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00년 11월 21일 바라(Madeleine Sophie Barat, 1779~1865) 수녀가 청소년 교육을 통해 예수 성심의 사랑을 전파할 목적으로 프랑스 파리의 아미앵(Amiens)에서 창립한 수녀회. 총본부는 로마에 있으며, 한국 관구는 서울시 용산구 원효로 4가 1번지 소재.
〔창립과 성장〕 성심 수녀회는 이미 프랑스 대혁명기에 투르널리(Léonor de Tournely, 1767~1797) 신부에 의해 그 창립이 예견된 바 있다. 수녀회 창립에 선구적 역할을 했던 투르널리 신부는 생전에 '예수 성심' 이라는 이름을 가진 교육 수녀회를 창립하고자 하였으나, 젊은 나이에 사망하고 말아 그 뜻을 이루지 못하였다. 다행히 그의 사후에 예수회의 바랭(Joseph Varin) 신부가 그 뜻을 이어나갔는데, 이때 바랭 신부는 새로 설립될 수녀회의 설립자로 마들렌 소피 바라를 주목하게 되었다.
1779년 12월 12일 프랑스 부르고뉴(Bourgogne) 지방의 즈와니(Joigy)에서 태어나 어릴 때부터 예수 성심에 대한 독특한 신심을 길러 왔던 마들렌 소피 바라는, 어느 날 기도 중에 '교회의 하늘 높이 환희 트인 우주 앞에서 수천 수만의 사람들이 창조주이신 하느님을 찬미하는 모습' 을 체험하게 되었다. 이때 그녀는 죄로 상처받은 이 세상에서 '하느님을 바로 인식하며 살아가는 청소년들을 위한 신앙 교육' 에 투신하는 것이 바로 자신의 성소임을 깨닫게 되었는데, 이러한 원의는 바랭 신부와의 만남에서 더욱 구체화되었다. 그리고 복되신 동정 마리아의 자헌 기념일인 1800년 11월 21일에 파리 아미앵 투렌느(Touraine) 가의 작은 성당에서 바이이(Octavie Bailly), 로케(Marie Frangoise Loquet), 마르가리트(Marguerite)와 함께 첫 서원을 함으로써 성심 수녀회가 창립되었다. 그러나 당시 '성심' (Sacré Coeur)이라는 말은 반혁명의 표지로 인식되어 정치적 오해를 불러일으킬 우려가 있었으므로, 초창기의 수도회 이름은 '예수의 사랑받는 자매회'(Dilette di Gésu)로 하였다.
[성장과 변모] 성심 수녀회는 창립 이듬해인 1801년 10월 아미앵에 미래의 사회 지도층을 형성할 귀족 자녀들을 위한 기숙 학교인 '성심학교' 를 열었는데, 이로 인해 초창기에는 일반인들에게 '크리스천 교육 수녀회'(Des Dames del'Instrucion Chretienne)로 널리 알려졌다. 그리고 이듬해 1월에는 이 학교 구내에 가난한 청소년들을 위한 무상 학교를 열어 이를 기숙 학교의 운영비로 유지했다. 이와 같은 형태의 기숙 학교와 무상 학교는 1806년 푸아티에(Poitiers) , 1808년 그르노블(Grenoble), 1816년 보베(Beauvais) , 그리고 1850년에는 파리에도 개설되었다. 또한 직업 학교, 청각 장애 청소년 교육 기관, 지체 부자유 청소년들을 위한 의료 기관을 건립하기도 하였다. 그런가 하면 1836년에 설립한 교육 대학에 이어 1854년에는 사범 대학을 설립하였는데, 이는 소피 바라 수녀 사후에 성심 수녀회가 고등 교육 기관을 설립하는 계기가 되었다. 이후 성심 수녀회에서는 이탈리아 · 스위스 · 벨기에 · 영국 · 아일랜드 · 스코틀랜드 · 스페인 · 오스트리아 · 네덜란드 · 독일 등 유럽 각국에 성심 교육을 전파했다. 1815년에 총본부를 파리로 옮겼으며, 1826년 12월 26일에는 교황 레오 12세(1823~1829)로부터 수녀회 승인을 받았다.
한편 이에 앞서 성심 수녀회는 1818년에 로즈 필립핀 뒤센(Rose Philippine Duchèsne, 1769~1852) 수녀를 미국 미주리(Missour) 주의 세인트찰스(St. Charles)에 파견하여 미대륙에서의 교육 활동에도 착수하였다. 창립자 생존시에 이미 16개 국 122개의 분원에 3,559명의 회원이 활동하였으며, 프랑스에서만 84개의 기숙 학교에 3,700명의 학생과 74개의 무상 학교에서 5,700명의 학생들이 성심 교육을 받았다. 그리고 창립 200년을 앞둔 1999년 5월 현재 43개 국에서 3,697명의 회원들이 활동하고 있다.
