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양한 학문과 방법론의 도움을 받아 성서의 의미를 해석하려는 학문.
〔개 념〕 성서는 '성령의 인도하심에 따라 인간의 말로 쓰여진 하느님의 말씀' 이다. 성서가 인간의 말로 쓰여졌다는 사실은 성서 저자의 사고 방식과 문학적 역량을 통하여 하느님의 말씀이 표현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또한 성서가 쓰여질 당시의 이스라엘 역사 · 지리 · 종교· 문화 등이 저자의 사고 방식과 문학 활동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을 것이다. 뿐만 아니라 역사적으로 이스라엘과 관계를 맺어 왔던 주변 국가들의 정치 · 언어 · 종교· 문화 · 문학 · 풍습 등도 성서가 쓰여지는 데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성서 저자는 이러한 갖가지 배경 속에서 하느님의 계시를 자신이 사용하고 있던 고유한 언어(히브리어, 아람어, 그리스어)로 표현하였다. 성서 저자의 문학 활동에 영향을 끼친 이러한 요소들을 찾아서 연구 · 분석하고, 이를 토대로 성서 본문을 체계적이고 학문적인 방법으로 해석하는 전반적인 작업을 성서학이라고 한다.
[역 사] 초기 : 초대 교회의 성서학에서 대표적인 인물로는 오리제네스(Origenes, 185~254), 에우세비오(Eusebius Caesariensis, 260?~339) , 예로니모(Hieronymus, 341?~420)등을 들 수 있다. 오리제네스는 성서의 자구적 이해를 주장한 안티오키아 학파와는 달리 우의적(寓意的) 해석을 강조한 알렉산드리아 학파의 대표적 인물이었다. 그는 많은 주석서 외에도 보다 정확한 성서 본문의 이해를 위하여 여섯 개의 병행란을 만들어 히브리어 본문 · 칠십인 역본 · 아퀼라 역본 · 심마쿠스 역본 · 테오도시오 역본·자신의 그리스어역을 함께 배열한 '육공관(六共觀) 구약성서' (Hexapla)를 만들었다.
에우세비오는 성서에 등장하는 이름과 그 위치를 설명하는 '고유 명사록' (ὀνομαστικὸν)과 성서에 묘사된 사건들의 연대를 이집트 · 아시리아 · 그리스 · 로마의 역사와 비교해 볼 수 있는 '연대기' (χρονικόν)를 남겼다. 한편 예로니모는 그리스어로 쓰여진 에우세비오의 '고유 명사록 과 '연대기' 를 라틴어로 번역하였으며, 자신의 고대어 지식을 활용하여 성서를 히브리어와 그리스어 본문에서 직접 라틴어로 번역하였는데 이것이 오늘날까지 가톨릭 교회의 공적 전례용으로 사용되는 라틴어역 성서 불가타본(Vulgata)이다. 중세 : 이 시기에는 유대인 학자들을 중심으로 성서의 문법과 언어학적인 연구가 활발하게 이루어졌다. 마소라학자들은 히브리어 성서에 모음 부호를 첨가하고 여백에 '케팁' 과 '케레' 같은 주(註)를 달아 보다 정확한 본문을 만들려고 노력하였다. '미드라쉬' 와 '탈무드' 는 문법적 · 언어학적 · 고고학적 · 문화사적인 설명을 많이 담고있다. 사디아 벤 요세프(Saadia ben Joseph, 882~942)는 히브리어와 아랍어의 비교 같은 비교 언어학에 관심을 기울인 첫 번째 유대인 학자였다. 이어서 히브리어의 문법서와 사전도 만들어졌는데 이 분야에서 유명한 인물은 킴치(R. David Kimchi, 1160~1235)였다. 유대인들의 일반적인 성서 해석 경향은 자구적 해석이었는데, 대표적인 학자로는 '타르룸' 과 '미드라쉬' 를 토대로 단순하고 자구적인 해석을 강조한 라쉬(Raschi)를 들 수 있다.
