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작 聖爵 〔라〕calix 〔영〕chali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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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사 중 성찬 전례 때 사용되는 성작(왼쪽)과, 게쎄마니에서 "이 잔을 저에게서 거두어 주소서" 라고 기도하는 예수 그리스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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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사 중 성찬 전례 때 사용되는 성작(왼쪽)과, 게쎄마니에서 "이 잔을 저에게서 거두어 주소서" 라고 기도하는 예수 그리스도.

미사 중 성찬 전례 때 포도주를 봉헌하고 성혈로 축성된 후 받아 모시기 위해 사용되는 축성된 잔. 미사 봉헌만을 위해 사용되므로 '거룩한 그릇' 이라고 한다. 성작은 윗 부분의 잔(poculum)과 중간 마디가 있는 대(nodus), 그리고 받침(fundamentum) 이렇게 세 부분으로 구성된다. 모든 전례 용품 중에서 가장 중요한 성작은 성서에 유일하게 언급되어 있는데, 예수는 제자들에게 "당신들도 내가 마시는 잔을 마실 것"이라고 하였으며(마르 10, 39), 최후의 만찬 이야기에서도 예수가 제자들에게 마시도록 한 "내 계약의 피"라고 한 포도주를 담은 잔이 나온다(마르 14, 23-24 ; 루가 22, 17-18 : 1고린 11, 25).
또 게씨마니에서 예수는 "이 잔을 저에게서 거두어 주소서"라고 기도하였는데(루가 22, 41 ; 마태 26, 42 ; 마르 14, 36), 이 모든 성서 구절들이 하나로 모아져 현재 성찬 전례에서 성변화를 위한 기도로 사용되고 있다.
〔종 류〕 성작은 초기 교회부터 여러 가지 종류로 구분되었다. ① 성찬 전례 때 포도주를 봉헌하고 축성하는 데 사용한 '축성 성작' 혹은 '사제들의 성작' (calix sanctus). ② 축성된 성혈을 신자들에게 나누어 주는 데 사용한 '성체성사 성작' (calix ministerialis). 이 성작은 성체와 성혈을 다 받아 모시는 양형 영성체가 금지된 13세기경에 사라졌다. 로마의 미사 경본에서는 신자들이 성작으로 직접 성혈을 받아 모시는 것을 금하였지만, 일부 교회에서는 축성되지 않은 포도주를 신자들에게 나누어 주는 관습이 그 후에도 계속되었다. 오늘날 시리아 동방 교회와 아비시니아(Abyssinia) 교회에서는 이 영성체 전통이 그대로 이어지고 있다. ③ 그리스어에서 차용된 '잔' 이라는 뜻의 '스치푸스' (scyphus). 이것은 4~6세기에 축성 성작을 지칭하는 용어였으나, 그 후 성체 배령자들을 위해 마련된 커다란 그릇을 뜻하게 되었다. ④ 전례서에 자주 나오는 crater' , 'poculum' , 'fons' 도 성작을 지칭하는 용어였다. ⑤ 특별히 대사를 받을 수 있다고 지정된 미사에서 사용한 성작(calix stationarius). ⑥ 신자들이 봉헌하는 포도주를 담았던 '봉헌 성작' (calix offertorialis). ⑦ 세례성사와 함께 거행되는 미사에서 사용된 세례를 위한 성작(calix ad baptismum) ⑧ 비교적 덜 화려한 '통상 성작' (calix quotidianus). ⑨ 일반적으로 크기가 6~9cm 정도로 작고 조립이 가능한 노자 성체용 성작' (calix viati-cus). ⑩ 중세 후기에 주교나 사제들의 무덤 안에 놓아두었던 묘 성작' (calix sepulcrum). . ⑪ 장식용으로 제대 위에 놓아두었던 사용이 유보되거나 정지된 성작(calix SUS-pensorius, calix pendentilis) 카롤링거 왕조 시대 이후 미사에 주로 사용된 것은 사제들만이 사용할 수 있는 축성 성작과 신자들의 성체성사를 위해 사용한 성체성사 성작이 었는데, 지금은 미사 때 사제만이 사용하는 축성 성작을 지칭하는 의미로 고정되었다.
〔재질과 축성〕 초기 그리스도교 신자들은 나무로 성작을 만들어 사용하였을 것으로 추정되며, 유리로 된 것도 사용하였다. 초기 교회와 중세기 전반에 걸쳐 성작은 유리 · 나무 · 구리 · 청동 · 천연 수정 · 줄무늬 마노(瑪瑙)등 여러 가지 재질로 제작되었으나, 콘스탄틴 대제(306~337) 시대에 이르러서는 금이나 은으로 제작하기 시작하였다. 아우구스티노(354~430)나 요한 그리소스토모(347~407)도 은이나 금 같은 귀금속으로 만들어진 성작들이 사용되었다고 증언하였다. 카롤링거 왕조 시대에 개최된 교회 회의에서는 목재 · 유리 · 쇠뿔 등으로 된 성작 제작을 금하고 구리 · 청동 · 납 · 수정 · 줄무늬 마노 · 대리석 같은 단단한 돌 등을 사용하여 성작을 제작하도록 하였는데, 이러한 규정은 9세기까지 적용되었다. 그러나 《그라시아노 법령집》(Decretum Gratiani)의 전례 규정과 《로마 주교 예식서》(Pontificale Romanum)에서는 금이나 은을 성작의 재료로 권장하면서 청동이나 유리 또는 나무는 사용하지 말도록 하였다. 그러다가 1310년에 열린 트리어 교회 회의에서 모든 교회는 적어도 은으로 된 성작과 성반에 도금을 하여 사용하도록 규정하였다.
