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포교 성 베네딕도 수녀회에서 운영하는 중등 교육 기관으로, 경북 김천시 평화동(平和洞) 406-6번지 소재. 1907년에 김성학(金聖學, 알렉시오) 신부가 세운 성의학교(聖義學校)가 그 모체이며, "크리스천 윤리에 바탕을 둔 인간 육성"을 설립 이념으로 한다. 교훈은 "어느 때든지, 어디서든지 양심" . 〔역대 교장〕 성의학교 : 초대 김성학 신부(1907~1911.5), 2대 김문옥(金紋玉, 요셉) 신부(1911.6~1922.9), 3대 이약슬(李若瑟, 요셉) 신부(1922. 10~1929.5), 4대 김승연(金承淵, 아우구스티노) 신부(1929. 5~1945. 5), 5대 최재선(崔再善, 요한) 신부(1945.5~1949.3). 성의여자중 · 종합고등학교 : 초대 최재선 신부(1949. 3~1955. 9), 2대 김수환(金壽煥, 스테파노) 신부(1955. 10~1956. 3), 3대 김성환(金成煥, 빅토리오) 신부(1956. 3~1970. 2), 4대 김순복(金順福, 베다) 수녀(1970. 3~1983.2 5대 김효희(金曉姬, 마리아 토마스) 수녀( 1983. 3~1986. 6), 6대 김기연(金淇妍, 아빌라) 수녀(1986. 7~1989. 2) 7대 김순복 수녀(1989. 3~1998. 2), 8대 황청자(黃淸子, 안젤리카) 수녀(1998. 3~현재) .
〔성의학교 시대와 중등 교육 기관으로의 발전〕 1901년에 김천(金泉, 현 황금동) 본당으로 부임한 김성학 신부는 청소년들 특히 신자 자녀들에게 배움의 기회를 주고 나아가 선교의 효과를 얻기 위하여, 1907년 3월 25일 성당 구내에 초등 교육 기관인 성의학교(聖義學校, 남자부)를 개설하였다. 설립 당시에는 2명의 교사가 한문 · 일어 · 산술을 가르쳤으며, 1911년 2월에는 신자 여학생들의 교육을 위해 여자부를 개설하였다. 이어 1922년경에는 교사 3명에 전교생이 120명으로 늘었으며, 1934년에는 2층 규모의 교사(校舍)를 신축하였는데, 당시의 교과목은 공립 보통 학교의 모든 과목과 매일 1시간씩 가르치는 천주교 교리였다.
1945년 5월에 5대 교장으로 취임한 최재선 신부는 김천 지역에 중등 학교 과정이 필요함을 절감하고 1947년 4월 성의학교를 발전적으로 폐쇄하면서, 중등 과정의 '성의학원' (聖義學院)을 개설하였다. 나아가 성의학원을 정식 여자 중학교로 승격시키기 위하여 노력한 결과, 1949년 3월에는 '천주교 대구교구 유지 재단 소속으로 '성의여자초급중학교 (聖義女子初級中學校)의 설립 인가를 받았다. 그러나 정식 중학교로 설립은 되었지만 대구교구 유지 재단에서는 명의만 빌려 주었을 뿐, 학교 운영에 필요한 일체의 재정은 학교에서 떠맡아야만 했다. 여기에 학생수의 부족 · 여성 교육에 대한 열의 부족 · 지방민들의 기존 학교 선호 경향은 성의여자초급중학교의 운영을 어렵게 만들었다. 이에 학교 당국에서는 남학교를 병설하기로 결정하고, 1950년 1월 학교 이름을 '성의중학교 (남녀부 병설)로 바꾸면서 김천시 지좌동(智佐洞) 679-2번지에 남학교를 설립했다. 그러나 그 해 6월에 한국 전쟁이 일어나고 말아 학교는 휴교하지 않으면 안되었고, 전쟁 중에는 교사 내부가 전소되기도 하였다.
〔성의여자중 · 종합고등학교 시대〕 휴전 회담이 시작되면서 후방 지역은 전쟁의 위협으로부터 벗어났고, 또 이러한 가운데 교육 인구가 증가하면서 지방민들의 자녀 교육에 대한 인식이 점차 높아지자 최재선 신부는 고등학교를 설립할 계획을 하게 되었다. 그리고 1952년 3월에 남자부 6학급, 여자부 3학급의 '성의상업고등학교'(聖義商業高等學校) 설립 인가를 받아 중학교와 마찬가지로 남자부는 지좌동에서 여자부는 황금동에서 교육하였다. 고등학교 병설에 이어 1953년에 중학교의 학급수가 9학급으로 증설되자 학교에서는 같은 해 6월까지 성당 서쪽에 2개의 교실과 성당 남쪽에 3개의 교실을 신축 하였고, 전쟁으로 불탄 본관은 1954년 가을에 2층 5개 교실로 수리 · 개축하였다. 그 결과 본관에서는 고등학생이, 나머지 두 동(棟)에서는 중학생들이 수업을 받게 되었다.