중세의 그리스도교 주석에서는 '성서의 네 가지 의미' 라는 원칙이 지배적이었다. 즉 "문자는 사실을 가르치고, 무엇을 믿어야 할지는 유추가, 윤리는 무엇을 해야 할지를, 관상은 어디로 향해야 하는지를 가르친다" (Lit-tera docet, quod credas allegoria, Moralis quid agas, quo tendas anagogia)는 것이다. 12세기부터는 성서 본문 난외에 교부들의 간단한 주석을 삽입하는 '난외 주석' (欄外註釋, glossa)이 많이 사용되었으며, 신학에서도 히브리어와 성서 본문 비평에 관심을 기울임으로써 성서 사전과 성지지도가 등장했다. 뿐만 아니라 비엔 공의회(1311~1312) 이후에는 여러 대학에서 그리스어와 근동의 언어 강좌가 개설되었고, 15세기 말경부터는 인쇄술의 발달로 히브리어 성서와의 접촉이 용이해져 점차 불가타 성서 대신에 히브리어 성서가 성서 연구의 기본 자료로 자리잡게 되었다. 이 당시 성서학 연구에 중대한 공헌을 한 출판물이 《콤플루툼 다국어 성서》(Complutensisis Polyglot, 1514~1517)였다. 콤플루툼(현재 스페인의 Alcala)에서 만들어진이 다국어 성서는 오리제네스의 '육공관 구약성서' 처럼 병행란을 만들어 히브리어 성서 · 불가타 · 칠십인 역본 · 타르룸 · 타르콤의 라틴어 역본을 비교할 수 있게 나란히 배열하였다.
루터(M. Luther, 1483~1546) 멜란히톤(P. Melanchton, 1497~1560) , 칼뱅(J. Calvin, 1509~1564) 등 종교 개혁자들은 교회가 전통적으로 지지해 온 '성서의 네 가지 의미' 해석 원칙을 배척하고 주로 본문의 문자적 해석을 강조 하였다. 종교 개혁 이후로 프로테스탄트뿐만 아니라 가톨릭 교회 내에서도 성서 본문에 대한 관심이 깊어지면서 본격적인 성서학의 발판이 다져졌는데, 가톨릭 교회의 대표적인 인물로는 시몽(R. Simon, 1638~1712)을 들 수 있다. 성서 해석에서 이성의 역할과 활용을 주장한 스피노자(B. Spinoza, 1632~1677)의 영향을 받아 자신의 연구에 적용시킨 시몽은, 1678년에 출판된 《구약성서의 비평사》(Histoire critique du Vieux Testament)에서 고고학적 특성 · 문체의 다양성 · 모순 · 반복 등을 밝혀 냄으로써 모세 오경 연구에 큰 발자취를 남겼다. 또 그는 구약성서와 고대 번역본들을 비교하여 구약성서의 형성이 한 사람에 의해서가 아니라 오랜 세월 동안 여러 사람들의 손을 거쳐 이루어졌다는 견해를 내세우기도 하였다.
근대 : 본격적인 근대 성서학의 연구가 활발하게 전개된 것은 18세기 들어서였다. 프랑스 왕 루이 15세의 주치의였던 아스트뤼크(J. Astruc, 1684~1766)는 히브리어 성서를 열심히 검토한 결과, 모세 오경에서 하느님의 이름이 '엘로힘' (Elohim)과 '야훼' (Jahwe)로 번갈아 사용되며, 서로 다른 하느님의 이름이 사용된 본문에는 문체상의 차이점이 있다는 것과 동일한 이야기가 차이점을 지니면서 되풀이된다는 사실을 발견하였다. 그래서 그는 1753년에 발표한 《모세가 창세기를 서술하기 위해서 이용했던 것으로 보이는 본래의 기록에 관한 추론》(Conjec-tures Sur les mémoires originaux dont il parait que Moise s'est servi pour composer le livre de la Genese)에서 모세 오경 안에 서로 다른 작가에 의해 쓰여진 작품이 혼합되어 있다는 가설을 제기했는데, 이 가설은 훗날 벨하우젠(J. Wellhau-sen, 1844~1918)이 완성한 문헌 가설의 기초가 되었다. 18세기에는 본문 비평과 비교 언어학이 성서학에 큰 영향을 끼쳤다. 이와 함께 이성주의에 많은 영향을 받은 '역사 비평 방법론' (Historical-Chitical Method)이 대두되었는데, 대표적인 학자로는 구약성서의 해석에서 성서 저자의 역사적 · 문화적 배경에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고 주장한 제믈러(J.S. Semler, 1725~1791)를 들 수 있다. 제물러는 요한 복음서와 묵시록의 저자가 동일할 수 없다는 사실을 확인하였다. 또 아이히호른(J.G. Eichhorn, 1752~1827)은 1780~1783년에 펴낸 《구약성서 입문》(Einleitung in das AT)에서 모세 오경에 관한 아스트뤼크의 가설과 함께 기존의 여러 연구 결과들을 소개하였다.
