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소

聖召

[라]vocatio · [영]voc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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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브라함은 개별 성소를 받았고(왼쪽 , 예수의 제자도 모든 것을 버리고 즉시 스승을 따라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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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브라함은 개별 성소를 받았고(왼쪽 , 예수의 제자도 모든 것을 버리고 즉시 스승을 따라 나섰다.

하느님의 부르심이나 선택을 의미하는 용어. 성서에서 성소의 의미로 사용된 용어는 '카라' (קָרָא)와 '클레시스 (ἐκκλησία)이다. 성소는 하느님이 당신 백성 이스라엘이나 모세와 예언자들과 같은 사람들을 당신의 도구로 삼아 특별한 목적을 이루게 한 사실에서 그 의미를 찾을 수 있으며, 집단적 성소(vocatio collectiva)와 개별적 성소(vocatio individualis)로 구분된다.
〔집단적 성소〕 이스라엘 민족을 부르심 : 하느님은 이스라엘 민족을 당신 백성으로 선택하고 부르셨다(신명 7.7). 이는 이스라엘 민족이 하느님을 섬기고 하느님의 구원 계획을 세상에 알리도록 하기 위함인데(이사 40-55장), 이때 '부르다' 라는 의미로 사용된 동사가 '카라' 이다(이사 41, 9 : 42, 6 : 43, 1 : 45, 3-4 : 48, 12-13. 15 : 54, 6). 호세아서에서 하느님이 "내 아들 이스라엘이 어렸을 때···이트에서 불러내었다"(호세 11, 1 : 마태 2, 15)라고 한 것은 출애급을 재언급한 것이다. 하느님은 이스라엘 민족을 사랑스러운 아들로 인정하면서도 철없는 배은망덕한 패륜아로 취급하였다. 그러나 아버지의 품으로 데리고 와야 할 귀염등이라고 하였다. 하느님은 이스라엘 민족을 창조하고 빚어 만들었으며 건져내고 지명하여 부른 분(이사 43, 1. 7. 21 : 참조 : 44, 2. 21. 24 ; 45, 11-12 : 46, 3 ; 48, 12-13 : 51, 13. 16)이다. 즉 이스라엘은 하느님의 것이다(이사 43, 1).
이스라엘을 부르심은 온전히 하느님의 사랑(신명 4,37)과 그분의 자유롭고 절대적인 행위에 의하여 이루어졌는데, 그것은 세상의 창조 행위만큼 최초의 일이며(이사 48, 12-13) 하느님이 부르면 어느 누구도 거절할 수 없는 소명이다. 하느님이 이렇게 한 것은 온 세상이 하느님을 알고 믿게 하려는 것이며 이스라엘은 이 일의 증인이 되어야 한다(이사 43, 10). 이스라엘은 하느님이 우주의 절대자이며 구세주임을 알려야 할 소명을 지니고 있다(이사 43, 11-13).
인류의 구원을 위해 모든 사람을 부르심 : 요한 묵시록에서 '부르다' 라는 의미의 동사 '칼레인' (καλεῖν)은 다양한 형태로 사용되었으며, '부르심' 이라는 명사 '클레시스 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인류의 구원을 위한 하느님의 방법을 의미할 때 사용되었다. 이 용어를 자주 사용하는 것은 구약성서와 비교할 때 훨씬 진일보한 모습이다. 이스라엘 민족이 하느님의 특별한 부르심을 받아 선택을 받았으나 신약에 와서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백성이 탄생한 것이다. 이들은 "하느님을 사랑하는 이들, 곧 (하느님) 결정대로 부르심을 받은 이들"로마 8,28), "부르심을 받은 이들"(유다 1, 1), "모든 이방 민족들 가운데에 신앙의 복종을 설파하기 위해" (로마 1, 5)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거룩하게 된 이들··성도로 부르심을 받은 이들··· 어디서나 저희와 우리가 다 함께 섬기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불러 간구하는 모든 이들"(1고린 1, 2 : 참조 : 로마 1, 7 : 골로 3, 15)이다. 이 백성은 그리스도의 은총으로 기쁜 소식의 선포를 받아들여(갈라 1, 6 : 2데살 2, 14) 그분을 주님으로 믿고 고백하며 자유를 누리고(갈라 5, 13), 하느님께 축성되어 (1데살 4, 7) 평화와(1고린 7, 15 ; 골로 3, 15) 무엇보다도 구원자인 예수 그리스도와 친교를 맺게 된다(1고린 1, 9). 이러한 결과는 복음을 받아들인 한 순간의 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부르심을 받은 그리스도인이 자기 성소에 합당하고 충실하게 살아갈 때 소명을 꽃피우고 열매 맺을 수 있다. 신약성서의 여러 서간들 안에서 성소의 주제는 선택(electio)의 주제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으며, 두 주제는 서로 긴밀하게 작용한다. 하느님은 "그 (자식)들이 아직 태어나기도 전에, 더구나 그들이 선이나 악을 행하기도 전에, 선택에 근거한 하느님의 예정(계획)이 지속되며, 그것이 행업이 아니라 부르시는 분에게 달려 있음을 (다짐하시기) 위하여"(로마 9, 11-12 ; 참조 : 2베드 1, 10) 당신의 계획을 이룬다. 그것은 사랑인 하느님이 하시는 일이므로 인종이나 민족의 차별이 있을 수 없다(갈라 3, 28 1고린 12, 13).
