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월

聖月

[라]mensis sanctus · [영]holy month

글자 크기
7
일 년 중 어느 달을 예수 그리스도와 성모 마리아 또는 성인께 봉헌하여 특별한 전구(轉求)와 은혜를 청하고 그 모범을 따르도록 교회가 지정한 달. 성월은 처음부터 교회의 축일과 연관되어 설정되었는데, 각 성월에 신자들은 특별한 지향을 가지고 기도하며 공식적인 신심 행사를 갖기도 한다. 또 각 성월마다 매일매일 읽고 묵상하며 기도하고 덕행을 실천하도록 지도하는 성월 책이 출판되기도 하였으며, 《가톨릭 기도서》에는 각 성월에 바치도록 교회가 지정한 성월 기도가 수록되어 있다.
〔개념과 종류〕 교회 안에는 전통적인 여러 형태의 신심이 남아 있는데, 각 달을 특별한 신심으로 봉헌하는 성월 신심도 그중 하나이다. 성월 신심은 발생 초기부터 공식적인 전례가 아니라 비전례적인 대중 신심으로 정착한 전통적인 신심 행위였으며, 특히 신자들은 성월 중에서도 예수 부활 대축일이나 예수 성탄 대축일이 있는 달은 더욱 특별한 의미를 지닌 달로 간주하여 봉헌하였다.
일반적으로 교회에서 지내는 성월은 다음과 같다. 1월 예수 성명(聖名) 성월, 2월 주의 수난 성월, 3월 성 요셉 성월, 4월 예수의 부활 성월, 5월 성모 성월, 6월 예수 성심 성월, 7월 주의 성혈 성월, 8월 성모 성심 성월, 9월 거룩한 십자가 혹은 순교자들의 여왕이신 성모 마리아 성월, 10월 로사리오 성월, 11월 위령 성월, 12월 원죄 없이 잉태되신 성모 마리아 성월등이다. 또한 이러한 신심을 기념하는 것 외에도 다른 의미로 기념하기도 하는데, 즉 1월 예수의 거룩한 유년 성월, 3월 성가정 성월, 4월 성체성사 성월, 10월 거룩한 천사들의 성월 등이 그것이다. 이렇듯 여러 가지 성월 신심이 지역에 따라 다르게 봉헌되고 있다. 또 교회는 각 성월마다 그 기간 동안에 특별히 지정된 기도를 할 때 대사를 받을 수 있도록 승인했는데, 이러한 내용은 역대 교황들이 허가한 대사 내용과 함께 <대사 편람》(Enchindion Indulgentiarum, 1950)에 수록되었다. 한편 한국 천주교회에서는 성 요셉 성월(3월), 성모 성월(5월), 예수 성심 성월(6월), 순교자 성월(9월), 로사리오 성월(10월), 위령 성월(11월)을 지내고 있다.
〔기원과 교회 인가 및 대사〕 ① 교황 레오 13세(1878~1903)는 1월에 '예수 성명 성월' 을 거행하는 것에 대하여 대사를 선포하였다. ② 1840년부터 거행되기 시작한 '성 요셉 성월' 은 3월 19일 성 요셉 축일에서 비롯되었으며, 1850년에 최초로 요셉 성월 신심서가 발행되어 1855년 6월 12일에 교황청의 정식 인가를 받았다. 또 교황 비오 9세(1846~1878)는 1870년에 대사 선포와 함께 성 요셉을 가톨릭 교회의 수호 성인으로 선포하였고, 교황 레오 13세는 회칙 <괌괌 플루리에스>(Quamquam pluries, 1889. 8. 15)를 통하여 교회가 성 요셉을 공경하는 이유를 분명하게 설명했다. 교황 비오 11 (1922~1939)는 대사를 선포하면서 성 요셉이 하느님의 구원 사업을 위해 받은 특별한 사명을 일생 동안 충실히 수행한 분이므로 공경받아야 한다고 하였다. 한국 천주교회도 1841년 이전까지는 모(母) 교회 격인 북경교구의 주보인 성 요셉을 초기 교회 때부터 공경해 왔다. ③ 5월 '성모 성월' 은 가장 먼저 생겨난 성월이다. 5월을 성모의 달로 봉헌하는 관습은 13세기 말부터 동로마 교회에서 시작되었으며, 서방 교회에서는 로마에서 먼저 봉헌되기 시작하여 예수회 회원들에 의해 점차 교황청 주변 국가들로 확산되었다. 특히 프랑스에서는 여러 교구와 본당에서 성모의 달을 거행하는 신심이 확산되었다. 한국 천주교회 역시 초창기부터 지금까지 성모 마리아와 밀접하게 관련되어 왔고, 그에 따라 성모 마리아를 공경하는 신심서인 《성모 성월》이 한글로 번역되어 널리 유포되기도 하였다. 성모 성월이 교회 내에서 공식적으로 인가가 된 것은 1815년 11월 21일 교황 비오 7세(1800~ 1823)에의해서였으며, 교황 비오 12세(1939~1958)는 대사를 선포하였다.