아스트뤼크의 모세 오경에 대한 가설은 게데스(A.Geddes, 1737~1802)와 드 베테(W.ML. de Wette 1780~1849)에 의해 '단편 가설' (Fragment Theory)로 발전했는데, 이 가설에 의하면 모세 오경은 여러 가지 단편을 모아 편집한 작품이라는 것이다. 이어 에발트(G.H.A. Ewald, 1803~1875)는 엘로힘 전승(E)을 모세 오경의 기본 작품으로 여기고 여기에 다른 사료들이 첨가되었다는 '보충 가설'(Supplementary Theory)을 주장하였으며, 이 가설은 후프 펠트(H. Hupfeld)의 《창세기의 원천》(Die Quellen der Gene-sis)에서 야훼 전승(J)이 첨가 · 보충되었다. 드 베테와 바트케(W. Vatke)는 신명기 전승(D)을 주장하였으며, 그라프(K.H. Graf, 1815~1869)는 사제계 전승(P)이 유배 기간 또는 유배 이후에 만들어졌다고 주장하였다. 그리고 이 러한 독립적인 문헌 가설들은 바트케의 헤겔적 사관에서 크게 영향을 받은 벨하우젠에 의하여 완성되었다. 이스라엘의 역사가 주된 관심사였던 그는 저서 《이스라엘 역사의 서설》(Proleoomenena zur Geschichte Israels, 1878)에서 이스라엘의 종교는 처음에 자연 숭배적이었다가 예언자들의 출현으로 일신교로 발전하였으며, 또 유배 기간과 그 이후의 시대에 율법이 발전하여 율법 위주의 종교가 출현하였다고 했다. 그리고 그는 자신의 역사관에 맞추어 문헌 가설의 네 가지 원천을 연대순으로 설정하였다.
19세기 후반부터는 역사학의 발달이 성서의 세계에 많은 지식을 제공하였고, 고고학의 발굴은 성서의 지리에 도움을 주었을 뿐만 아니라 이집트의 상형 문자와 메소포타미아의 쐐기 문자를 해독하는 데에도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다. 그 결과 많은 고대 문헌들이 알려짐으로써 성서 시대 일반인들의 역사와 종교에 대하여 보다 과학적인 이해를 할 수 있게 되었으며, 히브리어 연구도 급진적으로 발전하였다. 이에 따라 성서 본문도 보다 정확하게 재구성될 수 있었고, 그 의미도 더 잘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현대 : 20세기에 들어서면서 비교 종교와 양식 비평에 대한 연구가 궁켈(H. Gunkel, 1862~1932)에 의해 더 활발해졌다. 궁켈의 연구 분야는 기록된 구약성서의 문헌 이전의 구전 단계, 이집트와 메소포타미아의 제의 및 신화적 소재가 이스라엘의 종교에 끼친 영향, 구약성서의 설화 · 법 · 시 등의 문학 유형, 이렇게 세 가지로 요약되며이 모든 연구를 위하여 그는 '삶의 배경' (Sitz im Leben)이라는 전문 용어를 사용하였다. 그리고 궁켈의 유형에 관한 학설을 신약성서에 적용한 사람은 디벨리우스(M.Dibelius, 1883~1947), 슈미트(KL. Schmidt) 그리고 불트만(R. Bultmann, 1884~1976)이었다.
