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 그리스도가 태어나 생활하다가 십자가에 못박혀 죽고 부활한 땅인 팔레스티나(Palaestia)를 가리키는 용어. 성지란 개념은 구약성서에 근거하여 만들어진 용어인데, 야훼가 아브라함과 그 후손들에게 약속했고 실제로 유대인들이 점령하여 성전을 세우고 야훼를 숭배하였던 가나안 땅이 '약속의 땅' 으로 특별한 거룩함(聖性)을 지니게 되었다는 사실에서 유래한다. 이러한 사실과 의미를 배경으로 유럽의 근대어들이 팔레스티나의 호칭으로 '성지' 라는 새로운 말을 만들어 냈고, 그 후 이 말이 점차 일반화되면서 중세에 이르러 완전히 보편화되었다.
〔성쇠와 변모〕 유대인들과는 달리 그리스도교 신자들에게는 팔레스티나를 성지로 여기고 공경하는 것이 그렇게 일찍부터 발전하지는 못하였다. 4세기에 와서도 예로니모(Hieronymus, 341?~420)는 역사적이고 실재(實在)의 팔레스티나가 성서에서 말하는 '약속의 땅' 이라는 관념을 부인하였다. 팔레스티나를 성지로 여기는 사람은 유대인들뿐이었고, 그 당시 그리스도교 신자들은 하늘의 땅만이 약속의 땅이라고 주장하였다. 그리고 팔레스티나는 성지로 간주한다 하더라도 영적인 의미에서만 인정하였다. 그러므로 그리스도교 신자들은 처음의 3세기 동안은 예수가 살았던 장소들이나 성서에서 말하는 땅에 대해 큰 관심이 없었고, 따라서 종교적 관심에서의 순례에도 별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그리스도교 신자들이 예루살렘과 팔레스티나에 종교적이고 신학적인 의미를 부여하기 시작한 것은 4세기 이후였다. 콘스탄틴 대제(306~337) 때에 발견된 예수의 무덤과 십자가가 그 첫 번째 계기가 되었고, 또한 예루살렘에 대해서도 '새 예루살렘' 에 대한 성서의 말씀을 새 그리스도교 도시가 된 실제의 예루살렘에 처음으로 적용시켰다. 이에 따라 순례도 잦아지게 되었는데, 예로니모는 성서의 땅이 그리스도교 신자 방문자들에게 준 깊은 인상을 묘사한 두 편의 서한을 쓰기도 하였다.
그리스도교 신자들에게 예루살렘과 팔레스티나를 매우 의미 있게 만든 또 다른 요소는 수도자들의 팔레스티나 진출이었다. 5~6세기에 이집트와 시리아에서 수도자들이 팔레스티나에 도착하였고, 그리스와 이탈리아 등 다른 나라에서도 이 지역의 사막에서 은수 생활을 하기 위해 모여들었다. 본래 그들은 순례지에서 성무를 집행하러 왔지만, 그 가운데 많은 수도자들이 수도 생활을 하기 위하여 팔레스티나에 남게 되었던 것이다. 그리고 팔레스티나 수도자들의 전기 작가들과 함께 성지의 개념을, 성지 안에 있는 예수와 관련된 일정한 장소들인 '성역' (聖域, loci sancti, holy places)이라는 개념과 구별하여 신학적으로 숙고한 사람들은 다름아닌 바로 이 수도자들이었다. 그래서 그리스도교 도시인 동시에 총대주교좌인 예루살렘이 팔레스티나와 함께 그리스도교의 중심지라고 확신하게 되었다.
