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탄 시기 聖誕時期

聖誕時期

〔라〕tempus natalis Domini · 〔영〕cycle of Christma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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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 공현 대축일 이전까지의 '성탄 시기' 에는 예수 탄생(왼쪽)과 목동들의 경배를 기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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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 공현 대축일 이전까지의 '성탄 시기' 에는 예수 탄생(왼쪽)과 목동들의 경배를 기념한다.


예수 성탄 제1 저녁 기도부터 주님 세례 축일까지의 기간. 성탄 시기는 주님 공현 대축일 이전까지의 '성탄 시기 와 그 이후의 '공현 시기'로 나눌 수 있다. 초대 교 회 때는 단 하나의 축일만 있었는데, 주간 파스카(주일) 와 연중 파스카(예수 부활 대축일)에 지내는 주님의 날이 었다. 성자이신 구세주가 사람들에게 오심을 성대하게 기념하는 그리스도의 탄생과 그의 공현 축일을 지내기 시작한 것은 4세기부터였다. 〔성탄 시기〕 역사와 기원 : 로마에서 쓰여진 《주교 사 망록》(Depositio episcoporum)에 따르면, 로마 교회는 336 년 이래 12월 25일에 예수 성탄 축일을 지냈다고 한다. 아우구스티노(Augusinus Hipponensis, 354~430) 시대에 북 아프리카에서도 12월 25일에 성탄 축일을 지냈고, 4세 기 말에 북이탈리아와 스페인에서는 성탄 축일을 대축일 로 지냈다. 동방 교회의 경우 요한 그리소스토모(Joannes Chrysostomus, 347~407) 시대에는 1월 6일에 공현 축일을 지내던 콘스탄티노플과 안티오키아에서 로마 교회에 기 원을 둔 12월 25일의 성탄 축일을 지냈다고 한다. 4세 기 말에는 성탄 축일과 공현 축일이 대부분의 교회에 받 아들여지면서 두 축일의 의미도 변화를 겪게 되었는데, 먼저 성탄은 예수가 베들레헴에서 탄생한 것을 기념하지 만 동시에 예수의 탄생과 관련된 사건들(목동들과 삼왕의 경배, 무죄한 어린이들의 학살) 역시 함께 기억되었다. 그리 고 4세기 중반 로마 교회에 공현 축일이 전해지면서 삼 왕의 방문 기념은 공현 축일의 핵심 주제로 넘겨졌고, 성 탄에는 예수 탄생과 목동들의 경배만을 기념하였다. 이 축일의 발생지인 로마에서 12월 25일에 예수 탄생 을 기념하는 축일을 지내게 된 까닭에 대해서는 여러 가 지 설이 있다. 그중에서도 가장 인정받는 가설은, 274년 에 아우렐리아누스 황제가 왕국의 일치를 공고히 할 목 적으로 동지(冬至)인 12월 25일에 '무적의 태양신 탄생 축일' (natalis solis invicti)을 지내도록 하였는데, 그리스도 인들이 퇴폐적인 태양신 숭배 축제에 빠져 들지 않으려 고 같은 날 예수 성탄 축일을 지내게 되었다는 것이다. 