하느님 나라에 초대받는 이들 : 루가 복음서에는 예수가 가르친 성소에 관한 윤곽이 바리사이파의 한 지도자와 나눈 식사에서 분명히 드러나 있다(루가 14, 1-24). 하늘 나라에 초대될 사람은 겸손하고 불쌍하며 초대에 기꺼이 응하는 자이다. 성소를 받았으나 합당하지 않은 자는 그 나라에 초대되지 못하며(마태 22, 8 ; 에페 4, 1) 합당한 예복을 입어야 한다(마태 22, 11-14). 죄인들도 뉘우치고 구원자인 예수를 받아들일 때 미래에 이루어질 하느님 나라의 잔치에 초대를 받는다. 하느님 나라에는 많은 사람들이 불려지나 정작 뽑히는 사람은 적다(마태 22, 14). 요한 묵시록 17장 14절에서는 성소를 받은 자와 뽑힌 자를 같은 인물로 보고 있다.
[개별적 성소] 구약성서 : 이스라엘 민족의 선택에 사용되는 부르심을 제외하고는 개인의 부르심(성소)에 관한 언급은 흔하지 않다. 그러나 개별 성소를 받은 이들은 아브라함(창세 12, 1-3), 모세(출애 3, 4), 사무엘(1사무 3, 4-6. 8-10), 다윗(1사무 16, 1-13 ; 2사무 7, 8 : 시편 89, 21), 예레미야(예레 1, 4-5) 등 여럿이다.
① 개별 성소의 우선권은 언제나 하느님에게 있다. 다소 예외적인 경우로는 성소의 소명을 하느님께 청하는 경우나 하느님께 잡히는 경우가 있는데, 예언자 이사야와 아모스가 대표적인 인물이다. 하느님이 "내가 누구를 보낼까?" 라고 하자 이사야는 지체 없이 자신을 하느님께 봉헌하면서 "제가 있지 않습니까? 저를 보내 주십시오" 라고 아뢰었다(이사 6, 8). 아모스는 예언자가 아니었지만 하느님께 사로잡혀 예언자가 되었다(아모 7, 14-15). 태어나기 전에 태중에서부터(ab utero) 하느님의 일을 하기로 개별 성소를 받은 경우도 있는데, 예레미야가 그에 해당한다. "내가 너를 점지해 주기 전에 나는 너를 뽑아
세웠다. 네가 세상에 떨어지기 전에 나는 너를 만방에 내말을 전할 나의 예언자로 삼았다"(예레 1, 5 ; 참조 : 이사 49, 1 ; 갈라 1, 15). 이러한 다양한 성소의 주도권은 언제나 하느님에게 있다.
② 성소의 사명과 책임은 개인의 능력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힘을 초월하는 하느님의 힘에서 나온다. 따라서 성서에는 아브라함의 심리적인 반응이 상세히 기록되어 있지 않으나 그는 즉시 순종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모세는 하느님의 명을 받자 다소 주저하였다. "제가 무엇인데 감히 파라오에게 가서 이스라엘 백성을 이집트에서 건져내겠습니까?" 그러나 "내가 네 힘이 되어 주겠다(출애 3, 11-12)라는 말씀을 듣고는 기꺼이 순종하였다. 판관 기드온도 부르심을 받고 모세와 같은 태도를 보였으나 "내가 너와 함께 있으리라"(판관 6, 16)는 비슷한 응답을 들었다. 예레미야도 하느님께 자신의 어려움과 나약함을 말하였으나 "내가 늘 옆에 있어 위험할 때면 건져 주리라···나의 말을 너의 입에 담아 준다" (예레 1, 8-9)라는 말씀을 듣고는 기꺼이 응답하였다. 에제키엘도 예외는 아니다(에제 2, 3-4). 그러나 예외적인 경우는 이사야의 성소로서 그는 자진하여 파견되기를 원하였다(이사6, 8).