[성심 교육의 특징] 성심 수녀회에 있어서 예수 성심께 대한 봉헌과 청소년 교육에 대한 봉헌은 핵심적 요소가 된다. 성심 수녀회는 19세기의 '예수 성심' 영성과 '성체' 에 대한 신심에 기초하여 여기에서 사도직 교육 활동의 힘을 이끌어 내는 것을 창립 정신으로 삼았다. 그러므로 교육은 성심 수녀회의 사명을 실현시키는 수단이자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전하는 고유한 방법이다.
성심 수녀회의 초기 회헌인 1815년 회헌에 의하면, 성심 수녀회의 근본 목적은 '예수 성심의 영광을 드러내는 것' 이었다. 이를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기숙 학생의 교육, 가난한 청소년들에 대한 무상 교육, 사회인들을 위한 피정, 일과 관계된 세상 사람들과의 필요한 접촉 등 네 가지이다. 이러한 교육 전통은 점차 세상과 교회의 필요에 따라 쇄신되었으며, 특히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에는 성심 교육도 급격한 방향 전환이 이루어졌다. 그동안 획일적인 교육 방식에서 벗어나 각국의 문화와 전통 및 특수성을 고려하여 '다양성 안의 일치' 를 강조하게 되었고, 점차 유럽 중심의 세계관에서 탈피하여 아시아 남아메리카 · 아프리카 등의 대륙에도 관심을 돌리게 되었다. 그리고 사회 정의 교육이 강조되면서 신앙 교육 및 학문 교육은 더욱 통합적인 교육으로 변모하였다. 더불어 회원들은 수도복 대신 사도직 활동에 편리한 평상복으로 갈아입고서 사회의 긴급한 필요와 지역 사회의 부름에 곧바로 응답하게 되었다. 가장 최근에 작성된 1982년 회헌에서는 성심 교육을 "세상의 긴급한 필요와 지역 교회의 부름에 창의적으로 응답할 것을 촉구할 것"이라고 정의함으로써, 이제 성심 수녀회의 활동은 교육과 양성을 비롯하여 인간 발달과 정의 구현 활동, 사목적 활동과 신앙 생활 지도 등으로 그 활동의 폭이 더욱 다양해졌다.
[영 성] 성심 수녀회 영성의 근본은 "여러분은 그리스도 예수께서 지니셨던 마음을 여러분의 마음으로 간직하십시오"(필립 2. 5)라는 복음에서 찾는다. 혁명기에 어린 시절을 보낸 창설자 소피 바라는 종교적 위기에 처한 사회의 불안 속에서 상처받은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을 체험한 뒤 이를 하느님 사랑의 근원이자 상징으로 삼게 되었다. 따라서 회원들도 예수 마음의 영광을 드러내고자 자신을 봉헌하되 성령께서 자신을 근본적으로 변혁시켜 주시도록 열린 자세로 성령께 내어 맡김으로써, 그리스도의 사랑을 발견하고 널리 알리려는 소명에 응답하고자 한다. 자신을 아낌없이 바쳐 주님을 흠숭하는 가운데, 살아 계시는 성령께서 주시는 내적 변화의 은총으로 예수 마음을 닮아 가며, 자신들과 다른 이들 그리고 모든 사건 안에 계시는 성령의 현존에 민감하게 되어, 마침내 예수 마음으로 세상의 현실을 관상하고 느끼며 하느님 나라의 건설을 위한 교육에 봉사한다.
[한국 진출과 성장] 한국의 성심 수녀회는 서울교구장 노기남(盧基南, 바오로) 주교의 초청으로 일본 극동 관구에서 1956년 10월에 7명의 회원이 진출하면서 시작되었는데, 당시 회원들은 파리 외방전교회 선교사들이 거처하던 용산 예수성심신학교 건물에 본원을 마련하였다. 초대 원장 맥카티 플린트(McHardy Flint) 수녀에 이어 1975년 3월 극동 관구로부터 독립하면서 초대 지부장으로 김재숙(金在淑, 가타리나) 수녀가 임명되었고, 동시에 한국 지부에 첫 수련소가 마련되었는데 이 수련소는 1980년 2월에 부천시 괴안동으로 옮겼다. 그리고 1987년 3월 1일에는 피정 지도를 위해 본원 내에 예수 마음 공동체와 기도의 집을 마련하였다. 이처럼 교육 사업을 중심으로 성장을 거듭하던 한국의 공동체는 1991년 6월 7일 관구로 승격됨과 동시에 초대 관구장으로 조현숙(曹縣淑, 도로테아) 수녀가 임명되었다. 1999년 1월에는 경기도 파주에 피정 지도 및 다양한 영성 교육을 위한 '예수 마음 배움터' 를 열면서 부천시 괴안동에 있던 수련소도 이곳으로 이전하였다. 1999년 5월 현재 종신 서원자 35명, 유기 서원자 15명, 수련자 5명, 청원자 3명 등 총 58명의 회원이 있다.