물론 여기에는 "승리의 태양"(말라 3, 20)이며 "세상의 빛"(요한 8, 12)인 예수에 대한 그리스도교 신앙이 뒷받 침되어 있었다. 4~5세기에 나타났던 그리스도론에 관 한 이단들에 맞서 열렸던 4번의 공의회(니체아 · 에페소 · 칼체돈 · 콘스탄티노플)의 가르침과 교황 레오 1세(440~ 461)의 성탄 강론들은 예수 성탄 축일이 담고 있는 육화 의 신비를 더욱 심화시켰다. 전례 : 성탄에 세 번(밤 미사 새벽 미사 · 낮 미사)의 미 사를 봉헌하는 풍습에 대한 가장 오래된 증언은 교황 그 레고리오 1세(590~604)의 강론이다. 이 관행은 로마 교 황청 전례에 기원을 두고 있는데, 본래 교황 레오 1세 시 대까지는 오전 9시쯤에 베드로 대성전에서 단 한 번의 미사만 바쳤으나 에페소 공의회(431)를 기념하여 재건축 된 성모 마리아 대성당에서 베들레헴의 전례를 모방하여 5~6세기경부터 밤 전례를 거행함으로써 밤 미사가 추 가되었다. 그리고 새벽 미사는 6세기 중반에 동로마 제 국 사람들을 위하여 교황이 25일 새벽에 성녀 아나스타 시아 성당에서 주보 성녀를 기리는 미사를 바쳤던 것이 시간이 흐르면서 자연스럽게 성탄 미사로 바뀌면서 시작 되었다. 이외에 24일 밤에는 전야 미사를 봉헌하는데 이 역시 로마 전례에서 나온 것이다. 이처럼 미사를 세 번 바치는 관행은 《성무 집전서》(Sacramentainim)들 안에 수 용되어 로마 전례가 서유럽 전역으로 퍼짐에 따라 정착 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성탄 밤 미사의 가장 특징적인 요소는 예수가 베들레 헴에서 탄생함을 전하는 루가 복음 2장 1-14절의 내용 이다. 제1 독서(이사 9, 1-6)는 메시아 오심을 고대하는 마음을 담고 있으며, 이 기다림은 성탄으로 완성될 것이 었다. 새벽 미사는 목자들이 예수에게 경배한 내용의 복 음(루가 2. 15-20)을 읽는 것 때문에 '목자들의 미사 라 고 불리며, 이 미사 안에서 빛에 대한 상징이 밤 미사 때 보다 더 뚜렷이 부각된다. 말씀의 육화를 전하는 성탄 낮 미사의 복음(요한 1, 1-18)은 성탄 축일의 정점을 이룬다. 성탄 미사들과 시간 전례의 기도문들은 니체아 공의회 · 에페소 공의회 · 칼체돈 공의회의 교의들의 내용을 반영 하고 있는데, 그것은 곧 예수의 육화로 인성과 신성이 교 환된 신비에 관한 것이다. 구유 장식 : 구유 장식은 서방 교회 성탄 축일의 가장 두드러진 특색이다. 초기 그리스도인들이 예수의 탄생 유적지를 방문하였다는 것은 분명하지만 구유에 대한 경 배가 예루살렘에서 거행되었음을 알려 준 사람은 오리제 네스(Origenes Alexandriae, 185~254)였다. 6세기경 로마에 서도 구유 경배가 이루어졌지만, 현재의 구유 장식 풍습 은 주교좌 성당들과 수도원 성당에서 기인된 것이다. 1223년의 성탄 때에 아시시의 성 프란치스코(Francisus Assisii, 1181/1182~126)가가 구유에 당나귀 한 마리와 황소 한 마리를 놓아 장식한 후 제대에 안치하였는데, 프란치 스코회 회원들은 바로 이 구유 신심을 서방에 널리 전파 하였다고 한다. 바로크 시대에는 소박한 구유가 화려하 게 변모되었으며, 구유 장식으로 채색 인형들을 놓는 풍 습도 이때 생겼다. 성탄 팔부 : 7세기까지 팔부 축일은 예수 부활 대축일 만이 누리던 특권이었다. 성탄의 경우 팔부 축제가 없었 고 대신 성탄 후 8일째 되는 날인 1월 1일을 축일로 정 하여 지냈다. 