③ 부르는 하느님의 행위는 책임을 전제로 한다. 다시 말해 하느님의 파견을 받아 그분의 이름으로 말하고 행할 책임이 있는 것이다. 파견하는 하느님은 무조건 '가라' (הלך )고 하며, 소명을 받는 이는 순종하여 그분의 일을 할 뿐이다.
신약성서 : 예수는 완전한 자유 의사로 제자들을 뽑았다. "당신 마음에 두신 이들을 가까이 부르셨다" (마르 3, 13). 그리고 하나의 단체를 만들었으며 제자들과 밀착되어 있었다(루가 6, 13 : 마태 4, 19 : 요한 6, 70). 첫 번째 네 제자들의 성소(마르 1, 16-20 : 마태 4, 18-22)는 전통적인 도식으로서 주도권은 부르는 분인 예수에게 있으며, 그 목적은 사람 낚는 어부가 되는 데 있다. 이는 마치 엘리야가 엘리사를 부른 것과 같다(1열왕 19, 19-21). 차이가 있다면 엘리사는 부모에게 작별 인사를 하고 송별 잔치를 한 후에 스승을 따라 나섰으나 신약의 제자들은 모든 것을 버리고 즉시 스승을 따라 나섰다는 것이다. 이들의 성소(마르 1, 17-20)는 즉시 순종하였다는 점에서 아브라함의 성소(창세 12, 1-2)와 같다. 이들의 태도는 대단히 뛰어나다. 이들의 예수 추종 목적은 개인의 성화나 바리사이파 또는 에세네파의 성소와는 달랐는데, 그들의 목적은 예수에 의해 사도(ἀπόστολος)가 되어 그분과 함께 있고 말씀 전파자가 되며 악령을 추방하기 위해서였다(마르 3, 14-16).
〔사제 성소〕 사제는 성품성사의 힘으로 영원한 대사제인 그리스도의 모습을 따라 이 세상에서 복음을 전하고 신자들을 사목하며 하느님께 예배를 드리기 위하여 축성된다. 사제는 교회의 직무를 수행하는 자이며, 이 직무를 수행하기 위해서는 특별한 성소가 있어야 한다. 따라서 사제 성소를 받은 자는 일반 하느님의 백성보다 더 깊은 열심과 신심 생활을 하도록 요청받는다. 왜냐하면 성소를 받은 자의 전 존재는 직접적으로 하느님께로 향하기 때문이다. 반면에 혼인한 자의 몸은 간접적으로 그리스도에게로 향한다. 동정을 지키는 자는 직접적으로 또한 온전히 자신의 몸과 마음을 그리스도에게 봉헌한다. 혼인은 그리스도 안에서 서로를 주는 것이지만, 동정은 그리스도에게 자신을 온전히 주는 것이다. 그러므로 특별한 의미의 성소인 사제직을 받은 자는 하느님께 충성과 효성을 다하면서 깊은 영성 생활을 할 의무가 있다. 사제가 비록 교회의 사목을 위하여 서품되었다 하더라도 그의 삶은 온전히 하느님과 그리스도에게 봉헌되었으므로 그 신분에 맞는 삶을 살아야 하는 것이다.
하느님과 교회의 성소 : 모든 성소는 신적인 측면과 교회론적인 측면 두 가지로 고찰되어야 한다. 사제 성소 역시 마찬가지이다. 즉 하느님의 부르심과 교회의 부르심이 그것이다. 성소에 대한 이론은 다음과 같이 세 가지로 나누어진다.
첫 번째는 '외적 성소 이론' 이다. 라히톤(J.Lahitton)에 의하면 성소에는 질료적인 요소와 형상적인 요소가 있는데, 전자는 올바른 지향과 정신적 · 육체적 · 도덕적인 자질에 의해 하느님의 부르심이 확실히 드러나는 것이고, 후자는 교회 장상의 합법적인 부르심이다. 현실적으로는 질료적인 요소를 전제한 후 교회의 권위가 후보자를 부를 때에 성소가 결정된다. 두 번째는 '매력 이론' 이다. 이는 하느님이 어느 개인을 개별적으로 부르면 그것을 받아들인 사람이 성소에 강렬하고 초자연적인 매력이나 충동을 느껴 조금도 의심 없이 그 생활을 하는 것을 의미한다. 세 번째는 '내적 성소 이론' 이다. 하느님이 어떤 사람에게 특별한 은총의 형태로 성소의 삶을 받아들이거나 그 삶으로 움직이게 하면 이를 받아들인 사람이 그 삶을 받아들여 살아가게 된다. 이 은총은 성소의 질료적인 요소가 될 수 있다. 따라서 합법적인 교회의 권위는 성소의 확실성을 확인하는 것에 불과하다.
