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인전

聖人傳

[라]acta sanctorum · [영]acts of sai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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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인전은 신앙 교육을 시키려는 의도를 갖고 전기 형태로 쓴 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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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인전은 신앙 교육을 시키려는 의도를 갖고 전기 형태로 쓴 글이다.

성인들에 관한 작품. 신자들에게 신앙 교육을 시키려는 의도를 갖고 전기(傳記) 형태로 쓴 글이다.
예수를 그리스도로 증언하다가 순교하였거나 주교·수도자 · 평신도로서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충실히 실천하였던 성인들을 찬미하고 공경하는 것은 마땅하다. 그러므로 성인전의 목적은 이러한 사실들을 기록하고 성인들을 찬미하고 공경하며, 그들의 모범적인 삶을 본받음으로써 그리스도와 일치를 이루게 하려는 데 있는 것이다.
〔문학 유형〕 초대 교회의 성인전은 크게 세 가지 유형으로 구분된다. 우선 '순교 전기' 에서 중요하게 여겨지는 것은 지방 총독 앞에서 이루어진 재판 절차에 관한 기록이라는 점이다. 반면에 '순교록과 수난기' 는 믿을 만한 목격자 또는 순교에 관한 소식에 정통한 당시 사람들의 저술로, 그리스도교 저자들이 종종 신학적인 의미를 부여하면서 순교자들의 마지막 생애와 죽음에 관하여 서술하였다. 이러한 두 유형에는 역사적인 요소를 일부 또는 완전히 개작한 행전들(폰시우스의 《치프리아노의 행전》과 팔레스티나의 순교자들에 관한 에우세비오의 작품)과 믿을 만한 기록에 근거하지 않는 역사적인 소설인 행전들(《체칠리아 행전》, 《펠리치타와 일곱 자녀들 행전》)이 있다. 4세기에 생긴 '성인 전기' 는 성인전 문헌의 효시로 역사적인 상황 외에도 신앙에 관한 많은 소재들을 포함하고 있다.
순교 전기 : 순교 전기는 법원 서기의 기록에 의존한다. 이 기록은 교회의 전승에만 보존되어 있듯이 매우 희귀하며, 후대 그리스도교의 편집자가 기록을 보완하거나 수정한 경우도 있다.
최초의 순교 전기인 《성 유스티노와 동료 순교자들의 행전》(Acta SS. Iustimi et sociorum)과 마찬가지로 공식적인 기록에 근거한 순교 전기들의 전형적인 내용은 다음과 같다. 날짜 표기 · 재판관과 피고인의 이름 · 고발 내용으로 시작되어 처형에 관한 짧은 기록으로 끝나는 순교 전기는 법정 기록의 전형적인 모습을 제시하고 있다. 이러한 순교 전기에서 로마의 법률은 불법 또는 불공정한 것으로 표현되는 반면에 피고인들은 성인 또는 거룩한 순교자로 묘사되어 있다. 재판의 절차는 매우 간단하다. 지방 총독은 그리스도교인들의 진술로 범죄를 증명하려고 시도하거나, 황제에게 기원 제물(supplicatio)을 바칠 것을 명하거나 황제의 수호신에게 맹세시킴으로써 배교할 것을 권유하기도 하고, 부 · 명예 · 관직 등을 약속하거나 고문 또는 죽음으로 위협하면서 그들을 회유시키려고 노력하였다. 하지만 이러한 노력은 보통 거의 성과를 거두지 못하였다. 따라서 피고인들의 범죄 행위가 증명되지 않으면, 마지막으로 "당신은 그리스도교인입니까?" 라는 질문에 피고인들의 그리스도교인이라는 신앙 고백과 사형 선고로 재판이 끝난다.
순교록과 수난기 : 그리스도교 저자들은 순교 전기의 구성 요소들을 더 확대시킨 이러한 유형의 작품으로 사건 전체를 서술하였다. 체포 상황, 감옥에서의 상황, 인물들의 특징, 고문과 그때 일어난 기적들에 관한 묘사에 저자는 신학적 · 영성적인 고찰을 첨가하였으며, 성서를 인용하였고, 또 무엇보다도 후에 순교할 신자들의 교육과 신심을 강화하기 위하여 전승의 목적을 명백히 하였다.
