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백 교회

告白敎會

〔영〕Confessing Church · 〔독〕]Bekeennende Kirch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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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를 나치 정권에 종속시키려는 시도에 대항해 결성된 독일 복음주의 그리스도교인들의 저항 운동 성격의 모임. 제1차 세계대전의 패배와 그에 따른 독일 제국의 파멸, 민족 자존심의 상실, 570만 명에 달한 실업자와 경제 파탄 등 파국적인 상황에서 출현한 히틀러(Adolf Hitler)는 강력한 국가 재건 정책을 통해 독일 국민들을 사로잡았다. 교회도 역시 히틀러를 통해 독일 민족의 갱신을 기대하였다. 히틀러는 1933년 정부 성명을 통해 교회가 민족 정신 보존에 가장 중요한 요인임을 선언한 후, 이른바 '아리아 조항' (Arierparagraph)을 통과시켰다. 아리아 조항은 아리아족이 아닌 모든 사람들을 현공무원 직에서 축출하기 위해 제정된 것이었다. 이러한 나치의 법령이 반그리스도교적인 것이며, 또한 이 법령의 가장 큰 희생자는 유대인임을 먼저 간파하고 저항한 이는 본 회퍼(Dietrich Bonhoeffer)였다. 그러나 '아리아 조항' 의 통과를 환영하고 그것을 교회 안에서도 관철시키려 했던 이들은 이른바 '독일 그리스도교인' (Deutschen Christen)이 지배적이었던 옛 프로이센 연합 교회였다. '독일 그리스도교인' 은, 나치 정권이 교회 지배 정책을 관철시키기 위해 직접 조직한 단체로서, 히틀러의 교회 문제 자문위원장인 군목 출신의 뮐러(Ludwig Müller)가 이 조직을 관장하고 있었다. 뮐러는 이어 비텐베르크에서 개최된 민족 교회 총회에서 제국 교회 감독으로 선임되었다.
바로 이들 '독일 그리스도교인' 과의 교회 정치적, 신학적 대결에서부터 '고백 교회' 의 역사가 시작되었다. '독일 그리스도교인' 에 저항하기 위해 여러 지역에서 목사들의 연대 단체들이 생겨났다. 그 가운데 가장 알려진 단체가 1933년 9월 21일 베를린에서 니필러(Martin Niemoller)가 조직한 '목사 긴급 동맹' (Pfarrenrnotbund)이이었다. '목사 긴급 동맹' 은 2,000여 명의 목사들 서명을 받아 민족 교회 총회에 부치는 신앙 고백문을 통해 교회 안에서 아리아 조항이 관철되는 것에 항의하였다. 고백 교회는 이렇게 신앙 고백을 통해서 '아리아 조항' 에 저항을 시도했던 여러 단체들로부터 그 씨앗이 움텄으나, 그들이 고백 교회' 로 형성된 것은 1934년 5월 19~31일에 바르멘-게마르케(Barme-Gemarke)에서 열린 제1차 독일 기독교회 고백 총회에서였다. 이 고백 총회의 결의는 '바르멘 신학 선언' 으로 널리 알려져 교회 안팎에서 커다란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이 선언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만이 유일한 하느님의 말씀이며, 교회는 복음 선포의 원천인 예수 그리스도 외에 어떤 다른 소리에도 귀를 기울여서는 안된다고 천명했다.
한편 '독일 그리스도교인' 은, 고백 교회 형제협의회(Bruderrat)가 실권을 가진 교단들에 대한 공격과 탄압을 강화하였다. 점증하는 압력에 직면한 고백 교회는 베를린의 달렘(Dahlem)에서 1934년 10월 19일 제2차 고백 총회를 개최하였다. 그러나 정부가 고백 교회에 대한 재정 지원을 중단하고, 공식적인 모금 활동을 금지시키는 바람에 난관에 부딪혔다. 종교성은 '제국 교회 위원회'를 조직, 이들로 하여금 독일 기독교 전체의 지도부를 장악하게 하였다. 그들은 1935년 12월 2일 '독일 기독교회 안전법' 을 통과시켜, 교회의 대표권만이 아니라 목회자의 임명이나 파면의 권한 및 행정을 총괄할 수 있는 전권을 장악하였다. '독일 기독교회 안전법' 의 통과는 마침내 고백 교회 자체의 분열을 초래하였다. 조직의 와해와 경제적 난관 외에도 목사 후보생의 신학 교육에 어려움을 겪게 되었다. 나치 정책에 반대하는 신학자들은 대학 강단에서 축출당했으며, '독일 그리스도교인' 이 지배적인 교단들은 고백 교회 소속 목사들의 채용을 거부하였기 때문이다.