위의 세 이론 중 내적 성소 이론이 가장 확실하다고 할 수 있다. 성소에 대한 성서 본문들은 모든 성소를 하느님의 선물로 보며(마태 16, 24 : 19, 11-12. 21 : 1고린 7, 25-35), 전통적으로는 하느님의 특별한 은총을 받은 사람이 그 신분에 맞는 삶을 살아가는 것을 의미한다. 내적 성소가 없이는 어느 누구도 사제나 수도 생활을 택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 교부들의 일치된 견해인데, 교황 비오 11세(1922~1939)와 비오 12세(1939~1958)는 특히 이 점 을 강조하였다. 교황 비오 12세는 성소에 신적인 요소와 교회론적인 요소가 있다면서, 본질적인 것은 신적인 요소로서 이것 없이는 사제와 수도 성소의 근본이 흔들린다고 하였다. 교회론적 요소는 사제 후보자가 교회의 합법적인 책임자에 의해 부름을 받는 것을 말한다. 책임자는 후보자의 자격을 여러 면에서 지도하고 시험하여 성소의 유무를 확인하는 것에 불과하다. 그리고 신학적으로 성소는 하느님께로 향한 하나의 길이거나 하느님과 이웃 사람에 대한 봉사이므로 경신덕의 행위이다.
성소를 따를 의무 : 여기에 관해서는 두 가지 견해가 있다. 하나는 사제 성소는 계명에 의해서가 아니라 권고에 의한 것이므로 죄의 멍에를 씌울 수 없다는 견해이다 (A. Vermeersch · J.B. Berthier · J.B. Bouvier · A. Carr · E.P. Farrell). 이들의 주장에 의하면 구원을 얻는 다른 방법이 있다면 예외를 인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또 다른 견해는 성소를 받은 사람은 누구나 그것을 의무적으로 수행해야 하며 의무의 중대성은 경우에 따라 판단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Cajetanus da Thiene · St. Alphonsus de Liguori · P.M. Passerini . J.Leclercq · W. Farrell · S. Osbourn). 이런 견해를 펴는 두 가지
이유는 우선 교회는 어느 누구도 내적으로 성소를 받지 않으면 사제 성소의 길을 가지 않도록 가르치며 내적으로 성소를 받지 않고 달리 이 신분에 들어가는 자는 쉽게 장애 요인을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두 번째 이유는 하느님의 영감이나 은총을 완전한 자유 의사로 거부하는 것은 죄가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하느님의 은총이나 영감을 받을 때까지는 의무를 지지 않는다. 모든 상황을 고려하여 성소의 삶을 선호하고 이것으로 끌릴 때 비로소 성소가 있는 것으로 본다. 이럴 경우에는 합법적인 교회의 권위에 의하여 성소의 확인을 받은 다음에 의무를 지는 것이다.
한시적인 성소에 대해서는 두 가지 견해가 있다. 첫 번째는 하느님이 어느 사람에게 시한부로 성소의 삶을 허락한다고 보는 견해이고, 두 번째는 한시적 성소는 변칙적인 것이므로 그것을 잃는 것은 본인이 충실하지 못하였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성소는 은총처럼 역동적이고 생명력이 있으므로 그것을 받은 이는 성실하게 육성시켜 나갈 의무가 있다. 만일 성소를 상실한다면 그것은 성소의 삶보다 다른 것을 선호하였기 때문이다. 하느님의 부르심과 그 표식들 : 성소를 받았다는 절대적인 확실성이 보이지 않더라도 일반적으로 성소의 유무를 결정할 수 있는 윤리적인 확실성은 있다. 그 기본적인 식별 기준은 다음과 같다.
