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찬 전례

聖餐典禮

〔라〕Liturgia Eucharistica · 〔영〕Liturgy of the Euchari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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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찬 전례의 기원은 십자가 위에서의 죽음을 눈앞에 둔 예수의 최후 만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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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찬 전례의 기원은 십자가 위에서의 죽음을 눈앞에 둔 예수의 최후 만찬이다.


Ⅰ . 기원 Ⅱ . 십자가 제사와의 관계 Ⅲ . 그리스도의 영적 제사로서의 십자가 죽음 Ⅳ . 교회의 영적 제사인 성찬례 Ⅴ . 성찬례는 파스카 신비의 기념 Ⅵ. 각 부분의 해설 Ⅰ . 기원 미사는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눌 수 있는데, 첫째 부분은 말씀의 선포가 주를 이루는 말씀 전례이고, 둘째 부분은 예수의 최후 만찬에서 기원한 성찬 전례이다. 말씀 전례 가 보편 지향 기도로 끝난다면, 그 뒤를 이은 예물 봉헌 으로 성찬 전례가 시작된다. 말씀 전례 시작 전에 준비 예식이 있듯이 성찬 전례 끝 부분에는 강복과 파견으로 구성되는 마침 예식이 있다. 성찬 전례는 예물 준비 · 감 사 기도 · 영성체 등 세 부분으로 다시 나누어진다. 성찬 전례는 예수의 최후 만찬에서 그 기원을 찾는다. 예수는 자신의 구원 사업이 제자들을 통해 계속 이어지 기를 원하였지만, 이것이 인간의 기억력이나 책에 의존 해서 될 것이 아님을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예수는 자 신의 구원 사업에서 정점을 이루는 십자가 위에서의 죽 음을 눈앞에 두고 제자들이 이를 항구히 기억할 수 있게 하려고 파스카 만찬을 이용하였던 것이다. 즉 예수는 만 찬 중에 빵은 사람들을 위하여 바치는 자신의 몸이요, 포 도주는 사람들을 위해 쏟는 당신 피, 새로운 계약을 맺는 피(루가 22, 14-20)라고 선언함으로써 제자들로 하여금 십자가 제사를 항구히 기념하도록 하였다. 성령 강림 이후 제자들은 신자들의 집에 모여 빵을 나 누었다고 하는데(사도 2, 42), 이 빵을 나누는 예식이 오 늘날의 성찬 전례에 해당된다. 빵을 나누는 예식을 하기 전에 사도들의 가르침이 있었다는 기록으로 보아 말씀 전례가 부분적으로 행해지긴 하였지만, 온전한 의미의 말씀 전례가 성찬 전례와 결합된 것은 그리스도인들이 유대교 회당에서 추방된 이후로 여겨진다. 사실 그리스 도인들은 자신들이 유대교와 한 가족임을 자처하며 회당 이나 성전 예배에 참석하였는데, 특히 회당에서 이루어 지는 예배의 중점은 말씀 전례였다. 하지만 유대인들이 그리스도인들을 자신의 분파로 인정하지 않고 그들을 회 당에서 추방하기 시작하였는데, 이러한 움직임은 서서히 이루어지다가 100년경에 그리스도인은 회당 예배에 참 석할 수 없다는 공식적인 결정이 내려졌고, 말씀 전례에 참여할 기회를 잃은 그리스도인들은 자신들만의 말씀 전 례를 형성하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얼마 안 가서 자연스 럽게 성찬 전례와 함께 거행되게 되었다. Ⅱ . 십자가 제사와의 관계 종교 개혁가들은 일반적으로 성찬 전례와 십자가 제사 가 맺고 있는 관계를 부인하였는데, 즉 그들의 입장에서 성찬 전례는 제사가 될 수 없었다. 루터(M. Luther, 1483~ 1546)는 그리스도가 성찬 전례를 제사가 아닌 성사로 세 웠다고 하였다. 다시 말해 그리스도는 인간에게 은총을 베풀기 위하여 성찬 전례를 세운 것이 지 인간이 자신의 선행(善行)을 성부 에게 바치는 자리로서의 제사로 세운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츠빙글리(U. Zwingli, 1484~1531) 역시 예수는 십자 가에서 단 한 번 자신을 제사 제물로 바쳤을 뿐이며, 이 제사는 인간의 죄 를 용서하는 효력을 영원히 지니고 있 다고 주장하였다. 따라서 성찬 전례는 제사가 아니라 십자가 제사의 기념이 자 그리스도가 인간에게 준 구원의 보 증일 뿐이다. 즉 성찬 전례는 십자가 제사의 성사이자 십자가 제사로써 인 간에게 약속한 바를 보증하는 담보이 고 그 표지일 따름이라는 것이다. 그 리고 루터와 츠빙글리의 주장은 칼뱅 (J. Calvin, 1509~1564)에게서 더 반(反) 가톨릭적으로 나타났다. 이러한 프로테스탄트 신자들의 주 장은, 중세 시대에 성찬 전례를 성사 와 제사라는 이원론적인 관점에서 이 해하여 성사와 제사의 관계를 제대로 드러내지 못하였을 뿐만 아니라, 성찬 전례의 미신적인 관행을 거의 묵인하 다시피 한 가톨릭 교회에도 그 원인이 있었다.그러나 교 부들의 저서와 초기 교회의 전례 문헌들은 성찬 전례와 십자가 제사 사이의 관계를 명백히 드러내고 있다. "성 체성사의 빵과 잔(포도주)은 모든 장소에서 봉헌되는 제 사이다.···(빵과 포도주는, 즉 빵과 포도주로 바치는 성 체성사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행하도록 가르치신 바 그 것이다"(유스티노, 《트리폰과의 대화》, 41, 3). "모든 제사 안에서 우리는 그리스도의 수난을 기념하므로,-사실상 그리스도의 수난은 우리가 봉헌하는 제사이다-우리는 그가 하셨던 것과 다르게 할 수는 없다" (치프리아노, 《편 지》, 63, 17). 트리엔트 공의회(1545~1563) 역시 최후 만찬은 그리스 도가 십자가 제사를 기념하고 표상하는 제사로서 교회 안에 이 제사가 항구히 이어져야 한다고 선언하면서 다 음과 같이 주장하였다. "히브리 파스카(구약의 파스카) 안 에 예표되어 있던 것이 신약의 새 파스카를 통해 완성되 는 바, 최후 만찬은 바로 이 새 파스카의 예식임을 보여 주었다." 사실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을 최후 만찬과 연계시켜 생각할 때 , 이 둘이 실재(實在)와 그 실재를 드 러내 주는 표지, 성사라는 관계를 맺고 있음을 분명히 볼 수 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의 몸으로 드러나는 빵은 구 원을 위해 희생된 파스카 예물로 나타나며, 그리스도의 피로 드러나는 포도주는 새 계약을 맺는 피로 나타나기 때문이다. 따라서 성찬례가 파스카 신비를 기념하는 것 이라고 결론지을 때, 십자가 제사의 일회성(一回性)과 제사로서의 성찬례 관계를 이해할 수 있게 된다. Ⅲ . 그리스도의 영적 제사로서의 십자가 죽음 예수가 십자가 위에서 죽은 사건을 하느님과 인간의 화해를 성사시킨 그리스도의 제사라고 받아들인 것은 초 기 교회 때부터였다. 성찬 전례란 이 십자가 제사를 빵과 포도주라는 표지를 통해 최후 만찬에서 나온 것이기 때 문에, 성찬 전례 역시 제사라는 것은 교회의 오랜 신앙이 었다. 