성지라는 그리스도교적 개념은 그리스도교의 지배자들이 팔레스티나를 통치하고 성당과 수도원들이 많이 건축되었을 때인 5~6세기에 형성되었다. 사람들은 그리스도교화한 팔레스티나의 고고학적 유물에서 깊은 감동을 받았고, 또 현재는 사람들이 살지 못하는 사막이지만 당시에는 자립 도시로서 주민이 매우 많고 경제적으로도 풍요로움을 누린 도시 가운데 하나였음을 알게 되었다. 이렇게 성지라는 표현은 팔레스티나의 그리스도교적인 현실과 들어맞게 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생각은 634년 아랍인들의 침입으로 큰 영향을 받았다. 사라센에 의한 예루살렘 함락과 팔레스티나의 점령은 성지에 대한 지역적이고 정치적인 개념을 영적인 의미로 다시 바꾸어 놓았다. 이 시기에도 순례자들이 없지는 않았으나 당시 자료에는 성지라는 개념이 매우 드물게 사용되었다. 반대로 십자군 시기에는 성지의 개념이 보다 분명한 윤곽을 나타내게 되었다. 순례 가치가 있는 성역들이 늘어났고, 또 그것이 성지의 한 부분이 되기도 하였다. 예루살렘은 자연히 영적이고 실재적인 도시의 큰 상징이 되었으며, 그 결과 현실의 도시와 영적 도시 사이에 유대가 긴밀해지면서 세계의 중심지로 간주되기에 이르렀다. 초기의 십자군 자료에는 성지라는 개념이 비교적 드물게 나오고 오히려 예루살렘을 비롯한 성역들이 강조된 반면에 성지 자체는 고려의 대상이 되지 않았다. 그러나 제1차 십자군과 팔레스티나에 그리스도교 왕국이 들어선 이후부터는 산재해 있는 많은 성역들과 역사적인 성서의 현장들이 하나의 통일체로 간주되었다. 이렇게 십자군들은 팔레스티나를 예루살렘과 그 밖의 성역들과 더불어 하나의 통일체를 이루는 그리스도교 신자들의 성지로 변경시켰던 것이다.
십자군이 실패하고 이슬람교 신자들에 의해 팔레스티나가 다시 점령된 후 성지에 대한 정치적이고 지역적인 의미가 다시 사라졌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후의 성지에 대한 그리스도교적 신심은 여전히 존속되었다. 성지라는 말이 결국 그리스도교에서 하나의 관용어가 되었고, 마침내는 팔레스티나를 가리키는 명칭이 되었다. 더 나아가서 성지는 서양인들에게 있어 단지 순례지에 그치지 않고 사람들이 살 수 있는 땅이 되었는데, 이러한 사실은 처음에는 기사 수도회 회원들에게서, 그 다음에는 프란치스코회 회원들에게서 명백한 사실로 입증되었다. 프란치스코회 회원들은 중세 때부터 팔레스티나에 계속 거주하면서 마침내는 '성지의 수호자' 라는 명칭까지 얻었다. 또 가르멜회처럼 자신들의 수도회 기원을 성지로 소급시키는 수도회들도 나타났다. 십자군의 실패 이후에도 예루살렘 · 베들레헴 · 갈릴래아 · 나자렛 등에서는 아라비아어를 사용하는 그리스도교 신자들이 계속 남아서 생활하였다.
그리고 성지에 신학적인 의미를 부여하려는 저술들이 간행되기 시작했는데, 수리아노스(Francesso Surianos, 1485~1524)는 성지의 전대사에 관한 책을 저술하면서 단순히 성역들만이 아니라 성지까지도 다루었다. 수리아노스는 야훼가 모세에게 "네가 서 있는 곳은 거룩한 땅이니 네발에서 신을 벗어라"(출애 3, 5)라고 한 말을 인용하면서 성지가 다른 땅들보다 더욱 거룩한 것은 일찍이 성조와 예언자들과 성인들의 땅이었고 또한 야훼가 방문한 땅이
기 때문이라고 해석하였다. 그 후 18세기에는 예루살렘의 총대주교 크리산투스(Chrysanthus, 1707~1731)가 성지에 관한 책을 발간하였다. 그의 본래 의도는 성지 순례 사상을 반대한 루터주의자와 칼뱅주의자들과 같은 새 이단자들로부터 성지 순례를 변호하려는 데 있었으나, 그리스도교 신자들을 위해 성지의 의미에 대한 일반적인 설명도 덧붙여 놓았다.