그러나 성탄 후 8일째 되는 날은 로마인들 이 새해가 시작되는 날로 보았기 때문에 그들은 갖가지 미신적인 행위들과 더불어 자기네 신에게 경배하곤 하였 으므로, 교회는 신자들을 이교도적인 풍습에서 지킬 목 적으로 단식과 더불어 참회하는 날로 정하였다. 567년 에 열린 제2차 투르 교회 회의에서는 1월 1일부터 3일 까지 사흘 동안 이교도의 풍습을 멀리하고 경건히 참회 하며 지내는 날로 정하였고, 로마 교회는 이날에 하느님 의 어머니 마리아의 탄생을 기념하는 축일로 만들어 이 에 대처하였다. 7세기 초 동방 교회로부터 2개의 마리아 축일(예수 탄 생 예고 축일과 성모 승천 축일)이 들어오면서 성모 탄생 축 일이 가려지게 되었고 1월 1일은 성탄 팔부 축일로 바뀌 게 되었다. 스페인과 갈리아에서는 1월 1일에 주님의 할 례를 기념하였는데, 13~14세기에 이 축일이 로마에 도 입되면서 "성탄 팔부와 주의 할례" 축일이라는 이름을 갖게 되었지만, 최근의 전례 개혁 전까지 여전히 마리아 축일이자 성탄 팔부 축일의 성격을 유지하였다. 1969년 개혁 때 이 축일은 다시 천주의 모친 성 마리아 대축일이 되었다. "1월 1일에는 제8부, 하느님의 모친 성 마리아 대축일을 지내며, 예수 성명 명명도 함께 기념한다" (〈전 례 주년과 전례력에 관한 규범> 35항). 로마의 성모 축일 가 운데 가장 오래된 이 축일의 기도문들 안에서 가장 두드 러진 요소는 마리아가 "그리스도의 어머니이자 교회의 어머니" 로서 하느님의 어머니라는 신앙이다. 이는 예수 가 태어나기 전부터 하느님이라는 에페소 공의회의 가르 침을 반영한 것이다. 복음(루가 2, 16-21)은 목자들의 경 배와 예수의 할례, 작명(作名)에 대해 언급한다. 성 스테파노, 성 요한, 무죄한 어린이들을 기리는 예수 성탄 이후의 3일은 로마의 가장 오래된 전례력들 안에 나와 있다. 첫 순교자인 성 스테파노 축일은 4세기경 동 방에서 시작되어 5세기 초에 서방에도 소개되었으며, 4 세기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성 요한 복음사가의 축일은 동방에서 유래하였고, 무죄한 어린이들의 순교 축일은 앞의 두 축일과는 달리 서방에서 형성된 것으로 보인다. 무죄한 어린이들의 순교 축일을 기록하고 있는 가장 오 래된 전례력은 505년 북아프리카 카르타고 지역의 것으 로, 28일에 지내게 된 것은 어린이들 학살이 예수 탄생 3일 후에 일어난 것으로 보았기 때문이다. 성탄 다음 주 일 또는 성탄이 주일에 오면 12월 30일에 성가정 축일 을 지내는데, 성가정에 대한 신심은 그리스도인의 모범 적인 가정관을 제시하려는 열망으로 인해 19세기에 크 게 확산되었으며, 여러 교구들과 수도회들의 요청으로 1893년부터는 공현 다음 셋째 주일에 지낼 수 있게 되 었다. 그리고 교황 비오 10세(1903~1914)에 의해 1911 년 전례력에서 삭제되기도 하였지만, 1920년 미사 경본 에 다시 삽입되면서 공현 후 첫째 주일에 지내게 되었다. 그 후 1969년에 성탄 팔부에 포함되면서 예수의 어린 시절에 관한 복음(가해 : 이집트로의 피신, 나해 : 예수를 성 전에 봉헌함, 다해 : 예수를 성전에서 다시 찾음)이 읽혀지고 있다. 신학 : 교회가 기리는 신비는 오직 단 하나, 파스카 신 비이다. '주님의 날' 에 모임을 가진 것도, 예수 부활 대 축일을 만든 것도 모두 이 파스카 신비를 기념하기 위해 서였다. 그 외의 다른 축일들은 모두 이 파스카 신비와 연관을 맺을 때 교회의 축일이 되었다. 