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체 신심

聖體信心

〔라〕devotio Eucharistiae · 〔영〕devotion of the holy Euchari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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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체 신심이란 성체의 형상 안에 예수 그리스도가 현존한다는 믿음(왼쪽)과 성체에 대한 공경을 표현하는 신심 행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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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체 신심이란 성체의 형상 안에 예수 그리스도가 현존한다는 믿음(왼쪽)과 성체에 대한 공경을 표현하는 신심 행위이다.


성체의 형상 안에 성자(聖子)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현 존한다는 믿음과 성체에 대한 공경을 표현하는 신심 행 위. 주로 미사 밖에서 이루어지는 이 성체 신심 행위에는 여러 가지 형태가 있는데, 성체 현시(聖體顯示, expositio Eucharistiae), , 성체 조배(聖體朝拜, adoratio Eucharistie) , 성체 강복(聖體降福, benedictio Eucharistiae), 성체 거동 (聖體擧動, processio Eucharistiae) , 성체 대회(聖體大會, congressus Eucharisticus) 등이다. I . 성체 공경의 역사와 현행 예식 [역 사] 성체에 대한 흠숭과 존경을 표현하는 것은 초 대 교회 때부터 있어 왔다. 초대 교회 때 미사에 참례한 신자들은 성체를 집으로 모셔 가기도 하였고, 노자 성체 를 위해 정성껏 보관하기도 하였다(유스티노, 《호교론》 1, 67 ; 히폴리토, 《사도 전승》 32). 또 초대 교회 이후 성체를 모셔 갈 때에는 무릎을 끓거나 부복을 하였는데, 이러한 공경의 표현은 오늘날 동방 전례에 그대로 남아 있다. 그 러나 성체는 눈에 띄지 않는 견고한 장소에 보관되었으 며, 신자들의 조배를 위하여 성체를 일정한 장소에 현시 하는 등의 특별한 예식은 없었던 것 같다. 초기의 그리스 도교 건물은 신자들이 일정한 시간에 예배를 위해 모이 는 단순한 용도로 이용되었으나, 시간이 지날수록 점차 신자들이 자신들에게 적당한 시간에 기도하러 오는 장소 가 되었고, 특히 수도원의 부흥과 더불어 경당은 기도를 위한 공간으로 여겨지게 되었다. 그러나 이때까지 성당 의 중심은 제대였고, 감실은 단순히 성체 보존을 위한 장 소로 여겼다. 중세를 거치면서 성체 안의 그리스도 현존에 대한 논 쟁이 시작되었고, 성체의 신비에 대한 새로운 신심이 일 어나면서 성체 공경에 대한 신앙은 급속도로 확산되었 다. 이는 전례의 쇠퇴에 기인한 것이었다. 즉 라틴어로만 전례가 이루어짐으로써 신자들이 전례 언어를 알아듣지 못하게 되었고, 또 전례가 소수 특권 계층을 위한 예절이 되어 가면서 나타나기 시작하였던 것이다. 특히 중세 신 심 운동의 기초는 "그리스도를 통하여 아버지께로" (ad Patrem per Filium) 나아가는 것이었고, 따라서 그리스도와 의 특별한 일치 또는 그리스도를 본받음의 신심 등이 강 조되었다. 그 결과 보이는 성체 안에 그리스도가 현존한 다는 신앙이 신자들에게 성체를 특별히 공경하도록 열의 를 불어넣어 주었고, 이해하기 어려운 언어로 집전되는 미사에서보다는 개인적인 묵상이나 눈으로 볼 수 있는 성체 현시 등을 통한 미사 밖의 신심 행사에서 더욱 큰 흠숭과 공경의 대상이 되었다. 이렇게 성체는 중재자 그 리스도의 볼 수 있는 표징이 되었으며, 천상과 지상을 연 결시키는 고리와 같은 역할을 하게 되었다. 9세기 말경부터는 환자들을 위해 성체를 보관하던 제 의실 안의 금고 같은 형태의 감실이 성당 제대 위에 놓이 게 되었다. 