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주간 聖週間 〔라〕Hebdomada Sancta 〔영〕Holy Wee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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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순 시기의 마지막 주간인 성주간은 예수의 수난 사건을 기념하는 주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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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순 시기의 마지막 주간인 성주간은 예수의 수난 사건을 기념하는 주간이다.

사순 시기의 마지막 주간. 즉 주의 수난 성지 주일부터 시작하여 주의 만찬 성목요일 미사 전까지의 사순 시기와 주의 만찬 성목요일 미사부터 성토요일까지의 파스카 삼일 중 이틀을 포함하는 기간. 성주간은 주의 수난 사건을 전례적으로 기념하는 것을 목적으로 정해진 주간이지만, 참된 의미에서 하나의 전례 단위를 이루지는 못한다.
〔명 칭〕 요한 그리소스토모(Joannes Chrysostomus, 347~407)는 자신의 《시편 설교》(114, 2)에서 당시 동 · 서방 교회의 전례서에서는 성주간을 '위대한 주간' 이라고 표현하고 있다고 언급하였다. 성주간은 예수의 수난 사건을 기념하는 주간이기 때문에 초대 교회 때에는 일반적으로 '수난 주간' 이라고 하였고, 이 '수난 주간' 은 예수의 수난이 언제나 부활을 내포하고 있기 때문에 '파스카 주간' 이라고도 불렸다. 또 독일 교회에서는 이를 슬픔과 탄식의 주간으로서 '부활 전야 주간' (Karwoche)이라 하였고, 밀라노 전례에서는 이 주간을 '권위 있는 주간' 이라고 하였는데, 이 또한 이 주간 동안에 기념되는 사건의 권위성을 인정하여 이렇게 일컫게 된 것이다. 일부 지역에서는 이 주간 중 성목요일에 신자들이 지은 죄가 사해지기 때문에 '용서의 주간' 이라고 부르기도 하며, 동방교회에서는 '구원의 주간' 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기원과 발전〕 성 아타나시오(Athanasius, 295~373)는 성주간을 최초로 언급한 자신의 《축일 서한》(Festal Let-ters)에서, 이미 이 시기에 성금요일로부터 시작하여 부활 주일 아침에 끝나는 성주간을 지냈음을 암시하였다. 여기에 성목요일이 덧붙여진 것은 4세기경이었다. 4세기 말(381~384)에 쓰여진 《에제리아의 여행기》(Peregri-natioEgeriae)에 보면 예루살렘 교회가 주의 수난 성지 주일부터 일주일 동안 예수의 수난과 죽음과 부활 사건들 을 전례 안에서 다루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서방 전례는 바로 이 예루살렘 전례를 모방하여 복음서에 기술된 그리스도의 수난과 죽음과 부활 사건을 전례 안에 재현하려고 하였는데, 이것이 성주간의 기원이다. 교회가 성주 간을 교회법에 명시한 것은 5~6세기에 와서였다. 성주 간을 '수난 주간' 이라고 부른 중세 시대에는 예수의 마지막 생애에 일어난 개개의 사건들에 지나치게 집착함으로써 예수가 겪은 고통과 죽음을 파스카 신비 안에서 보지 못하는 경향이 있었다. 또 예수의 고통과 죽음을 극화(劇化)하여 감상적으로 묵상함으로써 예수 수난과 죽음의 참된 의미가 빛 바랜 것이 되는 경우가 많았다. 따라서 성주간이 기념하는 사건들을 파스카 신비라는 틀 안에서 바라보는 것이 요청되었다.
이를 위하여 교회는 1951년에 부활 성야 예식을 다시 거행하도록 하였고, 1955년 11월 16일에 교황 비오 12세(1939~1958)는 교령 <막시마 레뎀시오니스>(Maxima Redemptionis)를 통하여 고대와 중세 교회 때와 같이 파스카 삼일 전례를 복구 · 개혁하였다. 이로써 파스카 삼일이 파스카 축제라는 단일 축제를 이루고 있음을 보여 주었고, 이를 통해 수난과 죽음을 부활과 연계시킬 수 있도록 하였다. 그리고 이러한 개혁은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전례 정신에 반영되었다.