그리고 시간이 흐르면서 성찬 전례에서 강조된 것 은 속죄를 위해 또는 죽은 이를 위해 하느님께 희생 제물 을 바치는 것이었는데, 이로 인해 많은 오해와 남용이 있 었다. 또 성찬 전례의 내용보다는 성찬 전례를 이루는 예 식 자체에 더 많은 관심을 기울임으로써 성찬 전례가 죽 은 예식으로 전락한 경우도 많았다. 그리고 이러한 현상 은 구약의 역사 안에서도 있었다. "눈에 보이는 제사는 성사이다. 즉 눈에 보이지 않는 (내적인) 제사의 거룩한 표지이다"(《신국론), 10, 5)라고 말한 히포의 주교 아우구 스티노(Augusinus Hipponensis, 354~430)의 정의처럼 제사 에 참여한 이들의 영적 자세가 더 중요한 것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음의 준비나 회개의 자세를 갖추 지 않은 채 제사에 참여하는 것만으로도 필요한 은총을 얻거나 죄를 용서받을 수 있다고 믿는 피상적인 신앙 태 도는 제사를 형식적 · 세속적으로 만들어 버렸다. 이러한 형식적인 제사에 대한 위험성에 대하여 구약의 많은 예 언자들은 신랄한 비판을 가하였다. 그래서 제사를 바치 는 유일한 장소인 성전의 파괴를 예언하기도 하였고(예 레 7, 12-25 : 미가 3, 12), 이상적인 예배를 바쳤던 "사막 에서의 방랑 시기"로 되돌아갈 것(호세 2, 15-17)을 호소 하기도 하였다. 성전 파괴와 바빌론 유배는 이스라엘로 하여금 하느님을 영적으로 찬미하는 기회를 제공하였는 데, 이로써 그들은 참된 예배란 하느님과 대화를 나누는 가운데 그분 말씀에 복종하며 그분 말씀을 충실히 실천 하는 것임을 깨닫게 되었다. 이것이 바로 '찬미의 제사, 영적인 제사'로 나타난다(시편 40, 6-8). 희생 제물 대신 마음과 영을 바치는 참된 제사는 하느 님의 뜻을 완수하기 위하여 자신을 바치는 영적 제사이 다. 십자가 제사는 일반 제사가 아니었다. 거기에는 희생 제물도 없고 사제도 없으며 더욱이 제단도 없었다. 그리 스도가 십자가에서 죽었다는 사실에서 그리스도를 일반 제사의 희생 제물과 동일시하는 것은 사실상 무리가 있 다. 왜냐하면 그리스도가 죽임을 당한 것은 제사의 제물 로서가 아니라 당시 사회에서 불편한 존재였던 그를 제 거하기 위한 정치적 · 종교적 음모의 결과였기 때문이다. 사실 예수는 활동 중에도 제사라는 개념을 아주 드물게 만 사용하였는데, 이는 이미 그 당시 형식적인 예식에 치 우쳤던 제사가 '형제적 사랑'이나 '하느님에 대한 자녀 다운 사랑'에 비해서 하느님을 향한 내적인 자세를 드러 내 주지 못하였기 때문이다. 봉헌자의 내적 자세가 결여 된, 동물을 바치는 희생 제사의 가치가 결정적으로 끝났 음을 보여 주기 위해 성전 파괴를 선언하였으며, 성전이 기도하는 집으로 되어야 한다는 뜻에서 성전에서 상인들 을 내쫓았던 것이다(마태 21, 12-13). 그러면 십자가의 죽음을 제사로 여길 수 있는 근거는 무엇인가? 그것은 그리스도가 성부의 뜻과 완전히 일치 하는 가운데(요한 4, 34 : 5, 30 : 6, 38 등), 성부의 말씀 을 항구히 찾는(요한 8, 55) 삶을 살면서 완전한 영적 사 제직을 실현하였기 때문이다. 예수는 율법에 의한 사제 는 아니었지만 성부에게 온전히 복종하면서 자신을 제물 로 바친 것이며, 바로 이것이 참된 의미의 영적 사제직이 었다. 예수 그리스도는 세상에 온 그 순간부터 성부의 뜻 을 찾는 것이 자신의 영적 제사이며, 이를 완성하기 위해 서 수난과 죽음을 받아들였다. 결국 십자가의 죽음은 그 리스도가 성부에게 바치는 영적 제사의 절정이자 완성인 것이고, 이 점에서 십자가 제사를 그리스도의 제사라고 부르는 것이다. Ⅳ . 교회의 영적 제사인 성찬례 최후 만찬이 예수가 죽기 전에 제자들과 석별의 정을 나눈 단순한 만찬이 아니라 하나의 예식이라는 사실은 성서의 언급을 살펴볼 때 뚜렷이 드러난다. 또한 이 예식 을 통하여 그리스도가 의도했던 바는 십자가의 죽음을 통하여 완성될 자신의 영적 제사와, 그 제사를 통해 드러 나는 바를 제자들이 계속 기억하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이 때문에 예수는 제자들에게 "나를 기억하여 이를 행하 라"라고 명령하였다. 그런데 성서 본문을 살펴보면 이러 한 예수의 명령이 루가 복음 22장 19-20절의 경우 빵을 나누어 준 후 한 번 나오고, 고린토 전서 11장 23-25절 에서는 빵과 포도주에 대해 각 한 번씩 두 번 나오며, 마 태오 복음 26장 26-28절과 마르코 복음 14장 22-24절 에서는 이 명령이 전혀 나타나지 않고 있다. 이에 대해 학자들은 사도 바오로가 활약하였던 안티오키아를 중심 으로 한 안티오키아 전통(바오로 · 루가)과 예루살렘과 가 까운 마르코 전통(마르코 · 마태오) 등 두 개의 서로 다른 전통 때문에 생긴 차이라고 보았다. 물론 어느 것이 더 예수의 말씀에 가까운지에 대해서 아직 학자들 사이에 일치된 견해는 없다. 마태오와 마르코의 기록에 예수의 명령이 없는 이유에 대해 이 명령이 후대 사도 교회에 의 해 첨가된 것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일반적 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학설은 다음과 같다. 즉 성찬 전 례를 거행하는 것이 그리스도를 기념하여 거행하는 것임 을 일반적으로 알고 있었기 때문에 굳이 따로 이 명령을 되풀이할 필요를 마르코와 마태오 공동체에서는 느끼지 못하였을 것이라는 주장이다. 그렇다면 예수의 명령이 뜻하는 바는 무엇인가 하는 문제가 남는다. 예수가 최후 만찬에서 보여 주었던 말과 행동을 반복 사용함으로써 빵과 포도주를 그리스도의 몸 과 피로 바꾸고 십자가의 제사가 갖는 구원 은총을 되풀 이하는 것으로 충분하다고 본다면 이는 또 하나의 예식 주의에 불과하다. 또 예수가 거부했던 형식적인 제사와 도 같다. 만일 이런 식으로 이해한다면, 성찬 전례란 거 기에 참석한 이들의 간절한 소망을 채워 주는 자리이자 확실한 은총을 얻는 담보 정도에 불과하게 된다. 그렇다 면 "그리스도께서는 많은 사람들의 죄를 (대신) 짊어지 기 위하여 한 번 봉헌되셨고"(히브 9, 26-27) 따라서 그리 스도는 매일 제사를 바칠 필요가 없다(히브 7, 27 ; 9, 25) 는 성서의 말씀은 성찬 전례를 항구히 바치는 교회의 관 행을 사실상 잘못된 것으로 인정하게 만든다. 이 점은 종 교 개혁가들이 교회의 제사로서의 성찬례에 대해 내리는 비판이기도 하다. 이에 대해 교회는 그리스도가 또다시 자신을 제물로 바칠 필요는 없지만, 그의 수난 공로를 적 용받을 수 있도록 교회는 계속 제사를 바쳐야 한다고 하 면서 성찬 전례를 바치는 교회의 관행을 옹호하였다. 그 렇다면 이러한 공로를 얻기 위하여 성찬 전례를 합법적 으로 거행하는 것으로 충분한가, 아니면 거기에 참여하 는 이들의 내적 준비가 필요한가 하는 질문이 대두된다. 만일 성찬 전례를 지내는 것만으로 충분하다고 본다면 이는 곧 예식의 마술화(魔術化) 또는 성찬 전례의 미신 화(迷信化)를 뜻하는 것이며, 예수가 의도하였던 영적 제사와는 전혀 관련이 없게 된다. 따라서 예수의 명령은 예식 자체의 실행에 있지 않고, 그 예식이 내포하고 있는 바를 실천하는 것에 있다. 