그러나 학교 당국에서는 점차 가중되는 재정적인 어려움을 해결하기 위하여 1956년에 학교 운영을 베네딕도 수도회로 이양하지 않으면 안되었다. 이후 같은 해 9월 성당 내의 마리아 유치원이 이전함에 따라 유치원 건물을 인수하여 사용하였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학생수의 증가에 비하여 학교 시설은 여전히 부족한 상태였으므로, 1960년에는 평화동 본당 주임 파비아노 담(Fabianus Damm, 卓世榮) 신부의 도움으로 현재의 위치에 학교 부지를 마련하였다. 이듬해 3월 기공식을 거행한 뒤 10월에 신축 교사를 완공하였으며, 12월에는 학교를 황금동에서 평화동으로 이전함과 동시에 중학교의 학급수를 12학급으로 증설하였다. 그리고 1962년 12월에는 고등학교의 학급수를 6학급으로 증설하였으며, 1965년 10월에는 특별 교실(무용실 · 음악실 · 강당)을 건립하였다.
1966년 3월 대구 포교 성 베네딕도 수녀회의 수녀들이 교사로 부임하면서 통합 운영되어 왔던 남자부와 여자부의 분리 운영이 모색되었다. 그 결과 1969년 10월 성의여자중학교에 이어 11월에 성의여자상업고등학교가 설립되었고, 대구 포교 성 베네딕도 수녀회에서 학교 운영을 맡게 되었다.
남학교와 분리된 후, 첫 교장으로 부임한 김순복 수녀는 학교의 발전을 위해서는 학교 시설을 확충해야 한다는 신념 아래 1971년 5월에 지하 1층 지상 6층 규모의 고등학교 본관을 준공하였다. 그 사이 1970년 12월에는 고등학교의 학급수가 9학급으로 늘어났고, 1972년에는 12학급으로, 이듬해에는 15학급으로 증설되었으며, 그 해 7월에는 인근의 가옥을 매입하여 운동장 확장 공사를 완료하였다. 또 1974년에는 5층의 특별 교실을 증축함과 동시에 학급수를 18학급으로 증설하였으며, 이듬해에는 중학교의 학급수를 1학급 감축하였고, 1977년 12월에는 개교 70년 기념관인 3층 규모의 백합관(대강당 및 도서관, 629평)을 완공하였다. 이어 1978년 10월에는 고등학교의 학급수를 21학급으로, 이듬해 1월에는 24학급으로 증설하였으며, 9월에는 학교 이름을 '성의여자종합고등학교' 로 바꾸면서 상과 12학급, 보통과 12학급으로 개편하였다.
1980년대 들어서도 성의여자중 · 종합고등학교의 시설 확장은 계속되어 1980년에는 장미관(가정관)을 개관 하였고, 이듬해 12월에는 상업 교육관을 준공하였으며, 1985년 12월에는 구관을 4층으로 증축했다. 또 1987년에는 성학관(자취사)을 준공하였고, 1992년 2월에는 중학교의 학급수를 18학급으로 증설했다. 나아가 1995년 9월에는 전문화 및 특성화를 추구하는 시대적인 흐름에 따라 고등학교의 상과를 사무 자동화과로 개편하였고, 1997년 1월에는 중학교의 학급수를 15학급으로 감축하였으며, 이듬해 12월에는 고등학교에 멀티 미디어실과 종합 정보 시스템을 설치하였다. 아울러 교풍의 쇄 신에도 힘써 1999학년도부터는 매주 토요일을 책가방 없는 날로 정하고, 인성 교육 · 특별 활동 · 독서 토론· 초청 강연 등을 실시함으로써 학생들의 적성과 창의력을 계발하는 데 노력하였다.
1999년 현재 중학교는 총 15학급에 642명이, 고등학교는 총 24학급에 1,062명이 재학하고 있으며, 졸업생은 중학교가 51회에 12,465명을, 고등학교가 45회에 12,740명을 배출하였다. (→ 성의중 종합고등학교 ; 포교 성 베네딕도 수녀회)
※ 참고문헌 성의 70년사 편찬위원회 편, 《성의 70년사》, 성의 여자중 . 상업고등학교, 1978. 〔方相根〕
성의여자중 · 종합고등학교
聖義女子中綜合高等學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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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권

성의여자중 · 종합고등학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