이렇게 프로테스탄트에서 성서학이 크게 발전하는 동안 가톨릭 교회는 교회사와 교의 신학의 진보에 비하여 성서의 연구 성과는 상당히 미미하였다. 라그랑즈(J.M.Lagrange, 1855~1938)가 '예루살렘 성서 연구소' (L'Ecole Biblique et Archeologique Frangaise de Jérusalem)에서 1891년 12월부터 《성서 잡지》(Revue biblique)를 계간으로 발행하면서 가톨릭 교회의 성서학 연구가 활기를 띠기 시작하였다. 교황 레오 13세(1878~1903)는 회칙 <프로비덴티 시무스 데우스>(Providentissimus Deus, 1893. 11. 18)를 통하여 가톨릭 성서학자들에게 셈족 언어와 고대 근동학을 연구할 것을 장려하였다. 이에 성서 저자들은 여러 가지 사료들을 사용하였고, 고대 근동의 배경과 당시의 문학 유형에 대한 이해가 없이는 성서를 이해할 수 없다는 인
식이 자리잡게 되었다. 가톨릭 성서학자들이 역사 비평 방법론을 수용하게 된 것은 교황 비오 12세(1939~1958)가 1943년 9월 30일에 발표한 회칙 <디비노 아플란테 스피리투>(Divino Afflante Spiritu)와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계시 헌장>(Verbum Dei) 이후였다.
〔연구 분야] 성서학의 과제를 구체적으로 명시하면 '성서 주석' 과 '성서 신학' 으로 구분할 수 있다. 성서 신학은 성서 주석을 토대로 한다. 다시 말해 성서 신학은 주석 작업을 통하여 밝혀진 성서의 의미를 체계적인 방법으로 정리하고 설명함으로써 그리스도교 신학에 대한 이해와 신앙 생활에 도움을 주고자 하는 데 목적이 있다. 반면에 성서 주석은 성서의 의미 곧 성서 본문을 통하여 저자가 말하고자 하는 내용을 밝혀 내는 작업인데, 이를 위해서는 적절한 방법론과 다양한 학문의 도움을 필요로 한다.
방법론 : 성서 본문과 독자 사이에는 적지 않은 시간과 공간, 역사와 문화, 언어와 사고 방식의 차이가 있기 때문에 성서 본문이 어떠한 의미를 지니고 있는지를 이해하기란 쉽지 않다. 성서 방법론은 성서의 형성과 관련된 여러 학문 분야의 도움을 받아 성서 본문을 분석 · 종합하고 설명하는 전문적인 기술이다. 오늘날 보편적으로 알려지고 사용되고 있는 방법론에는 보다 원문에 가까운 본문을 재구성하려는 '본문 비평' , 본문의 역사적 · 지리적 · 문화적 배경을 파악하려는 '역사 비평' , 본문의 언어에 관한 질문들에 답하고자 하는 '문법 비평' , 본문의 문학적 구성과 구조 및 수사학적인 문체를 다루는 '문학 비평' , 본문의 문학 유형과 기능을 살피는 '양식 비평' , 본문이 기록되기 이전의 구전 과정을 조사하는 '전승 비평' , 저자나 편집자가 최종적 형태의 본문을 통해 말하고자 하는 의도를 고찰하는 '편집 비평' 등이 있다. 그리고 이러한 방법론을 위해서는 다양한 분야의 학문적 도움을 필요로 한다.
언어학 분야 : 성서 연구를 위해 가장 기본적이고 중요한 학문 분야는 언어학이다. 성서는 히브리어, 아람어, 그리스어로 쓰여졌기 때문에 성서 본문을 독해하기 위해서는 이 성서의 언어들을 비롯하여 이 언어들과 관련된 고대어들에 대한 지식이 필요하다. 우가리트어 · 아카디아어 · 고대 이집트어 등은 성서 본문과 고대 근동의 언어 및 문학의 상호 관계를 이해하는 데 대단히 중요하며, 고대 번역본들의 언어인 시리아어 · 아랍어 · 라틴어 · 롭트어 등의 중요성도 간과해서는 안된다. 성서학의 큰 과제 가운데 하나로 성서 번역을 들 수 있는데, 훌륭한 성서 번역을 위해서는 성서 본문과 사본들뿐 아니라 고대의 중요한 번역본들도 참조하여야 한다. 고문헌학(paleo-graphy)은 고대 문헌의 역사와 발전 과정을 연구함으로써 고대 본문들을 해독하고 그 연대를 측정하는 학문으로, 성서 사본들의 연대를 측정하고 출처를 밝히는 데 이용된다.