첫째, 교회법과 사제 양성 규범에 따라 자연적이거나 법적인 장애 요인이 없어야 한다. 둘째, 어떤 적합성이나 조건들, 예를 들면 가정 환경 · 건강 상태 · 균형 잡힌서 생활 건전한 사회관 · 신심 · 사회성 · 지적 능력 · 전한 윤리 생활 등에 문제가 없어야 한다. 여기에는 성소가 요구하는 정결과 독신 생활의 적합성 · 공정성 · 정의감 · 관대함 같은 덕목도 포함된다. 셋째, 성소의 올바른 동기는 어느 기준보다도 중요하다. 성소를 받은 사람은 하느님과 교회가 요구하는 구체적인 일에 적극적으로 봉사하고자 하는 마음이 있어야 한다. 성소에 대한 올바른 지향은 각자의 연령과 능력, 완전한 자유 의사, 선을 추구하고자 하는 효과적인 의지를 요구한다. 따라서 불완전한 의욕이나 의지 또는 성소에 대한 막연한 만족감만으로는 성소 생활에 부족하다. 부르심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는 하느님과 이웃 사람들에게 대한 봉사의 삶을 적극적으로 추진해 나가야 한다. 그러므로 확고한 성소의 삶은 생활 양식으로 명백하게 드러나야 하는 것이다. 한시적으로 성소의 삶을 살겠다는 것은 성소에 대한 올바른 지향이 아니므로 하느님께 대한 올바른 태도가 아니다.
부정적인 표시로는 절제의 부족, 습관적으로 좋지 않은 기질이 있어 공동 생활과 순명을 하지 못하는 기질, 습관적으로 양순함이 부족하거나 시기심과 독단성이 강한 기질, 성소의 직무에 필요한 판단력 부족 등을 들 수 있는데, 이들에게는 성소가 없는 것으로 본다.
육성 방법 : 성소는 하느님으로부터 오며 그분의 순수한 선물이지만 일생 동안 그것을 육성하고 발전시킬 의무는 그것을 받은 사람에게 있다. 여기에는 여러 가지 방법이 있겠지만 우선 기도 생활과 성사 생활, 그리고 세속적인 일에 빠지지 않도록 깨어 있는 생활이 요구된다. 그리고 항구하게 관대함 · 정결 · 관용 · 순명 · 희생 정신 등의 덕을 함양해 나가야 하는데, 무엇보다도 사제직에 항구한 생활이 최우선이다. 성소는 한 번의 결심과 결단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므로 끊임없는 노력과 대사제인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로 살아가겠다는 일념으로 사제직에 충실할 때 사제로 성장된다. 성소를 받은 사람도 약한 인간이기 때문에 자신의 약점을 알고 겸손하게 인정하면서 하느님의 도움을 청하고 성소의 삶을 항구하게 살려고 노력할 때 성소가 성장되는 것이다. "목수는 목수의 일을 함으로써 목수가 된다"(Faber fabricando fit faber)는 격언처럼 성소의 삶도 항구하게 그 삶을 살아갈 때 그 안에서 꽃피우고 열매 맺을 수 있는 것이다.
성소를 선택하는 연령도 중요하다. 일반적으로 예민한 청소년기에 사제 성소를 선호하는 경향이 있으나 부르심은 연령의 제한 없이 이루어지는 경우도 많다. 성 아우구스티노(Augustinus, 354~430)와 로율라의 성 이냐시오(Igna-tius de Loyola, 1491~1556)는 30대에 부르심을 받은 경우이고, 성 비오 10세 교황(1903~1914)과 성 가롤로 보로메오(Carolus Boromaeus, 1538~1584)는 어릴 때부터 성소의 꿈을 꾸고 꽃피워 열매 맺은 좋은 예이다. 그러므로 부르심의 주도권은 전적으로 하느님께 달려 있음을 전제하지 않을 수 없다. 또 부르심에는 언제나 성모 마리아처럼 모든 것을 하느님께 온전히 맡기는 태도가 필요하다. 처음에는 주저하던 마리아도 마지막에는 "보십시오, 저는 주님의 여종입니다. 당신 말씀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 바랍니다" (루가 1, 38)라고 응답하였다. 이러한 태도는 성소를 결정하는 모든 이에게 모범이 되어야 할 것이다.
[수도 성소] 수도(修道) 성소는 청빈 · 정결 · 순명의 복음적인 권고에 따라 "하늘의 아버지께서 완전하신 것 같이 여러분도 완전해야 합니다"(마태 5, 48)라는 말씀을 실천하는 성소이다. 따라서 수도자는 세상의 모든 것을 버리고 오로지 완덕의 모범인 그리스도만을 따르며(마태 19, 21) 그분의 말씀을 들어(루가 10, 39) 그분의 일에만 열중한다(1고린 7. 32). 이는 생활 속에서 하느님을 최우선으로 사랑하며 종말론적인 삶을 사는 삶이다. 이에 대하여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이렇게 가르치고 있다.
