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직주의

聖職主義

〔라〕clericalismmus · 〔영〕clericalis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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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직주의는 잘못된 집단 정신의 산물이며 영적 교만이다.

성직주의는 잘못된 집단 정신의 산물이며 영적 교만이다.


19세기에 교회를 비방하고 교회의 영향력을 배제한 국가 절대주의를 표방하였던 프랑스와, 국가의 통일을 이루어 가던 과정에서 교황청과 견해를 달리하였던 이탈 리아의 반로마주의자들이 만들어 낸 용어. 반로마주의자 들이란 대부분 종교 개혁 이후 계몽주의의 영향을 받은 평신도들인데, 이들은 성직자와 평신도들의 권리들과 교 황 (ultramontanism)를 강력하게 옹호하는 가톨 릭 신자들을 비판적으로 지칭하기 위하여 '성직주의' 라 는 용어를 사용하였다. 그리고 성직자이건 평신도이건 교회의 권리와 통치권을 옹호하는 이들을 비난하고 공격 하는 사람들의 주의와 주장의 체계를 '반성직주의' (anticlericalismus)라고 한다. 또 반성직주의가 반로마주의에서 시작된 것이지만, 반로마주의와 반성직주의가 꼭 같은 것은 아니다. 〔용 어〕 성직주의라는 용어는 칠십인 역본 구약성서와 신약성서에서 사용된 그리스어 '클레로스'(κλήρος)에서 유래되었다. 이 단어는 "하느님으로부터 주어진 것을 할 당받은 몫"이라는 뜻을 지니면서 동시에 그러한 몫에 걸 맞는 직무를 일컫는다. 그 대표적인 예가 사도 행전 1장 17절이다. 성직주의는 형용사 '성직자의' (clericalis)에서 변형된 것으로, 그리스도교의 영향을 많이 받은 유럽에 서는 중세부터 형용사 '성직자의' 가 집합적인 의미와 개 인적인 의미에서 성직자에 관련된 것을 지칭하기 위해서 사용되었다. 그런데 '성직주의' 라는 용어가 만들어진 것 은 19세기 이후 평신도들로 구성된 반로마주의자들에 의해서였다. 그들은 형용사 '성직자의' 가 지닌 '단순 지 칭적' 인 면보다는 정치적이고 조직적이며 체계적인 면을 복합적으로 지칭하기 위해 이 단어를 변형시켜 사용하기 시작하였던 것이다. 즉 그들은 성직자만이 아니라 평신 도로서도 교회와 세상 안에서 현실적으로 행사해야 한다 고 여기는 교회의 권리들과 교황 지상주의를 강력하게 옹호한 가톨릭 신자들을 비판적으로 지칭하기 위하여 사 용하였다. 〔용어의 사용〕 교황권 옹호자들은 국가적이거나 지역 적인 수준에서 교황 · 주교 · 사제들의 의향에 시민 정부 들이 순명하도록 만들려고 하였다. 이에 대하여 이러한 생각과 활동에 반대하던 반로마주의자들은 성직주의라 는 용어를 '성직 권력' · '성직 기술' · '성직 압제' · '팽 중' · '교회 빈대' 등과 거의 동의어처럼 사용하였고, 소 외와 불안의 요인을 조성할 만한 성직자들의 경향을 가 리킬 때에도 이 용어를 사용하였다. 따라서 성직주의라 는 용어의 의미가 모호하지만 일상적으로는 그 말이 뜻 하는 여러 가지 도덕적인 가치를 고려하지 않은 채 그저 비난용으로 사용되었던 것이다. 이러한 용도로 사용되던 성직주의가 공식적으로 활자 화된 것은 1883년에 영어권 기자들의 기사를 통해서였 다. 그 후 20여 년 사이에 이 용어가 지닌 본래의 뜻 이 외의 의미들이 폭 넓게 부여되었으며, 더욱 비판적인 용 어로 사용되었다. 또 공적인 일의 수행에 대한 종교의 간 섭 또는 종교가 국가를 지배하려는 것으로 여겨지는 온 갖 행태를 표현할 때에도 이 용어를 사용하기 시작하였 다. 반로마주의적인 사고에 젖은 정치인들은 훌륭한 사목 자나 평신도들이 아니라 외부 세력이라고 간주된 국제적 인 수도 단체들, 특히 중앙 집권적인 교권 체제를 고수하 려는 교황청과 깊은 연대를 주장하고 또 양도할 수 없는 재산권을 행사하고 있는 예수회의 영향력을 제거하고 싶 어하였다. 그들에게는 예수회가 성직주의의 온상으로 여 겨졌던 것이다. 그렇지만 본래 예수회는 성직주의에 대 한 반발로 시작되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오랜 시간이 지나면서 예수회는 교황권과 깊은 관련을 맺는 가운데 새로운 성직주의의 모습을 보였다. 반성직주의자들도 성직주의자들의 권한 남용을 막는다는 핑계로 종종 교회를 공격하였다. 그 사실을 대표하 는 유명한 구절이 1877년 5월 4일에 감베타(Léon Gambetta)가 인용한 "성직주의, 그것이 바로 적이다!"(Le cléricalisme, voilà I'enemi!)라는 말이다. 감베타는 이 구절 을 그의 친구인 페이라(Peyrat)의 말에서 인용하였다고 주장했으나, 페이라가 정작 한 말은 "가톨릭주의, 그것 이 적이다!"(Le catholicisme, c'est là I'ennemi!)였다(L. Capéran, Histoire Contermporaine de la Laïcité Française, vol. 3, Paris, 1957, pp.60, 63). 