④ 프랑스의 우아조(Oiseaux) 수도원에서 신심 행사로 지내던 관례에서 시작된 6월 '예수 성심 성월' 은 1873년 5월 8일 교황 비오 9세에 의하여 대사 반포와 동시에 인가되었다. 그리고 교황 레오 13세와 비오 10세(1903~1914), 그리고 비오 11세에 의해 각각 대사가 선포되었다. ⑤ 7월 '주의 성혈 성월' 에 대사를 반포한 교황은 비오 7세, 비오 11세, 비오 12세 등이다. ⑥ 8월 '성모 성심 성월' 에 대사를 반포한 교황은 베네딕도 14세(1740~1758)와 비오 11세이다. ⑦ 9월 '순교자들의 여왕이신 성모 마리아 성월' 에는 교황 레오 13세와 비오 11세가 각각 대사를 반포하였다. 한국 천주교회에서는 9월을 '순교자 성월' 로 지내고 있는데, 이는 한국 성인 103위 중에서 9월에 순교한 성인이 가장 많기 때문이다. 한국 천주교회는 일찍이 9월을 '한국 순교 복자 성월' 로 정하여 순교 복자들을 공경하여 왔으나, 103위 복자 전원이 1984년 5월 6일에 시성됨에 따라 한국 천주교 주교 회의 상임위원회에서는 그 해 6월 28일에 열린 월례 회의에서 명칭을 '순교자 성월' 로 바꾸었다. 또한 한국 성인 공경에 관한 전례위원회 건의에 대한 주교단의 서면 투표 결과를 바탕으로 6월 28일 주교 회의 상임위원회의 논의를 거쳐 결정된 <한국 성인 공경에 관한 지침>이 그 해 7월 2일 발표되었다. 이 발표문 중에는 9월을 순교자
성월로 지내며, 한국 성인 성녀들을 공경하는 동시에 아직 시복 시성되지 못한 순교자들의 시복 시성을 위하여 기도하도록 하는 지침이 포함되었다.
⑧ 1800년대부터 봉헌되기 시작한 10월 '로사리오 성월' 은 개인과 가정의 성화, 인류 구원과 세계 평화를 위하여 묵주 기도의 신비를 묵상하는 데 초점이 맞춰져있다. 이 성월은 1883년 9월 1일에 발표된 교황 레오 13세의 회칙 <수프레미 아포스톨라투스>(Supremi Apos-tolatus)를 통하여 공식적으로 설정되었으며, 교황 레오 13세와 비오 11세는 매일 또는 정기적으로 묵주 기도를 하면 대사를 받을 수 있다고 발표하였다. ⑨ 609년에 교 황 그레고리오 3세(731~741)가 베드로 대성당의 한 부속 경당을 모든 성인에게 봉헌한 것이 매년 11월 1일을 모든 성인의 날 대축일' 로 기념하는 계기가 되었다. 그리고 998년에 프랑스 클뤼니 수도원 원장 오딜로(Odilo, 961/962~1049)가 11월 2일을 '위령의 날' 로 정한 뒤부터 11월에 연옥 영혼의 구원을 위해 기도하는 것이 보편화되었으며, 교황 비오 9세, 레오 13세, 비오 11세가 각각 대사를 반포하였다. ⑩ 12월 '원죄 없이 잉태되신 성모 마리아 성월' 을 위해 교황 비오 10세와 비오 11세가 대사를 반포하였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의 성월〕 <전례 헌장>(Sacrosanctum Concilium) 108항에서는 "신자들의 마음은 일 년을 통하여, 특히 구원의 신비를 거행하는 주의 축일들을 지향하여야 한다. 그와 동시에 시계(시절) 고유 축일들은 성인들의 축제에 앞서 합당한 자리를 차지함으로써 구원 신비의 완전한 주기가 마땅히 경축되도록 해야한다" 라고 하였다. 이처럼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전례력이 신자들의 신앙 생활에서 온전히 회복되고 전례력을 중심으로 신앙 생활이 계속되고 이어지기를 권장하고 있다. 교회는 성월을 중심으로 이루어지는 신심 행사를 보존하고 지키도록 규정하거나 선포하지는 않았지만, 제2차 바티칸 공의회 문헌의 취지와 의도 안에서 성월이 전례력 즉 교회가 거행하는 축일에 맞추어 설정하여 지내도록 권장하고 있다. → 로사리오 성월 ; 성모 성월 ; 순교자 성월 ; 예수 성심 성월 ; 요셉 성월 ; 위령 성월)
※ 참고문헌  G. Mathon, 9, pp. 464~465/ P.F. Mulhern, 《NCE》 9, p. 1094/ Jovian P. Lang, O.F.M., 《DL》, pp. 436~437/ 조규만, 《마리아, 은총의 어머니-마리아 교의와 공경의 역사》, 가톨릭대학교 출판부, 1998, pp. 440~443/ 《위령 성월》, 한국교회사연구소, 1998, pp. 4~51 《한국 천주교 주교 회의 회보》 22호(1984. 8. 1), 한국 천주교중앙협의회, pp. 14~15. [梁蕙貞]