갖가지 삶의 지혜(다말과 유다의 이야기, 야곱의 꿈 이야기, 룻의 이야기 등), 윤리적인 규정(십계명과 계약의 책, 아브라함 · 사라 · 아비멜렉과의 관계 등), 성전과 예배, 성직자와 평신도 사이의 종교적인 전 통과 규정 등이 포함되어 전달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선포 내용의 핵심에 있어서도 J가 세상 삶에 있어서의 복 의 근원이라면, P는 종교적 백성 안에서의 축복과 성전 을 중심으로 한 생활을 강조하고 있다. E가 윤리와 도덕 에 대한 순종을 강조한다면, D는 이 세 가지 영역에서 설령 잘못되었을지라도 회개해서 순종하였을 때 받을 축 복(신명 28-30장)에 대하여 말하고 있다.
〔최근의 동향〕 오경에 대한 최근의 연구 동향은, 문헌 설이 추구하려고 했던 문헌의 배후에 있을지도 모를 역 사성의 추구보다는 성서를 하나의 이야기로서의 성서 혹 은 문학으로서의 성서라는 개념으로 나아가고 있다. 이 러한 문학(literature)으로서 혹은 이야기(story)로서의 성 서라는 개념을 바탕으로 하여 역사 이야기라는 차원으로 나아가기도 한다. 예를 들어 문헌설의 기준으로 제시되 었던 반복, 다른 단어나 문체의 선택, 문맥 단절 등 소위 다른 이질적인 인물들에 의해 삽입되었을 것으로 여겨지 던 문학적인 변화가 사실은 고대의 역사나 문학 작품 안 에서도 똑같이 나타나고 있으므로, 그런 것들이 사실은 한 사람의 저자에 의해서, 때로는 의도적으로 때로는 무 의식적으로 나타나고 있다고 지적되고 있다. 독일 계통
의 문헌 가설에 도전하고 있는, 이러한 경향의 선두에 선 최근의 학자들은 영미의 학자들로서 알터(R. Alter), 군 (D.M. Gunn), 클라인즈(DJ.Cines), 와이브레이(R.N.Why- bray), 톰슨(T.L. Thomson) 등이 있다. 물론 영미 계통에 서도 문헌 가설을 계속 발전시키려는 경향을 유지하는 존스톤(W. Johnstone)이나 니콜슨 같은 학자들도 있다. 문 헌 가설에 도전하는 대표적인 학자 반 세터즈(J. van Seters)는 소위 J라고 하는 문헌의 문학적인 양식이나 기 술은 기원전 6~5세기의 인물인 헤로도토스(Herodotos) 의 작품이나 동 시대의 문학서들과 사실상 거의 같다고 보았다. 또 그는 특별한 역사 해석 방법을 바탕으로 J가 헤로도토스를 전후한 시기에 쓰여졌음을 주장함으로써 강한 설득력을 얻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서에 나타난 다양한 전승들은 단 순히 어떤 역사가나 문학가의 순수한 허구에 의해서 이 루어진 것이 아니고 신앙의 조상들이 전수해 온 살아 있 는 종교적 유산과 그들이 살았고 체험한 하느님의 섭리 와 그 체험을 통해 지시된 생명의 윤리를 담고 있다. 그 리고 이러한 살아 있는 전승들은 과거의 역사 속에 묻혀 있는 죽은 유물이 아니고, 하느님의 말씀으로 그가 선택 한 백성들을 생명의 길로 인도하기 위하여 미래를 향해 지시하고 있다. 이러한 세 가지 차원은 각기 나누어지는 것이 아니라 선포되어야 할 생명의 말씀인 설교의 형태 로 어우러져 계속해서 선포되어야 할 것이다. 이러한 각 도에서 문헌 가설은 성서의 역사적인 깊이를 더해 가기 위한 하나의 디딤돌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된다. (⇦ 문 헌 가설 ; 사제계 전승 ; 신명기 전승 ; 야훼 전승 문헌 ; 엘로힘 전승 문헌 ; → 모세 오경 ; 성서 신학 ; 성서 연 구 방법론 ; 성서학)
※ 참고문헌 U. Cassuto, The Documentary Hypothesis and the Com- position ofthe Pentateuch, Jerusalem, 1961/ Fohrer, Introduction to the Old Testament, Nashivillee, 1968/ H. Gunkel, Genesis, Mercer Univ. Press, 1997/ 0. Kaiser, Introduction to the Old Testament : A Presentation of Its Results and Problems, Oxford, 1975/ W.W. Nicholson, The Pentateuch in the Twentieth Century : The Legacy of Julius Welljausen, Oxford, Clarendon Press, 1998/ J.C. O'Neill, Biblical Criticism, 《ABD》 1, pp. 725~730/ R.H. Pfeiffer, Introduction to the Old Testament, New York, 1941(reprinted 1948)/ J. Wellhausen, Prolegomena to the History of lsrael, Edinburgh, 1957/ 一, Die Composition des Hexateuchs und der historischen Buecherd Altentestaments, Berlin, 1963/ R.N. Whybray, The Making ofthe Pentateuch, Sheffield, JSOT Press, 1994/ 노희원, 《구약성 서의 깊은 세계》, 연세대학교 출판부, 1998. 〔盧熙原〕
성서 문헌 가설
聖書文獻假說
[라]hypothesis documentorum · [영]documentary hypothes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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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세가 오경을 저술하였다는 견해에 대한 의문은 끊임없이 제기되어 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