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직 매매

聖職賣買

〔라〕simonia · 〔영〕simon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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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11세기에는 성직 매매로 인한 폐단이 매우 성행하였다.

9~11세기에는 성직 매매로 인한 폐단이 매우 성행하였다.

영적이며 종교적인 것을 돈이나 다른 물질로 얻는 행위. 즉 재치권 · 교회록 · 교회록 지정권 등 하느님의 권한을 위임받은 신성한 권한을 현실적인 가치로 매매하는 행위를 가리키는 용어이다. 매매는 금전적인 이해 관계로 사는 행위와 파는 행위로 나눌 수 있는데, 성직 매매도 사는 성직 매매와 파는 성직 매매로 구분된다. 성직 매매는 모든 종교에서 완전히 근절시킬 수 없는 폐단이면서 동시에 드러나지 않게 이루어져 정확한 실상을 밝히기는 어렵다.
〔역사적 배경〕 성직 매매를 의미하는 라틴어 '시모니아 (simonia)는 사도 행전 8장 18-24절에 나오는 시몬(Simon)이라는 사람에게서 유래되었다. 베드로와 요한사도의 안수로 성령이 사람들에게 주어지는 것을 본 그가 돈을 주고 그 권능을 사려고 하였기 때문이었다.
성직 매매의 폐단이 성행한 시기는 9~11세기로, 유럽의 역사적인 상황과 아주 밀접한 연관을 갖고 있다. 당시 전쟁을 수행하는 기사들의 생계를 위해 수도원이나 교구 수입의 일부가 일반인들에게 떠넘겨졌었는데, 카알대제도 교회의 모든 재산을 왕실의 소유로 여겼다. 814년 카알 대제 사후에 제국이 분할됨으로써 통일된 정치 권력이 사라지고 권력은 지방 귀족의 수중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또 이 시기에 북방 민족에 의해 큰 하천을 따라 약탈이 자행되었는데, 동쪽에서는 헝가리인들이, 남쪽에서는 사라센들이 약탈을 자행함으로써 유럽은 무질서한 사회가 되고 말았다. 그리고 교황직 자체도 이탈리아 귀족들에 의해 권력 투쟁의 대상이 되면서 교회의 직무나 재산은 귀족들의 수중으로 들어갔다. 이를 사유 교회(私有敎會) 체제라고 하는데, 이는 게르만 민족들의 법적인 개념에 의한 것이다. 즉 부자가 자신의 땅에다 성당이나 경당 혹은 수도원을 지었을 경우에 재산뿐만 아니라 그 직무까지도 자신의 소유로 여기는 것이다. 팔거나 상속을 하거나 선물할 수도 있었으며, 자신이 선택한 사람을 교회 직무에 따라 임명할 수도 있었다. 또한 일반 신자들의 헌금이나 십일조를 마음대로 사용할 수 있는 제도이기도 하였다.
이러한 상황에서 교회와 국가가 밀접한 연관을 갖게 되면서 주교들이나 대수도원 원장들도 정치적으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게 되었고, 독일 지역에서는 주교가 제후직을 겸임함으로써 왕이나 영주들에 의한 성직 서임이 일반화되었다. 신자인 주인이 교회를 잘 보살필 사람을 아무 대가 없이 임명하는 경우도 있었지만, 직무를 원하는 사람이 많아지면서 주교가 되기 위한 성직 매매가 이루어지기도 하였다. 어떤 교구의 주교가 되고 싶은 사람은 주인인 공작이나 왕에게 얼마를 내겠다고 제안하고 그 협상이 이루어지면 그 돈을 내고 주교직에 임명되는 것이었다. 이러한 성직 매매는 이를 사는 신자들도 문제이지만 교회의 재산이나 성직 서임을 마음대로 할 수 있게 된 귀족들도 책임을 면할 수 없다. 그러나 사회가 안정되어 가면서 교회는 즉시 이 폐단을 없애기위한 개혁을 하게 되었다.