〔교회의 태도〕 평신도들의 자기 성찰 : 이 용어가 다의 적인 개념으로 사용되고 이와 더불어 교회를 박해하는 상황을 체험하게 된 평범한 가톨릭 평신도들은 깊은 자 기 성찰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즉 강력한 평신도주의 (laicism)의 대두가 결국 일찍이 황제권을 누르고 합법적 으로 세계 통치를 할 수 있는 교황권의 확립자 교황 그레 고리오 7세(1073~1085)의 후계자들의 잘못 때문은 아닌 지, 칼뱅(John Calvin, 1509~1564)에 의해 시작된 프랑스 내에서의 교파 전쟁이 낭트 칙령(1598)으로 마무리된 듯 했다가 그 낭트 칙령의 폐지(1685)로 교파 전쟁의 양상 이 재현되고 만 것은 잘못된 결정 때문이 아닌지, 1682 년에 공포된 후 1693년에 철회되기는 하였어도 19세기 까지 프랑스에서 유효했던 갈리아주의(Galicanism)의 주 의 · 주장은 정당한 것인지, 프랑스 혁명으로 프랑스 전 체 교회의 재산 몰수 및 국유화와 더불어 프랑스 교회를 로마와 분리시켜 국가에 편입시킴으로써 가톨릭의 구조 와 조직 그리고 가톨릭 사상 자체의 파괴까지 초래하였 던 일들이 의미하는 것은 무엇인지 진지하게 생각하게 되었던 것이다. 성직자들의 반응 : 평신도들은 이렇게 깊은 자기 성찰 을 하고 있었지만, 성직자들은 여전히 면책권을 요구하 고 특권을 행사하며 지나치게 자기 중심적으로, 또 평신 도들을 희생시켜 가면서까지 자신들만의 이익을 증대시 키려고 교리를 이용하여 권력이나 재물을 탐하는 이들이 많았다. 또 본당 사목자 가운데는 마치 "일정한 무리들 의 두령"인 양 처신하는 이들도 많았다. 그래서 성직자 들의 이러한 행태 즉 자신들에게 주어진 특권을 남용하 여 자신들의 이익을 추구할 때의 행태까지도 성직주의라 고 일컬어지기도 하였다. 이렇게 처신하는 성직자들은 평신도들로부터 성직주의에 젖어 있다고 비판을 받게 되 면 그때마다 흔히 신적 권위에 근거한 성직 제도와 교계 제도를 근거로 자기 변호를 하였다. 〔평가와 전망〕 다의적인 의미에서 성직주의는 봉사에 대한 직무 의식과 편협성, 또는 잘못된 집단 정신의 산물 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의미에서의 성직주의는 과거에 도 존재했고 지금도 존속하며 앞으로도 존재할 것이다. 비록 그 용어는 사라질지라도 그 용어가 담고 있는 의미 를 드러내는 면모들은 지속되리라고 여겨진다. 그리고 이런 의미로 말할 때의 성직주의는 그리스도교에서만의 예외적인 주의 · 주장이 아니라는 것도 알아두어야 한다. 그러나 그리스도교 안에서만이라도 성직주의는 사라져야 한다. 현대의 신학적인 이해에 근거한 교회론에 의 하면 성직주의는 교회 내적인 차원에서는 불일치의 요인 이요, 세상 안에서의 교회라는 차원에서는 거짓 예언자 로서의 표상일 따름이다. 스스로 성직주의를 표방하지 않았을지라도 역사 안에서 성직주의에 젖어 있는 이들이 라고 비판받았던 이들의 행태는 언제나 성직자와 평신도 의 조화 있는 관계를 깨뜨리고, 평신도들 앞에서 우월주 의에 빠져 있게 되며, 직업주의를 일방적으로 지나치게 고집하고, 사회 생활 중에 시대의 표징을 제대로 읽지 못 함으로 인해서 잘못된 방향을 제시하는 것이었음을 확인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 성직주의에 젖어 있는 성직자들 은 분리주의적 성향이나 도발적인 태도를 취하게 되고, 그로 인해서 성직자들 모두를 공동체로부터 그리고 사회 로부터 고립 혹은 소외시키는 결과를 초래하기도 한다. 요컨대 그들은 자신들이 원하지도 않은 상태에서 반사회 적이고 반시민적인 성향을 지닌 자들로 오인되어 버리고 마는 것이다. 심지어는 교회 안에서 그리고 사회 안에서 자신의 직무와 소명에 합당하게 성실한 생활을 해나가는 성직자들조차 성직주의에 젖은 자라는 오명을 듣게 만들 기도 한다. 따라서 성직자들은 성직주의에 젖지 않으려고 하는 의 지와 지속적인 노력을 하여야 한다. 예외적인 특권이 있 다고 여기는 확신과 쉽게 빠져 버리는 영적 교만, 자신들 의 계급은 신성하다는 의식을 철저하게 버리고 봉사와 섬김만을 인격적으로 충실히 수행하며 살아야 할 것이 다. 여기에 덧붙여 성사 전례의 거행 및 교회의 운영 체 계에 관련되어 있는 사항들을 독점하지 않고 평신도들과 함께 공동으로 협력하면서 분담하는 일에도 적극성을 띠 어야 할 것이다. 반면에 평신도들 역시 자신들의 사명이 나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지 않으면서 자신들을 변명하기 위하여 성직자들에게 그 탓을 돌리거나 그들을 향하여 무조건 성직주의라고 비난해서는 안될 것이다. (→ 교황 지상주의 ; 반성직주의 ; 성직자 공민 헌장 ; 평신도주 의) ※ 참고문헌  Herrmann Foerst, κλήροςs, 《TDNT》 3, PP. 776~785/ 《ERE》 3/ Richard P. McBrien ed., The HarperCollins Encyclopedia of Catholicism, San Francisco, Harper Co., 1981, pp. 636~641/C. Berthelot du Chesnay, 《NCE》 3, p. 951. 〔李順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