"서약한 모든 사람은 동정이며 가난한 그리스도를, 십자가의 죽음에 이르기까지 복종함으로써 인간을 구속하고 성화한 그리스도를 따라 자기를 하느님께 특별한 방법으로 봉헌한다. 이렇게 이들은 성령이 그들의 마음에 부어 주는 사랑에 감동되어 더욱더 그리스도와 그분의 몸인 교회를 위하여 살아간다. 따라서 생활 전체를 이러한 봉헌으로써 그리스도와 더욱더 열렬히 결합되면 결합될수록 교회의 삶은 그만큼 더 풍부하게 되며 그 사도적인 활동이 더 풍부하게 결실을 맺는 것이다" (수도 1항). 이와 같이 봉헌의 삶은 하느님이 당신 교회에 준 큰 선물이고 바로 교회의 핵심에 자리하고 있으며 성령의 인도를 받아 성장되는 이상적인 삶이다.
성서적 근거 : 구약성서에는 직접적으로 수도 생활이 라는 표현은 없지만 유대교 안에서 수도자처럼 살던 사람들과 단체들이 있었다. 가장 오래된 사람들이 '나지르 (נָזִיר )로서 그들은 하느님께 자신들을 봉헌하여 하느님만을 섬기고 머리를 깎지 않으며 독주를 금하고 시체의 접근을 금지한 규율을 엄격히 지켰다. 사도 바오로도 한때 이 단체에 속했던 것 같다(사도 18, 18. 21. 26). 나지르들과 비슷한 공동체를 이룬 이들이 '레갑인' (רֵכָבִים )들이었는데(예레 35장), 그들은 야훼의 이름으로 가나안의 이방인 문화에 동화되는 것을 거부하고 유목민의 삶을 유지하고 보존하였다. 이 두 부류보다도 수도 생활을 예시한 이들은 예언자들이었다. 그들은 하느님께 충성과 효성을 다하면서 교리와 윤리 생활의 정화에 힘썼는데, 그중에서도 예언자 엘리야는 수도 생활의 선구자로 꼽힌다. 그는 하느님 안에 늘 깨어 있었고 은수자의 삶을 살았으며 마음을 순수하게 닦고 성실히 기도 생활에 힘썼다. 두 번째 예언자는 예레미야로, 그는 성서에서 제일 먼저 독신 생활을 선택한 인물이다(예레 16, 1-4). 수도 생활의 배경으로 중요하게 손꼽히는 부류는 바빌론 유배 후에 부상한 '암 하아레츠' (אָם חָיָה הָרֵץ), 야훼의 가난한 이들)로, 그들은 오직 전능한 하느님께만 모든 것을 맡기면서 이 세상의 재물과 가치에 대해서는 초연한 자들이었다. 마지막으로 구약 말기에 독신을 지키면서 출현한 부류가 에세네파였다. 에세네파를 대표하던 쿰란 공동체는 중세기의 수도 생활 못지않은 공동 생활과 순명 · 청빈 . 독신 생활을 엄격하게 지킨 것으로 보인다.
수도 생활의 뿌리는 신약성서 안에 있는데, 그 삶은 완덕의 모범인 예수의 생애에 드러나 있다. 예수는 가난하게 살았고 정결과 독신의 삶과 십자가의 죽음에 이르기까지 아버지 하느님께 순종하였다. 이러한 이상적인 생활은 성령 강림 사건 이후 초대 교회 공동체 안에서 일어났으며, 이 생활은 수도 생활의 전형으로서 공동 생활을 지향하는 모든 공동체의 이상이었다(exemplar vitae apos-tolicae). . 그 생활은 기도와 빵을 떼어 나누는 성찬의 삶과 한마음 한 뜻으로 일치된 신앙의 공동체였으며, 자발적으로 재산을 헌납한 공유의 생활이었다. 그러므로 그들 중에 가난한 이들은 하나도 없었고 고난과 박해를 함께한 참 신앙인의 공동체였다(사도 2, 42-47 : 4, 32-37 ; 5, 17-40). 이 사도 공동체(communittas apostolica)의 중요성은 동정과 독신에 있었다. 복음 전파자인 필립보의 딸들은 예언의 은사를 받은 동정녀들이었으며(사도 21, 9), 사도 바오로에 의하면 주님을 기쁘게 해주려는 이들은 모두 동정을 지키기로 되어 있었다(1고린 7장)
요한 복음서에 의하면 예수의 부르심을 받은 제자들의 공동체(요한 1, 35-51)는 예수와 함께하며 세상에서 그분을 증거하는 단체였다(요한 2장). 그리고 마태오 복음서는 19장에서 예수를 위하여 모든 것을 버리는 자는 백배의 축복과 영원한 생명을 얻는다고 가르쳤으며(마태 19, 29), 재산의 포기는 인간의 힘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은총에 의해서 이루어진다(마태 19, 26)고 하였다. 또 부자 청년은 재산에 대한 애착 때문에 주님을 따라 나서지 못하였다(마태 19, 16-26 ; 마르 10, 21-22). 특별히 하늘 나라를 위한 정결과 독신의 삶은 수도 생활의 특징이다(마태 19, 12).
