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서 연구를 통하여 성서에 관한 교회의 정통 가르침과 그와 관련된 주제들에 대한 이해를 심화시키고 발전시키기 위하여 설립한 연구 기관. 성서를 널리 보급하려는 목적에서 설립된 성서 연구소들은 작은 규모의 연구 단체부터 국제적인 수준의 학문적인 위원회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일반 연구소〕 성서 연구소는 1719년에 독일의 할레(Halle)에서 최초로 설립되었는데 1775년 이래 '칸슈타인쉐 성서 교육 기관' (Cansteinsche Bibelanstalt)이라고 불려 오고 있다. 1792~1800년에는 영국과 네덜란드 등에 선교회가 설립되면서 19세기 들어 많은 성서 연구소들이 설립되었다. 즉 1804년에 영국과 바젤, 1805년에 베를린, 1814년에 네덜란드, 1815년에 노르웨이, 1816년에 미국, 1818년에는 파리에 성서 연구소가 설립되었던 것이다.
이러한 성서 연구소들에서는 주석을 달지 않고 성서 본문만을 발행하거나 번역 및 교정을 거쳐 편집한 성서 본문을 출판하였다. 네슬레(Nestle)판 《그리스어 신약》이 처음 출간된 것은 1898년이었으며, 뷔르템베르크(Würt-temberg)의 성서 연구소에서는 키텔(Rudolf Kittel, 1853~1929)의 《히브리어 성서》(Biblia Hebraica, 1906)를, 파리 성서 연구소에서는 《백년의 성서》(Bible du Centenaire, 1916~1948)를 발행하였다. 또 '영국과 외국의 성서 공회' (British and Foreign Bible Society, BFBS)에서 제작한 히브리어 성서가 몇몇 유대인 출판업자들에 의해 여러 가지 판형으로 발행되었고, 긴스버그(C.D. Ginsberg)의 '마소라 성서' (Masoretic Bible)가 이 성서 공회에 의해 1926년 런던에서 발행되었다. 1946년 이후 성서 연구소들은 세계 연맹 수준의 '세계 성서 공회 연합회' (United Bible Societies)에 합병하거나 제휴를 하고 있는데, 현재 아프리카 · 아시아 . 유럽 · 아메리카에 있는 100여 개의 성서 연구소들이 여기에 속해 있다.
〔가톨릭의 연구소〕 가톨릭 교회는 오랫동안 기존 성서 연구소의 활동을 수용하지 않는 입장이었다. 왜냐하면 부족한 형태로의 개정판 발행과 각 교파의 입장을 앞세운 번역의 유포 등이 교회로 하여금 불신과 적대감을 갖도록 부추겼기 때문이었다. 그러다가 일부 프로테스탄트 성서 연구소들의 활발한 활동에 자극을 받아 그와 유사한 성서 연구소를 설립하고자 하는 움직임이 일어나게 되었다. 그러나 이들의 시도와 노력은 곧 실패로 돌아갔고 교도권의 금지와 제재를 받아야만 하였다. 교황은 이들의 무분별한 성서 유포의 위험성에 대하여 여러 차례(비오 7세, 레오 12세, 그레고리오 16세, 비오 9세) 언급하였
는데, 이러한 교황의 언급들은 구 교회법 1399~1400조에 명시되었다. 하지만 1902년에 이탈리아에서 '성 예로니모 성서 연구소' (Society of St. Jerome)가 설립되면서 복음서 연구와 성서 운동은 활발하게 전개되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이와 동시에 프로테스탄트의 활발한 연구에 자극을 받아 가톨릭 교회에서도 성서 연구에 점차 호의적인 입장을 보였으며 프로테스탄트측과 협력하려는 의도도 갖게 되었다.