그것 은 곧 당신을 기념하고 당신이 한 바를 실천하면서 당신 뒤를 따르라는 것이다. 여기에서 예수가 행한 바가 무엇 이었는지를 살펴볼 필요가 있는데, 먼저 예수는 하느님 이 인간을 위하여 베푼 은총에 대해 찬미와 감사의 기도 를 바치며 이를 통해 성부의 뜻에 자신을 온전히 맡겼다 는 것과, 성부의 말씀을 실천하기 위해서 자신의 생명까 지도 바치겠다는 것을 약속하고 행동으로 옮기는 가운데 자신의 생명을 하느님께 바칠 영적 제물로 삼았다는 것 이다. 그리고 바로 이러한 영적 제사는 십자가의 죽음에 서 완성되었다. 최후 만찬에서 사용된 빵과 포도주는 자 신이 바칠 십자가 제사를 예형적으로 앞서 보여 준 것이 며, 제자들은 이를 통해 예수를 항구히 기념하게 될 것이 었다. 제자들은 빵과 포도주의 표지를 통해 예수를 기념 하면서 영적 제사를 바친다. 비록 이 제사가 그리스도가 바쳤던 영적 제사와 비교할 때 한정적인 가치를 지니는 것이지만 본질적으로는 그리스도의 영적 제사와 다른 것 이 아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는 제자의 영적 제사의 표 지들 안에서 당신처럼 성부에게 복종하고 자신을 제물로 바치겠다는 제자의 의지를 볼 수 있으며, 따라서 이러한 표지들 안에서 당신 자신을 발견하게 되기 때문이다. 다 시 말해서 제자의 영적 제사는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그 리스도가 바친 영적 제사의 성사가 되고, 성사적인 표지 를 통해 그의 제사와 일치한다. 그리스도의 몸인 빵을 받 아 모신다는 것은 우리의 영적 제사가 그리스도의 영적 제사를 통해 인가됨을 뜻하며, 그리스도가 자신의 영적 제사에서 그러했던 것처럼 우리 역시 온전히 성부에게 자신을 바친다는 의지를 드러낸다. 이처럼 제자의 제사 가 그리스도의 제사와 일치할 때, 즉 제자가 자신의 생명 을 하느님을 위해 바칠 때 그리스도의 사제직은 제자의 사제직 안에 살아 숨쉬며 영원히 지속되는 것이다. 이러 한 일은 교회가 성찬 전례를 바칠 때마다 일어나며, 따라 서 단 한 번 모든 이를 위하여 봉헌한 그리스도의 제사를 성사를 통해 보여 주는 성찬 전례는 그리스도의 사제직 이 항구히 실현되는 자리이다. Ⅴ . 성찬례는 파스카 신비의 기념 "나를 기억하여 이를 행하라" 라는 명령에 앞서 예수 그리스도는 기도를 하였다고 성서는 전하고 있다. 이 '기도하다' 라는 의미의 그리스어가 성서에서 모두 일치 하는 것은 아니다. 마태오 복음서와 마르코 복음서의 본 문에서는 빵에 대해서는 '에울로게사스' (εὐλόγησας, 찬 미하다, 축복하다)를, 포도주 잔에 대해서는 '에우카리스 테사스 (εὐχαριστήσας, 감사하다)를 사용하였는데, 루가 는 빵과 포도주 모두에, 그리고 바오로는 빵에만 '에우 카리스테사스 를 사용하였다. 그런데 이 두 단어가 서로 혼용되면서 다 같이 감사와 축복의 의미를 갖게 되었다. 즉 하느님께 감사를 드릴 때 거기에는 필연적으로 하느 님께 찬미를 바치는 행위가 따름을 이 두 단어를 통해서 알 수 있다. 그런데 성서에는 백성을 위해 행한 놀라운 일들 때문에 하느님께 감사를 드리는 자리에는 언제나 찬미와 축복의 기도를 뜻하는 '베라카' (בְּרָכָה) 기도가 따른다. 이 '베라카' 는 근본적으로 기념 기도이며, '베라 카 를 바치는 이는 모든 것을 신앙의 눈으로 보았다. 하 느님은 언제나 당신 백성을 위해 존재한다는 신앙은, 과 거에 일어났던 하느님의 업적을 '기억' 하면서, 앞으로도 하느님이 자신들을 보호해 주시리라는 확신을 지금도 가 질 수 있게 만들어 준다. 바로 이것이 '베라카' 기도의 목적이다. 한마디로 말해서 과거에 하느님이 당신 백성 을 위해 행하신 바를 다시 하느님께 말씀드리는 것을 목 적으로 하는 '베라카' 를 바치면서, 이스라엘은 미래에 대한 희망을 가질 수 있었다. 이것이 히브리인들이 바쳤 던 기념(ἀνάμνησις)이다. 예식 안에서 이 기념은 더욱 확실해진다. 예배 행위를 통하여 이스라엘은 하느님의 업적을 기억하며, 하느님 역시 당신이 과거에 백성에게 베풀었던 은총을 기억하도록 만든다. 이처럼 과거의 사 건을 현재의 것으로 만들면서 미래에도 하느님이 개입하 여 주시기를 기대한다. 이처럼 기념은 과거의 사건뿐 아 니라 미래의 사건들까지 현재화한다. 최후 만찬에서 예수가 찬미와 감사의 기도 즉 '베라 카 를 바쳤다는 언급은 이러한 기념의 뜻을 염두에 두었 음을 보여 준다. 최후 만찬을 전하고 있는 성서 본문에는 기념에 대한 내용이 나오지 않지만, 예수가 거행하였던 만찬이 일반 만찬이 아니라 파스카 만찬이었던 점을 고 려할 때 틀림없이 구약에 나타난 하느님의 구원 역사를 기념하였을 것이다. 그 구원 역사는 구약에서는 하나의 약속으로 나타나지만, 이제 예수 안에서 온전히 완성되 어야 할 것으로, 또 구약의 예언이 자신 안에서 완전히 실현되어야 할 것으로 보았을 것이다. 사실 예수는 자신 이야말로 옛 파스카를 완성하기 위하여 파견되었다는 확 신을 가지고 있었고 따라서 그는 파스카 기도를 사용하 여 기도하곤 하였다. 그래서 "아들을 이 세상에 파견하 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시려는 것이 아니라 아들로 말미 암아 세상이 구원받게 하시려는"(요한 3, 17) 하느님을 '찬미하고 감사' (εὐλογήσας-εὐχαριστήσας)를 드렸던 것 이다. 출애급 사건으로 나타난 옛 파스카는 이제 예수의 피로 맺게 될 새 계약으로 대치되고 완성될 것이다. 빵을 나누어 주는 순간에 예수는 그 빵이 출애급 때 선조들이 겪었던 고통을 상징한다는 말 대신에 옛 파스카 안에서 약속되었던 완전한 해방을 실현하기 위하여 자신이 겪어 야 하는 고통의 절정인 죽음의 표지임을 보여 주었다. 포 도주 역시 옛 파스카로 맺어진 옛 계약을 대치할 새롭고 도 영원한 계약을 맺는 당신 피라고 선포하였다. 이렇게 옛 파스카 예식의 표지를 사용하는 가운데, 당신의 파스 카야말로 옛 파스카의 완성이요 실현임을 보여 주었던 것이다. 여기에서 주목할 것은 예수가 최후 만찬을 거행 한 것은 성체성사를 세우기 위해서가 아니라 하느님의 구원 사업을 기념하는 가운데 찬미와 감사를 드리기 위 함이었다는 점이다. 최후 만찬이 성사가 되는 것은 이 기 념이 지니고 있는 성사적 본성 때문이다. 즉 하느님의 구 원 역사를 기념하기 위해서는 이에 상응하는 성사적 표 지가 따라올 수밖에 없는 것이다. 파스카 예식은 하느님이 백성에게 베푼 구원 사업을 기억하도록 만들지만, 다른 한편으로 그러한 구원이 이 루어지기 위해서는 백성 역시 하느님과 일치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사실을 상기시켰다. 새 파스카 예식인 최 후 만찬도 이와 마찬가지로 그리스도를 통해 나타난 구 원을 기리고, 이를 얻기 위하여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하는 지를 깨닫게 하는 데 그 목적이 있었다. 이에 예수는 "나 를 기억하여 이를 행하라" 라고 말씀한 것이다. 이 말 안 에는 명령(이를 행하라)과 그 이유(기억, 기념)가 함께 들어 있다. 그 뜻은 당신이 행한 새 파스카 예식을 반복하여 행하라는 것이고, 제자들이 보았던 그리스도의 파스카 신비를 기념하며 그 뜻을 완성하라는 것이었다. 