그리고 성체 신심이 점차 발전하면서 11세기 말경 클뤼니 수도원 등에서는 감실 앞에서 절을 하는 관 습이 생겼으며, 더 나아가 감실을 장식하고 그리스도의 현존을 상징하는 등불 즉 성체등을 감실 곁에 켜 두게 되 었다. 이러한 과정을 거쳐 성체 신심은 더욱 확장되어 12세기경에는 성체 공경을 위한 고유 예절이 생겨나게 되었는데, 이 예식은 13세기 초 파리 교회 회의에서 공 식적으로 규정되었다. 그 내용은 빵을 축성한 후 모든 신 자들이 그리스도의 몸인 성체를 보고 흠숭하도록 거양 성체(elevatio)를 하도록 하는 것이었다. 나아가 축성된 성체를 조배하는 것이 영성체와 동등시되기도 하였다. 미사 밖 성체 공경은 13세기부터 특히 아시시의 성 프란 치스코(1182?~1226)와 그의 수도회로 인하여 급증하였 다. 13세기에는 개인적으로 성체를 흠숭하는 기도들이 사용되었고, 사제들은 성체를 나눈 후에 인사의 표시로 무릎을 꿇었으며, 성체를 만진 후에는 공경의 표시로 성 체를 만진 두 손가락을 모은 채 기도하였다. 그리고 7~ 14세, 좁게는 10~12세가 되어야만 영성체를 할 수 있 었으나, 새로 영세한 어린이들의 영성체는 12세기 이후 에는 일반적으로 사라지게 되었다. 한편 거양 성체 예식 에 이어 '경배' 혹은 '조배' 라는 이름의 성체 신심이 출 현하였는데, 이 이름이 공식적으로 채택된 것은 트리엔 트 공의회(1545~1563)에서였다. 중세 중엽 이후 성체 공경 신심이 더욱 발달해 감에 따 라 다양한 형태의 감실이 만들어졌고 화려한 장식으로 꾸며져 제대 위에 놓이게 되었다. 그러자 제4차 라테란 공의회(1215)에서는 감실과 성체가 훼손되는 것을 막기 위해 "지극히 거룩하신 그리스도의 성체를 제대의 가장 좋은 곳에 모시고, 소중하고 경건하게 대해야 한다. 그리 고 가능한 한 자물쇠로 잠가야 한다" 고 규정하기에 이르 렀다. 이러한 형태의 감실은 프랑스 · 이탈리아 · 독일 등 을 거쳐 더욱 다양하게 발전하였는데, 특히 독일에서는 성당 제대 옆 성가대석이 있는 곳에 탑 형태의 감실을 두 고 주변에 철창을 두르기도 하였다. 그리고 감실은 금속 재료와 유리를 함께 사용하여 성체가 보이도록 제작되기 도 하였는데, 이를 바탕으로 출현한 것이 바로 성광(聖 光, ostensorim)이다. 성체 신심 행사들도 다양해져 14세기 독일 지방에서 는 '성체 축일' (Corpos Domini, 현재의 그리스도의 성체와 성 혈 대축일)에 성체 거동을 한 후 성체를 현시해 놓고 시간 전례를 바쳤으며 미사를 봉헌하기도 하였다. 1264년에 는 교황 우르바노 4세(1261~1264)가 교서 <트란시투루스 데 혹 문도>(Transiturus de hoc mundo)를 반포하여 성체 축 일을 전 교회에 확산시키려고 시도하였다. 그 후 교황 글 레멘스 5세(1305~1314)는 비엔 공의회(1311~1312)를 통 하여 교황 우르바노 4세의 의지를 살리고자 하였고, 교 황 요한 22세(1316~134)는 교황 우르바노 4세의 교서 를 새로 정리하여 반포함으로써 보편 교회의 새로운 대 축일로 제정하였다. 그리고 다양한 성체 공경 신심은 이 성체 축일을 중심으로 발달하게 되었다. 1372년에 독일 브란덴부르크(Brandenburg)의 주교는 6대 축일(예수 성 탄 · 예수 부활 · 성령 강림 · 성체와 성혈 · 주의 봉헌 · 모든 성인 의 날)에 성체 공경 예절을 하도록 지시하였다. 또한 매 일 아침 성당에 가서 성광에 모셔져 있는 성체를 바라보 며 기도했다는 성녀 도로테아(Dorothea)의 삶에 관한 1394년의 기록으로 보아 성체 현시의 관습은 연중의 다 른 날로 확산되었음을 알 수 있다. 이탈리아와 프랑스 지 방에서는 '40시간 성체 조배' 가 유행하였고 이러한 성 체 현시와 조배는 16세기에 이르러서는 성체 강복으로 그 끝을 장식했다. 1600년에 교황 글레멘스 8세(1592~ 1605)의 《주교 예식서》(Ceremoniale episcoporum)는 성체 축일에 성체 거동 후 <지존하신 성체>(Tantum ergo)를 부 르고 <천상 양식>(Panem de caelo) 후렴 뒤에 <강복 기도 문>(Deus qui nobis)을 바치며 이어서 성광을 들어 강복을 하는 전통 양식이 확정되었음을 보여 주고 있다. 그렇지 만 이러한 성체 신심 및 공경 형태들은 미사와의 연결을 약화시킬 위험도 가지고 있었다. 종교 개혁자들이 성체의 실체 변화에 대해 반대하자 가톨릭 교회의 성체 신심은 한층 강화되었다. 