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제 순교자. 일명 '성일' 이라고도 했던 고성대의 세례명은 베드로, '여빈' 이라고도 했던 고성운의 세례명은 요셉. 누가 형인지는 확실하지 않다. 다블뤼(Daveluy, 安敦伊) 주교의 《비망기》(備忘記)에는 고성운이 형, 달레의 《한국천주교회사》에는 고성대가 형, 관변측 기록인 《일성록》(日省錄)에는 고성대가 먼저 나온다. 덕산(德山) 별암(현 禮山郡 古德面 上長里)에서 태어나 부모에게서 천주교 교리를 배워 어려서 입교했다. 고성대는 성격이 포악하여 모든 사람이 무서워하였고, 고성운은 성격이 착하여 많은 사람들에게서 사랑을 받았는데 둘 다 효성이 지극하여 병상의 아버지를 위해 8개월 동안 매일 기도하였다. 1801년 고성대는 고산(高山) 저구리골(현 全北 完洲郡 雲洲面 積梧里)에서 잡혀 전주 감옥에 수감되어 처음에는 신앙을 증거하였으나 무수한 고문과 유혹에 빠져 배교하고 석방되었다. 석방 후 배교를 뉘우치고 더욱 열심히 신앙 생활을 하였다. 그 후 청송(靑松) 노래산(老萊山)으로 옮겨 살다가 1815년 2월 22일 부활 주일에 배교자를 앞세운 포졸들에 의해 고성운과 함께 잡혀 경주 진영(慶州鎭營)으로 이송되었다. 이어 대구 감영으로 이송되어 약 20개월 동안 옥고를 치르다가 1816년 12월 26일(음 11월 8일) 함께 참수 치명하였다.
※ 참고문헌 Daveluy, ,Noes/《日省錄》《달레 교회사》 中. 〔尹善子〕
고성대와 고성운 云(?~1816)
高聖大 — 高聖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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