그렇기 때문에 400년경 성 아우구스티노는 성탄 축일을 예수 부활 대 축일과는 달리 예수의 탄생을 기리는 기념 정도로 보았 다. 성탄 축일에 대한 신학이 정립된 것은 이보다 약 50 년 후 교황 레오 1세의 업적 때문이었는데, 교황은 성탄 을 통해 하느님의 구원 신비가 시작되었고 따라서 성탄 은 구원의 성사라고 밝혔다. 한편 예수는 하느님이자 인 간이라는 신앙에 맞서 예수의 신성을 부인하거나 인성을 부인하는 이단들이 나타나자 교황은 예수야말로 참 하느 님이요 참 인간이라는 육화 신비가 성탄 안에 나타나고 있음을 보여 주었다. "사람이 신이 되도록 사람이 되신 하느님"이라는 성 아우구스티노의 말에서 나오는 인성과 신성의 놀라운 교환에 관한 주제는 성탄 전례의 핵심을 차지한다. 하느님이 사람이 됨으로써 우리 인간도 하느 님의 신적 본성에 참여하게 되었다는 것은 곧 태어난 구 세주가 우리를 하느님의 자녀로 다시 태어나게 하였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것은 곧 구원이고, 육화 신비는 또한 파스카 신비를 향하며 그 시발점이기도 하다. 하느님이 사람이 된 것은 성부에게 구원의 제사를 바침으로써 구 원 사업을 완성하고자 하기 위함이었다. 이제 그리스도 의 구원 사업에 부름을 받은 모든 사람이 예수를 중심으 로 한 몸을 이루게 되었으며, 따라서 그리스도의 탄생을 노래하는 성탄은 교회의 시작인 셈이다. 예수 탄생 축일 은 스스로 자신을 낮춤으로써 인간을 신성으로 부른 하 느님의 겸손을 노래한다. 그리스도로 인해 지극히 높은 하느님 본성에 참여하게 된 이들은 이제 거꾸로 그리스 도의 겸손을 본받아 다른 이를 섬기는 삶을 배워야 한다. 따라서 모든 사람 안에서 하느님의 본성을 보게 된 그리 스도인들이 사랑과 섬김의 삶을 사는 것은 지극히 당연 한 일이며, 자신의 품위를 더럽히는 행위를 멀리하여야 할 것이다. [공현 시기] 주님 공현 대축일은 예수 성탄을 기리는 동방 교회들의 축일이었다. 공현을 가리키는 그리스어 '에피파니아' (έπίφάνία) 또는 '테오파니아' (Θεοφάνεια)는 '스스로를 드러냄' 또는 '유명한 존재가 된다' 는 뜻을 가지고 있으며, '하느님의 발현' 이나 '하느님의 개입' 을 가리키는 데 사용되었다. 따라서 동방 교회들에서의 주 님 공현 축일은 하느님이 인간의 모습으로 나타남(탄생), 또는 예수가 하느님임이 드러남을 뜻한다. "모든 사람을 구원하는, 하느님의 은총이 나타났습니다"(디도 2. 11)는 구절이 성탄 밤 미사와 공현 때 모두 사용되고 있다는 것 은 두 축일이 각기 다른 지역에서 기원하였지만 그 뜻하 는 바는 같음을 말한다. 공현은 곧 하느님이 사람으로 태 어남을 가리키는 것이기도 하지만 예수의 신성이 드러남 을 동시에 가리키기도 한다. 이 점에서 주님 공현 대축일 은 예수의 탄생 이외에 더 많은 신비들을 기념한다. 오늘 날 성탄 축일은 각 교회 안에서 동일한 신비(예수 탄생)를 기념하지만, 공현은 각 교회마다 조금씩 차이를 보이고 있다. 기원 : 4세기 후반 에피파니오(Epiphanius, 315~403)가 전하는 바에 따르면 공현 축일에 주님이 세상에 옴(탄생) 과 삼왕의 방문과 가나의 혼인 잔치를 기념하였다고 한 다. 요한 그리소스토모 시대에 안티오키아와 이집트에서 이 축일을 지낼 때, 그 대상은 예수의 탄생과 세례였다. 반면에 예루살렘 교회는 예수 탄생만 기념하였는데, 이 축일이 12월 25일에 예수 탄생을 기념하고 있는 서방 교회에 전해지면서 그 뜻도 변하였다. 