가톨릭 성서 운동이 급속도로 성장하면서 특수한 형태의 성서 연구소들이 설립되었는데, 성서 연구 운동이 활성화된 것은 교황들의 격려와 지지 덕분이었다. 교황 레오 13세(1878~1903)의 회칙 <프로비덴티시무스 데우스>(Providentissimus Deus, 1893)와 비오 10세(1903~1914)의 '교황청립 성서 연구소' (Pontificium Institutum Biblicum) 설립, 베네딕도 15세(1914~192)의 회칙 <스피리투스 파라클리투스>(Spiritus Paraclitus, 1920) 특히 비오 12세(1939~1958)의 회칙 <디비노 아플란테 스피리투>(Divino Afflante Spiritu, 1943)가 그 좋은 예들이다.
가톨릭의 성서 연구소가 지향하는 목적은 성서 보급과 연구를 위해 가능한 모든 수단들을 이용하는 것이며, 개인적인 학습과 연구 · 국가적이고 지역적인 학술 회의에의 적극적인 참여 · 국가 차원의 성서 주간 창설 등을 격려하고 지지함으로써 가톨릭의 영성적인 생활이 심화되도록 하는 것이다. 이러한 성서 운동은 교황 비오 10세로부터 가장 큰 지지를 받았는데, 교황은 단순히 성서적인 지식만이 아니라 전반적인 영성 생활을 촉진시키기 위하여 성서의 종교적인 의미를 깊이 연구하도록 격려해주었다. 이에 성서 연구소의 활동과 운동은 여타 가톨릭 운동(Catholic action)의 종교적인 쇄신 노력과 전례 개혁 과 밀접한 연관성을 갖고 발전하였으며, 가톨릭 평신도들이 펴내는 성서 학술지인 미국의 《오늘의 성서》(Bible Today)나 프랑스의 《성서와 신앙 생활》(Bible et la Vie Chrétienne) 등도 이러한 가톨릭 성서 연구소의 운동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교황청립 성서 연구소 : 19세기 말과 20세기 초에 걸쳐 성서 해석을 둘러싸고 벌어졌던 격렬한 논쟁, 이른바 '성서 문제' (Quaestio biblica)를 배경으로 교황 비오 10세는 1910년에 성서 연구 전문 기관인 '교황청립 성서 연구소' 를 설립하였다. 교황은 이미 '교황청 성서위원회' (Commissio Pontificia de Re Biblica)의 보완책으로 성서 연구를 전담하는 연구 기관이 꼭 필요하다고 생각하였고 이를 위하여 전세계에서 전문가들을 모집할 의도를 갖고 있었다. 그러나 정성껏 준비되었던 이 계획은 재정적인 이유 때문에 실행에 옮기지 못하였다. 레오 13세 교황의 후임인 교황 비오 10세는 선임자의 뜻을 이어받아 재임 초기인 1904년에 성서학에 관한 시험을 주관하고 학위를 수여할 수 있는 권한을 성서위원회에 부여한 뒤, 이 시험의 후보자들을 준비시키기 위하여 그레고리오 대학교에 '고등 성서 연구 과정' 을 개설하도록 하였다. 그리고 1909년 5월 7일에는 그레고리오 대학교 부설로 되어 있던 이 '고등 성서 연구 과정' 을 확대 · 독립시켜 교황청립 성서 연구소' 를 설립하면서 그 운영을 예수회에 위임하였다. 이 연구소에서 가장 오랫동안 재임하였던 이는 초대 소장을 지낸 폰크(P.L. Fonck) 신부이다.
교황청립 성서 연구소의 설립 목적은 전문적인 성서 연구를 통하여 성서에 관한 교회의 정통 가르침과 그와 관련된 제반 주제들에 대한 이해를 심화시키고 발전시키는 데 있었다. 그러므로 이 연구소에서는 여러 강의와 세미나, 그리고 학문적인 방법론에 관한 강의와 공개 강좌들을 통하여 성서와 관련된 기본 학문 분야들과 특수 학문 분야들에서 설립 목적을 달성하여야 했다. 초기에는 교황청 성서위원회가 후보자들을 직접 시험하고 학위를 수여하였는데, 1916년부터는 교황청립 성서 연구소가 독자적으로 성서학 석사 학위(licentia)를 수여할 권한을 받았으며, 1928년부터는 성서학 박사 학위까지 독자적 으로 수여할 권한을 받았다. 한편 1927년에는 성서 주석자들에게 필수적인 성지(聖地)에 관한 지식을 갖도록 하기 위하여 예루살렘에 교황청립 성서 연구소의 분교를 개설하여 학생들이 1년 정도 가서 공부할 수 있도록 하였다. 1932년부터는 고대 근동학의 중요성을 인식하여 '동양학부' 를 개설하였다.
