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전 聖殿 〔라〕templum 〔영〕temple

글자 크기
7
솔로몬 성전 복원 모형.
1 / 6

솔로몬 성전 복원 모형.

야훼 하느님이 이스라엘 백성들과 함께 현존한다는 표징을 나타내는 거룩한 장소. 이스라엘 백성은 이곳에서 제사와 각종 의식을 거행하였다.
모든 종교에서 성전은 인간들이 신(神)에게 예배를 드리는 장소이며, 신이 인간에게 은혜와 생명을 주기 위하여 내려오는 장소라고 여겼다. 또 어떤 의미에서는 천상에 있는 신의 장소와 동일시되어 인간이 천상 세계에 접근할 수 있는 장소로 여겨지기도 하였다. 이러한 사상이 구약성서의 성전에도 적용되어 성전은 야훼 하느님이 이스라엘 민족들 한가운데 함께 현존한다는 표징으로 여겨졌다. 성전을 표현하는 단어로 구약성서에서는 '미케다쉬' (מִקְדָּשׁ)와 '헤칼' (הֵיכַל)이 자주 사용되었으며(출애 30, 13 ; 민수 18, 16 ; 1사무 1, 9. 24 : 3, 3. 15 ; 1열왕 5, 17 : 8, 20 ; 2열왕 11, 6 : 에즈 5. 2 ; 느헤 6, 11 ; 시편 84, 3 ; 134, 2 ; 116, 19 ; 전도 4, 17 ; 지혜 3, 14 ; 이사 6, 4), 신약성서에서는 '이에론' (ἱερόν), '나오스' (ναός), '오이코스 (οἶκος)가 쓰였다(마태 4, 5 ; 12, 5-6 : 루가 2, 37.46 ; 요한 2. 14 ; 사도 2, 46 ; 21, 27 ; 1고린 3, 16 ; 2데살 2, 4 ; 히브 9, 21 ; 묵시 11, 19). 그러나 신약성서에서의 성전은 그리스도의 몸과 교회라는 의미로 변화되어 보다 영속적인 의미를 지니게 되었다.
〔역사적 배경과 기원〕 인간이 만든 건축물 중에서 가장 오래된 것 가운데 하나가 성전이다. 중석기와 신석기 시대에 만들어진 성전이 예리고에서 발견되었는데, 창세기에 언급된 바벨탑은 이와 같이 고대 성전의 존재를 설명해 주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창세 11, 1-9). 물론 이 바벨탑 이야기는 인간이 하늘에오를 수 있다는 교만과 이기적인 권력욕, 그리고 이로 인한 인간의 파멸을 상징적으로 표현하는 것이기는 하지만, 인간 역사 초기에 이미 인간이 하느님을 만나는 장소로서의 성전이 있었음을 나타내는 것이기도 하다.
기원전 20세기경에 아브라함이 떠난 메소포타미아에는 각 도시마다 수호신을 섬기는 성전이 있었다. 도시의 수호신은 그 땅의 주인으로 여겨졌고, 그 땅이 신의 축복을 받지 못하면 소출을 내지 못한다는 믿음과 함께 그 지역의 통치자는 신을 위한 청지기의 역할을 하였다. 한편 반유목민이었던 이스라엘 족장들은 자신들의 하느님을 위한 특별한 성전을 지을 필요가 없었다. 왜냐하면 하느님은 언제 어디서든 자신이 원하는 곳에 나타날 수 있었고, 이스라엘 족장들은 이렇게 하느님이 나타난 곳에 희생 제단이나 돌기둥으로 기념하는 것으로 족하였기 때문이다(창세 28, 22). 그런데 이스라엘이 민족 단위로 성장 하면서 한 분 하느님을 섬기며 민족 전체가 모일 수 있는 구심점이 필요하게 되었다. 즉 자신들의 단일성을 나타내는 상징으로서의 성전이 필요하였던 것이다. 광야 이동과 가나안 정복과 판관 시대에는 성막이 그 역할을 하였다(출애 25장 이하). 특히 판관 시대를 지파 연합의 시대(기원전 1250~1050경)라고 하는데, 아직 왕이 없던 이 시대에 성막이 있었던 중앙 성소가 그들의 사회적 · 정치적 · 종교적 문제들을 해결하였던 구심점이었다. 그리고 이러한 중앙 성소의 역할을 한 곳이 길갈(여호 4, 20), 세겜(24, 1), 실로(1사무 1, 3) 등이었다.
