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신중고등학교

聖神中高等學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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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5년 동성신학원 당시의 교사와 신학생(왼쪽), 그리고 성신고등학교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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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5년 동성신학원 당시의 교사와 신학생(왼쪽), 그리고 성신고등학교 전경.

서울대교구에서 가톨릭의 정신에 입각하여 교회와 국가, 세계 인류 평화에 공헌할 수 있는 학덕을 겸비한 인간상의 계발과 사제 양성의 준비를 목적으로 설립한 소신학교. 1928년 말에 용산 예수성심신학교가 대 · 소신학교로 분리되면서 '남대문상업학교 을조(乙組)' 로 개설되었고, 1932년 2월 동성신학원(東星神學院)으로 개칭되었다. 그 후 1945년 2월에 다시 예수성심신학교에 통합되었다가 1947년 4월 6년제의 '성신중학교' 로 분리되었으며, 1951년 8월에 성신중학교와 성신고등학교로 개편된 다음, 중학교는 1971년 2월에, 고등학교는 1983년 2월에 폐교되었다. [역대 교장] 상업학교 을조 : 초대 시잘레(Chizallet, 池士元) 신부(1929. 5~1935) , 2대 라가르드(Lagarde, 羅) 신부(1935~1938. 5), 3대 신인식( 申仁植, 바오로) 신부(1938. 5~1945). 성신중 · 고등학교: 초대 한공렬(韓珍烈, 베드로) 신부(1947. 5~1948. 6), 2대 이재현(李在現, 요셉) 신부(1948. 7~1950. 9. 피납), 3대 정욱진(丁旭鎮, 토마스) 신부(1950. 11~1958. 4), 4대 박양운(朴養雲, 바오로) 신부(1958. 4~1960. 8), 5대 류영도(柳榮道, 디오니시오) 신부(1960. 8~1964. 8), 6대 조인환(曹仁煥, 베드로) 신부(1964. 8~1966. 12), 7대 김정진(金正鎮, 바오로) 신부(1966. 12~1973), 8대 고명철(高明哲, 아우구스티노) 신부(1973~1983.2).
[상업학교 을조 시대] 1887년에 용산으로 이전하여 개설된 예수성심신학교는 소신학교와 대신학교 과정이 통합된 신학교였다. 그중에서 소신학교 과정은 라틴어 교육을 중심으로 한문 · 영어 · 산수 · 역사 등의 교과목이 병설되어 있었으나, 신학생들의 질적 향상을 위해 중등 과정의 일반 과목과 신학 교육을 위한 기초 과목을 함께 가르칠 필요성이 있었다. 이에 서울교구에서는 1928년 말에 대 · 소신학교를 분리한 뒤 소신학교(기존의 라틴어반)를 남대문상업학교(5년제) 안에 두기로 결정하였다. 즉 남대문상업학교를 갑조(甲組)와 을조(乙組)로 나누어, 갑조를 일반 상업 학교로 운영하고 을조를 소신학교로 운영하기로 한 것이었다. 그리고 상업 학교 교사를 혜화동으로 이전할 계획을 세웠다.
1928년에 착수한 혜화동의 신축 교사 공사(상업학교갑조)와 수도원 개조 공사(을조 소신학교)가 이듬해 끝나자, 소신학생들은 그 해 9월 1일부터 혜화동에서 생활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이어 1931년부터 대구교구와 평양 교구의 소신학생들을 받아들이게 되면서 그 해 4월부터 증축 공사에 들어가 후반기에 이를 완공하였다. 또 남대문상업학교가 동성상업학교(東星商業學校)로 개칭됨에 따라 소신학교의 명칭도 1932년 2월부터는 '동성신학원' 으로 부르게 되었다. 당시 동성신학원 신부들은 라틴어와 프랑스어 외에 교리나 영성 같은 종교 과목만을 담당하였고, 기타 과목은 동성학교에 재임하던 일반 교사들이 담당하였다.
