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심여자중고등학교

聖心女子中高等學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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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심여자중고등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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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심여자중고등학교.

'학교 법인 해성학원' 에서 운영하는 중등 교육 기관. 전주시 완산구 교동 280번지 소재. 1946년 8월에 설립된 '성심여학원' 을 모체로 하며, 중학교는 1948년 9월에 개교하였고, 고등학교는 1952년 4월에 병립되었다가 1970년 3월에 중학교와 분리되었다. 그리스도의 사랑의 정신을 깨달아 믿음으로써 자신을 정화하고, 이웃을 사랑하며, 사회를 정화함과 동시에 학식과 덕망을 쌓도록하여 국가 사회에 유용한 인재를 기르는 것을 교육의 이념으로 한다. 교훈은 "진 · 선 · 미”(眞善美). 〔역대 교장] 중학교 : 초대 김영구(金榮九, 베드로) 신부(1948. 9~1949. 2), 2대 이약슬(李若瑟, 요셉) 신부(1949.2~1950.6), 3대 김규승(金圭昇, 베드로, 1950. 6~1978. 1), 4대 범석규(范錫圭, 마티아) 신부(1978. 1~1979. 8), 5대 천건(千建, 바오로, 1979. 8~1982. 2), 6대 이상용(李相容, 알로시오, 1982. 3~1984.2), , 7대 김성원(金成源, 요사팟, 1984.3~1993.2), 8대 유기동(柳基東, 요한, 1993. 3~1998. 2), 9대 김영문(金榮文, 에프렘, 1998. 3~현재). 고등학교 : 초대 김규승(1952. 4~1979. 7), 2대 범석규 신부(1979. 8~1984. 2), 3대 이상용(1984. 3~1987. 2), 4대 천건(1987. 2~1989. 2), 5대 방춘원(房春源, 미카엘, 1989. 3~1992. 2), 6대 박해근(朴海根, 스테파노, 1992. 3~1993. 2), 7대 송재진(宋在辰, 요한, 1993. 2~1999. 2) , 8대(직무 대리) 송국용(宋國鏞, 이냐시오, 1999. 3~현재).
〔설립과 변모] 8 · 15 광복이 되면서 전주 본당 내에서는 청년회를 주축으로 중등 교육 기관을 설립하려는 움직임이 일어나게 되었다. 그리고 학교 설립을 위하여 많은 노력을 기울여 1946년 8월에 '성심여학원' 의 설립인가를 받고 그 해 10월 3일 개교할 수 있었다. 초대 원장에는 전주 본당 주임 이상화(李尙華, 바르톨로메오) 신부가 취임하였고, 당시 학생수는 37명이었다. 이어 2대 원장으로 취임한 이약슬 신부는 '성심여학원' 을 정식 중학교로 발전시키는 데 노력하여 1948년 7월 29일 3학급 150명 정원의 '성심여자초급중학교' 설립 인가를 받아 9월 16일에 개교하였는데, 초기의 학생 활동 중에는 체육 활동이 두드러져 1947~1950년에는 호남 탁구 대회를 석권하기도 하였다. 아울러 1949년 7월부터는 교지 《옥잠화》를 창간하였다.
1950년 한국 전쟁이 발발하면서 휴교 등 어려움을 겪다가 1951년 3월부터 다시 정상 수업에 들어갔으며, 같은 해 8월에는 교육법이 개정되어 6년의 중학교 과정이 3년 과정으로 개편되면서 학교 이름도 '성심여자중학교 로 개칭되었다. 동시에 재단에서는 4학년 이상의 학생들이 문제가 되자 고등학교의 설립을 추진하여 1952년 4월 13일 마침내 고등학교 설립 인가를 받고 4월 30일에 개교하였다. 이후 성심여자중 · 고등학교는 꾸준히 성장하여 1955년 5월에는 도내 유일한 문교부 지정 연구 학교가 되었고, 그 무렵 건평 300평의 3층 교사를 신축하여 시설도 확장하였다. 또 이듬해 1월에는 고등학교의 학급수를 9학급으로 증설하는 한편, 4월에는 교사를 4층으로 증축하였고, 1957년 10월에는 도서관을 개관하여 학교의 내실을 기하였다.
1960년대 들어서도 성심여자중 · 고등학교의 발전은 계속되어 1960년 1월에는 중학교의 학급수가 18학급으로 늘어났고, 3월에는 남쪽에 3층의 신관 교사를 준공하였으며, 1962년 10월에는 강당을 완공하였다. 또 이듬해 12월에는 중학교의 학급수를 21학급으로 증설하였고, 1964년 4월에는 서편에 6층의 교사(640평)를 신축하였으며, 12월에는 '성심 예술제' (1974년 폐지)를 처음으로 개최하였다. 또 1965년 9월에는 본관 동편에 6층(670평) 교사를 증축함과 동시에 주위의 공장 토지를 매입하여 운동장을 마련한 데 이어 이듬해 11월에는 중학교의 학급수를 24학급으로 증설하였고, 1967년 8월에는 서편에 4층의 교사를 완공하였으며, 11월에는 고등학교의 학급수를 24학급으로 증설하였다.
1970년 3월에는 중학교와 고등학교의 운영이 분리되어 별도의 운영 체계를 갖추게 되었다. 이후 1973년에는 계간지인 학교 신문 <밀알>을 창간하였고, 1975년에는 중학교의 학급수를 27학급으로 증설하였으며, 1977년에는 1973년부터 중단된 교지 《옥잠화》를 속간하였다. 또 1984년 4월에는 3층 규모의 동창 회관 겸 생활관(100평)을 건립하였고, 1985년에는 중학교의 학급수를 24학급으로 감축하는 대신 이듬해 10월에는 고등학교의 학급수를 30학급으로 증설하였다. 그러나 고등학교의 학급수는 1994년 3월에 학생수의 감소로 24학급으로 감축되었다가 1996년 9월에 다시 30학급으로 증설됨과 동시에 고등학교 건물 동편에 10개의 교실을 신축하였다.
1999년 현재 중학교는 24학급에 972명, 고등학교는 31학급에 1,431명이 재학 중이며, 졸업생은 중학교가 51회에 19,626명, 고등학교가 45회에 17 095명을 배출하였다. (→ 전주교구)

※ 참고문헌  호남교회사연구소 편, 《천주교 전주교구사》 I 천주교 전주교구, 1998. [方相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