이러한 지파 연합 시대에서 왕정 시대로 넘어간 후, 즉 과도기의 왕이었던 사울을 거쳐 다윗(기원전 1010~970)이 통일 왕국을 건설한 후, 다윗은 본격적인 성전을 건축하고자 하였다(2사무 7. 2). 성서에 의하면 그는 성전을 짓기 위하여 건축 재료를 구하고 보물을 모으고 성전 터를 사는 등 만반의 준비를 갖추었지만, 사람들의 피를 많이 흘린 왕이었기 때문에 하느님께로부터 성전 건축을 허락받지 못하였다(1역대 22, 8 ; 2사무 24, 18-25). 그래서 그의 아들 솔로몬(기원전 972~933)이 기원전 968년에 성전 건축을 시작하여 7년 후에 공사를 완공하였다(1열왕 6, 37-38).
〔솔로몬 성전〕 성전의 위치 : 솔로몬 성전은 오늘날 예루살렘의 옛 도시 동쪽에, '하람 에슈 셰리프' (Haramesh-Sherif)라고 불리는 지역 안에 있었다. 비록 그 위치를 자세히 확인하기는 어렵지만, 성서 시대의 세 성전, 즉 솔로몬 성전과 즈루빠벨 성전과 헤로데 성전이 같은 자리에 들어서 있던 것으로 여겨지며, 현재 그곳에 서 있는 모스크(Mosque)가 그 자리로 추정된다. 엘 악사 모스크(el Aqsa Mosque)로 불리는 이 이슬람교 성전은 638년에 완공되었는데, 이 모스크 안에 있는 바위 위가 지성소나 성소 밖의 제단 자리였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2역대 3,1). 이 바위는 다윗이 은 50세겔(2사무 24, 24 ; 1역대 21, 25에 의하면 금 600세겔)을 주고 아라우나에게서 산 '타작 마당의 일부분' 이었을 것이다. 현재 솔로몬 성전 건축물의 어떤 부분도 남아 있지 않은 까닭은 헤로데 성전의 건축 과정에서 그 이전에 건축된 성전의 기초가 파괴되고 다져졌기 때문이다. 다소 불투명하고 자체적으로 상호 모순되는 기사도 있으나 열왕기 상 6-7장과 역대기 하 3-4장을 바탕으로, 솔로몬 성전의 또 다른 해석인 새로운 성전에 관한 에제키엘의 환상 내용을 보충 자료로 사용하여 솔로몬 성전의 모습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크기와 구조 : 성전은 동에서 서로 길게 이어진 모습이었고, '에제키엘의 성전' 처럼 고지대에 세워졌을 것으로 추정된다(에제 41, 8). 주변 땅의 크기에 관한 언급은 없으나 에제키엘의 환상에 따르면 성전은 안뜰과 바깥뜰로 나누어져 있었고(1열왕 6, 36 ; 7. 12 ; 2열왕 23, 12 ; 2 역대 4, 9), 안뜰에 있었던 청동으로 만들어진 제단(1열왕 8, 22. 64 ; 9, 25)의 크기는 사방 20암마(1암마는 약 46cm)에 높이가 10암마였다(2역대 4, 1). 제단과 성전 현관 사이에는 제의적 정결을 위해 사용하는 물을 담아 두는 지름 10암마 크기의 청동으로 만든 큰 물통(모형 바다)이 있었는데, 이것은 세 마리가 한 그룹이 되어 동서남북의 네 방향을 보고 있는 청동 소들에 의해 받쳐져 있었다. 이 받침은 훗날 아하스 왕이 떼어내 버렸다(2열왕 16, 17).
안뜰에서 성전 현관으로 들어가는 계단의 입구 양 옆에는 건물 자체와는 독립된 '야긴' 과 '보아즈' 라는 두 기둥이 있었으며, 성전에는 문이 달려 있었다(2역대 3, 15-17). 성전 현관 길이는 20암마였고 너비는 12암마였다(에제 40, 48). 역대기 하 3장 4절에 보면, 이것의 높이가 120암마로 되어 있는데 아마 착오인 것 같다. 왜냐하면 이 성전의 다른 부분의 높이가 30 암마밖에 되지 않기 때문이다. 성전 본관 안에 세운 지성소(דביר)에서 대부분의 제사가 행해졌으며, 지성소의 길이와 너비는 각각 20암마였다(2역대 3, 8) . 열왕기 상 6장 34-35절에 의하면 성전으로 들어가는 입구에 문이 두 개 있었다. "두 방백나무 문은 앞문이 양쪽으로 젖혀지고, 뒷문도 양쪽으로 젖혀졌다. 그 위에 거룹과 종려나무와 활짝 핀 꽃 모양을 새겨 놓았다. 그리고 그 조각품에 금을 고루 입혔다." 그리고 천장 가까이 성전 벽에는 붙박이창이 있어서 성소를 밝혔고(1열왕 6, 4), 여기에는 분향 제단 · 제사상 · 등잔대 · 희생 제사에 사용되는 도구 등이 있었다.
