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체포
聖體布
[라]corporale · [영]corporal
글자 크기
7권

1 / 2
미사 중에 성작· 성반· 성합을 올려 놓는 성체포.
미사 중에 성작 · 성반 · 성합을 올려 놓는 사방 50cm 이내의 흰색 아마포로 만들어진 전례 용구. 성찬 전례 중 에 떨어질지도 모를 성체 조각들을 쉽게 모으기 위해 사 용하는 것으로, 세 번 접을 경우 천의 중앙이나 아랫 부 분의 중앙에 수놓은 십자가가 나오도록 되어 있다. 성체 포를 뜻하는 라틴어 '코르포랄레' (corporale)는 '몸' 이라 는 의미를 지닌 '코르푸스' (corpus)에서 파생되었는데, 성체포 위에서 빵과 포도주가 예수 그리스도의 몸과 피 로 변하고 또 예수의 몸을 받기 때문에 이 단어가 사용되 었다. 성체포는 질이 좋은 천을 이용하여 아름답고 정성 스럽게 만들어진 것이어야 하며, 뻣뻣함을 계속 유지하 도록 풀을 먹인다. 전례 안에서 성체포를 사용하는 것은 성체 안에 현존하는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공경의 의미 가 담겨 있다. 〔기원과 변천〕 성체포는 성작 덮개와 함께 초기의 긴 제대포에서 유래되었다. 제대포와 성체포가 구분 없이 사용된 4세기에는 제대 전체를 덮을 만큼 큰 것이었다. 카롤링거 왕조 시대에는 몇 개의 제대포가 사용되었는 데, 세 개의 아마포 제대포와 성작까지 덮는 용도의 한 개의 성체포(palla corporale)가 있었다. 이 성체포는 제대 위에 놓인 성작과 성체를 덮던 것이었다. 1000년경 이 후부터 성체포는 제대포와 구분하여 사용되기 시작하였 으며, 크기도 점차 줄어 중세 말부터는 오늘날의 성체포 와 비슷한 크기가 되었다. 또 성작을 덮는 용도로 사용되 었던 성체포는 두 번 접어 성작 덮개로 사용되다가 지금 의 성작 덮개가 따로 구분되자, 17세기부터는 현재 용도 의 성체포로 정착되었다. 그 후에도 많은 나라에서는 두 개의 성체포를 사용하였으며, 가르투지오회에서는 아직 도 성작을 덮는 용도로 큰 성체포를 사용하는 관습이 남 아 있다(J. Braun, Die liturgischen Paramente, pp. 186, 206 ; Ordinarium Cart., 1932, pp. 26, 20) . 중세 때에는 성체포를 불속에 던지면 불을 끌 수 있다 는 대중 신심이 있었는데, 당시 작가들인 하이모(Haimo v. Fleury) · 글라베르(Radulf Glaber) · 루페르트(Rupert v. Deutz) 등은 불속에 성체포를 던져 불을 끈 기적적인 사 례들을 기록으로 전하였다(PL 139, 815 : 142, 691 : 170, 335ff. 그러나 1022년 젤리겐슈타트(Seligenstadt) 교회 회의에서는 사제들이 성체포로 불을 끄는 이러한 신심 행위를 날카롭게 비판하고 금지시켰다. 또한 병 특히 눈 병을 낫게 한다는 신심이 신자들 사이에 만연하기도 하 였는데, 사제가 입당할 때나 퇴장할 때 성체포를 들고 신 자들을 향해 부채질을 하기도 하고 부유한 사람들은 미 사 후에 헌금을 내고 성체포를 얼굴에 대기도 하였다. 중 세기의 대표적인 유물로는 갑사(Capsa)의 성체포가 남아 있다. 동방 교회에서는 제대 위를 덮던 '에일레톤' (ειλητον) 이라는 큰 천이 서방 교회의 성체포와 유사한 용도로 사 용되었는데, 이것은 예수가 매장될 때 머리 주변에 펼쳤 던 천을 상징하였다. 그러나 오늘날 동방 교회에서는 이 '에일레톤' 과 '안티멘시움' (antimensium)이라는 성체포 가 함께 사용되고 있다. '안티멘시움' 은 아마포로 제작 되고 예수의 수난과 매장을 그린 장식이나 순교자의 유 해를 담고 있으며, 9세기부터 사용되기 시작하였다. 〔전례적 사용과 축성〕 미사가 봉헌되었거나 축복된 제 대 위가 아닌 거룩한 장소 밖에서 거행될 때에는 적당한 상 위에 제대포와 성체포를 깔고 거행되어야 한다(교회법 932조 2항). 성체포는 미사뿐만 아니라 성체 강복 · 성체 현시 · 성체 거동 · 성체 행렬 등의 전례가 거행될 때 성 체가 든 성작이나 성반, 성합, 성광(ostensorium) 아래에 깐다. 처음에는 작은 자루(saccula)에 보관하다가 그 후에 는 세 번 접어 성작 덮개(palla)와 함께 성체 포낭(bursa) 에 보관하였으나, 현재는 성체 포낭을 사용하지 않는다. 성체포를 미사 시작하기 전에 미리 제대에 깔아 놓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말씀 전례를 마치고 봉헌 성가로 써 성찬 전례를 시작할 때 제대 중앙에 성체포를 펴고 제 병이 든 성합을 그 위에 올려 놓는 것이 좋다. 미사 경본 은 성체포 바로 옆에 펴 두며, 예물 준비 기도를 차례로 바친 후 성반과 성작을 성체포 위에 올려 놓는다. 그리고 신자들에게 성체를 분배한 후 성합과 성반에 남은 성체 조각과 가루를 닦아 낸 후 성작 수건을 접어 성작 위에 올리고, 그 위에 성반을, 그 위에 성작 덮개를 올린 다음 성체포를 접어서 성작 덮개 위에 올려 놓는다. 성체포는 사용 전에 사제에 의해 축성되어야 하는데, 7~8세기경의 성무 집전서에는 성체포의 축성 사례가 기록되어 있다. 현재 성체포의 축복은 다른 전례 용품들 과 함께 미사 중에 하도록 권장되고 있다. 미사 없이 간 략한 축복 예식을 거행할 때에는 부제가 집전할 수도 있 다(《축복 예식서》 1070항, 1072~1073항). 축성된 성체포 가 성작 등의 제구를 놓을 수 없을 만큼 찢어졌을 경우에 는 축성 효력을 상실한다. (→ 전례 용구) ※ 참고문헌 Jovian P. Lang, O.F.M., 《DL》, p. 143/ 《ODCC), p. 419/ Richard P. McBrien ed., The HarperColins Encyclopedia of Catholicism, San Francisco, Harper Co., 1995, p. 359/ R. Lesage, 《Cath》 3, pp. 204~205/ Victor H. Elbern, 《TRE》 12, p. 403/ Joseph A. Jungmann, S.J. The Mass of the Roman Rite : Its Origins and Development I ~ II , Benziger Brothers Inc., 1950, pp. 71, 208, 459/ J. Braun · J. Wagner · C. Schreiber, 《LThK》 3, pp. 62~63/ 《축복 예식서》,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1986, p. 359 [편찬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