교회사에서의 수도 성소 : 교회를 언제나 돌보는 성령은 역사 안에서 다양한 형태의 수도 생활을 일으켰다. 동방 교회에서는 회개 · 자기 부정 · 참회 · 내적 평화의 추구 · 끊임없는 기도 · 단식과 밤샘 기도 · 영적 투쟁과 침묵 · 파스카의 기쁨 · 재산의 포기 · 형제들과의 친교 · 고독 속에서 살아가는 삶을 산 사람들이 있었으며, 서방 교회 역시 이와 유사한 삶을 산 사람들이 있었다. 그들은 신적 독서(lectio divina) · 전례 거행 · 회개와 순명 · 정주(定住, stabilitas) · 내적 생활과 활동 생활을 조화시키려고 노력하였다. 또한 동정녀회와 은수자들과 과부들의 봉헌도 교회 역사 안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였으며, 수도 생활 양식에 따라 관상과 활동에만 종사하는 수도자들도 있었다.
수도 서원 : 수도자들은 복음적인 권고를 구체적으로 살기 위하여 교회에 의해 공인된 수도 단체 안에서 합법적인 장상 앞에서 청빈과 정결과 순명의 서원을 한다. 이는 성령의 감도 아래 그리스도를 더욱 가까이 따르기 위함이다. 이들은 서원을 함으로써, 즉 하느님의 영광과 교회의 건설 및 세상의 구원을 위하여 특별한 방법으로 하느님께 헌신함으로써 애덕의 완성을 추구하고 자신을 하느님께 전적으로 봉헌하는 고정된 생활 양식에 들어간 다.
① 청빈 : 수도자는 "부요하셨지만 여러분을 위하여 가난하게 되신" (2고린 8, 9) 그리스도의 모범에 따라 청빈 서원을 한다. 이 서원은 "당신에게 한 가지가 부족합니다. 가서 가진 것을 모두 팔아 가난한 사람들에게 주시오 · 그러고 와서 나를 따르시오"(마르 10, 21)라고 한 예수의 말씀에 따라 영적으로나 실제로나 가난하고 절제 중에 근면하며 세속적인 재물에서 떠난 삶을 사는 것 외에도, 재산의 사용과 처리에 있어서 각 회가 정한 고유법의 규범에 따를 것을 서원한다. 이는 물질에 대한 욕망을 끊음으로써 하느님만이 인간을 참으로 부요하게 할 수 있다는 것을 선포하는 동시에 완전한 자기 봉헌의 표현 이다.
② 정결 : 이는 독신자와 동정녀들이 하느님에 대한 갈라지지 않는 마음(1고린 7, 32-34)과 순수한 사랑으로 하느님께 몸과 마음을 전적으로 봉헌하는 서원이며, 수도자들이 공동체 안에서 회원들에게 서로 사랑으로 응답하는 것이다.
③ 순명 : "나를 보내신 분의 뜻을 행하며 그분의 일을다 이루는" (요한 4, 34) 것을 양식으로 삼은 그리스도를 본받아 실천하는 수도자는 자신의 뜻을 포기하고 장상의 뜻을 따름으로써 십자가에 달려서 죽기까지 순종한(필립 2, 8) 그리스도를 본받는다.
이와 같은 서원을 발하는 수도자들은 하느님 나라를 위하여 온전히 봉헌의 삶을 사는 자로서 완덕의 모범인 예수를 본받아 성화와 완덕을 지향하는 삶을 산다. 세 가지 서원은 하느님 아버지의 계획에 대한 아들 예수의 완전한 자녀다운 수락(요한 6, 38 : 10, 30 ; 14, 11 ; 히브 10, 5. 7 ; 필립 2, 7-8 : 2고린 8, 9)을 본받는 것이다.