성전 안쪽 벽에는 바닥부터 천장까지 벽 전체에 향백 나무 널반지를 입히고 성전 바닥에는 방백나무 널반지를 깔았으며, 성전 벽과 문의 향백나무 위에 조롱박과 활짝 핀 꽃 모양을 새기고 금을 입혔다. 그리고 내부 전체에 금을 입혀서 석재는 하나도 보이지 않도록 하였다(1열왕 6, 15-22). 성전 뒤쪽은 바닥에서 들보까지 향백나무 널빤지로 지었는데 그 내부에 밀실 곧 지성소를 짓고 이 안에 계약의 궤를 모셨다. 지성소로 들어가는 입구에는 올리브나무로 만든 두 짝의 문이 있었는데, 이곳은 일 년에 한 번 즉 대속죄일에 대제사장이 들어갈 때만 열렸다. 지성소는 길이 · 높이 · 너비가 다 20암마인 정육면체였고, 이 안에는 높이가 각각 10암마 되는 두 개의 거룹이 세워져 있었다(1열왕 6, 23-28) . 또 성소와 지성소 바깥 벽 주위에는 3층짜리의 작은 방들이 부착되어 있었는데 맨 아래의 너비는 5암마, 그 위는 6암마, 그 위는 7암마였다. 이들 방에는 여러 가지 비품과 예복들을 보관하였고, 당직 제사장들을 위한 숙소로 사용하면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바친 헌물이나 헌금을 보관하였던 것 같다.
솔로몬은 이 성전 건축을 위해서 띠로 사람을 책임자로 세우고(1열왕 7. 13-14), 페니키아의 기술자들을 고용 하였다. 페니키아 지역에서 발견된 수공예품 중에는 솔로몬 성전의 문양이나 건축 양식과 유사한 것들이 많이 발견되고 있으며, 솔로몬 성전의 구조는 오론테스 강 유역의 텔 타이낫(Tell Tainat)에서 발굴된 기원전 9세기의 작은 성소의 구조와 유사하다. 이 성소는 세 개의 내실로 나누어져 있으며, 가장 뒷방에 제단이 있고 성소 입구에는 두 개의 큰 기둥이 있다. 물론 이 두 기둥이 천장을 떠받치고 있기는 하지만 솔로몬 성전의 입구와 비슷하다. 하솔에서 발견된 후기 청동기 시대의 한 성소도 역시 3단으로 되어 있고, 석조 구조물 안쪽은 목재로 덮었다. 또 고대 근동의 왕궁 벽이나 가구들에서 발견되는 상아 조각 판자들 가운데 상당 부분이 페니키아인들의 작품인데, 여기에 자주 나타나는 주제는 꽃 · 종려나무 · 날개 달린 스핑크스 등으로, 솔로몬 성전에서 나오는 것들과 비슷하다고 할 수 있다. 이것들 역시 솔로몬 성전의 널빤지처럼 금으로 입혀져 있다.
솔로몬 성전의 역사 : 일반적으로 고대 성전들은 국고(國庫) 역할을 하였다. 국력의 여하에 따라 성전의 재정 상태도 변하였는데, 국력이 약할 때는 성전의 보물로 다른 나라에 조공을 바쳤고, 국력이 강해져서 전쟁에 승리하면 그 전리품으로 성전 창고를 채우고 장식을 하기도 하였다. 솔로몬의 성전도 예외는 아니었다. 솔로몬의 아들 르호보암 왕 때 성전에 모아 두었던 보물들이 이집트의 시삭 왕에 의해 약탈당하였으며(1열왕 14, 26), 아사왕은 시리아와 우호 동맹을 맺기 위해 시리아 왕에게 보내는 예물로 성전의 보물을 사용하였다(1열왕 15, 18). 아하즈 왕도 다른 나라의 침략으로부터 보호를 받기 위하여 아시리아 왕에게 보내는 예물로 성전의 보물을 사용하였다(2열왕 16, 8). 또 기원전 621년에 요시아 왕은 종교 개혁을 단행하여 성전을 수리하였는데, 이 성전은 결국 기원전 587년에 바빌론의 느부갓네살(기원전 605~562)에 의해 파괴되고 약탈되었다(2열왕 25, 9. 13-17). 그러나 파괴 이후에도 사람들은 이곳에 와서 제사를 드리곤 하였다(예레 41, 5).