한편 일제는 1937년 중일 전쟁, 1941년 태평양 전쟁을 일으키면서 식민지 조선에 대해 황민화 정책과 전시 체제를 강화해 나갔다. 이에 학교가 병영화되고 학생들은 근로 사역에 동원되는 어려움을 겪었지만, 소신학교에서는 매년 졸업생들을 배출하였고, 일반 학교를 졸업한 뒤 신학교에 진학하려는 학생들을 위해서 별과' [別]科)도 운영하였다. 그러던 중 총독부에 의해 서울교구와 대구교구의 대신학교들이 폐교되자 교구측에서는 인가된 정식 신학교의 설립을 모색하였으며, 그 결과 1945년 2월 23일에 경성성천주공교신학교' (京城天主公敎神學校)가 인가되었다. 이 신학교의 학제는 예과(豫科) 4년 고등과 2년의 중등 교육 과정과, 본과(本科) 4년 연구과 2년의 고등 교육 과정 등 모두 12년제였는데, 소신학생들은 천주공교신학교의 예과와 고등과로 편입하게 되었다.
〔성신중 · 고등학교〕 광복 이후 경성천주공교신학교가 1947년 4월 30일의 대학령(大學令)에 의하여 '성신대학' (聖神大學)으로 승격 인가되면서 기존의 소신학교, 즉 예과와 고등과는 대신학교에서 분리되어 성신대학 부속 '성신중학교' (聖神中學校, 6년제의 고등 중학교)로 개편되었다. 중학교의 설립으로 혜화동 교사가 협소하게 되자 교구에서는 이전의 성모병원 용산 분원(용산구 원효로 4가 1번지)을 임시 신학교 건물로 개조하였고, 소신학생들은 1947년 9월 1일부터 이 건물에서 수업을 받게 되었다.
그러던 중 한국 전쟁이 발발하자 교구에서는 1951년 1월부터 대 · 소신학생들을 제주도로 옮겨 교육하였는데, 이때 성신중학교 학생들은 그 해 4월까지 제주 중앙 성당에 마련된 임시 가교사에서 생활하다가 밀양(密陽) 본당(밀양읍 2동)으로 이전하여 환도할 때까지 생활하였다. 그 사이에 성신중학교는 1951년 8월 31일자로 '성신고등학교' (3년제)와 '성신중학교' (3년제)로 분리 · 개편되었으며, 이듬해 3월부터는 성신고등학교에 일반 중학교 졸업생들도 받아들이면서 이들을 위해 정식으로 별과를 운영하였다.
밀양에 있던 성신중 · 고등학교는 성신대학보다 좀 늦은 1953년 11월 초에 서울로 복귀하였다. 그러나 용산 원효로의 교사 건물이 전쟁 중에 파괴되었기 때문에 우선 혜화동으로 학교를 이전한 뒤, 동성학교 건물 일부를 빌려 기숙사 및 성당으로 사용하고 대신학교 건물 일부를 교실로 사용하였다. 그 후 교구에서는 대신학교 아래에 있는 포도발(종로구 혜화동 161-15번지)을 새 학교 부지로 이용하기로 결정하고, 1955년 4월 14일 1차로 462평의 3층 건물을 완공하여 낙성식을 가졌다. 이어 이듬해 4월에는 교실 증축과 기숙사 신축 공사를, 1957년 8월에는 교실 증축 공사를 마무리하였고, 1958년 4월에는 기숙사(668평)를, 1963년 초에는 성당 및 부속 건물(560평)을 완공하여 같은 해 2월 19일 성당 축성식을 가졌다.
소신학교인 성신중고등학교는 1970년대 들어 커다란 변화를 맞게 되었다. 즉 1971년에 중학교 입시 제도가 학군제(學群制)로 변경되어 소신학교 지망자들만을 따로 선발할 수 없게 되자, 학교 당국에서는 1971년 2월 28일자로 성신중학교를 폐교하기로 결정하였다. 이어 1973년 3월에 고등학교 입시 제도마저 학군제로 변경되자, 성신고등학교에서는 인문계 특수 고등학교 인가를 받아 1974년부터 전국적으로 입학생을 모집하게 되었다. 그러다가 1980년 주교 회의 춘계 정기 총회에서는 소신학교 지원자의 격감과 경제적인 부담, 대신학교에서 차지하는 소신학교 출신자들의 비중 감소 등의 이유를 들어 소신학교의 폐교를 결정하였다. 이에 따라 2~3학년 학생들은 1981년부터 동성고등학교로 옮겨 수업을 실시하였고, 마지막 학년이 졸업하던 1983년 2월 성신고등학교는 제49회 졸업식을 끝으로 폐교하였다. (→ 동성중고등학교 ; 예수성심신학교)
※ 참고문헌  《가톨릭 사전》 동성중고등학교 편, 《동성 80년사》, 1987. [方相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