그러나 1969년 이후부터는 기존에 교회가 금해 왔던 성작의 재료들이 일부 허용되었고, 전례 성사성은 극도로 재정이 어려운 경우라면 구리 · 주석 · 청동으로 제작할 수 있지만 잔의 안쪽은 반드시 도금을 해야 한다는 지시를 내렸다(De defectibus, Ⅹ , 1). 또 값싸고 흔한 금속으로대나 받침을 제작하는 것을 허용하였으며, 수정이나 상아 같은 값비싼 것은 중간 마디 부분이나 장식으로 사용할 수 있다고 규정하였다. 하지만 쉽게 깨어지거나 썩는 재료로 만들어서는 안되며(《미사 경본의 총지침》 290항), 수분을 흡수하지 않는 재료여야 하고, 그릇을 받치는 대는 단단하고 품위 있는 재료를 사용해야 한다(291항)고하였다. 또 성작을 금속으로 만들었을 경우 그 금속에 녹이 슬 수 있다면 안쪽은 도금을 하는 것이 상례(294항)라고 규정하였다.
성작은 사용 전에 반드시 축성하여야 한다. 초대 교회 때에는 성작 축성이 미사 중에 이루어졌으며, 그 후 서방 교회에서 성작 축성 예식이 최초로 규정된 것은 700년경의 《프랑크 미사 경본》(Missale Francorum)에서였는데, 여기에서는 성작을 '예수 그리스도의 새로운 무덤' (Jesu Christi novum sepulcrum)이라고 표현하였다. 성작 축성 예식이 의무화된 것은 9세기부터였다. 그리고 성작을 축성할 때 초기에는 예비자 성유를 사용하다가 후에는 크리스마 성유로 대체되었는데, 지금은 성유를 사용하지 않고 있다. 구 교회법은 축성된 성작이 처음 형태를 상실하였거나 낡아서 복원하거나 전체를 새로 도금할 경우에는 기존의 효력을 상실하므로 다시 축성해야 한다고 규정하였다(1305조 1항). 그러나 성작 안쪽만을 다시 도금하는 경우에는 축성 효력이 상실되지 않는다고 하였다(1305조 2항). 이전에는 성작을 축성할 수 있는 권한이 주교에게 제한되었으나(1147조), 지금은 사제도 축성할 수 있다(《성당 축성 예식서》 7장 3항). 축성 예식은 성반과 같이 미사 중에 신자들이 보는 가운데 하는 것이 좋으며(《성당 축성 예식서》 7장 2항) 주교 예식서에 있는 예식으로 한다(《축복 예식서》 1069항).
〔역 사〕 초기 유형 : 전례용 성작은 고대의 술잔에서 변형 · 발전되었다. 초기 교회 때 사용된 성작은 전해지지 않고 있으나 카타콤바에 그 당시의 성작이 묘사되어있으며, 테르툴리아노(+220?)의 작품에도 성작을 의미하는 라틴어 '칼릭스' (calix)가 언급되어 있다. 현재 가장 오래된 것으로 여겨지는 성작은 500년경의 것으로 예술적 문양이 뛰어난 비잔틴식의 '안티오키아 은 성작' (뉴욕 메트로폴리탄 박물관 소장)이다. 1910년에 시리아의 한 동굴에서 발견된 이 성작은 대와 받침이 낮고 잔은 넓은 아치형을 이루고 있어 고대 술잔과 비슷한 유형이다. 또 성작에 새겨진 문양은 수준 높은 성화로 그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이 성작의 잔 안에는 아무런 장식도 없는 작은 잔이 들어 있는데, 이것이 최후 만찬 때 사용된 성배(聖杯)라고 오랫동안 믿어져 왔으나 확실하지는 않다.
변화와 발전 : 6세기경에는 넓은 잔과 그것을 받치는 깔대기 모양의 받침과 중간 마디가 있는 대로 구성된 성작의 고전적인 형태가 정착되었다. 이러한 형태의 대표적인 예가 이 당시에 제작된 시리아 비잔틴식의 은 성작(볼티모어 왈터 미술 갤러리 소장)인데, 이 성작에는 기증자의 이름과 함께 성인들이 부조되어 있고 잔 가운데에는 십자가가 새겨져 있다. 서방 교회에서도 이러한 초기 비잔틴식 성작들이 몇 개 전해져 오는데, 그중 하나가 현 프랑스 지역의 고든에서 유래한 손잡이가 달린 작은 성작이다(파리 미술 전시 센터 소장). 500년경의 것으로 추정되는 이 성작은 다각형의 성반과 함께 전해졌다. 또 이러한 초기 비잔틴식 성작들은 이탈리아 등에도 여러 개 남아 있다.