성찬 전 례에 나타나는 그리스도의 파스카 신비의 중심에는 예수 의 죽음이 자리잡고 있다. 사도 바오로가 "이 빵을 먹고 이 잔을 마실 때마다 여러분은 주님께서 오실 때까지 주 님의 죽으심을 전하시오"(1고린 11, 26)라고 말하였을 때, 이는 단지 주님의 죽음만 기리라는 뜻은 아니었다. 빵과 포도주에 대해 한 그리스도의 말씀은 바로 희생 제 물인 그리스도의 죽음을 뜻하기 때문이다. 그가 왜 죽었 는지, 왜 그의 죽음이 우리 그리스도인에게 그토록 큰 의 미가 있는지 생각해 본다면, 이 죽음 안에 그리스도가 행 한 모든 것과 그를 통해 드러난 하느님의 구원 경륜이 함 축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교회는 성찬 전례를 드릴 때 그분의 몸과 피를 먹고 마시면서 죽음에 이르기까지 하 느님과 일치를 이루었던 그리스도처럼 살기를, 그래서 성부와 완전한 통교를 이루고자 한다. 그래서 모든 성찬 전례는 성부께로 건너가는 새 파스카가 된다. Ⅵ. 각 부분의 해설 〔예물 준비〕 성찬 전례는 먼저 예물 준비로 시작된다. 예물 준비라는 표현은 제대를 준비하는 것부터 시작하여 봉헌 성가 · 예물 봉헌 · 예물 기도까지의 예식을 가리키 기 위해 만들어낸 말로서, 성찬 전례의 첫 부분을 이룬 다. 이 예식에서 많이 사용되는 용어는 '봉헌하다' 또는 '바치다' 라는 말인데, 이 말들은 자칫 이 부분이 감사 기 도에 앞서 제물이 봉헌된다는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도 있다. 교황 비오 5세(1566~1572)의 《미사 경본》에는 아 직 축성되지도 않은 예물에 대해 "흠 없는 희생물"이라 는 표현이 사용되었다. 그래서 새 미사 경본에서는 봉헌 (offertorium)이라는 용어를 사용하면서도 예물 준비 예식 을 단순화 · 명료화하여 감사 기도로 시작되는 제물 봉헌 의 의미가 약해지지 않도록 고려하였다. 사실 모든 제사 는 그리스도의 제사로 인해 그 뜻이 완성되었기 때문에 또 다른 제사란 그리스도교 안에서 존재할 수 없다. 따라 서 어떤 특정한 목적을 위해서 예물 준비 예식을 지나치 게 성대하게 거행함으로써 이 예식 중에 제물이 봉헌되 는 것처럼 보이는 것을 피해야 한다. 이 예식은 말씀 전 례에 앞서 참회와 찬미 예식으로 신자들의 마음을 준비 시키는 것처럼, 이제 곧 시작될 감사 기도와 영성체에 필 요한 준비를 함과 동시에 여기에 능동적으로 참여할 수 있게끔 신자들을 준비시키는 데 그 목적이 있다. 9세기 무렵에는 자신의 죄를 고백하며 거룩한 제사를 지내기에 합당치 않은 죄인이기에 하느님의 은총을 청한 다는 내용으로 이루어져 있는 수많은 의화 기도들이 성 찬 전례 안에 도입되면서 예물 준비 예절에도-예를 들 어 향을 피울 때나 손을 씻을 때-의화 기도들이 나타났 다. 10세기에는 성찬 전례 중에 주님이 제대 위에 내려 온다는 것을 실질적으로 믿게 만들었고, 이러한 신심은 성찬 전례에 참석하는 이들을 더욱 두렵게 만들었다. 그 래서 본래 사제의 개인 신심을 위해 만들어졌던 의화 기 도들이 주님의 진노를 피할 하나의 방편으로 여겨졌다. 제대 준비 : 말씀 전례까지 미사의 중심은 말씀이 선 포되는 독서대였지만 예물 준비 순간부터는 제대가 "주 님의 식탁"(1고린 10, 21)으로서 성찬 전례의 중심이 되 며, 이때 성체포 · 성작 수건 · 성작 · 미사 경본을 준비한 다. 《로마 예식서》(Rituale Romanum) 4항에서 볼 수 있듯 이 이전에는 예물 준비 때 제대포를 펴는 것으로 시작되 었지만, 새 미사 경본은 예물 준비 때 제대를 성대하게 준비할 필요가 없다고 하여 미사 전에 미리 제대포를 깔 도록 함으로써 성체포가 제대포의 자리를 대신하고 있 다. 일부 성직자들은 미사 시작 전에 미리 성체포를 깔고 그 위에 성작, 필요에 따라서는 성반까지 준비하는 경우 가 있는데, 이는 말씀 전례 중에도 신자들의 시선을 제대 로 가게 만들어 결과적으로 말씀의 중요성이 손상되는 결과를 가져온다. 또한 빵과 포도주가 예수의 몸과 피로 바뀌는 성찬 전례가 곧 미사의 전부라는 잘못된 관념을 신자들에게 심어 줄 수 있다는 점에서도 시정되어야 할 것이다. 제대는 성찬 전례가 거행되는 주님의 식탁이자 성체성 사로 완성되는 감사의 중심이므로(《미사 경본의 총지침》 259항), 신자의 관심을 집중시킬 수 있는 중심 자리에 배 치되어야 한다(262항). 제대에는 여러 가지 장식을 할 수 있지만, 제대의 품위를 해치거나 신자들의 시선이 제대 에 집중되는 것을 방해해서는 안된다. 이러한 원칙을 지 키는 한도 내에서 제대에 촛대 · 십자가 · 꽃을 놓을 수 있으나 가능하다면 제대는 단순하고 소박하게 만들어야 한다. 또 성체를 모시는 감실은 가능한 한 별도의 경당을 만들어 그곳에 안치하는 것이 바람직하다(276항), 왜냐 하면 감실이 성당 내부 특히 제대 곁에 있으면 신자들은 제대보다는 감실에 쉽게 마음을 빼앗기기 때문이다. 예물 행렬 및 봉헌송 : "신자들이 빵과 포도주와 물을 주례자에게 가져오면 주례자는 그것을 받아 자기 능력에 따라 감사 기도를 드린다." 예물 준비 예절을 아주 간결 하게 묘사한 이 말은 150년경에 쓰여진 성 유스티노(St. Justinus, 100?~165?)의 《호교론》(Apologies)에 언급된 것이 다. 여기에서는 일반 제사 예식들 안에서 찾아볼 수 있는 성대한 봉헌 예절을 발견할 수 없는데, 아마도 그리스도 교의 미사가 일반 제사들과 혼동되는 것을 피하기 위해 서 또는 일반 제사들이 제물을 바치는 유혈 제사(流血祭 祀)인데 반해 미사는 영적 제사라는 사실을 강조하기 위 해서 그러했으리라고 본다. 또 치프리아노(Cypriaus, +258)는 예물을 가져오는 것이 모든 신자의 의무라고 하 였다. 예물 봉헌이 현재의 미사에서처럼 말씀 전례가 끝 난 후 성찬 전례 이전에 이루어졌는지 아니면 미사 전에 이루어졌는지에 대해서는 확실하지 않으나, 아를르의 체 사리오(Caesarius Arelatensis, +542)의 증언을 보면 갈리아 지방(현재의 프랑스를 중심으로 한 지역)에서는 미사 전에 이루어진 것으로 보인다. 로마와 스페인의 경우는 아직 까지 분명히 알 수 없다. 미사 때 가져오는 예물 종류도 처음에는 매우 다양하였지만, 393년 합포 교회 회의에 서는 성찬 전례에 필요한 예물만 가져오도록 규정하였 다. 예물 봉헌이 언제 이루어지던가에 상관없이 이 행위는 점차 그리스도교적 영성을 드러내는 하나의 수단으로 인 식되었다. 세례를 받은 사람만이 봉헌할 수 있었고, 주교 와 사제를 포함하여 미사에 참석한 모든 신자들은 봉헌 할 의무가 있었으며(8세기 《로마 예식서》 1), 세례를 받았 다 하더라도 영성체하지 않을 사람은 봉헌이 허락되지 않았다는 사실은, 봉헌과 감사 기도와 영성체가 밀접히 연계되어 있었을 뿐만 아니라 모든 그리스도인이 세례 때 받은 일반 사제직에 기초하여 미사에 참례하였음을 보여 준다. 이 참례는 필연적으로 그리스도가 다른 이를 위해 자신을 바쳤듯이 그리스도인 역시 자기 희생을 통 하여 그리스도의 파스카 신비에 동참해야 한다는 결론을 이끌어 낸다. 