〔전 례〕 현재의 성주간 전례는 전통적으로 거행되던 전례보다 많이 간소화되었다. 성주간의 전례를 통하여 신자들은 그리스도의 생애 마지막에 일어난 사건을 재생하며, 그 안에서 예수가 세상을 성부와 화해시키는 파스카의 신비를 경축하고 재현한다. 최근의 성주간 전례는 신자들이 이러한 파스카 신비의 거행에 더 능동적으로 참여할 수 있도록 보다 개혁된 전례 형태로 간소화되었으며, 부적절하고 허례적인 의식은 다소 근절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성지 주일 : 예수가 파스카 신비를 완성하기 위하여 예루살렘에 입성한 사건을 기념하는 입당식과 장차 이루어질 수난과 죽음을 기념하는 수난 복음을 읽는다. 이 주일의 정식 명칭이 '주님 수난 성지 주일' 인 까닭이 바로 여기에 있다. 이날의 전례 핵심은 축성된 나뭇가지에 있는 것이 아니라 예수야말로 우리가 고대하던, 죽음을 물리칠 왕이자 메시아라는 신앙이다. 성지(聖枝) 행진은 개선 행진이며, 그의 죽음은 부활로 인해 극복될 것이라는 희망과 믿음이 이 성지 주일의 주제를 이룬다.
성월요일~성수요일 : 1970년 이전의 성주간의 독서는 수난 복음을 요일별로 읽었는데, 성지 주일에는 마태오 복음, 성화요일에는 마르코 복음, 성수요일에는 루가복음, 그리고 성금요일에는 요한 복음을 읽었다. 그러나 현재의 성지 주일에는 공관 복음의 수난기를 배치함에 따라 지금 사용되는 예식서는 수난 직전 며칠 동안 일어났던 사건들을 담고 있는 복음 구절을 읽도록 하고 있다. 그래서 성월요일에는 마리아가 예수께 기름을 부어 주어 죽음을 상기시키는 내용(요한 12, 1-11), 성화요일에는 유다의 배신과 베드로의 부인에 관한 예언을 담고 있는 내용(요한 13, 21-33. 36-38), 성수요일에는 유다의 배신 예고와 파스카 만찬 준비에 관한 내용(마태 26, 14-25)을 읽도록 하고 있다. 제1 독서는 이사야서의 고통받는 종의 노래 중 3개로 구성되어 있다. 이 3일 동안에는 다른 전례를 거행하지 못한다.
성목요일 : 4세기 말 이후 이날은 재의 수요일에 공적 참회를 시작한 이들을 위해 화해 예식을 하는 날로 정해져 있었다. 《젤라시오 성무 집전서》에는 2개의 화해 예식이 실려 있는데, 로마 예식에 속한 첫 번째 예식에 따르면 부제가 주교에게 화해를 위한 청원을 바치면 주교는 참회자를 받아들이기를 하느님께 청하는 기도를 하는 형식으로 되어 있다. 이 화해 예식은 공적 참회가 사라진 후에도 계속되었지만 점차 참회 시편을 읊은 후 주교가 사죄를 베푸는 형식으로 일부 지방에서 지속되다가 19세기 중반 이후 성목요일 전례에서 사라졌다. 성목요일은 성유(聖油)를 축성하는 날이었다. 성유를 축성하는 관행은 이미 3세기 초의 문헌인 《사도 전승》 (Constitutiones Apostolicae) 제5장에 수록되어 있으며, 성 목요일에 세례성사와 견진성사 때 사용할 기름을 축성하는 관행이 확립된 것은 8세기경이었다. 성목요일 오전에 성유 축성 미사가 거행되는데, 이날의 독서들은 하느님 백성이 그리스도의 사제직에 참여함을 보여 주는 내용이다. 새로 만든 감사송 역시 하느님 백성의 보편 사제직과 백성 일부가 갖는 특수 사제직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강론 후에는 사제들의 서약 갱신이 이루어지는데, 여기서 강조되는 것은 사제들이 자신의 사제 직무에 충실하겠다는 것과, 자신들이 받은 사제직은 그리스도의 부르심에
기인한 것이며 따라서 세상에 선포할 예언적 사명을 띠고 있다는 것이다. (→ 사순 시기 ; 성유 ; 주님 수난 성지 주일 ; 파스카 삼일)
※ 참고문헌  A. Chvasse, La préparation de la Pâque à Rome avant le Vᵉ siècle, jeŭne et organisation liturgique, Mémorial J. Chaine, Lyon, 1950, pp. 61~80/ -, Temps de préparation a la Paque d'après quelques libres liturgiques romains, 《RSR》 37, 1950, pp.125~145/ P. Jounel, La liturgie du muinistère pascal : le dimanche des Rameaux, 《LMD》 68, 1961, pp. 45~641 J.W. Tyrer, Historical Survey of Holy Week, its Services and Ceremonial, Oxford, 1932/ W.J. O'Shea, 7, p. 107/ 《ODCC》, pp. 784~785/ 《DL》, p. 254/ Richard P.McBrien ed., The HarperCollins Encyclopedia of Catholicism, San Francisco, Harper Co., 1995, pp. 636~637. 〔金寅寧〕