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원교구 소속 본당. 경기도 수원시 권선구 고색동 376-5 소재. 1970년 7월 20일 세류동 본당으로부터 분리 설립되었으며, 주보는 성 프란치스코 사베리오. 관할 구역은 고색동, 오목천동, 탑동 일부, 화성군 매송면 · 봉담면 · 태안읍 일부 등이며, 소속 공소로는 와우리(봉담면 와우리), 기안리(태안읍 기안리), 어천리(매송면 어천리) 등 3개소가 있다. 〔교 세〕 1981년 2,100명, 1982년 1,200명, 1989년 2,037명, 1993년 2,293명. 〔역대 신부〕 초대 박건순(朴建淳) 베네딕도(1970. 7~1971. 2), 임시 최윤환(崔允煥) 암브로시오(1971. 2~1971. 8), 2대 최경환(崔敬煥) 마티아(1971. 8~1975. 3), 3대 최재용(崔在鎔 바르톨로메오(1975. 3~1978. 3) , 4대 임충승(林忠承) 시몬(1978. 3~1983. 2), 5대 서강하(徐康夏) 마태오(1983. 2~1989. 10), 6대 이상영(李相榮) 베드로(1989. 10~1993. 2), 7대 이광희(李光熙) 가브리엘(1993.2~현재).
〔설립과 성장〕 본당의 복음 터전은 1910년 왕림 본당의 2대 주임 알릭스(J. Alix, 韓若瑟) 신부가 설립한 '오목내〔梧木川〕 공소' (고색동 공소)에 있다. 이 공소는 1921년 수원 본당(북수동 본당의 전신)이 설립되면서 여기에 속하였다가 1959년 신설 고등동 본당에, 1968년에는 다시 세류동 본당에 속하게 되었다. 그 동안 공소 신자들은 1952년 이을출(루치아)이 봉헌한 부지 위에 약 25평의 강당을 건립하였으며, 1964년에는 513평을 추가로 매입하고 이듬해 사제관을 건립, 은퇴한 정원진(鄭元鎭, 루가) 신부를 이곳에 모시는 등 본당 승격을 위한 노력을 기울이기 시작하였다. 그 결과 1970년 7월 20일 마침내 세류동 본당으로부터 독립하여 본당으로 승격되었으며, 초대 주임 박건순 신부를 맞이하게 되었다. 본당 승격 후 신자들은 즉시 성당 건축 계획을 실행에 옮겨 1971년 5월 12일에 기공식을 가졌으며, 2대 최경환 신부 재임시인 1971년 11월에 연건평 103평의 성당을 완공하였다. 이에 이어 본당에서는 1972년에 사제관, 1976년에 수녀원을 신축하였고, 1979년에는 성당을 보수하였으며, 1983년 11월에 교육관을 신축하여 이듬해 김남수(안젤로) 주교 집전으로 성당 · 사제관 · 수녀원 봉헌식을 가졌다. 한편 신자들은 초창기에 이미 사목협의회 구성 및 구역 반 편성의 기틀을 잡았고, 성인 · 소년 꾸리아 및 연령회, 성가대, 제대회, 성모회, 울뜨레아, 청년회, 학생회, 교사회 등을 조직하였다. 뿐만 아니라 1978년 9월 본당 운영 및 사목 활동 지원을 위해 미리내 성모 성심 수녀회의 수녀들을 초청하였으며, 전교 활동에도 힘써 1981년에는 2,100여 명의 신자를 기록하게 되었다. 그러나 이해 8월 1일 와리 본당(수암 본당의 전신)이 분가됨과 동시에 시흥군의 수암면 · 군자면 내의 공소 9개소가 자본당으로 이관됨으로써 신자수가 크게 감소되었다가 이후 다시 증가하였다. 현재 본당에서는 신축 성당 건립 계획을 수립하고, 이를 실천하기 위해 전신자가 함께 노력하고 있다. (→ 수원교구) 〔車基眞〕
고색동 본당
古索洞本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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