예물 준비 과정에서 자기 희생은 자기가 가 진 일부를 다른 이를 위해 내놓는 것으로 나타나는데, 성 유스티노는 《호교론》에서 신자들이 가난한 사람들을 위 하여 헌금할 의무가 있다면서 "부유한 이들은 각자의 원 의에 따라 각자가 하고 싶은 만큼 기부하며, (이로 인해) 얻어진 수익은 주례자 집에 보관하여 주례자가 고아들 · 과부들 · 가난한 병자들 · 감옥에 갇힌 이들 도움을 필 요로 하는 이들 모두를 위해 사용합니다" 라고 하였다. 헌금은 또한 교회 활동을 유지하기 위해 필요하다. "가 난한 형제들과 교회를 위한 금전이나 혹 다른 예물도 교 우들이 직접 바치거나 성당 안에서 거두는 것이 좋다" (《미사 경본의 총지침》 49항). 이처럼 빵과 포도주를 위시 한 금전을 제대 앞에 가지고 가는 것은 단순히 공리적인 목적에서가 아니라 그리스도의 파스카 신비에 상징적으 로 그리고 구체적으로 동참하는 것을 드러내며, 이를 통 해 자신이 받은 사제직을 수행하게 된다. 예물을 바칠 때 봉헌송이나 이에 알맞은 성가를 부르 는데, 성 아우구스티노는 예물 행렬 때 시편을 노래하였 다고 증언하였다(Retractationes 2. 11). 봉헌송의 목적은 신 자들이 봉헌할 때 도움을 주기 위해서이므로, 그 내용 역 시 그날 미사의 주제와 부합하거나 또는 봉헌 의미를 나 타내는 것으로 하는 것이 좋다. 이런 점에서 각 주교 회 의는 봉헌 성가로 사용될 수 있는 곡들이 많이 만들어지 도록 권장하여야 하며, 만일 노래로 부르지 않을 경우에 는 봉헌송은 생략한다. 예물 준비 기도 : 봉헌 성가를 하는 중에는 주례자 혼 자 낮은 목소리로 예물 준비 기도를 하지만, 봉헌 성가도 없고 악기 연주도 없는 경우에는 큰소리로 기도하고 신 자들은 "하느님, 길이 찬미받으소서"라고 응답한다. 교 황 바오로 6세(1963~1978)의 《미사 경본》 이전의 미사 경본에 수록된 예물 준비 기도들은 간혹 곧 진행될 감사 기도의 의미를 손상시키는 경우가 있었으므로, 예물 준 비 예절의 뜻을 잘 드러낼 수 있도록 유대교의 '베라카' 를 이용하여 빵에 대해서나 포도주에 대해서 동일한 양 식의 기도문을 새로 만들어 냈다. 이 기도는 창조주 하느 님을 찬미하는 것으로 시작하며, 빵과 포도주 역시 하느 님의 선물로 표현하였다. 여기에서 빵과 포도주는 사실 상 음식 일반을 뜻하며, 모든 좋은 것은 하느님께로부터 온다는 신앙을 내포하고 있다. 지중해 지방에서는 포도주에 물을 타서 마시는 풍습이 있었고, 예수 또한 최후 만찬 중에 그렇게 하였을 것이 다. 그리고 이러한 식사 습관은 사제가 포도주에 대해 기 도하기 전에 포도주에 물을 섞는 예식으로 발전하였는 데, 이 예식을 동방 교회에서는 십자가에 달린 예수의 옆 구리에서 흘러 나온 피와 물의 상징으로 보고 있다. 이에 반해 서방 교회에서는 성 치프리아노 이래 그리스도 안 에서 인성(人性, 물)이 신성(神性, 포도주)과 일치하는 것 을 드러내는 상징으로 이해하였다. 그래서 인성과 신성 의 놀라운 결합을 설파한 교황 레오 1세(440~461)가 만 든 기도-이 기도는 성탄 낮 미사의 본기도로 사용되었 었다-를 9세기경에 거의 그대로 받아들여 "이 물과 술 이 하나 되듯이 인성을 취하신 그리스도의 신성에 저희 도 참여하게 하소서" 라는 기도를 이 순간에 바쳤다. 에 티오피아 전례에 속한 8세기경의 '마리아 공경 감사 기 도' 에서는 인간과 그리스도의 항구한 결합을 상징하기도 하였다. 분향 · 손 씻음 · 기도 초대 : 제대에 놓인 예물과 제대 에 분향할 수 있는데, 이는 "저의 기도 분향으로 받아 주 시고, 치켜 든 손 저녁의 제물로 받아 주소서"(시편 141, 2)에서처럼 예물과 기도가 유향 연기처럼 하느님 앞에 바쳐지는 것을 뜻한다. 이렇듯 분향은 기도의 상징이자, 자신을 태워 향기를 내는 향처럼 하느님과 이웃을 위하 여 자신을 태우는 사랑의 상징으로 여겨졌다. 이러한 상 징성 때문에 제대와 예물과 복음서를 위시하여 사제와 신자 모두에게 분향하는 것이다. 사제가 손을 씻는 것은 이 동작과 더불어 사제 홀로 조 용히 바치는 기도 안에서 그 의미가 드러난다. "주님, 제 허물을 말끔히 씻어 주시고 제 잘못을 깨끗이 없애 주소 서." 사실 이 기도는 일종의 의화 기도의 잔재라고 할 수 있는데, 미사 시작 때의 참회 예절과 바로 앞 부분에서 마음의 정화를 위해 드린 기도에 비추어 볼 때 불필요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예물 기도를 바치기 전에 사제는 신자들에게 함께 기 도할 것을 요청하는데, 이때 사용되는 "형제 여러분, 우 리가 바치는 이 제사를 전능하신 하느님 아버지께서 기 꺼이 받아주시도록 기도합시다" 라는 초대 말과 그 뒤를 잇는 신자들의 응답은 예물 준비 단계에서 이미 제사가 시작되었다는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점에서 신자 들에게 교육할 필요가 있는 부분이다. 이 기도는 8세기 말의 《로마 예식서》 17항에 나오는데 이 역시 의화 기도 의 하나이다. 예물 기도 : 8세기까지 예물 준비 예식 안에는 예물 준비 예식을 끝맺음하는 예물 기도 이외에 다른 기도는 존재하지 않았었다. 이 기도는 이제 막 이루어진 예물 준 비 행위를 해석하고 제사 봉헌으로 인도하는 역할을 한 다. 하지만 서로 다른 시대에 생겨난 많은 예물 기도문들 이 모두 다 이러한 역할을 하였던 것은 아니었다. 예를 들어 《비오 5세의 미사 경본》에 수록된 어떤 예물 기도 들은 "거룩한 아버지, 이 흠 없는 예물을 받으소서"와 같 은 표현을 담고 있어서 많은 오해를 불러일으키기도 하 였다. 이에 새 미사 경본은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는 기도문들 대신에 간소하면서도 예물 준비 예절의 의미를 더 잘 드러낼 수 있는 기도문들로 바꾸었다. 그래서 한때 낮은 목소리로 기도하였던 이 기도를 신자들이 알아들을 수 있을 정도의 큰소리로 기도하도록 함으로써 예물 기 도의 본뜻이 뚜렷이 드러나게 되었다. [감사 기도] 감사 기도문의 형성 : 3세기 초의 문헌인 히폴리토(Hyppolitus Romanus, 170~236)의 《사도 전승》 (Αποστολική παράδοσις)에 소개되는 감사 기도문 이전 의 기도문에 대해서는 뚜렷이 드러나는 것이 없다. 유스 티노의 《호교론》 65항에는 "찬미 기도를 바치고 성자와 성령을 통하여 성부에게 감사 기도를 바치며, 아멘으로 끝난다" 는 기술만 있을 뿐이고, 그의 또 다른 저서인 《트 리폰과의 대화》에는 "주례자가 바치는 감사 기도의 주제 는 창조로부터 파스카 신비에 이른다"(41, 1)라는 언급 이 있을 따름이다. 그런데 한 가지 주목할 점은 주례자는 자신의 능력에 따라 감사 기도를 바친다는 진술이다. 이 는 어느 정도 확정된 틀은 있었지만 감사 기도를 바칠 때 주례자에게 창작의 여지가 컸음을 의미한다. 《사도 전 승》 4장에 나오는 감사 기도문은 현재의 감사 기도 제2 양식의 원형으로서 처음으로 나타난 온전한 기도문이기 는 하지만, 이 기도문이 서방 교회 안에 받아들여진 적은 없었다. 로마 감사 기도문(현재의 감사 기도 제1 양식)은 4~6세기에 서서히 형성되어 6~13세기에 현재와 같은 본문으로 고정되었다. 이 안에는 여러 기도문들이 포함 되어 있는데, 각 기도문들의 기원과 감사 기도문 안에서 의 초기 위치를 정확히 아는 것은 현재로선 불가능하다. 