서방 세계의 사람들은 19세기와 20세기에 와서 성지에 대해 새로운 발견과 자각을 하게 되었다. 특히 미국에서 성지에 대한 관심이 컸는데, 신세계로 이주한 최초의 이민자들은 그들의 체험과 옛날 유대인들이 가나안 땅으로 이주한 사실을 비교하였다. 그래서 뉴잉글랜드가 시온의 새로운 거주지로서 성지로 간주되기도 하였다. 이때 새롭게 나타난 또 하나의 특징은 유럽과 미국 학자들이 성지로 각종 여행을 함으로써 성지에 대한 역사적이고 학문적인 관심을 불러일으키게 되었고, 이를 위한 연구 단체들이 여러 곳에 설립되었다는 사실이다. 그 결과 성지에 대한 연구서들의 간행이 급증했고, 성지를 자신들의 신앙의 고향처럼 생각하고 순례 여행에서 많은 감동을 받고 돌아오는 순례자도 끊임없이 이어졌다. 20세기 후반에 들어서도 팔레스티나 성지는 계속해서 그리스도교의 사상과 신심에서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성 역〕 성역이라는 말은 성지인 팔레스티나와는 구별되는 말로서, 팔레스티나 성지 자체가 아니고 그 안에 있는 예수의 활동이나 수난과 관련된 성묘(聖墓)나 만찬 장소(coenaculum) 등 특정한 장소나 건물들을 지칭하는 말이다. 근대의 서양어들도 성지는 땅(terma)이라는 말로 표현하고, 성역은 장소(locus)라는 말을 복수형으로 사용함으로써 양자를 구별하고 있다. 직역하면 성소(聖所)라는 말이 더 적절해 보이지만 성소는 성전 안의 일부 장소를 가리키는 고유 용어로 거의 일반화되어 있어서 혼동을 피하고자 성역이라는 말을 사용하기로 하였다. 그런데 현재는 이렇게 서로 다른 의미의 두 용어가 혼용되고 있고 사전에서조차 가끔 혼동되어 설명되고 있는 실정이다. 예루살렘을 유대교의 성지로, 메카나 메디나를 이슬람교의 성지라고 하는 것이 그러한 사례들이다. 그리스도교에서는 예루살렘이 결코 성지가 될 수 없고, 예루살렘도 베들레헴이나 골고타처럼 예수와 관련된 여러 성역 중 하나에 지나지 않는다.
성역의 출현과 그곳으로의 순례는 세계의 모든 큰 종교들의 특징이다. 성역들은 일반적으로 두 가지 유형으로 나타나는데, 첫째는 우리 나라의 경우 단군 신화와 관련되어 마니산과 구월산이 영산(靈山)으로 간주되는 것처럼 산과 숲 등 자연 경관이 신성시되는 경우이고, 둘째는 종교의 창시자 · 성자 · 수행자들의 활동지 또는 그들의 묘소 등이 영지(靈地)로 간주되는 경우이다. 일반적으로는 자연 경관 · 영지 · 그곳의 건물들이 일체가 되어 하나의 성역을 형성하는 경우가 많다.
그리스도교의 성역들은 처음에는 그리스도의 삶과 수난을 상기시키는 곳들만을 가리켰다. 예수의 성묘 · 올리브 동산 · 게쎄마니 · 비아 돌로로사(Via dolorosa, 십자가의 길) · 베들레헴의 동굴 · 나자렛 · 겐네사렛 호수 · 타볼산 등이 그중에서 가장 오랜 성역들이고 또 가장 인기 있는 성역들이었다. 물론 그 전에도 성역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이러한 성역들이 주로 제정되기 시작한 것은 4세기부터였다. 그러나 예수와 관련되지 않은 사도들의 활동지, 순교자들과 성인들의 순교지나 묘소 또는 그들의 유해가 보관되어 있는 곳, 천사나 성모의 발현지, 사적(秋的) 계시나 기적 또는 성화상의 기적으로 유명해진 곳, 전대사와 관련된 곳, 유서 깊은 성당 등지에도 넓은 의미에서의 성역 개념이 적용되면서 성역의 수가 부쩍 늘어나게 되었고, 지역적으로도 팔레스티나만이 아니라 서방과 동방의 각지로 확대되었다.
사도들과 관련된 성역으로는 요한 사도의 무덤이 있는 에페소, 마티아의 무덤이 있는 독일의 트리어, 야고보 사도가 선교하러 갔던 스페인의 산티아고 등을 들 수 있다. 에페소는 동시에 마리아의 공경 장소가 되었는데, 성모 마리아와 관련된 성역으로는 마리아가 묻혔던 요사팟 계곡, 이탈리아의 로레토, 멕시코의 과달루페, 파리의 기적의 메달 성당 등 말고도 근대에 와서 루르드와 파티마 등 성모의 발현 장소들이 많이 생기면서 성역수에 있어서 첫 자리를 차지하게 되었다. 특히 루르드는 놀라운 치유의 기적이 많이 나타나 가장 명성 높은 성역이 되었다.
