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86년 2월 21일 작은 형제회의 심플리치아노(M.Simpliciano, 1827~1898) 신부가 도덕적 · 윤리적 타락으로 빗나간 청소년들을 선도하고 교육할 목적으로 이탈리아 로마에서 설립한 프란치스코 3회 수녀회. 총원은 이탈리아 카푸아(Capua)에 있으며, 한국 본원은 서울시 성북구 장위2동 68-895번지에 있다.
[설 립] 1827년 5월 11일 이탈리아 소렌토(Sorrento)의 메타(Meta)에서 태어나 나폴리(Napoli) 항구에서 성장한 심플리치아노는 한때 바다 생활을 동경하여 항해사가 되려고 하였으나, 하느님의 부르심을 깨닫고 17세 되던 해인 1844년 9월 4일 포르티치(Poric)에 있는 작은 형제회에 입회하였다. 그리고 1848년 5월 11일 첫 서원을하고 1851년에 사제 서품을 받았으며, 서품 직후 포르티치 수도원장의 허락을 얻어 1859년부터 10여 년 간 거리에서 방황하는 아이들을 위해 무료 학교인 '시민의 아이들' (Figli del popolo)을 수도원 내에 마련하여 교육하였다. 그러는 동안 심플리치아노 신부는 포르티치 수도 원장과 나폴리 관구장을 차례로 역임하였으며, 1869년부터는 수도회 총본부가 있는 로마에 거주하게 되었다.
언제나 인간의 영혼 구원과 인간의 존엄성을 중요하게 여겼던 심플리치아노 신부는 수도회 인근의 '위로(Con-solazione) 병원' 에 격리 · 수용되어 있던 병든 거리의 여인들과 사회로부터 냉대받고 윤리적으로 타락한 매춘 여성들에게 연민을 느끼게 되었다. 이에 그는 매주 토요일 그들에게 고해성사를 주고 지속적인 만남을 가지면서 그들이 처해 있는 환경에서 하루빨리 벗어나 정상적인 사회 생활로 복귀할 수 있도록 도와 주었다. 주위로부터 엄청난 비난을 받음에도 불구하고 이 사목 활동을 지속하던 심플리치아노 신부는, 점차 도움을 청하는 이들이 늘어나자 1879년 1월 4일 아벤티노(Aventino) 언덕의 마르모라타(Marmorata) 거리에 매춘 여성들을 위한 첫 공동체인 '성녀 마르가리타의 집' 을 마련하여 이 공동체를 코르토나의 마르가리타(S. Margarita Cortonae, 1247~1297)의 보호 아래 두었다. 그러다가 점차 규모가 커지자 같은해 12월 14일 산타 발비나(Santa Balbina)에 새로운 공동체를 마련하고 이곳으로 이전하였다. 심플리치아노 신부는 이 공동체에 고아들과 온갖 위험에 무방비 상태로 노출되어 있는 이들을 데려와 함께 생활할 수 있도록 하였는데, 공동체의 일과는 기도와 쉼, 오락과 일 등 가족적이고 규칙적인 생활들로 이루어졌으며, 개개인의 성향 · 능력 · 적성에 맞는 수예나 재봉 또는 공예 등의 기술 교육도 병행하였다.
그리고 이에 맞는 생활 규칙을 만들게 되었는데, 그런가운데 이들이 점차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사랑의 열망으로 지난날의 생활을 회개하고 새로운 마리아 막달레나로 변화해 가는 모습을 지켜본 심플리치아노 신부는 그들과 함께 생활하면서 영성적으로 이끌어 줄 수도회의 필요성을 느끼게 되었다. 그리고 그들 역시 하느님의 종으로서 함께 살기를 희망하였다. 더욱이 이들의 삶을 지켜보던 자매들 가운데 이 공동체에 합류하고자 하는 이들이 증가하게 되자, 심플리치아노 신부는 마침내 1886년 2월 21일 '성심의 프란치스코 수녀회' 를 설립하였다. 그리고 1902년에 교황 레오 13세(1878~1903)로부터 인준을 받았다.
〔성장과 세계 진출〕 성심의 프란치스코 수녀회는 이탈리아인뿐만 아니라 전 유럽인을 비롯해 온갖 서로 다른 종교를 갖고 있는 이들이 함께하였는데, 특히 가난한 소녀들을 위한 교육과 환자 간호를 담당하였다. 그 후 나폴리와 카푸아 지역으로 공동체를 확장하였고, 현재는 이탈리아의 여러 도시에서 활동하고 있다.
한편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 개최된 총회에서 전세계에 이러한 사도직을 전파하기로 결정한 수녀회에서는 1977년 11월 17일 필리핀 마닐라로 진출하여 교육 사업과 고아들을 돌보기 시작하였고, 1983년에 콜롬비아, 1985년에 인도, 1987년에 한국, 1996년 11월에 폴란드, 1997년 2월 4일에 루마니아, 그리고 1999년 8월에는 인도네시아에 진출하였다. 1999년 9월 현재 400여명의 회원들이 활동하고 있다.
[영 성] 성심의 프란치스코 수녀회는 십자가에 달려 죽기까지 인간을 사랑하신 '예수 성심' 과 그 고통에 동참하며 모성애로써 인간의 모든 마음을 끌어 안고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에 충실하였던 티없으신 '마리아 성심'과 하나 되고자 한다. 도덕적 · 윤리적으로 타락하거나 버림받고 상처 입은 어려운 환경에 처해 있는 여성 · 어린이 · 청소년 등 불쌍한 영혼들의 치유를 목적으로 하며, 프란치스코 성인의 가난 정신에 따른 기도와 하느님의 현존 안에서 단순한 형제적 삶을 살며 하느님께 완전한 봉헌과 영광을 드린다.
[한국 진출과 현황] 1989년 7월 22일 마리아 막달레나 축일에 마산교구장 장병화(張炳華, 요셉) 주교의 초청으로 한국에 진출한 성심의 프란치스코 수녀회는, 우선 아시시의 프란치스코 전교 수녀회 본원(경기도 수원시 팔달구 우만동 502-10번지)에 임시 본원을 마련하였다. 그리고 그 이듬해 현재의 본원으로 이전하였으며 그 해 9월 1일 한국인으로는 처음으로 강 마리 미카엘라 수녀가 입회하였고, 1995년 6월 22일에 첫 서원식을 거행하였다. 경기도 의정부시 송산동과 가능1동의 미군 부대에서 미사 전례와 교리 교육을 10여 년 동안 계속해 오고 있는 수녀회에서는, 1999년 3월에 마련한 경남 창원시도 계동의 부지에 노인 복지 시설을 건립하여 운영할 계획이다. 1999년 9월 현재 종신 서원자 1명, 유기 서원자 3명, 청원자 3명, 지원자 2명 등 총 9명의 회원이 있다.
※ 참고문헌 《한국 천주교회 연감》,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1994. 〔金成喜〕
성심의 프란치스코 수녀회
聖心 - 修女會
〔이〕Suore Francescane dei Sacri Cuori (S.F.S.C.) · 〔영〕Franciscan Sisters of the Sacred Hear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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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심의 프란치스코 수녀회 초창기 회원들(왼쪽)과 당시의 기술 교육 모습.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