이 기도문은 암브로시오(Ambrosius, 374~397)의 《성사론》 (De sacramentis libri)에 처음 단편적으로 나타나며, 완전한 본문은 《젤라시오 성무 집전서》(Sacramentarium Gelasianum) 1242~1255항에 나온다. 제사에 관한 뚜렷한 신학을 담고 있는 로마 감사 기도 문에 문제점이 없지는 않았다. 무엇보다도 교황 그레고 리오 1세(590~604) 이후 감사송의 숫자가 축소되면서 그 신학도 빈곤해진 점과, 감사 기도문이 서로 다른 기원을 가진 여러 개의 기도들로 형성되어 있어 신자들이 이해 하기 어려웠던 점, 또 성령을 청하는 기도가 뚜렷이 나오 지 않은 점 등으로 해서 이 기도문을 개정하려는 시도가 있었다. 그러나 오랜 역사를 지닌 교회의 아름다운 기도 문을 고치는 작업을 하는 것이 사실상 의미가 없다고 본 교회는, 1970년의 새 미사 경본에 새로운 세 개의 감사 기도문을 만들어 수록하였는데 이 네 개의 기도문은 공 통된 양식에 따라 작성되었다. 즉 감사 기도는 감사송으 로 시작하고 그 뒤에 '거룩하시도다' 를 넣을 것, 성령 청 원 기도(Epiclesis)를 성찬 제정 말씀 이전과 이후에 둘 것, 성찬 제정 말씀과 마침 영광송을 같은 것으로 할 것, '신앙의 신비여' 에 대한 신자들의 응답을 만들어 성찬 제정 말씀 다음에 둘 것 등을 원칙으로 작성되었고, 그래 서 그 구성도 서로 비슷한 구조를 갖게 되었다. 성령 청 원 기도를 두 번에 걸쳐서 하게 된 이유는, 안티오키아 전통처럼 이 기도를 성찬 제정 말씀 다음에 한 번만 할 경우 빵과 포도주가 성변화되는 데 있어 성찬 제정 말씀 의 효과가 줄어들지 않을까 염려한 때문이었다. 따라서 성찬 제정 말씀 전에 빵과 포도주의 축성을 기원하는 성 령 청원 기도를 함으로써 성찬 제정 말씀의 효과를 극대 화하고자 하였다. 그러나 성체와 성혈을 위한 성령의 개 입(제1 성령 청원 기도)과 신자들의 일치를 위한 성령의 활 동(제2 성령 청원 기도)을 분리함으로써, 성령에 의해 축성 된 빵과 포도주를 먹고 마시는 신자들이 성령의 힘으로 하나 되게 해달라는 안티오키아 전통의 감사 기도와는 달리, 축성과 영성체의 강력한 연관 관계가 여기서에는 상당 부분 힘을 잃게 되었다. 감사 기도문의 형태 : 그리스도교 역사에서 감사 기도 문은 크게 알렉산드리아 전통과 안티오키아 전통으로 구 분되는데, 이 두 전통은 서로 다른 구조의 감사 기도문을 가지고 있으며 로마 교회의 감사 기도문에 영향을 미쳤 다. 먼저 안티오키아 전통은 감사송을 한 다음 로마 교회 의 '거룩하시도다' 에 해당되는 찬가를 바친다. 이어 또 다른 감사송을 바친 후 성찬 제정에 관한 기술이 따른다. 그 후 "너희는 나를 기억하여 이를 행하여라" 라는 명령 을 확대 해석한 기념이 나오고, 그 뒤를 이어 안티오키아 전통의 가장 큰 특징인 성령 청원이 나온다. 여기에서는 성령이 내려와 빵과 포도주를 그리스도의 몸과 피로 변 화시켜 주며 또한 봉헌된 제물을 받아 주고 참석한 이들 에게 은총을 베풀어 달라고 기원하다. 이처럼 빵과 포도 주를 축성한 성령이 영성체하는 이들을 하나로 만들어 달라는 기원을 함으로써 축성과 영성체의 관계가 더욱 명확하게 드러나고 있다. 그리고 교회와 세계를 위해 기 원한 후 성인을 기념한 다음 삼위 일체 양식의 마침 영광 송으로 끝맺는다. 이 전통의 특징은 첫 감사송에서 성부 주도의 창조에 대해 감사하며, 성자에 의해 이루어진 구 원 사업에 대해 감사하면서 교회와 우주의 성화를 위한 성령의 활동에 감사하는 데 있는데, 전체적으로 보아 종 말론적인 시각이 두드러졌다. 이러한 형태의 감사송은 갈리아 전례와 모자라빅 전례에 도입되었다. 알렉산드리아 전통의 기도문은 먼저 하느님께 감사 기 도를 바치고 이어 제물에 대한 기도를 바치며, 뒤이어 사 람들을 위한 장황한 전구 기도와 성인 기념과 제물을 받 아 주기를 청하는 기도가 나온다. 그 후 다시 감사 기도 와 '거룩하시도다' 를 하고, 제물을 받아 줄 것과 빵과 포 도주의 축성을 위한 청원 기도가 나온다. 성찬 제정 말씀 과 기념이 나온 후, 봉헌된 제물을 받아 주며 그로 인해 은총을 내려 주기를 청하는 기도를 한 다음 마침 영광송 을 바친다. 이 전통의 특징은 사람들을 위한 청원 기도가 성찬 제정 말씀 이전에 장황하게 나열되었다는 것과 성 령을 청하는 기도가 성찬 제정 말씀 전과 후에 두 번 나 온다는 점이다. 이처럼 서로 구별되는 두 전통의 특징을 살펴볼 때, 로마 감사 기도문을 비롯하여 새로 만든 세 개의 감사 기도문은 성령 청원 기도가 성찬 제정 이전과 이후에 나온다는 점에서 알렉산드리아 전통을 따르고 있 다고 할 수 있다. 제1 양식 : 로마 전례에 존재하던 단 하나의 감사 기 도문(로마 감사 기도문)을 위에서 언급한 감사 기도문의 작성 원칙에 따라 약간 수정하여 만든 것으로서, 25번에 걸쳐 하던 십자 성호를 단 한 번으로 줄이고 기도 중에 하던 두 번의 제대 친구는 생략하였으며, "우리 주 그리 스도를 통하여 비나이다"라는 네 차례의 결구(結句)를 괄호 안에 두고, 성인 전구에 있어서도 성인의 숫자를 줄 이는 등 간결하게 만들고자 노력하였다. 제2 양식 : 이 기도는 《사도 전승》의 주교 축성 예식 중에 행해지던 성찬 전례 기도를 새 감사 기도문 작성 원 칙에 따라 수정한 것이다. 사실 안티오키아 전통에 속한 이 기도문은 교회의 감사 기도문 가운데 가장 오래된 것 이자 그 구조에 있어서도 간결하고 단순하며, 또한 예수 가 최후 만찬 때 하였을 감사 기도와 가장 근접한 형태의 것으로 보였기 때문에 많은 학자들이 이 기도에 호감을 가졌다. 학자들은 《사도 전승》의 감사 기도를 고치면서 기도의 서두에 나오는 몇 가지 요소를 이용하여 제2 양 식의 고유 감사송을 만들었고, 원래 없던 '거룩하시도 다' 를 만들어 넣었으며, 성찬 제정 말씀 이전에 제1 성 령 청원 기도를 삽입하였다. 또 교회와 죽은 이를 위한 전구 기도를 새로 만들어 넣었고, 《사도 전승》 기도문의 독창적인 아름다운 마침 영광송을 모든 감사 기도의 공 통된 마침 영광송으로 대치하였다. 이 기도문에 붙어 있 는 고유 감사송은 다른 감사송들로 대치될 수 있다. 제3 양식 : 이 기도문은 제4 양식과 더불어 제2차 바 티칸 공의회의 개혁이 만들어 낸 작품이다. 베네딕도회 회원인 이탈리아의 전례학자 바가지니(C. Vagaggin)가 초안한 이 기도문 안에는 라틴 전례문의 간결함에 동방 교회들의 여러 감사 기도문들의 요소들이 혼합되어 있 다. 그래서 전체적인 틀은 안티오키아 전통(성찬 제정 말 씀 이후의 성령 청원 기도 다음에 전구 기도가 나옴)을 따르면 서도 성령 청원 기도가 성찬 제정 말씀 이전과 이후에 나 오는 알렉산드리아 전통을 받아들이고 있다. 이 기도에 는 고유 감사송이 없다. 제4 양식 : 이 감사 기도의 가장 큰 특징은 하느님의 구원사를 일목요연하게 말하고 있는 감사송과 그 뒤에 나오는 기념 부분으로서, 전체적으로는 유대인의 축복 기도와 비슷한 형태를 띠고 있다. 이러한 특징 때문에 하 느님의 구원 업적을 되돌아보는 데 있어 선도적인 역할 을 하는 감사송은 다른 감사송으로 대치될 수 없으며, 특 수 전례 시기 때에도 이 감사 기도를 사용하려면 고유 감 사송을 읊어야 한다(《미사 경본의 총지침》 322항). [감사 기도의 구성 요소] 감사송 : 서방 전례의 가장 큰 특징 가운데 하나가 전례 시기와 축일에 따라 구원 신 비를 조명하는 다양한 감사송들을 갖고 있다는 점이다. 