그리고 그 리스도 현존의 상징이 되는 감실은 더욱 화려하고 장중 하게 치장되어 성당의 가장 중요한 자리에 세워지게 되 었다. 반종교 개혁(contrareformatio)이 강하게 일었던 이 탈리아 밀라노의 경우에는 교구 내의 성당들이 돌아가면 서 한 시간씩 성체를 현시하기도 하였다. 이후 바로크 시 대는 성체 신심의 시대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성체 공경 이 활발하게 펼쳐졌고, 이는 19세기 중반까지 계속되었 다. 한편 이러한 성체 신심의 지나친 발전은 오히려 지나 친 남용으로 영성체를 소홀히 하고 미사의 공동체성과 미사 안에서 이루어지는 그리스도의 파스카 제사에 관한 신비 신앙을 저하시키는 등 부정적인 영향을 끼치기도 하였다. 그 후 이러한 경향은 20세기 전례 운동을 통하 여 다른 신심 행위들과 함께 진지하게 고려되기 시작하 였고,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 교회는 이에 대한 새로 운 지침을 발표하였다. [성체 공경 예식]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성체 공경과 같은 신심 행사가 전례와 조화를 이루고 신자들을 전례 로 인도하도록 해야 한다고 선언하였다(전례 13항). 또 성체 신비 공경에 관한 예부성성(현 전례 성사성)의 훈령 <성체 신비>(Eucharisticum Mysterium, 1967. 5. 25) 제3부에 서는 성체 신심의 중요성을 다시금 확인하면서 반복적으 로 미사가 거행되는 성당에서는 적당한 수의 신자들이 참석할 수 있다면 1년에 한 번 장엄하게 성체 공경을 위 한 현시를 할 것을 권장하였다(63항). 또한 성체 공경과 성체성사의 관계에 대해 언급하면서 성체 신심을 위한 여러 가지 다른 지침에 대해서도 언급했는데, 특히 성체 성사의 의미를 명확히 하기 위해 성체 현시 중의 미사 집 전을 금지하였다(61항). 그리고 이 훈령에 맞추어 1973 년에 《미사 없는 영성체와 성체 신심 예식서》(De Sacra Communione et de Cultu Mysterii Eucharistici extra Missam, 이 하 '예식서' 로 표기)가 출간되었다. 이 '예식서' 의 총지침에는 미사 없는 성체 신심과 미 사와의 관계에 대하여 언급되어 있는데, 우리를 위해 자 신을 내어 주는 생명의 빵이며 파스카인 그리스도와의 성령을 통한 일치가 미사를 통해 이루어지므로(1~4항) 성체 신심이 영성체를 통해 완결되어야 한다고 가르치고 있다(13~15항). 또 이 '예식서' 는 미사 없는 영성체와 성체 분배 등의 성체 신심에 대하여 언급하고 있으며, 제 3장에서는 성체 현시 · 성체 조배 · 성체 강복 · 성체 거 동 · 성체 대회 등 미사 밖에서의 성체 공경에 관한 예절 을 수록하고 있다. 이러한 성체 공경의 중요성과 성체 보존 및 현시의 규 정들은 전례 성사성이 성체 신비 공경 규정에 관하여 1980년 4월 3일에 반포한 훈령 <인에스티마빌레 도눔> (Inaestimabile donum)에 의해 다시 한번 언급되었다. 여기 에서도 이전의 훈령이나 '예식서' 의 지침처럼 성체 신심 과 성체성사의 중요성과 관련 지어 언급하고 있는데, '예식서' 의 규정 준수를 상기시키면서 성체의 존엄성에 대한 교육을 강조하였고, 미사와 미사 밖의 성체 공경에 대해 언급하면서는 사목자들이 성체에 대한 올바른 신심 을 갖고 신자들을 이끌 것을 권고하였다. : II . 성체 신심의 형태 [성체 강복] 로마 교회의 고유 전례로서 통상적으로 성체 현시나 성체 조배와 병행하여 거행된다. 14세기 초 에 최초로 증언되고 있는 성체 강복 예식은 '성체 축일' 에 행한 행렬에서 기원한 것이다. 예식을 마칠 때 거룩한 물건(성인 유해 · 성합 등)으로 신자들을 축복하는 것은 중 세에 널리 퍼져 있었던 행위였으므로, 성체 현시나 성체 거동을 성체 강복으로 끝내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었 다. '예식서' 에 따르면 성체 강복은 단순히 강복 그 자체 만을 위해서 거행되어서는 안되며 성체 현시 및 조배, 그 리고 "하느님의 말씀을 읽고 노래를 부르고 기도를 바치 며 잠잠한 묵상을 계속하는 절차를 밟아야 한다"(89항) 고 규정되어 있다. 