〔즈루빠벨 성전〕 기원전 539년에 바빌론을 멸망시킨 페르시아의 왕 고레스(기원전 539~529)는 바빌론에 포로로 끌려와 있던 사람들이 본국으로 돌아가는 것을 허락하였다. 그래서 기원전 537년부터 귀환하기 시작한 포로들은 기원전 587년에 느부갓네살에게 빼앗겼던 성전 기물을 가지고 돌아와 성전 재건을 시도하였지만(에즈 1장 ; 3, 2-3. 8-10) 곧 중단되고 말았다. 그 후 즈루빠벨과 여호수아 시대, 즉 하깨와 즈가리야가 예언 활동을 하던 기원전 520년경에 다시 공사를 재개하여 기원전 515년에 완공하였는데, 이 성전은 약 500년 동안 유지되었다. 이 성전의 크기와 세부적인 구조에 대해서는 명백히 알수 없지만, 길이가 60암마에 높이가 60암마였다고 전해지며, 솔로몬 성전보다 더 조악했던 것 같다(에즈 3, 12). 성소 둘레에는 창고와 제사장들의 방들이 있었는데, 바로 이 방들 중 어떤 방으로부터 느헤미야가 암몬 사람 토비야를 추방시켰다(느헤 13, 4-9).
마카베오서 상 1장 21절과 4장 49-51절은 성전 기물에 관한 일련의 정보를 제공해 주고 있다. 계약의 궤는 이미 포로기에 없어졌고, 그 후에 다시 만들지는 않았다. 이 성전의 성소에는 솔로몬 성전의 10개의 등잔대 대신 일곱 개의 가지를 가진 한 개의 등잔대가 있었고, 제사상과 분향 제단이 있었다. 안티오쿠스 4세(기원전 175~164)는 기원전 167년에 이러한 기물들을 탈취해 간 뒤 '가증스러운 것' (제우스 신상과 제단)을 가져다 놓았다. 기원전 164년에는 마카베오가 성전에서 이런 것들을 치워버린 뒤 성전을 정화하고 제단을 새로 쌓았는데, 이것이 유대인들의 중요한 축제 가운데 하나인 성전 정화를 기 념하는 축제 '하누카' (חֲנֻכָּה)의 기원이다. 〔헤로데 성전〕 이두메아 출신의 왕 헤로데는 기원전 19년에 유대인들을 회유하기 위하여 성전을 짓기 시작하였는데 그의 본래 목적은 상당히 정치적이었다. 그렇지만 헤로데는 이 성전이 성스러운 자리가 되도록 성소를 짓는 데 석공으로 참여할 제사장 1천 명을 훈련시키기도 하였다. 주요 구조물은 10년도 안된 기원전 9년경에 다 지어졌지만 공사는 서기 64년까지 계속되었다. 그러나 70년에 로마 병사들에 의해 이 성전은 파괴되고 말았다.
성전과 사람들이 모일 수 있는 공간을 포함한 성전 지역 전체는 남북의 길이가 450m에 동서의 길이는 300m나 될 정도로 상당히 넓었다. 또 바위를 부수어 평탄 작업을 하였고 이 지역 전체는 큰 돌로 석벽을 쌓아 둘렀다. 북쪽 성벽의 타디 문(Tadi Gate)은 사용하지 않았고, 사람들은 오늘날 금문(Golden Gate)이라고 불리는 동쪽문을 통해 다녔으며, 지금도 남아 있다. 그리고 엘 악사 모스크 아래로 보면 두 개의 남쪽 문 흔적이 남아 있다. 그리고 서편 벽에 네 개의 문이 있었는데, 이 문들은 고가 다리를 통해 티로포에온 계곡을 건너 들어가게 되어 있었다.
북서쪽 구석에 있던 안토니아 요새는 로마 행정 장관들이 예루살렘에 있을 때 그들의 거처였으며, 성전에서 소요(騷擾)가 일어났을 때 언제든지 투입될 수 있도록 주둔병들을 배치하였다(루가 13, 1 ; 사도 21, 31. 35). 대제사장의 의복도 이곳에 보관하였는데, 이는 대제사장이 로마 행정 장관들의 지배를 받고 있음을 상징적으로 드러내는 것이었다. 성전 바깥뜰은 행각으로 둘러싸여 있었다.
