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교구 소속 본당. 서울시 성동구 성수동 1가 110 소재. 1966년 6월 10일 왕십리(往十里) 본당 관할 '뚝섬 공소' 에서 본당으로 승격되었으며, 주보는 예수 부활. 관할 구역은 성수동 전역. [교 세] 1967년 1,128명, 1972년 3,000명, 1977년 2,413명, 1981년 3,416명, 1985년 4,275명, 1992년 3,480명, 1996년 3,812명. 〔역대 신부〕 초대 산체스(L. Sanchez) 루도비코(1966.6~12), 2대 바퀘다노(J.Baquadano) 요셉(1967. 1~12), 3대 루나(A. Luna, 윤고명) 아우구스티노(1968. 1~1972. 6), 4대 나바로(R. Navarro) 루돌프(1972. 7~1973. 9), 5대 산도발(J. Sandoval, 소선도) 요셉(1973. 10~1977. 8), 6대 모레노(O. Moreno, 오모한) 오톤(1977. 8~1981. 2), 7대 김정남(金正男) 바르나바(1981. 2~1984. 2), 8대 김택구(金澤龜) 루도비코(1984. 3~1988. 8), 9대 최성균(崔聖均) 요한 보스코(1988. 9~1990.8) 10대 현동준(玄同準) 세례자 요한(1990. 8~1993. 3), 11대 전태준(田泰俊) 헨리코(1993.3~1998. 3), 12대 김기화(金基和) 도미니코(1998. 3~현재).
[공소와 본당 설립] 1940년대 초 성수동 지역은 백동(현 혜화동) 본당 관할 구역으로 주로 가난한 어부와 농부들이 사는 마을이었다. 그러다가 1943년 10월에 이곳에사는 2세대 5명이 처음으로 신앙 공동체를 형성하여 이듬해부터 사가에서 공소 예절을 갖기 시작하였는데, 백동 본당의 생제(Singer, 成載德) 신부가 이곳을 방문함으로써 '뚝섬 공소' 가 설립되기에 이르렀다. 그 후 1948년 12월에 신당동 본당이 설립되면서 이곳으로 소속이 변경된 뚝섬 공소는, 공소 신자수가 20세대 59명에 이르자 공소 강당 신축을 위한 모금 운동을 시작하였으나 한국 전쟁의 발발로 중단되고 말았다. 전쟁이 끝나고 다시 모금 운동을 전개한 공소 신자들은 1958년에 강당 건립 기금과 교구 보조금을 합쳐 현 성당 부지 560평을 매입하였다.
이듬해 왕십리 본당 관할로 소속이 다시 변경된 뚝섬 공소는 얼마 후 왕십리 본당 주임 게라티(B. Geraghty) 신부의 지원으로 24평 규모의 공소 강당을 건립하였다. 그러다가 1966년 초에 공소 사목권이 과달루페 외방선교회에 위임되면서 선교회의 후원을 받아 성당(110평)과 사제관을 신축하였다. 그리고 같은 해 6월 10일 노기남(盧基南, 바오로) 대주교의 집전으로 성당 봉헌식을 거행함과 동시에 '성수동 본당' 으로 승격되면서 초대 주임으로 산체스 신부가 임명되었다.
[정착과 성장] 설립 이듬해인 1967년 5월에는 한국 최초로 실시된 꾸르실료 교육에 장소를 제공함으로써 21명의 첫 꾸르실리스따들이 탄생하는 데 일조하였으며, 1971년 3월에는 영원한 도움의 성모 수녀회를 초청하였고, 같은 해 10월에는 유치원을 개원한 데 이어 수녀원 및 유치원으로 사용하기 위하여 지하 1층 지상 2층의 건물(133평)을 신축하였다. 그리고 1977년 8월 25일에는 자양동 본당을 분리하면서 281세대 790명의 교적을 이관하였다. 한편 1981년 2월 24일에 본당 사목권이 다시 교구로 이관되면서 7대 주임으로 부임한 김정남 신부는, 그 해 12월 베네딕도회의 알빈(Alwin) 신부 설계 로 성당 증축(60평) 및 보수 공사를 실시하였으며, 1985년 5월에는 서울시의 도시 계획에 따라 성당 부지 일부가 도로로 편입되어 성당 정문 위치가 바뀌자 추가로 대지 75평을 구입하면서 지하 1층 통로와 지상 1층 성당 입구(40평)를 증축하였다.
성수동 본당은 설립 초기부터 관할 구역 내에 영세 공장과 빈민 가정이 많이 거주하고 있는 현실을 고려하여 이를 위한 다양한 선교 활동을 실천해 왔다. 특히 1968년에는 가톨릭 노동 청년회(J.O.C.)를 발족한 데 이어 빈천시오회의 활동을 통해 고아원 · 양로원 돕기 운동을 지속적으로 전개하였으며, 1973년 3월 19일에는 불우 청소년들을 위한 성모중학교를 개교하였고(1981년 8월 폐교), 1988년에는 근로 청소년을 위한 야간 학교인 '사랑 배움터' 를 운영하기도 하였다. 이 밖에도 본당 신자들의 친교와 화합을 위하여 1998년 11월에는 지하 1층에 만남의 장소를 마련하였으며, 최근에 와서는 선교 활동 강화와 평신도 활동의 활성화를 위해서도 많은 노력을 하고 있다. (→ 서울대교구 ; 왕십리 본당)
※ 참고문헌 《가톨릭 사전》 《서울대교구 교구 총람》, 가톨릭출판사, 1984. 〔金善美〕
성수동 본당
聖水洞本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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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