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인 전기학 聖人傳記學 〔라〕hagiographia(hagiologia) 〔영〕hagiograph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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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에서 공적으로 공경하는 성인들을 신학적으로 해석하고, 성인 공경을 주제로 하는 성인전을 문학적으로 비평하는 학문 분야. 이를 위해서 이 학문은 기록된 전승 자료들을 연구하고, 그 문헌의 역사적인 가치를 판가름 해 줄 수 있는 원천 자료를 연구한다. 성인 전기학의 목적은 성인들의 삶을 사실 그대로 전해 주면서도, 그 성인의 영성을 분석하여 그리스도교의 성성(聖性)을 추구하는 신자들에게 도움을 주는 데 있다.
〔방법론의 발전〕 방법론적으로 성인 전기를 연구하며 비판하기 시작한 것은 17세기부터였다. 즉 벨기에 안트웨르펜(Antwerpen)의 예수회 학자 로스웨이드(H. Ros-weyde, 1569~1629)가 처음으로 《성인전》(Acta Sanctorum) 전집을 간행할 계획을 세웠고, 이어 1643년에 볼랑(J.Bolland, 1596~1665)과 그의 협력자들 특히 솔리에(J.B. du Sollier, 1846~1908)에 의해 이 작업이 계속되면서 이 학문 분야는 발전하게 되었다. 그리고 볼랑디스트와 더불어 생 모르 학파 역시 본문 비판과 역사적인 객관성에 근거한 새로운 방법을 성인전 영역에 도입하였다. 즉 문헌을 본질적이고 근본적으로 비판함으로써 전세계 곳곳에서 행해지는 성인 공경을 더욱 올바르게 북돋우는 데 기여하였던 것이다.
모든 성인들의 생애를 비판적으로 선별 · 검증하기 위한 계획을 처음으로 세웠던 로스웨이드는 1607년에 발표한 자신의 논문 <성인들의 연대기>(Fasti Sanctorum)에서, 앞으로의 성인 연구를 위해 사료들의 모순뿐만 아니라 목적과 상관 관계를 밝히기 위한 세심한 주석과 가능한 모든 사료들을 이용한 정확한 편집본을 만들 것을 제안하였다. 이러한 의도를 무모한 작업으로 간주한 벨라르미노(R.F.R. Bellarminus, 1542~1621) 추기경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로스웨이드와 그의 동료인 볼랑과 헨셰니우스(G. Henschenius, 1601~1681)는 이 연구를 계속하는 한편, 성인전의 증언들에 관한 끊임없는 자료 수집을 근거로하여 1643년에 안트웨르펜에서 두 권의 《성인 전집》(Acta Sanctorum quotquot toto orbe coluntur···)을 출판하였다. 이 작품은 축일표에 따라 1월의 성인들만 소개되었는데, 방법적으로 개선되기는 했지만 이러한 기본 도식 즉 성인전의 순서는 수 세기 동안 계속 이어졌다. 이들이 시도하였던 새로운 방법은 처음부터 학계의 광범위한 지지를 받았으므로, 볼랑의 후계자이며 비판적인 통찰력을 지닌 반 파펜브루크(D. VanPapenbroek, 1628~1715) 역시 이 《성인 전집》의 편집에 참여하게 되었다. 그리고 예수회 총장은 이 저술 작업에 참여한 이들로 볼랑디스트회(Société des Bollandistes, 혹은 볼랑 연구소)를 결성하여 이 작업을 계속하게 하였다.