《베로나 성무 집전서)(Sacramentarium Veronense)나 《젤라 시오 성무 집전서》는 미사마다 다른 감사송을 갖고 있었 지만, 《그레고리오 성무 집전서》(Sacramentarium Gregorianum)에는 14개만 수록되는 등 점차 그 숫자가 줄어들어 11세기에는 9개로 줄어들었다. 이후 서서히 늘어난 감 사송은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개혁 작업으로 다시 80 여 개의 감사송이 미사 경본에 수록되었다. 감사송은 성 부에게 영광을 드리며 구원의 업적에 대해 감사하고, 각 전례 시기와 축일의 신비를 기념하면서 찬미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그러므로 감사송 서두에는 이 감사와 찬 미로 이끄는 대화가 있다. 또 감사송 말미에는 '거룩하 시도다'를 배치함으로써 감사송의 찬미 성격을 뚜렷이 드러낸다. 모든 감사송은 서론 · 감사와 찬미를 드리는 이유(하느님의 구원 업적의 기념)· '거룩하시도다' 를 노래 하도록 초대하는 결구 등 세 단계로 구성되어 있다. 거룩하시도다 : 이사야서 6장 3절과 마태오 복음 21 장 9절이 결합된 이 노래는 교황 식스토 3세(432~440) 때 서방 전례에 도입되었다. 하느님이 이사야를 부르신 것과 관계된 첫 부분은 하느님께 경배를 드리는 장면이 고, 예수의 예루살렘 입성과 관계된 둘째 부분은 하느님 께 올리는 찬양의 외침이다. 여기에서 '호산나' 라는 말 은 본래 "도와 주소서"라는 뜻이지만, 나약한 인간을 돕 는 하느님의 위대함을 찬양하는 하나의 표현이다. 제1 성령 청원 : 빵과 포도주의 축성을 위해 성령이 내려오기를 청하는 기도이다. 제1 양식에는 성령에 대한 뚜렷한 언급이 없는 대신 이를 암시하는 부분만 있는 반 면에, 제4 양식에는 성령 청원 전에 긴 구원사가 나열되 어 있다. 일반적으로 동방 교회에서는 성변화의 힘을 성 령 청원 기도에 두고 있지만 로마 교회에서는 성찬 제정 말씀에 두고 있다. 그리고 성령 청원 기도를 성찬 제정 말씀 앞에 둠으로써 축성이 성령 청원 때가 아니라 성찬 제정 말씀 때 이루어짐을 강조하고자 하였다. 물론 이러 한 시도는 성령 청원 기도의 분리로 인하여 축성과 영성 체의 관계가 희미해지는 결정적인 약점을 가져왔다. 성찬 제정 및 축성 : "그리스도께서 최후 만찬 때 제정 하신 제사는 그리스도의 말씀과 행위로써 이루어진다" (《미사 경본의 총지침》 55항). 이 같은 로마 교회의 가르침 은 성령 청원을 통하여 성변화가 일어난다는 동방 교회 교부들의 입장과는 차이가 있으나, 파스카 신비의 기념 으로서 감사 기도의 전체 성격을 고려한다면 그리 큰 문 제는 아니다. 축성 순간에 성체와 성혈을 들어올리는 행 위는, 미사는 제사이며 이 순간에 주님이 제대 위에 내려 온다는 중세 신앙과 성체를 보고 싶어하는 신자들의 열 망에 부응한 산물이다. 한편 성체 축성 후 바로 들어올리 는 것은, 성체 변화는 성혈 변화 이후에 이루어진다는 일 부 사람들의 주장을 반박하면서 성체 축성은 성체 변화 말씀 이후에 즉각 이루어짐을 강조하기 위해서이다. 그 래서 12세기에 성체를 들어올리는 행위가 공식화되었 고, 성작을 들어올리는 행위 역시 거양 성체와 비슷한 이 유로 13세기부터 행해졌다. 성찬 제정 말씀 가운데 "러 희와 많은 이들을 위하여" 라는 성서 본문을 "너희와 모 든 이를 위하여"로 바꾸어 번역한 것이 문제를 일으킬 수도 있지만, 예수의 구원 사업이 모든 이를 위한 것이었 고 '많은' 이라는 표현이 성서에서는 '모든' 을 뜻한다는 점을 고려할 때 잘못된 번역은 아니다. 신앙의 신비여 : 감사 기도가 주례자 혼자의 기도에서 탈피하여 신자들의 참여를 도모하고자 성찬 제정 말씀 다음에 환호를 삽입하게 되었다. 여기에서 말하는 신비 는 성변화에 관한 것이 아니라 파스카 신비를 통해 맺어 진 새 계약에 관한 것이다. 고린토 전서 11장 26절에서 따온 '나' 양식(주님께서 오실 때까지 이 빵을···)과 이에 근 거를 두고 만들어진 신자들의 환호들이 그리스도에게로 향하고 있는데 반해, 감사 기도는 성부에게로 향하고 있 다는 점에서 양식상의 불일치뿐만 아니라 자칫 신자들이 성변화와 성체 안의 그리스도의 실존 문제에 집착하게 하는 한 원인을 제공할 수도 있다. 따라서 환호 양식문을 성부를 주제로 하여 바꾸는 문제를 생각해 볼 수 있을 것 이다. 기념 : 성찬 제정 말씀 중 "나를 기억하여 이를 행하 라" 라는 명령에 따라 그리스도에 대한 기념을 새롭게 한 다. 여기에서 말하는 기념이란 과거를 기억하는 차원에 그치지 않고 과거의 사건을 지금 이 자리에서 현재화하 는 것을, 또 지금 이 예식에 참여하는 내가 그리스도의 파스카 신비를 내 것으로 만든다는 것을 뜻한다. 이것을 그리스어로는 '아남네시스' (ἀνάμνησις)라고 한다. 따라 서 새로 개정된 한국 미사 통상문이 '나를 기념하여' 대 신에 "나를 기억하여" 라고 번역한 것은 '기념' 이 지닌 의미를 충분히 드러내지 못할 위험성을 지니고 있다 . 봉헌 : 미사에 참석한 신자들은 그리스도의 파스카 신 비를 기념하는 가운데 성부에게 깨끗한 제물을 봉헌한 다. 즉 그리스도의 희생 제사와 결합한 신자들 모두는 "그리스도 안에서 산 제물"이 되기를 기도하며, 성부의 뜻을 죽기까지 따랐던 그리스도처럼 성부와 일치된 삶을 사는 영적 제사를 봉헌한다. 제2 성령 청원 : 그리스도의 몸과 피를 받아 모시는 우리 모두가 성령 안에서 하나의 몸이 되기를 기원한다. 사실 우리를 일치시키는 성령은 빵과 포도주를 그리스도 의 몸과 피로 변화시킨 분이다. 하지만 이러한 일치는 성 령에 힘입어 가능하며, 따라서 성령의 작용으로 변화된 빵과 포도주를 먹고 마시는 영성체 행위는 이러한 일치 를 가시적으로 만들어 준다. 그런데 현재의 감사 기도 안 에서는 성령 청원 기도가 축성 청원 기도와 일치 기원 청 원 기도로 나누어짐으로써 영성체와 축성의 관계는 상당 부분 훼손되었다. 전구 : 말씀 전례 마지막 부분에 보편 지향 기도가 있 었으므로 감사 기도 안에서 또 다른 전구를 할 필요가 있 는지에 대한 논란이 있었다. 그러나 옛 전통은 감사 기도 안에 언제나 전구를 가지고 있었고, 또 감사 기도 안의 전구는 신자들의 기도 지향과 중복되는 것은 아니라는 주장이 제기되어 그대로 보존되었다. 사실 여기에서 주 로 기도하는 것은 어느 특정한 인물을 위해서가 아니라 성찬 공동체로서의 교회의 일치를 위한 것이다. 또 그리 스도가 우리의 전구자로 성부 오른편에 앉아 계신다는 신앙은 감사 기도를 드리는 중에 전구를 바치도록 이끈 다. 심리적으로 보아서도 진솔한 감사는 간청을 동반한 다. 아무것도 청할 것 없는 사람이 감사의 정을 진심으로 가진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이 전구에서는 무엇보다도 교회를 위해 기도하며, 교 황이나 주교와 사제는 보이는 교회의 표지로서 전구의 대상이 된다. 그 밖에 어떤 특정한 이를 위해 기도할 수 있는데, 제4 양식은 "진심으로 주님을 찾는 이" 모두를 위해서도 기도한다는 점에서 성 유스티노 이래 교회의 저변에 흐르는 보편적인 구원 신앙을 보여 준다. 이어 죽 은 이를 위한 기도를 바치는데 이러한 기도는 초기 교회 의 전통에서도 찾아볼 수 있는 것이다. 