〔구 분〕 사는 성직 매매 : 직무에 따른 재산과 수입 정도에 따라서 주인이 그 값을 정하고 사려는 사람이 이를 수용하는 형태이다. 교회의 직무와 재산 정도의 차이는 다양하나, 크게는 주교직이고 작게는 본당 신부 자리였다. 이 사는 형태는 봉건제 사회에서 임명에 대한 감사나 그 직무에 따른 재산의 소유에 대한 세금으로도 생각할 수 있는데, 즉 영적인 권한에 대한 지불이 아니라 교회의 재산과 그의 수입에 따른 것을 사는 것이라고 할 수도 있다. 하지만 교회직에 대한 영적 · 물적 관계 구분이 불명확하고 그 직무를 사기 위해서 모든 방법을 동원하고, 파는 사람 역시 많이 받기 위해 애쓴다면 큰 문제가 되는 것이다.
파는 성직 매매 : 성직을 파는 경우는 많은 돈을 내고 성직을 샀다면 어떻게 하든지 자신이 쓴 만큼의 돈을 그 직무를 통하여 다시 채우려고 한다. 낸 돈은 많은데 받은 직무에 따른 수입은 적을 때, 영적인 직무에서 돈을 받으려고 할 것이다. 성직자가 아닌 주인의 욕심에 의해서 직무를 산 사람이 이제는 자신이 받은 영적인 직무를 수행하면서 돈을 요구하고 기회를 가리지 않고 돈을 만들려고 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세속 주인에게서 주교직으로 임명될 때 돈을 주었다면, 주교직 서품을 위해서 대주교에게 다시 돈을 주게 되는 일 등이다. 이러한 사례는 역사적으로 증거가 남아 있지 않는 일이어서 증명할 수는 없지만, 공의회와 여러 교회 회의에서 하느님의 은총을 빙자해 사람들에게 돈을 받아서는 안된다는 것을 언급한 것으로 보아 10세기 전후에 성행하였음을 알 수 있다.
〔단죄와 개혁〕 교황 그레고리오 1세의 확대 적용 : 성직 매매가 점차 일반화되자 개혁의 필요성을 느끼게 된 교회는 이를 근절시키기 위하여 성직 매매 행위를 확대 적용시켰다. 특히 교황 그레고리오 1세(590~604)는 성직 매매를 돈이나 선물로 직접적으로 건네는 행위(Munus a Manu), 찬사나 약속이나 부탁을 함으로써 직무를 얻으려고 하는 행위(Manus a Lingua), 직무를 줄 수 있는 자에게 하지 않아도 되는 봉사를 하는 행위(Munus ab Absequio)등 세 가지로 구분하였다. 그리고 10~11세기의 윤리학자들이나 법률학자들은 교황 그레고리오 1세가 확대 해석한 성직 매매의 구분을 적용시키려고 하였으며, 많은 성인들은 복음 정신에 어긋나는 이 성직 매매에 대하여 사회의 무질서로 생긴 현상으로 단죄하였다. 그들은 돈을 주는 사람이나 받는 사람 모두 범죄자로 여겼다. 그래서 성직 매매는 지방 교회 회의와 교황청으로부터도 계속해서 단죄를 받았다. 마인츠 교회 회의(888)에서는 돈을 주고 직무를 받은 사람은 마땅히 쫓겨나야 한다고 결의하였다. 981년에 교황 베네딕도 7세(974~983)는 로마에서 오토 2세 황제와 함께 교회 회의를 열어서 성직 매매를 단죄하면서 돈으로 이루어지는 모든 서품은 금지하였다. 그러나 서품 후에 자발적인 작은 선물은 허용할 수 있다고 하였고, 만약에 금전이 없어 서품을 받을 수 없을 경우 로마로 오면 로마가 대신 서품을 주겠다고 결의하였다.