한편 이러한 시도 과정에서 안트웨르펜의 예수회 학자들은, 가르멜회와 프랑스의 '성 베네딕도 수도회 생 모르 연합회' 를 중심으로 한 생 모르 학파(Congrégation de Saint Maur)와 논쟁하게 되었다. 가르멜회의 기원에 관한 오랜 기간에 걸친 논쟁으로 볼랑디스트는 스페인의 종교 재판에서 혹독한 판결을 받았지만, 생 모르 학파와의 논쟁으로 역사적인 진리의 검증에 있어 더욱 정확한 방법을 발전시키는 데 도움을 받기도 하였다. 왜냐하면 메로빙거 왕조의 문서 사료의 가치에 관한 반 파펜브루크의 주장에 대한 답변으로 마비용(J. Mabillon, 1632~1707)이 《고문서학》(De re diplomatica, 1681)을 저술함으로써 외교학의 기초를 놓았기 때문이었다. 마비용의 정신이 반영된, 전 9권의 《성 베네딕도회의 성인전》(Acta Sanctorum Ordinis Sancti Benedicti, 1668~1701)은 베네딕도회의 모든 성인들의 생애 · 활동 · 공경에 관한 전승 기록들을 제시하면서 비판적으로 주석한 작품이다. 마비용의 공동 작업자인 루이나르(T. Ruinart, 1657~1709)의 저서 《첫 순교자들의 성실한 발췌 순교 전기》(Acta primorum martyrum sincera et selecta, 1689) 역시 안트웨르펜의 예수회 학자들의 편집본에 필적할 만한 작품이다. 따라서 볼랑디스트와 생 모르 학파는 물려받은 전통 자산을 역사적인 비판에 근거하여 검증함으로써 현대 성인전의 기초를 놓은 공로를 쌓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현대의 새로운 발전〕 19세기에는 주로 문헌 비판적인 방법의 개선과 역사 사료들의 출판이 서방 국가들의 관심사로 인식되고 촉진되면서 역사 편찬의 비약적인 발전이 이루어졌고, 이것은 성인전에도 영향을 주었다. 이전의 시대가 대체로 분석적인 방향에서 진행되었다면, 19세기 이후에는 사료에 대한 철저한 비판으로 사건들의 근본을 규명하고 종합하려고 하였다. 볼랑디스트는 이러한 사료 비판적인 방법을 성인전에 활용하였던 것이다. 볼랑디스트는 1837년에 브뤼셀에 다시 설립되었으며, 북의 빅톨(Victor de Buck, 1817~1876), 스메트의 샤를(Charles de Smedt, 1833~1911), 들르예(Hippolylte Delehaye, 1859~1941), 페테르(Paul Peeters, 1870~1950)와 같은 학자들은 성인전 연구를 교회 학문의 독자적인 분야로 발전시켰다. 1882년부터 볼랑디스트에 의해 출판된 계간지 《볼랑디스트. 연보》(Analecta Bollandiana)는 《성인 전집》의 사전(事前) 작업과 추가 내용, 특히 개별적인 성인 전기의 전승사에 관한 논문들을 싣고 있으며, 성인전에 관한 새로운 출판물을 상관 관계에 따라 계속적으로 분류하고 있다.
또한 이 당시에 특별히 기념될 만한 것은 립시우스(R.A. Lipsius, 1830~1892)와 보네(M. Bonnet)의 《사도들의 행전》(Acts of the Apostles) 연구와 프란키 데 카발리에리(P.Franchi de Cavalieri, 1869~1960)의 《순교자들의 행전》(Acts of the Martyrs) 연구이다. 이러한 연구들에 발맞추어 비판적인 성인 전기학이 더욱 발전하였고, 그에 따라 순교록들, 대표적인 예로 《예로니모 순교록》(Martyrologium Hie-ronymianum)을 재편집하고 새롭게 주석하였다. 그리고 솔리에에 의해 시작된 역사상의 순교록들에 대한 비판적인 연구는 켄탱(H. Quentin, 1872~1935)에 의하여 현대적인 비판을 가미한 연구로 확장되었다(Les martyrologes histori-ques, Paris, 1908). 20세기 중반까지 성인 전기학은 주로 역사학과 문헌학적인 비판 연구로 점철되었다. 한편 들르예의 《순교자 공경의 기원》(Les origines du culte des martyrs, 1912)은 성인 전기의 금석학적인 연구에서 대표적인 작품으로 꼽히고 있고, 알킨(F. Halkin)도 《볼랑디스트 연보》(1949~1953)에 <성인 전기학에 관계되는 그리스어 비문>에 대한 금석학적인 연구를 연재하였다. 그리고 많은 학자들이 전례와 기도문 · 송가 등을 연구함으로써 성인 전기학에 기여했으며, 퀸스틀(K. Künstle) · 카푸탈(G. Kaf-tal) 등은 각 지역의 성화상들에 대한 역사적인 연구를 시도하기도 하였다(Ikonogrphie der Heiligen, 1926 ; Iconography ofthe Saints in Tuscan Painting, 1952). 또 성인 전기학의 연구 주제는 성인 유해까지도 포함하게 되었는데, 이 연구의 대표적인 작품으로는 들르예의 《성인 전기학 방법론에 대한 5개 가르침》(Cinq lecon sur la méthode hagiographique)을 들 수 있다. (→ 마비용, 장 ; 볼랑디스트 ; 생 모르 학파 ; 성인전)
※ 참고문헌  F. Halkin, 《NCE》 6, pp. 896~897/ Karl Hausberger, 《TRE》 14, pp. 368~370/ J. Marilier, 《Cath》, pp. 487~491. [河聖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