또 성체 현시는 그리스도의 현존이기 때문에 성체성사의 의미를 감소시킬 지나친 장식은 하지 말 것을 권고하고 있으며(82항), 성체는 성광이나 성합 (聖盒, ciborium)을 이용하여 현시할 수 있고 성체 현시를 위한 장식으로는 4~6개의 초를 켜 두며 성체 현시 및 강복 때 성체께 분향을 드릴 수 있다(85항)고 하였다. 이 와 같은 성체 현시와 함께 성체 조배가 거행되는데 이때 "신자들의 보다 깊은 기도를 도와 주기 위하여 성서 독 서와 함께 성체 신비를 더 잘 묵상할 수 있도록 해설이나 짧은 훈시를 겸할 것" (95항)을 권고하였다. 그리고 성체 현시가 길어질 때에는 시간 전례를 바칠 수 있다(96항). 성체 조배를 끝맺을 때 비로소 강복을 위한 분향을 하고 강복 전 기도문인 그리스도의 '성체 성혈 대축일 본기 도' 나 예식서의 다른 기도문 가운데 하나를 집전자가 바 친 후에 성광을 들어 신자들에게 십자표를 그으며 성체 강복을 하게 된다. 성체 강복은 성체를 다시 감실로 옮겨 모심으로 끝난다(94~100항). 성체 강복은 항상 찬미가나 적절한 노래와 기도가 선 행되어야 한다. '예식서' 는 전통적인 성체 강복 예식을 준용할 수 있도록 하고 있으며, 이전의 《성체 강복 예식 서》와는 달리 집전자가 위에서 언급한 몇 가지 사항을 준수하면서 비교적 자유롭게 예식을 구성하여 거행할 수 있도록 허락하고 있다. 이 '예식서' 에서는 이전과는 달 리 성체 현시 및 강복의 집전자로 사제뿐만 아니라 부제 까지 예절을 거행할 수 있도록 허락하고 있으며, 집전시 에는 장백의 · 흰 색 영대 · 흰 색 캅바(cappa) · 어깨보를 사용할 것을 지시하였다. 만일 사제나 부제가 없거나 또 는 있어도 다른 이유로 거행할 수 없다면 시종직을 받은 사람이나 성체 분배권을 받은 사람도 성체를 현시하거나 다시 감실로 옮겨 모실 수 있지만(교회법 943조) , 이들이 성체 강복을 줄 수는 없다. [성체 거동] 성체를 모시고 하는 행렬로서 '성체 행 렬' 이라고도 하며, 이미 초대 교회 때부터 대표적인 그 리스도교 신심 행사였다. 4세기 말의 《에제리아의 여행 기》(Peregrinatio Egeriae)에)에 언급되었듯이, 이미 이 당시 예 루살렘과 베들레헴에서는 신자들이 그리스도의 행적을 따르기 위해 행렬을 하였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관습은 곧 로마를 비롯하여 다른 지역으로 전해졌다. 중 세에 이르러 신자들은 성인들의 축일 특히 순교자들의 축일에 그들의 유해를 모시고 또 그리스도와 마리아의 축일에는 성상 · 성화 · 십자가 등을 들고 행렬을 하였는 데, 이 행렬에는 감사 · 참회 · 속죄 · 축복 청원 등 매우 다양한 의미가 내포되어 있었다. 특히 지역적인 재난이 발생하였을 때나 공동체적인 감사를 드릴 때 성대하게 행렬하였음을 여러 기록을 통해 알 수 있다. 이러한 행렬 의 관습은 그 후 성모 마리아의 4대 축일들(성모 성탄 · 성 모 영보 · 주의 봉헌 · 성모 승천)과 연중 주요 축일들에 널리 행해졌고, 현재도 이탈리아 · 스페인을 비롯하여 라틴 아 메리카 지역에서 널리 행해지고 있다. 행렬 중에서 성체를 모시고 행렬하는 것을 특별히 성 체 거동이라고 불렀는데, 이것은 노자 성체를 수여할 때 처음으로 거행되었을 것으로 여겨진다. 이 거동은 성당 에서 병자의 집까지 무리를 지어 계속되었으며 거동 중 에 종을 치기도 하였다. 또한 파스카 목요일에는 제대 위 에 모셔져 있던 성체를 다음날까지 밤샘 기도를 하기 위 한 방(오늘날의 현양 제대)으로 옮겨 모시는 예식이 있었는 데, 11세기 말부터 이 예식은 매우 장중하게 거행되었고 이것이 성체 거동을 처음으로 예식화한 형태로 여겨진 다. 중세 중기에 이르러 성체가 그리스도 현존의 가장 확 실한 표징으로 널리 경배되면서 주님 수난 성지 주일에 도 성체를 모시고 거동을 하는 예절을 거행하였다. 성체 거동은 성체 신심 고양의 새로운 전기를 마련해 주었던 '성체 축일' 과는 처음부터 관련이 없었다. 1311 년에 비엔 공의회에서 교황 글레멘스 5세가 교황 우르바 노 4세의 회칙 <트란시투루스 데 혹 문도>에 대해 언급 하였지만, 성체 축일과 관련된 거동에 대한 언급은 하지 않았다. 