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대교구 소속 본당. 경북 성주군 성주읍 경산2동 소재. 1950년 3월 19일 왜관(倭館) 본당 관할 공소에서 본당으로 승격되었으며, 주보는 성 요셉. 관할 구역은 성주읍 선남면 · 용암면 전역과 월항면 · 대가면 일부 지역이며, 관할 공소는 월항 · 도흥 · 상신 · 용암 · 신부 · 광영 · 명포 등 7개소. 〔교 세〕 본당 승격시 600여 명, 1963년 4,002명, 1966년 4,497명, 1976년 4,851명, 1980년 4,775명, 1985년 3,505명, 1990년 3,546명, 1995년 3,409명, 1997년 3,481명. 〔역대 신부〕 초대 김재석(金在石) 요셉(1950. 3~1953), 2대 에그너(R. Egner, 王) 레지날도(1953~1956), 3대 되르플러(E. Dörfler, 鄭默德) 엑벨도(1956~1964), 4대 지베르츠(Z. Siebertz, 池仁洙) 에른스트(1964~1969), 5대 소이퍼링(A. Seuferling, 閔公道) 알로이시오(1969~1978. 7) 6대 박병원(朴炳元) 필립보(1978. 7~1981.4), 7대 정재완(鄭在皖) 니콜라오(1981.4~1984. 2), 8대 이재수(李在壽) 시몬(1984. 2~1987.6 9대 정춘석(鄭春錫) 아우구스티노(1987. 6~1990. 6), 10대 이응욱(李應昱) 요한(1990. 6~1994. 8) 11대 이창규(李昌奎) 마티아(1994. 8~1997. 3), 임시 최시동(崔時東) 요한(1997. 3~9), , 12대 나진흠(羅辰欽) 아우구스티노(1997.9 현재).
〔전사 및 공소 시대〕 병인박해 후 경상도 지방 전담 신부로 임명된 로베르(Robert, 金保祿) 신부가 신나무골에 체류할 무렵, 금릉군 장난면 황림 · 서무터 · 먹방이 등지의 산간 지역에는 이미 신자들이 정착하여 생활하고 있었고, 또 성주군 대가면 능골〔陵谷〕과 성주면 작은 배리(裵里, 현 경산5동)에 사는 신자들은 이봉조(요셉)를 중심으로 개인 집에서 공소 모임을 갖고 있었다. 이어 1894년 9월경 왜관에 가실(佳室, 현 낙산) 본당이 설립됨과 동시에 초대 주임으로 부임한 파이야스(C. Pailhasse, 河敬朝) 신부가 경상도 북서부 일대의 사목을 담당하면서 성주 지역도 그 관할 아래 들어가게 되었다.
한편 지금의 성주읍 지역에는 1900년경 산막터(현 성산3동)에 거주하던 주필학(야고보)이 가실 본당의 즈와요(Joyau, 玉裕雅) 신부에게 세례를 받은 후 전교에 힘쓰면서 복음이 전파되기 시작하였다. 그 결과 기존의 능골과 작은 배리를 비롯하여 월항면의 철산과 용암면의 금은개 등으로 복음이 확대되었고, 1917년 초에는 챙기 · 늑바우 · 곰실 등지까지 합쳐 신자수가 100여 명을 넘어서게 되었다. 이에 같은 해 4월 주필학의 아들 주무성(朱武成, 알렉스)은 가실 본당 투르뇌(Tourneux, 呂東宣) 신부의 도움과 사재를 털어 '성주 공소' 강당을 건립하였다. 그 후 성주 공소는 1928년 5월에 왜관 본당이 설립되자 1931년에 이 본당 관할로 변경되었으며, 교세 증가에 힘입어 마침내 1950년 3월 19일 본당으로 승격되었다.
〔성장과 변모〕 본당 승격과 동시에 초대 주임으로 임명된 김재석 신부는 경산2동에 있던 기와집(현 수녀원 자리)을 매입하여 성당으로 개조하였다. 그러나 1953년에 왜관 감목 대리구가 설정되면서 본당 사목권이 성 베네딕도회에 위임되어 에그너 신부가 2대 주임으로 부임하였다. 그리고 부임 이듬해 에그너 신부는 성당을 신축하고 1955년에는 사제관을 신축하였으며, 3대 주임 되르플러 신부 때인 1958년 12월에는 샬트르 성 바오로 수녀회의 분원이 마련된 데 이어 1961년 4월 22일에는 가천(伽泉) 공소가 본당으로 승격됨에 따라 7개 공소 650명의 교적이 이관되었다. 한편 본당에서는 1962년 3월 1일 성주군 초전면 용봉동(龍鳳祠)에 설립된 나환우 및 극빈 환자 치료를 위한 성심의원(현 가톨릭 병원 성주 분원)을 관리하기도 하였다.
1978년 7월 15일 본당 사목권이 다시 대구대교구로 환원되면서 6대 주임으로 부임한 박병원 신부는 이듬해 4월 1일 '한별 신용 협동 조합' 을 창립하였고, 8월 26일에는 광영(廣寧) 공소의 종각을 건립하였으며, 1980년 1월 5일에는 초전(草田) 본당을 분리하였다. 그리고 이듬해 3월 1일에는 성당 지하실에 '대화의 집' 을 마련한데 이어 1985년 10월 6일에는 성모상을 건립했고, 1987년 7월 5일에는 본당 주보를 창간하였으며, 1988년에는 피정의 집 증축 공사를 실시하였다.
그 동안 성주 본당은 교세 증가에도 불구하고 성당 신축 계획을 수립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1990년 9월 30일 '성당 건립 추진위원회' 를 구성한 뒤 기금 마련에 노력하여 1993년 3월 5일 기공식을 가졌고, 이듬해 3월 19일 지하 1층 지상 2층(총 건평 418평) 규모의 성당을 완공하여 축복식을 가졌다. 이와 함께 1996년에는 주일학교 등록제를 실시하고 도서실을 마련하였으며, 이듬해 10월 12일에는 성주 지역 신앙 대회를 개최하였다. 현재 성주 본당에서는 2000년 본당 설립 50주년을 기념하여 본당사 편찬 및 다양한 행사들을 개최할 예정으로 그 준비에 온갖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 대구대교구 ; 낙산 본당 ; 왜관 본당)
※ 참고문헌 《가톨릭 사전》 《倭館半世紀》, 천주교 왜관 교회, 1978/ 천주교 대구대교구 편, 《교구 총람》, 대구대교구 홍보국, 1986. 〔李裕林〕
성주 본당
星州本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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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