가장 오래된 순교록은 《폴리카르포의 순교록》(Matyty-rium Polycarpi, 156)이다. 2~3세기의 순교자들에 관한 기록들과 마찬가지로 폴리카르포의 순교에 관한 이 글도 지방 교회를 위해 쓰여진 것이다. 순교자 공경은 본래 지역 교회와 관련되어 있었지만 점차 순교자들의 명성과 공경은 다른 지역 교회로 유포되었다. 로마 · 스미르나.카르타고 · 리용 · 판노니아에서는 각각 그 지역의 순교자들에 관한 순교록들이 만들어졌는데, 시간이 지남에따라 그리스도교 공동의 유산이 되었다. 그러나 초대 교회의 이러한 문헌들은 서로 다른 시대와 장소에서 쓰여졌기 때문에 문체와 특성에 있어 결코 일치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순교록을 통하여 특정한 순교자들의 개인적인 특성뿐만 아니라 때로는 박해자들의 개인적인 특성도 알수 있게 되는 것이다.
교회는 첫 3세기 동안 순교자들만 성인으로 공경하였다. 3세기 초에 쓰여진 《페르페투아와 펠리치타의 수난기》(Passio SS. Perpetuae et Felicitatis)의 서론과 결론에서 알수 있듯이 순교자들에 관한 이러한 작품들은 성인들의 기념일 미사에서 독서로 낭독되었다. 그리고 이러한 관습은 제3차 카르타고 교회 회의(397)에서 권고되었으며, 로마가 이 관습을 받아들인 것은 몇 세기가 지난 후였다. 성인 전기 : 성인전에서 매우 중요한 발전은 순교 개념의 확대였다. 4세기 들어 성인전이 변화한 것은 순교 개념이 2~3세기에 수난 내지 그리스도교 신자로서의 모범적인 삶의 두 가지 형태로 넓어지면서 이미 신학적으로 준비되었던 것이다. 박해 시기에 순교하지는 않았지만 감옥에 갇히거나 고문을 당함으로써 그리스도를 증언한 고백자들이 실제적으로 순교한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존경받았다는 사실을 《비엔과 리용 공동체의 편지》(Epistula ecclesiarum Viennensis et Lugdunensis, 177)를 통하
여 추론할 수 있다(에우세비오, 《교회사》 V. 2 이하). 알렉산드리아의 글레멘스(150?~215?)는 신앙 증거의 다른 방법을 소개하였는데, 즉 복음 정신에 따라 그리스도를 철저히 따르기 위하여 매일 스스로 고행하는 금욕가들의 도덕적 완전함, 수도 형태의 삶으로 가정과 부의 포기 (《양탄자》 IV, 3 이하) 등이었다. 이러한 흐름은 수도자·주교 · 성직자들의 뛰어난 성덕이 신자들의 신앙과 경건을 위해 육체적인 순교에 뒤지지 않는다는 확신을 주었으며, 아타나시오(Athanasius, 295~373)의 《안토니오의 생애》(Vita Anthonii)와 술피치우스 세베루스(Supipicius Seve-rus, 360~430?)의 《마르티노의 생애》(Vita Martini)와 같은 유명한 전기가 나오는 계기가 되었다. 성인 전기는 4세기 중엽 발생 시기 때부터 전성기에 이르렀으며 현재까지도 계속되고 있다.
4세기부터 나타나기 시작한 성인 전기에는 남녀 금욕가들이 첫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이러한 작품으로는 중세 모든 지방의 수도원에서 많이 읽히고 필사된 아타나시오의 작품인 《안토니오의 생애》, 예로니모(Hieronymus, 341?~420)의 작품인 데베(Thebes)의 은수자 성 바오로(229~342)의 생애에 관한 이야기 및 성 말코(Malchus, 4세기경)와 할라리온(Hilarion, 291~371)의 생애에 관한 이야기, 니사의 그레고리오(335?-395?)가 저술한 《마크리나의 생애》(Vita Macrinae)와 (수도자들의 역사》, 이집트 수도자들의 언행들을 기록한 팔라디오(Palladius, 364~430?)의 《라우시아카 역사》(Historia Lausiaca), 제론시오(Gerontius)의 《멜라니아의 생애》(Vita S. Melaniae Iunirois), 시리아 지방 수도자들의 일대기 및 교회의 역사를 다룬
테오도레토(Theodoretus Cyrenensis, 393~460)의 <종교사>(Historia Religionis) 등이 있다.