더블린 국립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는 8세기 초의 아르다프(Ardagh) 성작은 손잡이가 달린 튼튼하고 넓은 잔에 아래에 받침대가 있는 성체성사 성작으로 수도회의 미사에서 사용되었던 것이다. 초기 카롤링거 시대인 780년경에 바이에른의 타실로 3세(Tassilo Ⅲ) 백작과 그의 아내가 오스트리아의 크렘스뮌스터 수도원에 기증한 금으로 만든 '타실로 성작' (크렘스뮌스터 박물관 소장)은 그리스도와 4복음사가들이 은으로 화려하게 장식되어 있는데, 미술적인 요소가 잘 가미된 대표적인 성작으로 손꼽힌다. 같은 시기의 것으로 상아로 제작된 '레부이누스(Lebuinus) 성작' (우트레히트 박물관 소장)은 그 기본 구조가 고대의 꽃잎 문양과 같다. 보석으로 장식된 손잡이가 달린 고첼린(Gozelin) 주교의 금 성작(낭시 주교좌 성당 소장)은 10세기경의 성작의 발전된 형태를 잘 보여 주고 있다. 또 7~8세기 이후에는 마실 때 편리하도록 주둥이(fistula)가 달린 커다란 성작들이 등장하기도 하였는데, 이는 신자들이 성체성사 성작에 직접 입술을 대고 성혈을 받아 모실 때 흘리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것이었다. 이러한 성작 형태는 후에 주로 프랑크 지역에서 수용되어 발전하였다(J. Braun, Das christliche Altargerät, pp. 240~265) .
독일 에센(Essen) 지방에서 성행하였던 것으로 민스터의 주교 성 루드제로(Ludgerus, +809)의 노자 성체용 성작과 여러 주교들과 사제들의 묘에 놓아두었던 성작들은, 초기 로마네스크 시대 이후에 서방 교회의 성작들이 어떻게 변화 · 발전하였는지를 잘 보여 주고 있다. 또 보석으로 장식된 넓은 잔과 길다란 대, 그리고 유약과 돌 장식이 특징인 콘스탄티노플에서 노획해 온 성작은 비잔틴 세계의 변화된 형태를 보여 주고 있는데, 1204년 이후 이탈리아 베네치아의 산 마르코 대성전에 보관되어 있다. 12세기 때의 큰 잔 형태의 성작은 후기 로마네스크식의 큰 성작과 카롤링거 시대의 레부이누스 성작의 기 본 구조가 혼합된 것으로 랭스에 있는 실로 수도원의 성작이 대표적이다. 13세기부터는 성작에 부착된 손잡이가 점차 사라지면서 중간 마디 부분이 손잡이 기능을 대신하게 되었다.
14~15세기의 성작은 고딕식의 가늘고 긴 형태로, 깔대기 모양의 잔과 고딕식의 꽃잎 모양이 양각되어 있는 받침 부분과 십자가가 붙어 있는 것이 특징이다. 성작이 이러한 형태로 변화한 것은 12세기까지 성체성사 성작이 수도 공동체 내에서 사용되다가 13세기 이래로 사용이 금지된 데에 그 원인이 있다. 그 후 17~18세기 즉 바로크 시대에는 고딕식에서 특별한 변화를 보이지 않았는데, 컵 모양의 잔 부분과 금은 세공이나 상아를 박아 넣는 세공법을 이용해 장식한 길다란 대 부분과 그 중간에 보다 세련되게 장식된 마디와 무겁고 튼튼한 받침 부분으로 구성된 것이 대부분이었다. 아우크스부르크의 유약을 이용하여 장식한 1679년 잘츠부르크의 대주교 간돌프(Max Gandolph)의 성작이 대표적이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의 성작은 고대의 성작처럼 크고 장식 없이 단순한 술잔 모양으로 제작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특히 잔 부분이 강조되면서 중간 마디 부분은 보다 깨끗하고 조화로운 선을 유지하기 위해 사라지는 추세이다. → 성반 ; 성작 덮개 ; 성작 수건 ; 성합 ;전례 용구)
※ 참고문헌  J.P. Lang, O.F.M., 《DL》, p. 96/ Richard P. McBrien ed., The HarperColims Encyclopedia of Catholicism, San Francisco, Harper Co., 1995, p. 296/ 《ODCC》, p. 316/ Victor H. Elbern, 《TRE》 12, pp. 397~398, 402/ K. Hofmann, 《LThK》 6, pp. 104~105/ Robert Lesage, 《Cath》 2, pp. 383~385/ G. Catherine, Chalice of Antioch, 《CE》 2, p. 4731 C.W. Ho-well, chalice, paten and veil, pp. 432~4371 M. Burch, liturgical art, 《NCE》 8, pp. 869~8721 Joseph A. Jungmann S.J. The Mass ofthe Roman Rite : Its Origins and Development Ⅱ , Benziger brothers Inc., 1950, pp.382~383/ 《축복 예식서》,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1986/ 《성당 축성예식서》,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1978. [梁蕙貞]