성체 축일을 제정하는 데 영향력을 발휘한 교황 들(우르바노 4세, 글레멘스 5세, 요한 22세) 중에서 성체 행 렬에 대해 언급한 교황 역시 없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 면서 성체 축일에 여러 지역에서 종려나무 가지를 든 채 성체를 모시고 행진하거나 성대하게 성체를 옮기는 관행 이 이루어졌다. 13세기 말경부터는 성체 축일에 산발적 으로 독일 쾰른 지방과 프랑스의 앙제 지방에서 시작된 새로운 형태의 성체 거동이 이루어졌으며, 이것은 그 후 독일 전역과 프랑스 지역으로 급속히 확산되었다. 이 거 동은 신자들에게 성체를 보여 주기 위한 성체 보존함을 사용하였는데 이것이 성광으로 발전하였다. 이와 같은 성체 축일의 성체 거동 집전은 더욱 장려되어 14세기 말 에 독일 여러 지방에서는 대축일을 장엄하게 지내기 위 한 예절로 성체 거동이 집전되었다. 이러한 풍습이 로마 교회에 받아들여진 것은 15세기였고, 이후 중세와 종교 개혁 시기를 거치면서 신자들이 함께 거동을 이루며 참 여하는 신심 행사로 발전하였는데 이는 '거리를 지나서' (per vias) 시가지와 마을을 통과함으로써 성체의 신비에 대한 경배를 공적으로 선포한다는 의미가 있었다. 그러 나 성체의 본질적인 의미, 즉 인간을 위해 쪼개진 그리스 도의 몸이라는 개념이 약화되고 맹목적인 경배의 대상으 로 성체가 잘못 이해될 소지가 상존하고 있었다. 현행 성체 거동 예식은 '예식서' 에 포함되어 있는데, 이 예식서는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전례 헌장>의 "전 례서들의 표준판에 정해진 범위 내에서, 특히 성사 집 전 · 준성사 · 거동 · 전례 용어 · 성음악과 성미술의 적응 을 규정하는 권한은 당해 지역 교회가 갖는다" (39항)라 는 지침을 따르면서 성체 거동을 지역 교회의 교구장 주 교가 성체에 대한 마땅한 존경을 유지하고 현실적인 환 경을 고려하여 거동의 절차와 장소와 타당성을 판단하여 거행하라고 지시하였다(101항) 또한 그리스도의 성체와 성혈 대축일 등 성체의 의미를 기념하는 날에 이와 같은 성체 거동을 거행할 것을 권고하고 있다. 특히 성체 거동 을 하기 전에 미사를 거행하여 그 거동에 모실 성체를 축 성하도록 하고 있으며, 미사 후에 성체 조배를 하고 거동 을 하는 것도 허용하고 있다(103항). 거동을 할 때에는 그 지역 교회의 관습에 따라 행할 수 있으며, 거동 중간 의 적당한 장소에서 성체 강복을 할 수도 있다. 사제는 성체 거동 때 미사 직후라면 제의를 입어야 하고 그렇지 않으면 흰 색 갑바를 입어야 하며, 거동 때에는 촛불· 향 · 햇빛 가리개 등을 사용할 수 있다. 거동은 한 성당에 서 다른 성당으로 가는 것이 보통이나 환경에 따라 출발 했던 성당으로 되돌아올 수도 있다. 그리고 사제의 성체 강복으로 성체 거동을 끝맺는다(104~108항). 오늘날에 와서 이와 같은 성체 거동의 예식은 단순한 거동을 뛰어넘는 집회(statio)로 발전하였는데, 성체 신심 을 어떤 주제와 연결시켜 일정한 관점에서 성체 신비의 공경을 드리기 위해 '성체 대회' 행사를 지역별 · 국가별 로 행할 수 있도록 배려하고 있다. 이와 같은 성체 대회 를 통하여 성체 신비에 대한 전통적인 신심을 현대적인 방법으로 이어 가고 있는데, 전세계적인 행사로는 '세계 성체 대회' 가 있다. ※ 참고문헌  《미사 없는 영성체와 성체 신심 예식서》, 한국천주 교중앙협의회, 1977/ Sacra Congregatio Rituum, Instructio Eucharisticum mysterium de cultu mysterii eucharistici, 《AAS》 59, 1967, pp. 539~5731 A. Mistrorigo, Dizionario liturgico-pstorarle, Padova, EMP, pp. 1339~1345/ Sacra Congregatio pro Sacramentis et cultu Divino, Instructio Inaestimabile donum de quibusdam nomis circa cultum mysterii eucharistici, 《AAS》 72, 1980, pp. 331~343(최윤환 역, 《전례와 생활》, 수원 가톨릭대학 전례 연구소, 1995, pp. 235~244)/ R. Cabié, Eucharistie, A.G. Martimort ed., L'Eglise en prieré, vol. 2, Paris, Desclée, 1983(김 창훈 역, <성체 경배의 역사와 형태>, 《神學展望》 84호, 1989. 