그 후 오래지 않아 성인 공경은 주교들에게로 확대되었다. 왜냐하면 주교들의 일부는 금욕가였으며, 일부 주교들은 순교자들에 대한 이전의 존경을 이어받으면서 순교에 버금가는 신앙을 고백하고 증언하였기 때문이다. 주교들의 생애에 관한 작품 중에서 나치안츠의 그레고리오(329/330~389/30)가 저술한 《아타나시오에 대한 찬가》, 술피치우스 세베루스의 《마르티노의 생애》, 팔라디오의 성 요한 그리소스토모의 생애에 관한 《대화》(Dialo-gus), 바울리노(Paulimus, 4~5세기)의 《암브로시오의 생애》(Vita Ambrosii), 포시디오(Posidius, 370~440)의 《아우구스티노의 생애》(Vita Augustin)))가 주요 작품으로 꼽힌다. 마지막 두 작품은 주인공인 주교들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제자들의 회상록이다. 이러한 전기의 유형은 중세에도 자주 사용되었는데, 그 문학적인 선구자들로는 술피치우스 세베루스, 바울리노, 포시디오를 꼽는다.
성인전과 성인 공경 : 성인 전기는 많은 점에서 고대 영웅 숭배의 이교적인 형태에서 영향을 받았지만, 결코 그것을 그대로 넘겨받거나 동화되지 않고 그리스도교 특유의 내용과 형식으로 발전시켰다. 모든 생애 이야기 중에서 가장 대중적인 요소는 중간에 자주 언급되는 기적 이야기이다. 현대의 많은 독자들이 쉽게 받아들일 수 없는 기적들은 주로 성인들의 무덤가에서, 드물게는 성인이 살아 있을 때에 병자들이 치유되는 형태로 나타난다. 이전의 연구는 이러한 이야기들을 무지한 사람들의 욕구를 표징과 기적으로 충족시키려는 미신적인 요소로 보았다. 하지만 최근의 연구에 의하면 초대 후기 사회에서 결코 무지한 사람들뿐만 아니라 교양이 있고 고등 교육을 받은 사람들도 기적을 기대하고 환영하였다는 사실이 증명되었다. 기적은 종교의 중심적인 부분으로, 신적인 능력과 신적인 행위의 불가결한 표징으로 간주되었는데 이는 그리스도교인뿐만 아니라 이교인들에게 있어서도 마찬가지였다. 따라서 성인 공경에 남다른 애정을 가졌던 암브로시오(339~397), 놀라의 바울리노(730~802) 예로니모, 아우구스티노, 베난시오 포르투나토(Venantius For-tunatus, 530~610)는 성인들이 그리스도를 자신의 삶을 통하여 모범적으로 증언하였듯이, 성인들의 기적들에서 하느님의 지속적인 현존을 보았다. 즉 사람들은 기적에서 하느님 능력의 도구인 성인들의 현존과 능력이 계시된다고 생각하였다. 이러한 능력은 모든 종류의 육체적인 치료와 마찬가지로 구마식에서도 나타난다. 하지만 이러한 기적 이야기는 후대의 성인전에서 어떤 역사적인 근거 없이 널리 확산되었다.
[변모와 발전] 중세의 대중적인 발전 및 특징 : 그리스 도교의 첫 5세기 동안은 성인전의 역사와 마찬가지로 성인 공경의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시기였고, 신빙성 있는 이야기에서 순전히 꾸며진 이야기에 이르기까지 모든 유형이 이 시기에 처음으로 나타났다. 중세의 성인전 유형은 초대 교회의 경우와 같거나 그 유형에서 유래된 것이었다. 초대 후기와 중세 초기의 몇 세기 동안 그리스도교적인 것을 보전하고 더욱 깊이 심화시켜 전해 주는 데에 있어서 중심적인 역할을 한 것은 수도원이었다. 이 당시의 성인전은 물려받은 신앙과 사상을 새롭게 지속적으로 증언하였는데, 초대 후기와 중세 초기를 연결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인물은 투르의 그레고리오(538-594)와 교황 그레고리오 1세(590~604)였다 투르의 그레고리오가 쓴 《기적에 관한 책》(Libri Miraculorum) 전 8권 중에서 제7권 《교부들의 생애》(De vita Patrum)는 갈리아 지방 특히 그가 살았던 지역인 아르베르나와 투르 근방의 성인 23명에 관한 내용이고, 제8권 《고백자들의 영광 속에서》(In gloria confessorum)는 갈리아 지방의 성인들에 관한 것이다. 그리고 교황 그레고리오 1세의 《이탈리아 교부들의 기적에 관한 대화》(Dialogi de miraculis patrum italico-rum)는 초대 성인전들의 기록을 많이 보존하고 있다. 교황은 이 작품에서 이탈리아 성인들의 모범적인 생활의 본보기들을 통하여 신자들의 신앙심을 깊게 하고 그들을 본받을 것을 격려하며, 하느님이 현재의 어려운 상황에서도 성인들의 기적을 통하여 이 세상에서 당신의 능력을 실제로 행하고 있음을 증명하고자 하였다.