그래서, 동방의 삼 왕들이 새로 태어난 구세주를 경배하러 방문한 사건을 기념하면서 이교 백성에게 예수가 자신을 드러냈음을 선 포하는 축일이 되었다. 로마 교회는 삼왕의 방문 사건에 예수의 세례와 가나에서의 첫 기적을 덧붙여 기념하였는 데, 이는 예수가 하느님임이 드러난 사건들이라는 공통 점을 가지고 있다. 한편 12월 25일의 성탄 축일을 접하 게 된 동방 교회(370년과 380년 사이에 가빠도기아, 386년에 안티오키아, 430년경에는 이집트, 그 이후 세기에는 팔레스티 나)들은 축일의 본래 주제인 예수 성탄을 기리면서 1월 6일에는 주로 주의 세례를 기념하게 되었고, 성탄 축일 을 받아들이지 않은 아르메니아 교회만 공현 때 성탄· 삼왕의 방문 및 세례를 기념하고 있다. 동방 교회에서의 공현 축일의 기원은 서방 교회에서의 성탄 축일의 기원과 거의 같다. 2세기부터 1월 6일에 주 님 세례 축일을 지낸 그노시스주의자들은 세례 때 인간 예수 안에 말씀이 내려왔다고 주장하면서 예수가 그 시 초부터 참 하느님이라는 전통 신앙을 부인하였다. 또 이 집트에서는 1월 6일에 동지(冬至) 축제를 지내면서 승 리자 태양신에게 예배하였다. 이에 교회는 이단을 물리 치고 이교 풍습으로부터 그리스도인들을 보호하기 위하 여 1월 6일 그리스도의 탄생과 세례를 기념하는 공현 축 일을 제정하였던 것이다. 다른 한편으로는 동지로부터 상당한 시간이 흘러 낮의 길이가 확실히 길어진 1월 6일 에 예수 성탄을 지냄으로써 예수야말로 참된 빛임이 드 러났음을 명백히 하고자 한 의도도 있었을 것이다. 문헌 상으로 이 축일을 가장 먼저 확인할 수 있는 곳은 동방 전례들로부터 영향을 받았던 갈리아 전례인데, 361년에 공현 축일을 크게 지냈다는 기록이 있다. 따라서 공현 축 일의 제정은 예수 성탄 축일의 제정보다 조금 빠르거나 거의 같은 시대일 것이나, 니체아 공의회보다 훨씬 더 앞 서지는 않았을 것이다. 전례 : 1월 6일에 공현 대축일을 지내는 곳에서는 그 이후에 오는 주일에 주님 세례 축일을 지내면서 성탄 시 기의 제2부인 공현 시기를 끝맺는다. 그 외의 지역에서 는 1월 2~8일 사이에 오는 주일에 공현을 지낸다. 이 축일의 주제는 복음(마태 2, 1-12)에 나와 있듯이 삼왕의 방문으로 나타난, 이방인들에게 주님이 모습을 드러냄과 온 백성에게 구원의 소식이 전해졌다는 것이다. 여기에 서 예수는 온 세상의 구세주이자 왕이며, 이방인들까지 구원으로 초대하는 "세상의 빛" 으로 나타난다. 이 밖에 시간 전례의 아침 기도와 저녁 기도 때는 가나의 혼인 잔 치와 주의 세례를 함께 기념하는데, 가나의 혼인 잔치가 공현 시기의 기념 대상이 되는 것은 그날 주님이 처음 기 적을 행함으로써 당신의 신성을 처음으로 드러냈다는 사 실과, 신부인 교회와 신랑인 그리스도의 결합을 혼인 잔 치로 상징화했기 때문이다. 한편 1월 6일 밤 일부 샘에 서 물 대신 포도주가 나온다는 믿음을 가지고 있었던 이 집트의 이교도들 때문에, 물이 포도주로 바뀌는 참된 기 적은 예수에 의해 가나의 혼인 잔치에서 일어났음을 강 조하기 위하여 공현 축일에 덧붙여졌을 가능성도 있다. 주님 세례 축일 : 8세기 말에 성탄 축일 후 여덟 번째 되는 날을 축일로 만든 것을 본받아 주일에 공현 축일을 지내는 지역에서는 공현 후 8일째 되는 날인 공현 다음 주일에 주의 세례에 관한 복음을 읽었으며, 13세기 프랑 스 지역에서는 주님 세례 축일로 되면서 고유 기도문들 이 만들어졌고, 1960년에는 로마 전례력에 편입되었다. 