봄, 광주 가톨릭대학 전망 편 집부, pp. 85~93)/ S. Mattei, Esposizione del S.mo Sacramento, 《EC》 5, pp. 613~614/ N. Turchi, Processione, 《EC》 10, pp. 72~741 H. Leclercq, bénédiction du Saint Sacrament, (DACL) 5-1, pp. 345~349/ 一, Procession, (DACL》4-2, pp. 1895~1896/ B.I. Mullahy, Processions, Religious, 《NCE》 11, pp. 819~821. [李完熙]
〔성체 조배와 성체 현시〕 성체 조배는 감실 안에 모셔 져 있거나 현시된 성체 앞에서 개인적으로 혹은 공동체 적으로 기도하며 경배를 드리는 신심 행위이다. 성체 현 시란 신자들의 성대한 혹은 사적인 기도를 위하여 성광 을 이용하여 성체를 볼 수 있는 모습으로 제대 위에 모셔 놓는 것으로서 이 또한 성체 신심의 한 형태이다. 성체 조배와 성체 현시는 성체 보존을 전제로 한다. 성체 보존의 역사 : 성체 보존은 처음에는 영성체와 관계가 있었다. 초대 교회에서 신자들은 전례에 함께하 지 못한 신자들, 특히 병으로 앓는 이들을 자신들과의 친 교에 참여시키기 위하여 이들에게 성체를 가져 가 모시 도록 하였던 것이다. 순교자 유스티노(Justimus, +165)는 주일 모임의 순서를 묘사한 후, 부제는 축성된 빵과 포도 주를 모든 참석자들에게 분배하고 모임에 참석하지 못한 신자에게도 가져다 주었다고 언급하였다(《호교론》 I, 67, 6) . 한편 신자들이 주일 전례에서 축성된 빵을 집에서 영 성체하기 위해 자기 집으로 모셔 가 보존한 증언이 있는 데, 테르툴리아노(Q.S.F. Tertullianus, +220?)는 신자의 성 체 보존 관행을 전제로 "식사 전에 하는 영성체"에 대하 여 언급했다(《부인에게》 Ⅱ. 4). 히폴리토(Hippolytus Romanus, 170~236)도 이러한 관습을 반영하는 듯 "미신자나 쥐 나 다른 짐승이 성체를 먹는 일이 없도록 유의할 것"을 권고하였고(《사도 전승》 37), 요한 그리소스토모(Joannes Chrysostomus, 347~407)는 성체를 "보지만 말고 만져 보 고, 먹고 여러분 집으로 모셔 갈 것"《《강론》 24 ; 2고린 10 장)을 권고하였다. 여러 가지 이유로 개인적인 영성체를 위하여 성체를 집으로 모셔 가는 관례가 점차 사라졌지 만 7세기까지 이러한 관행들이 있었음이 발견되고 있다. 8세기부터는 성체를 교회 안에서 보존하는 것이 보편 화되기 시작하여(《로마 예식서》 I 48) 9세기에 규범화되 었다. 교회 안에 성체를 보존하는 방법은 다양하였는데, 처음에는 제의실에 있는 작은 함(capsa) 혹은 다른 곳의 탑이나 비둘기 모양의 성합 안에, 또는 벽에 설치된 감실 이나 이동식 감실에 보존되었다. 그리고 곧 이어 감실을 제대 위에 모셔 놓거나 매달아 놓는 관습이 생겼고, 15 세기 이후부터는 제대 위에 고정 감실을 설치하는 관습 이 시작되었다. 특히 이러한 관습은 보로메오(Carolus Borromaeus, 1538~1584) 추기경의 장려로 전파되기 시작하여 점차 일반화되었다. 그래서 작은 성당의 경우에는 "제대 중앙에 위치한 고정된 감실에 모시고 잠궈 놓는다" (《로마 예식서》 5, 1 : 1, 3)고 규정되었고, 큰 성당이나 주교좌 성당의 경우에는 "성체를 모신 제대나 장소는 주교나 다 른 사제가 장엄 미사를 거행하는 중앙 제대 또는 그런 제 대가 아니어야 한다" (《주교 예식서》 7, 1)고 규정되었다. 성체를 제대 밖에 모시는 관행이 복구된 것은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로, 성체에 관련된 가르침들과 미사 총지침 및 교회법 등은 신자들의 개인 기도에 적합한 곳 에 성체를 모실 것을 제안하였다. 현 교회법은 성체는 주 교좌 성당이나 그와 동등시되는 성당, 각 본당의 성당 및 수도회나 사도 생활단의 집에 부속된 성당이나 경당에 보존되어야 한다고 규정하였다. 