역사 및 고고학 분야 : 성서는 이스라엘 백성과 초기 교회의 역사적 체험 안에서 태어났기 때문에 성서 본문의 배경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이스라엘과 고대 근동의 역사 · 지리 · 고고학에 대한 연구가 필수적이다. 성서 본문에는 고대 근동의 역사와 장소에 대한 언급이 많이 나오는데 이것들은 이스라엘의 역사 · 정치 · 사회 · 문화에 큰 영향을 끼쳤고 이 영향들이 성서에 반영되어 있다. 하느님의 계시는 역사적 상황 안에서 전개되었고, 특정한 장소를 중심으로 전승되었다. 그리고 고고학의 성과는 성서 내용의 역사성을 재구성하는 데 결정적인 기여를 하였다.
문학 분야 : 성서는 하나의 문학 작품으로서 고대 근동에 널리 알려져 있던 문학 소재들과 문학 유형을 사용하고 있는데, 창조와 대홍수에 관한 기사가 메소포타미아의 창조 설화와 길가메쉬 서사시에서 소재를 취한 것 등이 그 예이다. 지혜 문학은 특별히 이집트의 지혜 문학에서 많은 소재를 얻고 있다. 또 근동과 이집트의 신화, 전설, 법조문, 역사서, 조약 문서, 제의, 주술, 찬미가, 기도, 교훈 및 지혜 문학, 편지 등 온갖 유형의 문학 작품들이 성서가 기록되는 데 영향을 미쳤다. 이러한 문학 작품들의 연구는 성서의 형성뿐만 아니라 이스라엘 백성의 종교 의식의 발전을 이해하는 데 있어서도 절대적인 도움이 된다.
성서 연구의 기본 원칙 : 성서 연구를 위한 현대 학자들의 노력은 끊임없이 이루어지고 있다. 수많은 성서학 잡지들이 지속적으로 발간되는가 하면 새로운 성서 사전 · 주석서 · 성서 신학 서적들이 출판되고 있다. 성서 연구에는 언제나 새로운 방법론과 진취적인 노력이 요구 되지만, 성서는 인간을 위한 하느님의 계시를 담고 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된다. 또 시대와 대상에 따라 성서의 이해 방법은 다를 수 있지만 그 내용은 언제나 변함없는 하느님의 말씀이다. 따라서 성서 연구에서 인간의 학문적인 능력과 노력은 보장되고 장려되지만, 어디까지나 교회의 공적인 가르침과 정통 신앙에 어긋나는 해석을 이끌어 내서는 안될 것이다. 왜냐하면 성서는 단순히 인간의 문학 작품이 아니라 하느님의 계시를 담고 있는 신앙 고백서이기 때문이다. (→ 성서 신학 ; 성서 연구 방법론)
※ 참고문헌 F. Baumgaertel . Erich Dinkler, Bibelkritik, (RGG) 1, pp.1184~1190/ C. Kuhl . W.G. Kuemmel, Bibelwiisenschaft, (RGG) 1, pp. 1227~1251/ V. Fritz · B.J. Diebner . 0. Merk, Bibelwissenschaft, 《TRE》 6, pp. 316~409/ K. Grobel, Biblical Criticism, 1, pp. 407~413/S.J.De Vries, History of Biblical Criticism, 《IDB》 1, pp. 413~418/ W. Baird, Biblical Criticism, (ABD) 1, pp. 725~736. 〔鄭泳漢〕
성서학
聖書學
[라]scientia biblica · [영]biblical scien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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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 교회의 성서학에서 대표적인 인물인 오리제네스(왼쪽)와 예로니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