초기의 교황청립 성서 연구소는 근대주의의 위험 등 혼미한 시대적인 배경 속에서 성서에 관한 교회의 정통 교리를 옹호하는 일이 급선무였으므로 한동안 '방어적인 분위기' 가 지배적이었다. 그러나 1930년부터 1949년까지 소장으로 재직한 베아(Augustin Bea) 신부가 폭 넓은 시야를 가지고 온갖 정성을 기울인 결과, 현대적인 성서 주석의 모든 요구 사항에 대처하려는 분위기가 조성되었다.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1943년에 교황 비오 12세의 회칙 <디비노 아플란테 스피리투>와 같은 개방적인 성서 회칙이 나올 수 있었으며, 이러한 분위기는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계시 헌장>(Dei Verbum)에까지 반영되었다.
현재 이 연구소는 두 개의 학부 곧 '성서학부' 와 '동양학부' 로 구성되어 있으며, 입학 자격은 가톨릭 교회에서 인정하는 '신학 학사 학위' (Baccalaureato in S. Teolo-gia) 소지자이다. 석사 학위 취득을 위한 교과 과정은 성서 그리스어 기초와 성서 히브리어 기초만을 배우는 1년 간의 '성서 언어 예과 과정' 을 제외하고 약 3년 정도 걸린다. 그리고 세미나와 논문을 제외한 전 과정에서 신약학과 구약학의 구분 없이 성서학 전반에 걸친 학문들(성서 그리스어 · 성서 히브리어 · 아람어 · 고대 근동어 · 고고학 · 지리학 · 성서 역사 · 본문 비평 · 해석학 · 신약학 입문 · 구약학 입문 · 구약성서 신학 · 신약성서 신학 · 각 권별 성서 주석 등)을 두루 공부하도록 되어 있는데, 이 중에서도 성서 언어 공부의 비중이 가장 높다.
교황청립 성서 연구소의 연구 문헌들은 현재 두 가지 잡지를 통하여 발표되고 있는데, 즉 5개의 현대 언어로 된 논문들을 게재하는 성서학 전문 잡지인 《비블리카》(Biblica)와 고대 동양학에 관한 전문 잡지 《오리엔탈리아》(Orientalia)이다. 그리고 단행본 총서로는 《아날렉타 비블리카》(Analecta Biblica)가 있다.
교황청 성서위원회 : 1902년 10월 30일에 교황 레오 13세의 칙서 <비질란테 스투디이궤〉(Vigilante studiique)를 통해 설립된 교황청 성서위원회의 임무는, 모든 수단을 동원하여 현안이 되고 있는 성서 문제에 관하여 면밀히 연구하고 토론하여 교회의 공적 가르침을 공포함으로써 전세계 가톨릭 신자들이 오류에 빠지지 않도록 하는데 있었다. 초기의 교황청 성서위원회 구성원은 추기경단(Collegium Cardimalium)에 소속해 있는 정회원과 여러 국가와 교구 및 수도회의 성직자들 중에서 선발된 성서 전문가로 구성된 자문 위원들이었다. 그리고 일부 자문위원들은 로마에 상주하였고 다른 이들은 문서 검토 작업을 통하여 성서위원회와 협력하였다. 초기의 정회원은 추기경들이었는데 이는 그 당시에 교회 안에서 '성서 문제' 가 얼마나 심각하였는지를 반영해 준다. 현재 교황청 성서위원회 위원들은 여러 대륙 · 국가 · 언어권 등을 고려하여 전세계에서 선발된 성서 전문 학자들로 구성되어 있으며, 신앙 교리성 장관이 위원장을 맡고 있다.
