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51년 7월 16일 가르멜 수도회의 시몬 스톡(Simon Stock, 1165?~1265) 성인에게 나타난 성모 발현에서 유래한 신심회. 신자들이 자신을 성모의 종으로 바치고 그의 특별한 보호를 구하고자 하는 데 그 목적이 있다.
〔유래 및 내용〕 성의(聖衣)는 원래 각 수도회의 고유한 복장으로, 평신도들은 이 옷을 입음으로써 어떤 수도회와 통공하는 표로 삼았다. 처음에 이들은 수도회 복장을 그대로 입었지만, 점차 일반 복장 안에 입을 수 있도록 작게 만들어진 성의를 입게 되었다. 성의가 신앙의 대상이 된 것은 가르멜 수도회에서 비롯되었다. 즉 1251년 7월 16일 가르멜 수도회의 스톡 성인은 수도회를 위하여 마리아에게 간절히 기도하였는데, 이때 성모는 성의를 가지고 발현하여 "이것은 너와 가르멜 회원이 얻게될 특권의 표가 될 것이니, 이것을 메고 죽은 자는 영원한 벌을 면할 것이다" 라고 하였다. 이후 모든 가르멜 수도자들은 성의를 입어 무수한 신은을 얻었으며, 역대 교황들도 신자들에게 성의를 멜 것을 권장하면서 많은 은사를 반포하였다. 그 결과 평신도들의 신심회인 성의회가 자연스럽게 조직될 수 있었다.
성의회에 입회하기 위해서는 먼저 신부에게 성의를 축성하여 입고, 성의회 명부에 이름을 올리면 된다. 가입시에는 반드시 성의가 필요하지만 그 후에는 사제가 축성한 성의패로 대체할 수 있는데, 성의패 한 쪽은 예수 성심상이고 다른 한 쪽은 성모상이 부조되어 있다. 성의회 회원에게 부여된 가장 큰 특은은 '안전한 구령의 특은' (지옥 벌에서의 면제)과 '토요일 특은' 이다. 전자는 성모 마리아의 말씀대로 성의를 메고 죽는 자는 영원한 지옥 불을 면하게 되는 특은으로, 교황 베네딕도 14세(1740~1758)에 의해 인증되었다. 그리고 후자는 연옥으로부터의 조속한 구원을 의미하는데, 이 특은을 얻기 위해서는 성의를 메는 것 외에 매일 성모 소성무 일도(聖母小聖務日禱)를 바쳐야 했다. 다만 글을 모르는 사람은 교회에서 정한 대 · 소재(大小齋)와 수요일과 토요일에 소재(小齋)를 지킴으로써 이를 대신할 수 있었고, 또 고해 신부의 관면을 통하여 날마다 천주경과 성모경을 7차례 바치는 것으로 바꿀 수 있었다. 특히 '토요일특은' 은 성모 마리아가 친히 교황 요한 22세에게 발현하여 허락한 것으로, 교황 요한 22세는 1322년 3월 3일 사바티나 대칙서(Sabbatina bullla)를 통하여 이를 공포하였고, 16세기 이후에는 많은 교황들이 이를 공인하였다.
〔한국의 성의회〕 한국 교회에 있어 성의회에 대한 최초의 기록은 《긔히일기》에 나타나 있다. 여기에는 1839년 기해박해(己亥迫害) 때 순교한 남명혁(南明赫, 다미아노)이 "저 세상에서 자네 이름을 무어라고 부를 건가"라는 친구의 물음에 "천주를 위하여 순교한 성의회의 남다미아노라고 불러 주면 원이 없겠네"라고 대답한 기록이 있다. 따라서 성의회는 이미 이 시기에 한국에 소개되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특히 성의회의 입회 규정이 축성된 성의를 메고 성의회 명부에 이름을 올리는 것이며, 이의 주체가 바로 사제라는 점에서 유 파치피코 신부 · 모방(Maubant, 羅伯多祿) 신부 · 샤스탕(Chastan, 鄭牙各伯) 신부가 활동하던 1834~1837년 사이에 성의회가 소개되어 설립된 것으로 추정된다. 이후 남명혁 등에 의하여 확산된 성의회는 기해박해를 계기로 타격을 입었으나, 1846년에 다블뤼(Daveluy, 安敦伊) 신부에 의해 재정비되면서 당시 신자들의 신심 활동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고 생각된다.
《괴해일괴》 이후, 성의회를 소개한 책자는 1876년에 필사된 《은사약설》(恩赦略說)을 들 수 있다. 여기에는 성의회의 설립 · 목적 · 규조(規條) · 은사 등이 기록되어 있는데, 이 시기에 이러한 내용이 소개되었다는 것은 성의회를 신자들에게 알림으로써 이들의 가입을 유도하고, 이미 성의회에 가입한 사람들에게는 성의회의 내용을 보다 정확하게 알려 주려는 데 목적이 있었다. 또 1886년에 필사된 《미과수원》(美果收園)에도 성의회가 소개되어 있고, 이듬해에 간행된 《한국 교회 지도서》(Coutumier de la Mission de Corée)에는 조선 전교를 위해 승인된 신심회 중 하나로 성의회를 들고 있다. 한국 교회의 법과 규정을 수록한 이 지도서에 성의회가 공식적인 신심 단체로 언급된 것은, 성의회가 설립 이래 꾸준히 발전해 온 결과일 뿐만 아니라 아울러 이를 통해 당시 활발하게 전개되고 있던 한국 교회의 성모 신심도 엿볼 수 있다. 이후 성의회는 《대구교구 지도서》(Directorium Missionis Taikou, 1914), 《서울교구 지도서》(Directorium Missionis de Seoul, 1923), <회장 직분》(1923) 《한국 천주교 공용 지도서》(Directorium Commune Missionum Coreae, 1932, 1958) 등 에도 소개되었다. 이러한 사실은 성의회가 한국 교회의 대표적인 신심 단체 중의 하나로 성장해 가고 있었음을 말해 주지만, 현재 구체적인 활동 상황은 알 수 없고 단지 몇몇 본당사(本堂史)에서 성의회의 존재를 확인할 수 있을 따름이다. 즉 부산의 범일 본당에는 1950년을 전
후한 시기에 성의회가 있었다가 유사한 단체들로 통합 혹은 해체되었다고 하며, 언양 본당에는 1942년 5월에 설립되었다가 1966년에 해체되었다고 한다.
※ 참고문헌 <달레 교회사》 《괴해일거》 한국교회사연구소 소장, 《恩赦說》 한국교회사연구소 소장, 《美果收園》, 1886년 본/ 《경향잡지》, 334호(1915. 10. 1), pp. 445~447 ; 921호(1940. 4), pp. 105~111/Directorium Missiomis de Seoul, Hong Kong, 1923/ Le Gendre Mutel 監 準, <회장 직분》, 聖書活版所, 1923/ Directorium Commume Missiomm Coreae, Hong Kong, 1932/ <성의회>, 《교회와 역사》 266호(1997. 7), 한국교회사연구소, pp. 12~15. [方相根]
성의회
聖衣會
[라]Confraternitas Sacri Scapularis B.M.V. de Monte Carmelo
글자 크기
7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