[사도직 활동] 성심 수녀회는 1957년의 성심여자중학교를 시작으로 같은 해 8월 성심국제학교, 1960년 성심여자고등학교, 1962년 성심국민학교를 개교하였으며, 1964년에는 강원도 춘천에 성심여자대학을 개교하였다. 이 학교들에서는 성심 수녀회의 오랜 전통에 따라 학생들의 인격을 존중하고 교육의 질적 수준을 높이기 위해 소수의 학생들만을 선발하여 교육해 왔으나,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정신에 따라 이 전통은 점차 바뀌게 되었다. 아울러 1969년에 중학교 평준화 교육이 실시되면서 더 많은 청소년들에게 성심 교육의 기회를 제공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정규 학교 교육 외에도 1965 1968년에는 봉천동에서 천막 학교를 열었으며, 1967년부터는 성심여자고등학교 안에 수도자를 위한 고등학교 특수 과정(야간)을 운영하기 시작하였다.
그러던 중 지방 편재의 취약점을 극복하기 위한 방안으로 성심여자대학을 서울로 이전하자는 의견이 대두되어 1975년부터 부천시 역곡동 산 43-1번지에 교사(校舍)를 짓고 성심여자대학 일부를 이곳으로 이전하였으며, 1980년에 이전을 완료하였다. 한편 1978년 3월 29일 탄광 지대인 강원도 고한에 4명의 회원을 파견하여 지역 사회 복지 활동과 본당 사도직을 시작한 성심 수녀회에서는, 1983년에는 두문동 보건소를 개원했고 1993년부터는 지역 불우 청소년들을 위해 '흑빛 공부방' 을 운영하고 있다. 한편 이에 앞서 1982년 9월 1일에는 당시 서울의 대표적인 철거민촌이었던 상계동에서 본당 사도직과 도시 빈민 활동을 전개하였고, 1988년 3월 1일에 경기도 부천과 인천시 부평에서 노동 사도직을 시작하였으며, 1992년 4월 23일에는 상계동 본당에서 운영하는 '마음터 공부방' 에서 활동을 시작하였다. 이처럼 성심 수녀회의 비제도 교육 사도직인 '두레 사목' 은 본당 · 노동 · 청소년 · 의료 사도직을 두루 포함하였으며, 이는 1970~1980년대에 걸쳐 더욱 성장하였다.
〔변모와 현황〕 성심 수녀회에서 운영하던 성심여자대학은 1991년 교육법 개정령에 의거하여 학교 이름을 '성심여자대학교' 로 바꾸었다. 이후 가톨릭대학교와의 통합이 추진되어 1994년 9월에 통합이 확정 발표되었고, 11월에 '가톨릭대학교' 로 교육부의 인가를 받게 되면서 이듬해부터는 남학생들도 입학이 가능해졌다. 통합 이후 학교의 운영권을 서울대교구에 양도한 성심 수녀회는, 이때부터 교육 사도직을 점차 비제도 교육으로 전환 · 확대시켜 나감으로써 사회의 긴급한 필요에 원활히 응답하는 '교육 사도직의 다양화' 방법을 실천해 오고 있다. 현재 교육 활동으로는 성심여자고등학교를 운영하는 것 외에 가톨릭대학교(성심 교정)에서 교수 및 학생 사목 활동을 하고 있으며, 사회 사도직으로는 상계동과 강원도 고한에서 본당과 공부방 및 보건소 진료 활동, 그리고 경기도 부천에서 노동 사도직을 계속하고 있다. 그 밖에 경기도 파주에서 피정 지도 및 인간 발달 상담 및 에니어그램(Eneagram) 연구 활동을 하고 있으며, 1999년 4월에는 옛 수련소 자리인 부천시 괴안동에 가출 청소년들을 위한 '모퉁이 쉼터' 를 개원하여 운영하고 있다. (→ 바라, 마들렌 소피 ; 성심여자고등학교 ; 성심여자대학교)
※ 참고문헌 《가톨릭 사전》 《서울대교구 교구 총람》, 가톨릭출판사, 1984/ Marie-Therèse Virnot, 최 순자 역, 《성녀 마들렌 소피이의 은사》, 성심 수녀회, 1984/ 《聖心女子 校三十年史(1964~1994)》, 성심여자대학교 삼십년사 편찬위원회, 1994/ 잔 드 샤리, 최순자 역, 《타는 불꽃, 성령의 이슬》, 성바오로출판사, 1998/ 김효성, <성녀 마들렌 소피이의 영성과 '예수의 마음'>, 서강대학교 종교학과 대학원 석사 논문, 1998/ 《原州教區三十年史》, 천주교 원주교구, 1996/《聖心四十年(1957~1998)》, 성심여자고등학교, 1999/ 上智大學 편, 《カ 卜 リ ソ 7 大辭典》 4, 東京, 富 山房, 1954/ 《Cath》 8, pp. 131~132/ C.E. Maguire, 《NCE》2, pp. 85~86/ M. Williams, 《NCE》 12, pp. 822~823. 〔金孝城〕
성심 수녀회
聖心修女會
〔프〕La Société du Sacré Coeur · 〔영〕The Society of the Sacred Hear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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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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즈와니에 있는 창립자 마들렌 소피 바라의 생가(왼쪽)와 아미앵 '성심학교' 경당.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