고백 교회는 1935~1936년 겨울 학기에 베를린 달렘과 부퍼탈 엘버펠트에 교회 신학교를 설립하였다. 나치의 금지령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교회 신학교를 1년 반 동안 유지할 수 있었다. 그러나 1941년 여름 이 신학교의 교수, 학생들이 구속되어 수용소에 수감되고, '독일 그리스도교인' 이 고백 교회를 재정적으로 지원하는 목회자의 봉급 지불을 동결함으로써 고백 교회에 대한 압력을 가중시켰다. 고백 교회가 봉착한 또 다른 문제는 히틀러에 대한 충성 서약이었다. 고백 교회는 또 독일 민족을 신격화하고, 게르만 민족의 우월성을 공개적으로 선전하는 세력들과 투쟁하였다. 나치 정권의 희생자는 유대인만이 아니었다. 나치 정권은 살 가치가 없는 사람들의 자손이 늘어나는 것을 막거나 가능하면 제거해야 한다는 정책을 폈는데, 이는 당 밖에서도 광범위한 지지를 얻었다.
고백 교회가 박해를 받은 또 다른 이유는 나치 정책에 대한 비판적 설교 때문이었다. 나치 정권과의 윤리적 대결, '독일 그리스도교인' 과의 교회적, 신학적 대결을 넘어서서 정치 저항으로 나아간 목사들은 극히 소수였다. 본회퍼, 폰 몰트케(Helmut James von Moltke), 추 솔츠(Adam Trott zu Solz), 폰 트레스코프(Henning von Tresckow) 등은 그들의 정치적 저항을 그리스도교 신앙과 결합시켰고, 히틀러 암살 계획에 적극 참여하였다. 그러나 고백 교회 운동이 처음부터 저항 운동이었던 것은 아니다. 고백 교회 운동은 '독일 그리스도교인' 과의 교회적 정치적 대결, 특히 교회를 권력의 예속으로부터 지키고, 나치 정권의 반유대주의와 자기 절대화에 신학적으로 도전한 교회 내적 운동이었다.
전후 고백 교회는 새로운 독일, 새로운 교회의 건설을 위해 일해야만 하였다. 새로운 시작을 위하여 고백 교회는 먼저 그들의 죄를 고백하였다(슈투트가르트 죄의 고백, 1945년 10월 18일). 1945년 8월 고백 교회의 '형제협의회' 는 '독일 기독교 교회협의회' (EKD)의 재조직을 위해 지도적 역할을 했을 뿐, 자신이 전후 독일 교회의 대표적 조직체로 나서지는 않았다. 그러나 나치 치하에서의 교회 투쟁의 결실을 바르멘 신학 선언 정신에 기초하여 지속적으로 지켜 나가기 위해 '형제협의회' 의 조직은 해체하지 않았다. 고백 교회의 형제협의회는 지금까지 EKD 안에 한 신학 위원회를 구성, 시대의 문제에 대한 신학적 해답을 모색하고 있다. 바르멘 신학 선언의 정신은 전후 동 · 서독 교회의 선교부나 교회 기관들의 교회법과 규칙의 기초가 되었다.
※ 참고문헌  Gerhard Besier-Gerhard Sauter, Wie Christen ihre Schuld bekennen : Die Stuttgarter Erklärung 1945(Göttingen, 1985)/ Georg Denzler-Volker Fabricius, Die Kirchen im Dritten Reich : Christen und Nazis Hand in Hand?(Frankfurt/ M, 1984)/ Ulrich Duchrow, Weltwirtschaft heute : Ein Feld für Bekennende Kirche, München, 1986/ Hermann Graml ed., Widerstand im Dritten Reich : Probleme, Ereignisse, Gestalten (Frankfurt/ M, 1984)/ Martin Greschar ed, Im Zeichen der Schuld : 40 Jahre Stuttgarter Schuldbekenntnis(Neukirchen-Vluyn, 1985)/ Wolfgang Huber, Folgen christlicher Freiheit : Ethik und Theorie der Kirche im Horizont der Barmer Theologischen Erklärung(Neukirchen-Nluyn. 1983)/ Jürgen Moltmann ed., Bekennende Kirche wagen : Barmen 1934~1984, München, 1984/ Günther van Norden-Paul Gerhard Schoenborn-Volkmar Wittmütz eds., Wir verwerfen die falsche Lehre - Arbeits-und Lesebuch zur Barner Theologischen Erklärung und zum Kirchenkampf(Wuppertal-Barmen,1984)/
Klaus Scholder, Die Kirchen und das Dritte Reich : Vorgeschichte und Zeit der Ⅰllusionen 1918~1934, Bd. 1(Frankfurt/ M, 1977)/ Ernst Wolf, Barnen-Kirche zwischen Versuchung und Grade(München, 1984)/ Ernst Wolf, Bekennende Kirche, 《RGG》1, 1986, pp. 984~988. 〔蔡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