주교의 예배실(sacellum) 과 또 교구 직권자의 허가가 있으면 다른 성당이나 경당 및 예배실에 보존될 수 있다. 그러나 아무도 성체를 자기 집에 두거나 여행 중에 가지고 다닐 수 없다. 다만 긴급 한 사목적 필요성이 있고 교구장의 규정을 지키면 그렇 지 않다(934~935조). . 의의 : 감실 앞에서 개인적으로 하는 성체 조배는 서 방 교회의 전통이다. 성체 조배가 언제 시작되었는지는 정확히 알기 어려우나 성체 현시를 통한 성체 조배는 교 회 초기 때부터 있었던 것 같다. 특히 성 베네딕도 요셉 라브르(Benedict Joseph Labre, 1748~1783)에 의해 40시간 성체 조배가 널리 전파되면서 성체 현시도 같이 이루어 졌고, 그 후 프랑스와 벨기에에서 성체 조배로 발전하였 다. 하지만 이 시기의 성체 조배는 신자들 전체가 각자의 본당에서 한 것이 아니라 각 본당을 대신하여 특정 본당 이나 어떤 수도원에 위탁해서 이루어졌다. 19세기 중엽 까지도 성체 조배는 일반화되지 못한 성체 신심이었는 데, 이에 대한 교황의 언급이 시작된 것은 제2차 바티칸 공의회 기간 중이었다. 교황 바오로 6세(1963~1978)는 회칙 <신앙의 신비>(Mysterium fidei, 1965. 9. 23)를 통하여 성체 흠숭을 적극적으로 권장하면서 "신자들은 기회 있 는 대로 성체 조배를 하여야 합니다. 조배는 성체 안에 현존하시는 주 그리스도께 대한 합당한 흠숭의 실천, 감 사의 뚜렷한 표시, 사랑의 모정입니다"라고 하였다. 또 "성체 안의 그리스도와 함께 교제하는 것이 얼마나 대단 한가! 지상에서 이보다 더 큰 위안이 없으며, 성스러움 으로 나아가는 데 이보다 더 큰 효력은 없습니다"라고 함으로써 성체 조배의 중요성과 가치를 역설하였다. 나아가 "성체는 각 교회의 살아 있는 마음이며, 눈에 보이 는 주님을 흠숭하고, 경배해야 합니다" 라고 하였다. 또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회칙 <인간의 구원자> (Redemptor Hominis)를 통하여 "교회와 세상은 성체 조배 를 매우 필요로 합니다"라고 강조하면서 "미사 때의 공 동체 참배가 성체 조배에서 우리의 사랑이 완전하기 위 한 예수님께 대한 개인적인 참배와 함께 가야 합니다" 라 고 함으로써 미사 때 이루어지는 성체성사와 성체 조배 의 중요성을 연결하였다. 그리고 1980년 파스카 목요일 에 전세계의 사제들에게 보낸 서한에서는 "존경하옵고 사랑하올 형제들이여! 교회와 세계는 성체 조배를 할 필 요가 있습니다. 성체 조배가 끊임없이 계속되기를 바랍 니다" 라고 하였다. 이러한 최근 교황들의 성체 조배에 대한 관심과 요청, 세계 성체 대회 개최 등의 영향으로 성체 조배에 대한 신자들의 관심과 참여는 계속 늘어나 고 있다. 예식 : '예식서' 는 독립적으로 성체 조배에 대해 언급 하지는 않았지만 이 신심은 언급하였다. 그리고 교회법 937조에서도 "성체가 보존되는 성당은 매일 적어도 몇 시간 동안 신자들이 성체 앞에서 기도할 수 있도록 개방 되어야 한다. 다만 중대한 이유가 방해하면 그러하지 아 니한다" 고 하였다. 성체는 개인적인 흠숭과 기도에 적합 한 장소에 보존되어야 하며 신자들이 쉽게 접근할 수 있 어야 하며, 무엇보다도 개인 조배를 위해서는 침묵 유지 가 가능해야 할 것이다. 이를 위해 '예식서' 는 소성당을 선호하였다(9항) . 성체 현시를 통한 성체 공경은 직접적으로 미사에서 유래하였으므로 미사가 거행되는 동안에는 같은 자리에 서 성체 현시가 시행될 수 없다(교회법 941조 2항 : <성체 신비> 61항 ; '예식서' 83항). 또 성체 현시를 위한 장식에 서 음식과 영신의 약과 청량제가 되기 위하여 성찬 전례 를 제정한 그리스도의 소망이 흐려져서도 안된다(<성체 신비> 61항 ; '예식서' 82항). 성체 현시는 '장시간의 현 시' 와 '짧은 현시' 로 구분되며, 성체 보존을 허가받은 성 당이나 경당에서는 전례서에 규정된 규범을 지키면서 성 합이나 성광으로 성체를 현시할 수 있다(교회법 941조 1 항). 