〔재속회〕 재속회(institutum saeculare)라는 성소는 성직자나 일반 평신도들이 이 세상에 살면서 사도직을 통하여 그리스도인의 완덕을 지향하고 복음 삼덕(청빈 · 정결 · 순명)을 실천하지만 수도 공동체처럼 공동 생활은 하지 않는 봉성 생활회(insthutum vitae consecratae)이다. 이 성소에 불린 평신도들은 세상의 성화와 교회의 복음화 임무에 힘쓰며, 성직자 회원들은 특별한 사도적인 애덕으로 동료들을 지원하고 세상의 성화에 힘쓴다. 이 성소에 관하여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1996년에 발표한 <축성 생활>(Vita Consecrata) 10항에서 다음과 같이 언급하였다.
"이들은 문화 · 경제 · 정치의 생활에서 지혜의 누룩이 되고 은총의 증거자가 되려고 한다. 그들은 세상 안에서 그들 고유의 조화로운 현존과 봉헌을 통하여 사회 안에 그리스도 왕국의 새로움과 그 힘을 현존하게 하며, 참 행복의 힘으로 세상을 그 내부에서부터 변화시키려고 노력한다. 이렇게 그들은 하느님께 온전히 속한 자로서 하느님을 섬김에 자신을 완전히 봉헌하지만, 세상의 일상 생활을 통한 그들의 활동은 성령의 힘으로 현세적인 실재에 복음의 빛을 비추는 데에 이바지한다. 재속회는 각기 그 회의 고유한 특성에 따라 교회가 사회 안에 효과적으로 현존하도록 도와 준다."
배경 : 재속회에는 1790년에 파리에서 최초로 설립된 '마리아 성심의 자녀회' (Société des Filles du Coeur Imma-culé de Marie)를 비롯하여 여러 단체들이 있었는데, '마리아 성심의 자녀회' 는 1857년에 교회의 공인을 받았으나 회원들에게 수도복과 공동 생활의 의무를 부가하지는 않았다. 또 1821년에 프랑스의 마르세유에서 결성된 '젊은이들의 단체' (Oeuvre delaJeumesse)라는 모임은 1878년에 수도회로 공인되었으나 회원들은 반드시 수도 공동체를 이루고 살 의무는 없었다. 그들은 각자의 일에 종사하면서 수도 생활을 하였던 것이다. 그 후 주교성성과 수도 자성성에서 1889년 8월 11일에 발표한 칙서 <가톨릭 교회〉(Ecclesia Catholica)의 영향을 받아 많은 단체들이 생겨났는데, 이 단체들은 엄격한 의미에서 수도회는 아니었으나 교구장의 지도를 받으면서 생활하였다. 그러나 교회법에는 명시되지 않았다 이 가운데 25개의 단체가 1921년에 스위스 산갈로(Sangalo)에서 개최된 총회에서 교황청의 인가를 받았다. 그리고 1947년 2월 2일에는 교황 비오 12세(1938~1958)가 헌장 <프로비다 마테르>(Provida Mater)를 발표하여 10개 항으로 된 특별 규정을 제시하였는데, 이는 현행 교회법 710~730조에 상세히 명시되어 있다.
완덕을 지향하는 단체 : 성직자이든 평신도이든 재속회에 가입한 이들은 자신의 신분에 충실하면서도 완덕을 지향하는 삶을 살아간다. 그것은 회원들이 세속에 살면서 애덕의 완성을 향하여 살도록 부름받고 있기 때문이다. (⇦ 부르심 ; 사제 성소 ; 수도 성소 ; 재속회 ; → 봉헌 생활 ; 봉헌 생활회 ; 사제, 교의 신학에서의 ; 성화 임무 ; 수도 생활 ; 수도 선서)
※ 참고문헌  교황 요한 바오로 2세, <축성 생활>(Vita Consecrata), 1996/ 《교회법전》 《제2차 바티칸 공의회 문헌》,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1969/ C.A. Schleck, vocation, religious and clerical, 《NCE》 14, pp.735~736/ W.H. Principe, vocation to supernatural life, 《NCE》 14, pp. 736~738/ Pius XII , Sedes sapientiae, 《AAS》48 pp. 357~3591 Thomas Aquinas, Summa Theologia I - II , q. 82, a. 3. 〔田達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