성전 자체의 구조는 솔로몬 성전을 본뜬 것이었지만, 동쪽과 남쪽의 성전 광장이 매우 넓게 확장되어 총 면적은 솔로몬 성전보다 두 배나 넓었다. 성전 현관의 너비와 높이는 각각 100암마였고, 문은 너비 20암마에 높이는 40암마였으며, 성소로 들어가는 문은 이것의 절반 크기였다. 성소의 길이는 40암마였고 너비는 20암마였는데, 성소와 지성소는 휘장으로 나누어져 있었다(마태 27, 51 ; 마르 15, 38 ; 참조 ; 2역대 3, 14). 지성소는 길이와 너비가 각각 20암마였고 높이는 성소와 같이 40암마였다. 지성소와 성소 위에 높이가 60암마 되는 빈 방이 있어서, 현관 높이인 100암마에 맞추어져 있었기 때문에 천장은 전체적으로 같은 높이로 되어 있었다. 3층으로 된 방들이 북쪽과 남쪽과 서쪽 면에 40암마 높이로 만들어져 있었고, 지붕 위에는 새들이 앉지 못하도록 금으로 만든 못이 박혀 있었다.
〔신약의 성전〕 예수는 성전에 대하여 깊은 존경의 뜻을 표하였다. 예수의 입장에서 성전은 하느님의 집이요, 기도의 집이며 당신 아버지의 집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흥정의 장소로 변해 버린 것을 보고 분개하였으며 예언자적인 행동으로 성전을 정화시키기 위하여 환전상과 장사꾼들을 쫓아냈던 것이다(마태 21, 12-17 ; 요한 2, 16-18 ; 참조 : 이사 56, 7 ; 예레 7, 11). 또 예수는 성전의 파괴를 예언하면서 "이 성전을 허무시오, 내가 사흘 안에 다시 세우겠소"(요 2, 19)라고 선언하였다. 요한 복음사가는 이러한 선언 다음에 "예수께서는 당신 몸이 곧 성전임을 가리켜 말씀하셨던 것이다. 예수께서 죽은 이들 가운데서 부활하신 후에야 제자들은 당신이 이렇게 말씀하시던 것을 상기하고, 성서와 예수께서 하신 말씀을 믿었다" (요한 2, 21-22)는 말을 덧붙였다. 예수는 이러한 성전 파괴 선언 때문에 고발되었으며, 십자가 상에서 죽음에 임할 때도 같은 고발로 모욕을 당하였다(마태 27, 39-40). 예수가 숨을 거둘 때 지성소의 휘장이 찢어진 것은 성전의 성스러운 성격이 이미 상실되었고 유대교의 성전이 하느님 현존의 표지로서 제 역할을 더 이상 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드러낸다. 그리고 이제부터는 예수의 몸이 바로 하느님의 현존을 보여 주는 역할을 맡게 됨을 의미한다. 그래서 돌로 지은 성전이 폐쇄되기 위하여 예수는 죽었다가 부활하여야 했다. 이제 예수의 몸인 성전이 하느님의 뜻대로 파괴되었다가 재건되어야 했기 때문이다(요한 10, 17-18 ; 17, 4-5).
사도 바오로도 이러한 새로운 영적 성전을 가르쳤다. 그에 의하면, 모퉁잇돌이요 머리이며 기초인 그리스도 위에 지은 교회가 하느님의 성전이다(에페 2, 14-22). 각 그리스도인도 그리스도의 몸에 딸린 지체로서 하느님의 성전이며(1고린 6, 15 ; 12, 27), 성령의 궁전이다(1고린 3, 16 ; 참조 : 로마 8, 11). 이 두 주장은 서로 연결되어 있는데, 하느님의 신성이 실제로 머무르는 부활한 예수 그리스도의 몸이 하느님의 성전 자체이므로(골로 2, 9) 이 몸의 지체인 그리스도인들은 그 몸과 함께 영적 성전이 되고, 신앙과 사랑으로 이 몸의 성장에 이바지하여야 한다(에페 4, 1-16). 인간의 손으로 짓지 않은 궁극적인 성 전이 곧 교회이며,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이요 인간과 하느님이 만나는 장소이고 지상에서의 하느님 현존의 표시이다. 옛 성전은 불완전하고 이미 지나간 일시적인 것이며, 새 성전의 예표일 뿐이다. (⇦ 성소〔聖所〕 ; → 마카베오 가 독립 전쟁 ; 성막 ; 솔로몬 ; 즈루빠벨 ; 헤로데)
※ 참고문헌  A.R. Millard, The Illustrated Bible Dictionary, vol. 3, Leicester, 1980, pp. 1522~1525/ W.F. Stinespring, Temple, Jerusalem, 《IBD》 4, pp. 534~560/ S. Westerholm, 《ISBE》 4, pp. 759~776/ C. Meyers, Temple, Jerusalem, 《ABD》 6, pp. 351~369/ X. Léon Dufour ed., 《聖書神學事典》, 광주 가톨릭대학 전망 편집부, 1984, pp. 293~294. [朴哲愚]