1907년에 교황 비오 10세는 교황청 성서위원회의 결정들이 교의적인 교령과 동등한 권위를 갖는다고 하였다. 그리고 '교황청 성서위원회' 는 위원회에 상정된 성서학의 문제들(dubia)에 대하여 그 답변을 공표하고 있는데, 1905~1915년 사이에만 14개의 <답변>(Responsa)이 공표되었다. 최근에 발표된 문헌들로는 <성서와 그리스도론>(De sacra scripta et christologia, 1984), <교회 안의 일치와 다양성>(Unité et diversité dans I'Eglise, 1989), <교회 안의 성서 해석>(L' interpretation de la Bible dans I'Eglise, 1994) 등이 있다.
그 밖의 성서 연구소들 : 가톨릭에서는 국가적인 차원 및 가톨릭 학자들로 구성된 보다 학문적인 성서 연구소들이 괄목할 만한 성장을 하였는데, 여기에는 평신도들뿐만 아니라 비가톨릭계 학자들도 논문을 발표하는 등 대거 참여하였다. 프랑스도 성서 분야의 학술서 발행에 많은 기여를 하였고, 독일에서는 《가톨릭 주해 성서》(Katholisches Bibelwerk)가 제1차 세계대전 이래 발행되고 있으며 1933년부터는 《성서와 교회》(Bibel und Kirche)가 발행되기 시작하였다. 또 1936년에 설립된 '아메리카 가톨릭 성서 협회' (American Catholic Biblical Association)에서는 <계간 가톨릭 성서》(Catholic Biblical Quarterly, 1939)와 《성서 모임》(Confratemity Bible, 1941)을 발간하고 있고, '아르헨티나 성서 연구소' (Sociedad Argentina de Profe- sores de Sagrada Escritura)에서는 《개역 성서》(Revista Bibli-ca)를 발행하는 것 외에도 남아메리카를 위한 스페인어 성서 발행을 돕고 있다. 한편 1922년에 설립된 '스페인 성서 연구소 협회' (Asociacion para el Fomento de los Estudios Biblicos en Espana, AFEBE)에서는 《성서 문화》(Cultura Biblica)를 발행한 데 이어 기관지 《성서 연구》(Estudios Biblicos, 1929)를 발행하고 있으며, 1947년에 설립된 브라질의 '성서 연구소 협회' (Liga de Estudos Biblicos)에서는 1957년부터 《성서 문화의 개정》(Revista de Cultura Bi-blica)을 발행해 오고 있다. 또 1940년에 설립된 '영국
가톨릭 성서 협회' (Catholic Biblical Association of England)에서는 기관지 《성서》(Scipture, 1949)를 발행하고 있고, '캐나다 가톨릭 성서 협회' (Catholic Biblical Association of Canada) 역시 1940년에 설립되었으며, 1953년에 설립된 '이탈리아 성서 협회' (Associazione Biblica Italiana)에서는 《이탈리아 성서 개역》(Revista Biblica Italiana)과 《생명의 말씀》(Parole di Vita)을 발행하였다. (→ 성서위원회)
※ 참고문헌 L.A. Bushinski, Biblical societies, 《NCE》2, pp. 544~545/B.N. Wambacq, Pontifical biblical commission, 《NCE》 11, pp. 551~554/F.J. McCool, Pontifical biblical institute, 《NCE》 11, pp. 554~555/ Hans Schneider, 《EKL》1, pp. 461~464/ J. Schmid, 《LThK》 2, pp. 346~3471 B.Blumenkranz, 《EJ》 4, pp. 969~970/ O.P. Beguin, 《EB》 3, pp. 587~588/1998 Ammuario Pontificio, Citttà del Vaticano, 1998, pp. 1896, 1904. 〔金永 男〕
성서 연구소
聖書研究所
[라]Instiutum Biblicum · [영]Biblical Institu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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