뒤이어 성찬례에 참석한 이들 모두를 위한 기도로서, 천상 교회와 일치하 여 하나의 공동체를 이룬다는 신앙의 표시로 성모 마리 아와 성인들이 거론된다. 마침 영광송 : 이 찬미는 성령 안에서 성자를 통해 성 부에게 찬미를 드리는 그리스도교의 전형적인 찬미 형태 를 보여 준다. 여기에서 유의할 표현이 "성령 안에서 하 나 되어" 이다. 삼위의 동등성을 보여 주기 위해서라면 "성령과 함께" 라는 표현을 쓰는 것이 낫고, 성 암브로시 오의 《성사론》에 나와 있는 표현은 "성령과 함께" (cum Spiritu Sancto)였었다. "성령으로 하나 되어"란 말은 성령 이 성자와 성부를 결합시킨다는 뜻이 아니라, 성령이 다 른 두 위격과 결합함을 뜻한다. "성령과 함께" 가 이렇게 바뀐 것은 삼위 일체를 강조하는 한편, 자칫 성부와 성자 와 성령이 서로 다른 신이라는 삼신론(三神論)의 오해를 받을까 염려하였기 때문이다. 신자들은 "아멘" 으로 대답 하는데, 이 아멘은 사제가 바친 감사 기도에 대한 공동체 의 동의를 뜻한다. 따라서 일부 교회에서 신자들의 참여 를 도모한다는 명목 아래 마침 영광송을 신자들과 함께 외우는 것은 신학적으로 맞지 않을 뿐만 아니라 "아멘" 의 뜻과 그 중요성이 심각하게 훼손된다. 신자들의 응답 인 아멘의 의미가 제대로 드러나기 위해서는 "마침 영광 송을 외울 때 사제는 축성된 빵이 담긴 성반을 들고 부제 는 축성된 포도주가 담긴 성작을 들고 교우들이 '아멘' 할 때까지 높이 쳐들고 있는다"(《미사 경본의 총지침》 135 항). 이와 더불어 반복적으로 아멘을 성대하게 노래하는 방식도 하나의 해결책이 될 것이다. [영성체 예식] 감사 기도가 끝나면 성찬 전례의 또 다 른 정점인 영성체 예식이 시작된다. 사실 제사로서 미사 의 본뜻을 제대로 드러내기 위해서는 거기에 참석한 이 들의 영성체가 전제되어야 한다. 왜냐하면 그리스도의 "먹고 마셔라" 라는 명령에 따를 때 그의 파스카 신비에 동참할 수 있기 때문이다. 주님의 기도 : 감사 기도 다음에 즉시 주님의 기도를 하게 된 것은 교황 그레고리오 1세 때였다. 이전에는 빵 을 쪼개는 예식 다음에 주님의 기도를 바쳤는데, 왜냐하 면 잘못을 용서해 달라는 뜻을 담고 있는 주님의 기도의 특성상 영성체 직전에 하는 것이 논리적으로 더 합당하 였던 것이다. 교황 그레고리오 1세 역시 이러한 의미를 모르지는 않았으나, 주님이 친히 가르쳐 준 기도문이 감 사 기도의 한 부분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였기 때문에 감사 기도 다음으로 옮겼던 것이다. 주님의 기도를 사제 홀로 기도하고 마지막 구절 "우리를 악에서 구하소서"만 신자들이 함께하는 로마 교회의 전통은,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 미사 경본의 개정 작업으로 신자 모두가 함 께 주님의 기도를 바치는 것으로 바뀌었다. 주님의 기도 다음에 곧바로 나오는 "주님, 저희를 모 든 악에서 구하시고⋯"로 시작되는 부속 기도(embolismus)는 주님의 기도 마지막 부분을 확대한 것으로, 여기 에서 청하는 것은 혼동과 유혹으로 가득 찬 이 세상을 순 례하는 교회를 보호해 달라는 절박한 요청이다. 마지막 부분에서는 재림에 대한 희망을 표현함으로써 순례하는 교회의 모습을 보여 준다. 이 기도 다음에 즉시 신자들의 환호가 나오는데, 역대기 29장 11절에 근거를 두고 있 는 이 환호는 《디다케》에도 언급되어 있으며, 일부 성서 사본에까지 나타나고 있는(마태 6, 13) 아주 오래된 기도 이다. 그러나 로마 교회는 이 환호를 받아들이지 않다가 새 미사 경본을 개정할 때 비로소 이를 수용하였다. 평화 예식 : 주님의 기도와 마찬가지로 이 예식 역시 신자들로 하여금 영성체를 준비시키는 데 그 목적이 있 는데, 본래는 말씀 전례가 끝날 때 행해졌었다. 테르툴리 아노(Q.S.F. Tertullianus, +220?)는 평화의 입맞춤으로 보편 지향 기도가 끝난다고 소개하였으며, 《사도 전승》 역시 같은 관행을 언급하면서 예비 신자들은 이 예식을 할 수 없다고 하였다. 반면에 평화 예식을 주님의 기도 다음에 하였다고 한 성 아우구스티노의 증언으로 볼 때 행해지 는 시기에 따라 이 예식이 변화되었음을 알 수 있다. 4세 기 말과 5세기 초에 일어난 이러한 변화가 로마 교회 안 에도 일어났으며, 지금처럼 주님의 기도 다음에 평화 예 식을 하게 된 것은 교황 그레고리오 1세 때였다. 감사 기 도 다음에 하는 이 평화 예식의 의미에 있어서도 두 가지 전통이 존재하였는데, 교황 인노첸시오 1세(402~417)는 감사 기도의 결론으로 보았고, 성 아우구스티노는 영성 체를 위한 준비로 보았다. 로마 교회에서는 후자의 해석 이 더 우세하였다. 평화 예식은 다음과 같이 세 부분으로 되어 있다. 사제 가 하는 평화의 기도는 요한 복음 14장 27절에 언급된 예수의 평화 약속에 그 바탕을 두고 있다. 미사가 전체적 으로 성부께로 향하고 있는데 반해 이 기도는 그리스도 에게 바친다는 점에서 혼동을 불러일으킬 수도 있다. 여 기에서 말하는 평화는 파스카 신비의 결실로서의 평화 즉 완전한 평화를 뜻한다. 이어 평화를 기원하는 사제의 말 다음에 신자들은 평화의 인사를 나누는데, 그 방식에 있어서는 각 나라의 문화에 따라 서로 다를 수 있고 따라 서 각국 주교 회의가 그 방식을 결정할 수 있다. 우리 나 라의 경우에는 목례나 악수를 하도록 하고 있다. 빵 나눔 : 빵을 떼어 나누는 행위는 최후 만찬에서 예 수가 행한 동작일 뿐만 아니라 공동체의 일치를 잘 드러 내 주는 예식이었기 때문에 초기 교회에서는 미사를 '빵 나눔' (fractio panis)이라고 불렀다. 그러나 이러한 상징적 인 행위는 실용적인 이유 때문에 지금의 제병과 같은 형 태로 사용되기 시작한 것이 일반화된 12세기에 사라지 고 말았다. 현재 미사 때 사용되는 빵들은 이미 빵의 형 태를 상실하였고, 빵의 또 다른 상징으로 바뀌었으므로 빵을 나누는 예식의 깊은 뜻은 드러날 수 없게 되었다. 따라서 오늘날 사목자들은 빵을 나누는 예식의 의미가 더 잘 드러날 수 있는 방안을 연구하여야 한다. 작은 제 병의 편리함은 자칫 빵으로 드러낼 수 있는 상징성을 죽 일 수 있기 때문이다. 빵을 나누어 한 조각을 성혈에 섞는 예식의 의미를 아 는 것은 쉽지 않다. 교황 인노첸시오 1세의 편지에 의하 면, 교황이 주례하는 미사에 참석한 사제들이 교황으로 부터 축성된 성체 조각을 자기 본당으로 가져 가서 미사 를 거행할 때 영성체 전에 성혈에 넣었다고 한다. 교황과 본당에서 미사를 봉헌하는 사제의 일치를 드러내 주는 의미 깊은 이 예식을 '페르멘툼' (fermentum)이라고 한다. 한편 시리아에서는 예수의 몸과 피의 결합을 상징하며, 제사가 봉헌된 순간에 부활이 일어난 것으로 해석하였는 데, 이러한 해석이 로마 교회 안에 들어온 것이 아닌가 추정하기도 한다. 이처럼 알아듣기 힘든 예식이 새 미사 경본에 그대로 보존된 것은 이 예식을 중요시하는 동방 교회들을 존중하자는 데 그 뜻이 있다. 하느님의 어린양 : 보통 빵을 사용하던 시기에는 빵을 나누는 데 많은 시간이 소요되었으므로 이 예식을 원만 하게 진행하기 위하여 도입한 것이 이 노래이다. 8세기 에 로마 전례에 도입된 이 노래는 11세기에 와서 마지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