순교자들의 경우에는 순교지 · 묘소 · 순례 성당이 있는 곳들이 일찍부터 성역으로 지정되었다. 로마는 베드로와 바오로 사도를 포함한 로마 박해 시대 순교자들의 엄청난 숫자와 베드로 대성전 때문에 순교자 성역 중에서 첫 자리를 차지하게 되었다. 그 밖에도 순교자와 관련된 성역으로는 고스마와 다미아노(Cosma et Damianus, ?~303?) 순교자의 묘소가 있는 콘스탄티노플, 치프리아노(Cyprianus Carthaginensis, 200~258) · 스테파노(+37?) · 보니파시오(Bonifatius, 675?~754)의 묘가 있는 독일의 풀다(Fulda), 프랑스 최초의 순교자들 때문에 유명해진 파리의 몽마르트르 등을 들 수 있다.
성인 및 수도자들과 관련이 있는 성역으로는 베네딕도(480?~547?) 성인이 수도원을 세운 몬테 카시노(Monte Cassino) 아시시의 프란치스코(1181~1226) · 파도바의 안토니오(Antonius Patavii, 1195~1231) · 아일랜드의 파트리치오(Patricius Arvernensis, +5세기 말경) · 독일의 오틸리 아(Othilia, +720) 성녀와 관련된 장소와 성당들이 새로운 성역으로 점차 많은 순례자들을 끌게 되었다. 성역으로 간주되는 성당들로는 쾰른 · 샤르트르 · 파리의 노트르담 · 웨스트민스터의 주교좌 성당 등이 유명하다. 동방교회의 성역 중에는 수도원이 많은데 그 대표적인 것이 시나이 산 밑에 있는 가타리나 수도원이고, 성당으로는 현재 박물관으로 사용되고 있는 하기아 소피아(Hagia Sophia) 성당이 대표적이다. 그러나 1453년에 콘스탄티노플이 터키에 의해 정복된 이후 제3의 로마로 자처한 모스크바가 러시아 정교회의 중심지가 되면서 모스크바에도 이콘과 관련된 성역들이 등장하였다.
〔한국 교회의 성지〕 현재 한국 가톨릭 교회에서 성지로 불리는 곳은 200개가 넘는다고 한다. 그리스도교에서는 팔레스티나만이 성지로 불리기 때문에 팔레스티나를 제외하면 고유한 의미에서의 성지는 한국은 물론 어디에도 있을 수 없다. 그러므로 한국에서 성지로 불리는 곳들은 고작해야 성역으로 불릴 수 있는 장소들이다. 한국에서는 순교지가 일찍부터 치명 터로 불려 왔는데, 이치명 터가 '순교 성지' 로 불리기 시작한 것은 1956년에 새남터 순교 기념탑이 세워지면서부터이고 그 후 전국 각지에서 성지로 불리는 곳들이 속출하게 된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새남터 기념탑에는 성지를 한글로 표기하지 않고 聖址 로 표기했었다. 이것은 치명 터에 대한 매우 적절한 한자 표기일 뿐만 아니라 본연의 성지와 구별되는 이점도 있다. 만약 성지를 계속 이렇게 한자 '聖址'로만 표기하였다면 성역이라는 말보다 더 적절하고 더 한국적인 표현이 되었을지 모른다. 그러나 한글의 전용화로 성지가 한글로만 표기되면서부터 이러한 구별은 거의 불가능해졌다. 이제 한국 교회는 이 성지들을 성역으로 부르든지, 아니면 더 적절한 말로 바꾸어 본연의 성지와는 구별시켜야 할 것이다. 그리고 성역이라는 말을 사용한다 하더라도 한국 교회에는 성역으로 불릴 만한 곳은 아직은 순교자와 관련된 곳밖에 없고, 그것도 순교지나 순교자의 묘소 정도에 국한되어야 하기 때문에 이러한 장소들만 성역으로 부르고 나머지 장소는 교회 사적지로 부르든지 하여 성역이라는 말의 남용을 막아야 할 것이다. (→ 성지 순례 ; 팔레스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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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지 聖地 〔라〕terra sancta 〔영〕holy la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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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지는 예수가 태어나 생활하다가 죽고 부활한 땅인 팔레스티나(왼쪽)를 가리키는 용어로, 예수의 활동이나 수난과 관련된 '성역' 과는 구별되어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