그레고리오 개혁 : 성직 매매를 근절시키기 위해서는 사회 전체가 변화되고 사회 불안이 사라지고 세속적인 직무 임명도 없어야 하며, 윤리도 바로 세워져야 했다. 이것이 11세기와 12세기의 부흥이라고 불리는 '그레고리오 개혁' 이다. 교황 그레고리오 7세(1073~1085)의 이름을 딴 이 개혁은 교황 레오 9세(1049~1054) 때부터 시작되었는데, 이 기간 동안 교황들은 교회의 폐단을 없애기 위해 그 원인이 되는 성직 임명의 자유를 위해 노력하였다. 교회에서는 자유로운 선출에 의해 사람을 임명하는 일이 급선무였고, 결국 카놋사(Canosa) 사건에서 근절의 계기를 마련하여 교회법에 의한 성직 임명의 길을 열게 됨으로써 성직 매매 근절의 가능성이 생기게 되었다.
교회의 개혁을 위해 일생을 바친 교황 그레고리오 7세는 1074년에 로마에서 교회 회의를 개최하여 다음과 같은 내용을 주교들에게 전달하였다. "누구든지 돈이 오고간 성직 매매로 성직이나 교회의 권위를 차지한 사람은 지금부터는 더 이상 교회의 직책을 행사하지 못한다. 앞으로 돈으로 성당을 얻는 사람은 성당을 떠나야 할 것이다. 이제 더 이상 성당들은 어떤 누구도 사거나 팔 수 없을 것이다. 그리고 이 교회의 명령을 어기는 자는 미사를 드릴 수도 없거니와 드린다 해도 신자들은 참여해서는 안된다." 이러한 내용은 이전에 교황들이 개최한 교회 회의의 결정보다 더 새로운 것은 아니지만, 이전과 다른것은 이 결정을 교회 내에 적용시키려는 의지와 노력이었다. 교황은 사절들을 파견해서 성직 매매자를 이단자로 취급하여 신자들에게 미사 참례를 금지시키고 그들에게서 이루어진 성사는 무효라고 함으로써 강한 반발도 불러일으켰다. 성직 매매를 근절시키기 위한 강한 표현이나 결정은 금방 효과가 나타나지 않았다. 즉 지속적인 노력이 필요하였는데, 왕들과 영주들의 반대와 특히 독일의 반대로 교황청은 이들과 투쟁을 하여야 했던 것이다.
라테란 공의회 : 영국과 프랑스와 독일과의 다양한 협상이 이루어지고 난 후, 1123년 3월에 마침내 제1차 라테란 공의회가 개최되었다. 이때 모인 약 900명 정도의 주교들과 수도원장들은 평신도에 의한 성직 서임을 금지시키고 성직 매매를 금지시켰다. 그레고리오 개혁의 끝이라고 할 수 있는 이 공의회에서 첫 번째로 나온 조항이 바로 성직 매매였다. "교부들이 법에 따르고 교회 직무에 따른 의무로, 사도들의 권위의 힘으로 우리는 결정적으로 하느님의 교회 안에서 어떤 누구도 돈을 매개로 서품하거나 활동하는 것을 금한다. 따라서 만일 누구든지 교회 안에서 성직 매매의 형태로 성직을 차지하였다면 절대적으로 그 직무에서 해제될 것을 선언한다." 이 공의회로 교회의 자유가 찾아졌고 윤리와 질서가 세워짐으로써 성직 매매는 현저히 줄어들었다. (→ 그레고리오 개혁 ; 라테란 공의회 ; 사유 교회 ; 성직 서임권 논쟁 ; 시몬 마구스 ; 카놋사 사건)
※ 참고문헌  S.A.I.E. ed., Storia della Chiesa, vol. 7(888~1057), pp.608~621/ 一, Storia della Chiesa, vol. 8(1057~1123), pp. 99~180/ 一, Storia della Chiesa, vol. 9(1123~1 198), pp. 182~186/ Marietti ed., Nuova Storia della Chiesa, vol. 2, pp. 193~198/ Bihlmeyer-Tuechle, Storia della Chiesa, vol. 2, pp. 85~167. 〔具本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