이러한 성당들과 경당들에서는 지역 공동체가 성체 의 신비를 더욱 깊이 묵상하고 경배하도록 매년 적당한 기간 동안 비록 연속적이 아니더라도 장엄한 성체 현시 를 하도록 권장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현시는 적당한 신자들의 회중이 예견될 때에만 정해진 규범을 지키면서 행하여야 한다(교회법 942조). 장엄한 형식의 성체 현시는 미사로 시작할 수도 있다. 이 미사에서는 축성된 성체를 영성체 후 성광으로 현시 한다. 현시에는 성가와 기도, 성서 독서와 화답송, 해설 및 침묵 등 말씀의 전례가 필요하며( '예식서' 95항), 장엄 한 성체 현시는 성체 강복으로 끝난다. 그러나 강복만을 위한 현시는 금지된다(<성체 신비> 66항 ; '예식서' 89항). 성체 현시의 경우도 정상적 봉사자는 사제 혹은 부제이 지만, 성체 강복은 할 수 없으나 예외적으로 시종직을 받 은 사람이나 성체 분배권을 받은 사람 또는 성체 조배를 임무로 하는 수도 공동체의 회원들도 봉사자가 될 수 있 다( '예식서' 90~91항 ; 교회법 943조). 성체 현시와 성체 조배는 항상 전례와 조화를 이루어 야 하고 미사에 정향되고 매일의 삶의 과업으로 확산되 어야 한다(<성체 신비> 13항 ; '예식서' 81항). 즉 신자들을 보다 완전한 영성체로 인도하여야 한다. 그러므로 현시 된 성체를 조배하는 동안 기도 · 노래 · 독서들은 신자들 이 전적으로 그리스도에게 관심을 기울이도록 선택되어 야 한다. 성체 현시와 성체 조배는 근본적으로 성체성사 안에 현존하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향한 경배이며, 그분의 성체 안의 현존에 대한 신앙의 표현이다. 실제로 성사적 차원에서 성체성사는 그리스도교 공동체 안에 살 아 있는 그리스도의 현존에 대한 최고의 표지이다. 이 표 지는 탁월한 방식으로 실제적으로 그리고 성사적으로 공 동체에 그리스도가 현존하게 해준다. 〔성체 대회〕 성체 신심의 특수한 표현 중 하나인 성체 대회는 최근에 도입된 것이다( '예식서' 109항). 1873년 에 릴(Lille)에서 최초의 세계 성체 대회가 개최된 후 대 회 때마다 성체에 대한 보상 신심과 그리스도의 왕국에 대한 묵상이 주요 주제로 대두되었다. 그러나 1960년에 독일 뮌헨에서 개최된 대회부터는 성찬 전례 거행이 핵 심적인 주제가 되었다. 성체 대회는 성체 신비의 특정한 주제를 심화하고 사랑과 일치 속에서 공적으로 성체에 대한 경배를 표현하는 모임이다(<성체 신비> 67항 ; '예식 서' 109항). 이를 위해 성체 대회를 준비하면서 교회 안 에서 살아 있으며 활동하는 그리스도의 신비로서 성찬 전례에 대한 교리 교육이 시행되어야 하며, 형제적인 일 치를 촉진하는 전례에 능동적 참여를 제고하고, 초대 공 동체의 모범을 따라 재물을 나누고 인간 증진을 위한 사 회 활동을 모색하여야 한다( '예식서' 111항). 그리고 성체 대회는 말씀 전례 · 교리 · 학술 모임 등을 통해 제시된 주제를 심화시킨다. 또 성체 현시와 함께 공동 및 개인적 성체 조배가 시행되며 사정이 허락한다면 성체 행렬도 가능하나, 미사가 모든 활동의 중심이자 정점이 되어야 함을 항상 기억하여야 한다(112항). (⇦ 성체 강복 ; 성 체 거동 ; 성체 조배 ; 성체 현시 ; → 감실 ; 노자 성체 ; 성시간 ; 성체 논쟁 ; 성체와 성혈 대축일 ; 세계 성체 대 회) ※ 참고문헌  M. Andrieu, Aux origines du culte de saint Sacrement, reliquiares et monstrances eucharistiques, Analecta Bollandiana 68, 1950, Pp. 397~418/ A. van Bruggen, Réflexions sur l'adoration eucharistique, Roma, 1968/ R. Cabié, L'Église en priére Ⅱ, L'Eucharistie, Paris, 1983/ G. Crocetti, L'adorazione a Cristo redentore presente nell' 'eucaristia, La Scuola cattolica 110, 1982, pp. 3~28/ M. Righetti, Mamuale di storia liturgica Ⅲ , Milano, 3rd ed., 1966. [沈圭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