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천 본당
成川本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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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권
평양교구 소속 침묵의 본당. 평안남도 성천군 사가면 석우리(石隅里) 소재. 1936년 5월 순천(順川) 본당 관 할 공소에서 본당으로 승격되었으며, 1938년 10월에 다 시 공소로 되었다가 1948년 가을에 폐쇄되었다. 관할 구역은 성천군 · 강동군 · 양덕군 · 맹산군 일부였고, 공 소는 용현 · 기창 · 운봉 · 문원 · 대동 · 운전 · 상리 · 용 봉 · 용흥 · 입석 · 창인 · 통계 · 통동 · 하청 · 하리 등 15 개소였다. 산간 지대인 성천 지방은 천도교의 영향과 미신 행위 가 성행하여 늦게 복음이 전파되었다. 구전에 따르면 병 인박해 때의 순교자 정응조(鄭應祚) · 정계언(鄭啓彥) · 이선범(李璇範)이 교리를 연구하였다는 천주학굴(天主 學窟)이 성천군 삼덕면 문성동(文成洞)에 남아 있다고 한다. 은산(殷山) 본당 주임 크레이그(Craig, 寄) 신부에 의해 이 지역에 처음으로 공소가 마련된 것은 1927년이 었고, 이듬해 순천 본당 주임으로 부임한 마캄(Markham, 馬) 신부가 성천군과 양덕군 일대 10여 곳에 공소를 설 정하였다. 그 후 이 지역의 신자수와 공소수가 증가하자 교구에서는 1936년 5월에 '성천 본당' 을 신설함과 동시 에 메리놀 외방전교회의 치셤(Chisholm, 池) 신부를 초대 주임으로 임명하였다. 이후 치셤 신부는 기존의 공소 건물을 성당으로 증축 한 데 이어 교구에서 파견한 전교사들과 함께 전교 및 주 일학교의 활성화에 노력하여 1937년에는 본당 신자 50 여 명을 포함하여 14개 공소 신자수가 270여 명에 이르 게 되었다. 그러나 이듬해 치셤 신부가 교구청으로 전임 되면서 성천 본당은 다시 순천 본당 관할 공소가 되었고, 1944년에 순천 본당이 기림리(箕林里) 본당 관할 공소 로 되면서 성천 공소의 관할권도 기림리 본당으로 함께 이관되었다. 그러면서도 석우리 신자들은 1947년에 관 후리(館後里) 대성당 건축 사업에 참여하는 등 열심한 신앙 생활을 하였으나, 결국 공산당의 탄압으로 1948년 가을 이후 폐쇄되고 말았다. (→ 평양교구 ; 순천 본당 ; ※ 참고문헌 《가톨릭 사전》 平壤教區史編纂委員會 編, 《天主教 平壤教區史》, 분도출판사, 1981. [편찬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