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체와 성혈 대축일
聖體 - 聖血大祝日
〔라〕Sollemnitas SS. Corporis et Sanguinis Christi · 〔영〕Body and Blood of Christ Solemni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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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권
성목요일에 성체성사가 제정된 것과 성체성사의 은총을 기념하기 위하여 삼위 일체 대축일(Sollemnitas Sanctissimae Trinitatis) 다음 목요일에 지내는 대축일. 한국에서 는 삼위 일체 대축일 다음 주일에 지내고 있다. 13세기 에 성체 공경에 대한 신심이 발전하면서 시작된 이 축일 은 처음에는 '성체 축일' (Corpus Christ)이라고 불렸고, 그 밖에 '성체성사 축일' · '하느님 축일' . '지극히 고귀 한 성사 축일' . '그리스도의 몸과 피 대축일' 이라고도 불렸다가 1970년 이후부터는 '그리스도의 성체와 성혈 대축일' 로 불리고 있다. 〔기원과 역사〕 5세기 초부터 교회는 성목요일 저녁 미 사 때 성체성사의 제정과 신약의 새 파스카를 기념해 왔 으며, 성체성사가 신자들의 성화를 위해 제정된 것이라 고 주장하였다. 그래서 교부들은 성체성사의 목적이 인 간을 위한 희생 제물이 되고자 온 그리스도가 인간 가운 데 현존하게 하는 데 있으며, 그 효력은 그리스도의 실제 현존에 대하여 신자들이 완전하게 깨닫게 되는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이와 같은 교부들의 주장을 바탕으로 교회 는 성체에 대하여 특별한 공경을 드리게 되었다. 그런데 12세기에 베렌가르(Berengar de Tous, 1010~1088) 등 여러 신학자들 사이에서 성체 안에 그리스도가 실제 현존하는 지에 대한 논쟁이 커지자, 반대로 신자들 사이에서는 성 체성사에 대한 신심이 더욱 고조되었다. 특히 성체 안에 몸과 피를 지닌 그리스도의 전 위격이 실제 현존한다는 가르침은 성체성사의 신비적인 측면을 더욱 강조하도록 만들었고, 신자들은 제대 위에 모셔진 성체나 성체성사 에 대한 특별한 신심에 주의를 기울이게 되었다. 성체 축일을 제정하는 데 중요한 계기가 되었던 것은 벨기에 리에주(Liége)의 몽 코르니용(Mont-Cornilon)에 있는 아우구스티노회 수녀인 복녀 율리아나(Juiana, 1192~ 1258)의 성체에 대한 신심 때문이었다. 1208년부터 여 러 번 반복해서 한 쪽 면만 어둡고 전반적으로 찬란하게 빛이 나는 달의 광경을 환시로 보게 된 율리아나 수녀는, 1210년경에 이 환시의 의미를 깨닫게 되었다. 즉 달은 교회를 상징하고 달의 어두운 한 쪽 면은 성체성사를 공 경하는 축일이 교회 내에 없음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훗 날 원장 수녀가 된 그녀는 수도자 이브(Eve, +1266)와 이 자벨(Isabelle de Huy) 수녀의 조언에 용기를 얻어 리에주 의 생 마르탱(Saint Martin) 주교좌 성당 참사 원장인 장 (Jean de Lausanne)에게 자신이 받은 계시를 들려주었다. 참사 원장으로부터 이 문제를 의뢰받은 판탈레옹(Jacques Pantaléon) 대부제는 다른 신학자들(Guy de Laon, Hugues de Saint-Cher)과 이를 의논하였고, 1240년에 판탈레옹 대부 제는 율리아나가 체험한 환시를 받아들여 하느님의 계시 로 인정하였다. 이때 다른 이들도 모두 이에 동의하였다. 마침내 1246년에 리에주의 교구장 토로트의 로베르 (Robert de Torote)는 자신의 교구 내에서 그리스도의 성체 를 공경하는 축일을 지내도록 선언하였다. 그러나 성체 축일의 시간 전례 기도문은 이미 1232년에 몽 코르니용 의 요한이라고 불리는 한 젊은 성직자가 율리아나 수녀 와 함께 작성해 두었었다. 이것은 현재 사용하고 있는 시 간 전례 기도문과는 완전히 다른 것이지만, 토마스 아퀴 나스(Thomas Aquinas, 1225~1274)가 이 축일을 위한 미사 와 시간 전례 기도문을 만들었다는 것이 전통적인 견해 이다. 1251년에 인노첸시오 4세(1243~1254)의 교황 대 사로서 후에 추기경이 된 생 세르의 위그(Hugues de SaintCher, 1200~1263)가 성체 축일을 자신의 관할 지역인 독 일을 비롯하여 보헤미야 · 모라비아 · 폴란드 등지로 널 리 확산시켰다. 