이후의 시대에는 불가사의하고 대중적이고 교육적인 내용이 선호되기 시작하였다. 프랑크 왕국과 메로빙거 왕조 시대에 역사 편찬이 질적인 저하를 보였지만, 성인전은 신심의 역사가 변화하였듯이 중세 사회의 종교적인 고착 현상을 반영하면서 두드러지게 발전하였다. 중세에 드러난 성인전의 업적은 성인 공경이 강화되었다는 점이다. 이미 초대 후기에 순교자에 관한 정의가 고백자와 금욕자로 확대된 후, 중세의 성인전은 주교 · 수도자 · 선구적인 선교사 · 뛰어난 통치자들을 중심 주제로 삼았다. 성인전은 당시 사람들의 신심 욕구에 부합하기 위하여 불확실하고 부정확한 구전을 이용해야만 했으므로, 매우 다양한 중세의 성인전은 동 시대인의 믿을 만한 기록뿐만 아니라 소설같이 과장되거나 전적으로 꾸며진 이야기들 및 의식적인 위조 작품도 적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든 작품들은 저술 시기의 정신과 사회에 관하여 독특한 특성을 명확하게 드러내기 때문에 새로운 의미에서 현대의 역사 편찬에 역사 사료가 될 수 있을 것이다.
13세기까지 중세의 성인전은 인물의 전형적인 특성과 교육적인 경향이 지배적이었다. 비범한 사람들에게 하느님이 가까이 있음을 증명하기 위한 덕과 기적이 성인들 생애의 핵심적인 구성 요소였다. 저자들은 전기 작가나 연대기 저자라기보다는 오히려 그들의 주인공들을 '순수한' 성인들로 소개하고자 하였다. 이러한 의도로 작품이 쓰여졌듯이 중세 성인들의 이상적인 형태는 신앙과 열심한 기도 생활과 철저한 절제로 점철된 엄격한 생활을 사는 것이었다. 그리고 모든 덕 가운데에서 가장 으뜸은 분별, 즉 본질적이 아닌 것에서 본질적인 것을 구분하고 중용을 지킬 수 있는 것으로 여겨졌다. 《베네딕도 규칙서》
(Regula Sancti Benedicti)는 이러한 중세 신심의 성향을 뚜렷하게 반영하고 있다. 즉 베네딕도회의 제도는 수 세기동안 이러한 이상형을 변함없이 유지시키는 데 근본적으로 기여하였던 것이다.
다양하고 위대한 성인들이 나타난 것은 13세기에 와서였으며, 그들의 전기는 뛰어난 표현력을 지닌 믿을 만한 기념비적인 작품이었다. 다른 한편으로 이 시기의 성인전 문학은 설교를 목적으로 편찬된 전집의 영향으로 점점 더 성인 전기에 집중되었고, 역사적인 근거가 없는 내용을 많이 첨가하였으며, 역사적인 상황들을 은폐하거나 의식적으로 고쳤다. 또한 생애에 대한 역사적이고 사실적인 표현보다는 오히려 인물의 거룩함을 생생히 묘사하는 것이 더 중요시되었다. 왜냐하면 저자들은 성인들의 생애를 복음 정신의 실현으로 이해하였으며, 초역사적이고 초월적인 내용이 역사 위에 놓여 있는 것으로 보았기 때문이었다.