그리고 1261년에 교황 우르바노 4세로 선출된 판탈레옹은 1264년 8월 11일에 오르비에토 (Orvieto)에서 교서 <트란지투루스 데 혹 문도>(Transiturus de hoc mundo)를 반포하여 성체성사를 기념하는 '새 대축 일' (nouvelle solennité)을 제정하면서, 성령 강림 대축일 팔부 다음 목요일에 성체성사를 기념하여 전 교회에서 거행하도록 선포하였다. 그 후 오랫동안 이 축일은 '새 대축일' 이라고 불렸으며, 교황이 새 대축일을 서방 교회 전체가 지키도록 지시한 것은 이것이 처음이었다. 그러 나 우르바노 4세 교황이 새 축일을 세운 지 두 달 후에 사망하고 말아 그의 교서는 실천되지 못하였다. 성체 축일을 제정하는 데에는 많은 반대와 어려움이 있었다. 13세기 말의 미사 경본에는 성체 축일 전례가 등장하지 못하였으며, 리에주의 생 마르탱 성당뿐 아니 라 심지어 로마에서도 성체 축일에 대한 교황 우르바노 4세의 교서는 오랫동안 사장되었었다. 그 후 50년이 지 나서야 교황 글레멘스 5세(1305~1314)에 의해 비엔 공의 회(1311~1312)에서 선임 교황의 교서가 확증되기에 이르 렀고, 후임자인 교황 요한 22세(1316~1334)가 1317년에 글레멘스 5세 교황과 비엔 공의회에서 발견하여 정리한 선임 교황의 교서를 교령집으로 발행하면서 선임 교황의 성체 축일 제정을 위한 교서가 드러나게 되었다. 이로써 성체 축일이 전 교회에 받아들여지게 된 것이다. 그러나 예외로 프랑스의 몇몇 교회들과 독일 및 헝가리 일부 지 역에서는 1264~1312년에 성체 축일을 지냈음을 증명 하는 문서들이 발견되기도 하였다. 14세기경에는 성체 축일이 서방 국가에서 대중적인 축일로 확산되었고, 이 날 성체 거동(procesio Eucharistiae)이 거행되었다. 로마 교회는 15세기에 이를 받아들였고, 1911년에는 교황 비 오 10세(1903~1914)가 성체 축일 팔부를 지내도록 하였다. 〔전 례〕 성체와 성혈 대축일 미사와 시간 전례가 형성 되기까지 역사적으로 문제시되어 왔던 것은 그 권위였다. 전통적으로 교회에서 인정되어 전해 오는 시간 전례 는 토마스 아퀴나스가 작성한 것으로 믿어져 왔으나, 현 재의 시간 전례는 그가 작성한 것이 아니다. 따라서 토마 스 아퀴나스는 단지 교황 우르바노 4세의 요청으로 두 개의 시간 전례 기도문만을 작성하였고, 그가 여러 자료 들을 수집하여 현재의 시간 전례로 편집하였을 뿐이라고 여겨진다. 일부 학자들은 토마스 아퀴나스가 본래의 저 자라고 주장하기도 하나, 만약 그렇다면 그가 작성한 시 간 전례는 분실되었고 현재의 것은 다른 사람의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현재 미사의 제1 독서에서는 멜키세덱의 제사(다해) 시나이 산 아래에서 드린 계약의 제사(나해), 사막에서 만나를 먹음(가해) 기사를 읽는다. 제2 독서는 고린토인 들에게 보낸 첫째 편지 10장과 11장(가해, 나해)과 히브 리서(다해)에서 뽑는다. 그리고 복음은 빵을 많게 한 기 적(다해), 생명의 빵에 관한 예수의 강론(가해), 최후의 만찬(나해)에 관한 것이다. 감사송은 두 개가 있는데, 하 나는 파스카 목요일의 것이고 다른 하나는 새로 만든 것 이다. 시간 전례에서는 성체성사의 신비에 관한 여러 측 면이 아주 잘 표현되어 있는데, 제2 저녁 기도의 성모의 노래 후렴은 이 신비를 요약하여 보여 주고 있다. "그의 수난을 기념하고(성체성사에 대한 기념은 과거에 일어난 일과 관계된다), 은총으로 충만되며(그 기념이 현실화된다), 후세 영광의 보증을 받는도다(기념은 미래에 일어날 것을 맛보게 한다)." (⇦ 그리스도의 성체와 성혈 대축일 ; → 그리스 도의 몸 ; 성체 논쟁 ; 성체 신심 ; 우르바노 4세) ※ 참고문헌 W.J. O'Shea, 《NCE》 4, pp. 345~347/J. Gaillard, O.S.B., 《Cath》 4, pp. 1215~1219/ 《ODCC》, p. 420/ E. Iserloh, Abendmahl, 《TRE》 1, p. 97/ H. Merkel, Feste und Feiertage, 《TRE》 11, p. 122/ J.P. Lang, O.F. M., p. 71/ W. Dürig · J.A. Jungmann, 《LThK》4, pp. 405~407/ I.H. Dalmais · P. Jounel, 김인영 역, 《전례 주년》, 가톨릭대학교 출판부, 1996, pp. 124~125. 〔편찬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