중세의 성인 전기 전집들 중에서 가장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는 책이 1263~1273년 사이에 저술되고 전례력에 따라 배열된 《황금 전설》(Legenda aurea)이다. 도미니코회의 수도자로 후에 제노아(Genoa)의 대주교가 된 야고보(Jacopo da Voragine, 1230~1298)는 이 책을 쓰기 위하여 수년 동안 풍부한 성인 전승을 수집하였으며, 신앙 교육을 위하여 서사시적이고 비유적인 언어로 표현하였다. 역사적 · 비판적인 객관성은 결여되었지만, 《황금 전설》은 수없이 필사되고 서방의 모든 언어로 번역되었을 뿐만 아니라 1470년부터는 대중적인 책이 됨으로써, 이 작품은 교육적인 영향 이외에도 모든 유형의 문학과 예술에 상당한 영향을 미쳤다.
근세의 비판과 변모 : 중세의 성인전은 근세에 이르러 인문주의에 의해 비판되기에 이르렀다. 그 당시 프랑크의 피핀(Pippin, 741~768) 왕과 스테파노 2세 교황(752~757) 사이의 증여 문서로 여겨졌던 이른바 '콘스탄틴의 증여(贈與) 문서' 가 거짓으로 폭로되면서 모든 성인 전기의 전승에 의심을 품게 되었던 것이다. 하지만 성인 전기의 유기적인 성장을 중단시킨 본질적인 원인은 인문주의가 아니라 종교 개혁자들의 신학적인 입장이었다. 종교 개혁은 교회사의 서술뿐만 아니라 성인전까지도 단절시키는 원인이 되었다. 도미니코회의 카노(Melchior Cano, 1509~1560)는 성인전 작품들에 대한 비판자로서 당시 널리 알려진 인물이었는데, 그는 <신학의 인식 원천》(De Loci theologici, 1563) 제11권에서 성인 전기의 작가들이 작품의 역사적인 비판 정신에서 초대의 역사가들에 훨씬 못 미친다고 비판하면서 《황금 전설》의 저자를 비난하였다.
한편 베로나와 베르가모의 주교인 리포마노(Luigi Lip-pomano, 1500~1559)는 성인 공경에 대한 프로테스탄트측의 비난과 가톨릭측에서 요구하는 성인전에 대한 검열에 반대하여 트리엔트 공의회가 열리고 있는 시기에 전 8권으로 된 《거룩한 옛 교부들의 생애》(Sanctorum priscorum patrum vitae)를 출간하였다. 그리고 카르투지오회의 수리오(Laurentius Surius, 1523~1578)는 이 편집본에 기초를 두었지만 이 작품보다 훨씬 명료한 전 6권의 《입증된 성인 역사》(De probatis Sanctorum historis)를 1570~1575년 될른에서 출판하였다. 따라서 리포마노와 수리오의 전집은 최초의 비판적인 성인전으로 높이 평가할 만하다.
현대의 새로운 변모 : 성인전은 19~20세기에 새로운 전성기를 맞았다. 이전에 쓰여진 생애들은 개작되었으며, 최근에 성인품에 오른 인물들의 전기가 저술되는 동시에 모든 성인들에 대한 전집과 사전적인 목록이 병행하여 발전하였다. 전집들 가운데 프랑스 베네딕도회에서 개작한 <축일에 따른 성인과 복자들의 생애》(Vies des Sa-ints et des Bienheureux selon I'ordre du calendrier avec l'histori-que des fetes, 1935~1959)는 매우 특별한 의미가 있는 책이다. 이와는 달리 스타들러(J.Stadler의 《성인 사전》(Volls-tandiges Heiligen Lexikon, 5권, 1858~1882)은 비판적인 증빙력이 부족하고, 홀베크(F.G. Holweck)의 《성인 사전》(Dictionary of Saints, 1924)과 아트워터(D. Attwater)의 《성인 사전》(Dictionary of Saint, 1938)은 서술이 간결하다. 반면에 이러한 결점을 보완하여 '교황청 라테란 대학' 에서 펴낸 것이 전 13권의 《성인 사전》(Bibliotheca Sanctorum, 1962~1970)이다. 성인전은 단순히 어떤 사실을 전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순례하는 교회에 성인들을 통하여 하느님의 영광을 알리는 교회의 역사 서술이다. (→ 볼랑디스트 ; 성인 공경 : 성인 전기학 ; 순교록 ; 순교 전기)
※ 참고문헌  H.R. Drobner, Lehrbuch der Patrologie, Freiburg, 1994/K. Hausberger, Hagiographie Ⅱ, 14, pp. 365~371/ D.H. Farmer, Hagiographie I , 14, pp. 360~364. [河聖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