1969년의 전례력에서는 공현 다음 주일에 세례 축일을 지내되 7일이나 8일이 주일인 경우 공현 축일 다음 월요 일에 주님 세례 축일을 지내도록 정하였다. 현재 세례 축 일의 기도문들은 새로 만들어진 것이며, 시간 전례에서 아침 기도의 즈가리야 노래 후렴에는 나치안츠의 그레고 리오(329/30~389/390)의 사상이 담겨져 있다. 이 축일의 주제는 복음에 나와 있듯이 예수의 세례인데, 이미 교부 들은 이 세례 안에서 심오한 신학적 의미를 발견하였었 다. 즉 세례 때 하늘에서 예수가 하느님의 아들임을 알려 주는 소리가 들려왔다는 사실에서, 세례 사건은 예수의 신성을 계시하는 사건이었다. 교부들은 세례 후 성령이 내려온 것에 대해서도 이는 바로 성부가 예수를 기름 발 라 메시아로서의 사명을 주어 파견하는 것으로 받아들였 다. 다른 한편으로는 요한의 세례를 받아들이면서 죄에 짓눌린 인류와 유대를 이루는 가운데 물에다 죄를 씻는 능력을 주었다고 보았다. 제1 독서(이사 42, 1-4. 6-7)는 전통적으로 고통받는 종의 첫째 노래로서 메시아의 도유 와 파견을 다루고 있다고 여겨지는 구절이고, 제2 독서 (사도 10, 34-38) 역시 도유와 메시아로서의 사명과 파견 을 말하고 있다. 감사송은 이 사건으로 드러난 구원론적 인 의미를 잘 드러내 주고 있다. 동방 교회들의 공현 축일 : 모든 동방 교회들의 공현 축일은 주의 세례를 주된 주제로 삼았으며, 여기에서 가 장 특징적인 것은 주의 세례를 기념하여 1월 5일 저녁에 물을 강복하는 예식이다. 5세기 초까지 부활 성야에 세 례를 베푸는 전통에 충실하였던 콘스탄티노플 교회도 얼 마 안 있어 세례 베푸는 날을 공현 축일로 바꾸었는데, 이는 예수가 세례 때 물을 축성하여 영원한 생명의 샘으 로 만들었다고 보기 때문이었다. 부활 성야의 경우와 마 찬가지로 어른 세례가 없어진 이후에도 공현 때 세례수 를 축성하는 관행은 계속되고 있다. (→ 구유 ; 성탄 ; 예 수 성탄 대축일 ; 주님 공현 대축일 ; 주님 세례 축일 ; 전례력 ; 크리스마스) ※ 참고문헌  B. Botte, Les Origines de la Noèl et de I'Epiphanie, Louvain, 1932/ J. Leclercq, Aux origines du cycle de Noél, 60, 1946, pp. 7~26/ O. Cullmann, Noél dans I'Eglise ancienne, Neuchâtel, 1949/ J. Lemarié, La Manifestation du Seigneur, 1957/ C. Mohrmann, Epiphania, Nijmegen, 1953/ A.J. Vermeulen, Le développement sémasiologique d'Επιφάνεια et la fête de l'Epiphanie, Nijmegen, 1964/ J. Mossay, Les fêtes de Noël et d'Epipanie d'après les sources littéraires cappadociemes du Ⅳ siècle, Louvaine, 1965/ F. Nikolasch, Zum Ursprung des epiphaniefestes, 《EL》 82, 1968, pp. 393~439/ B. Botte . E. Melia, Noël, épiphanie, Retour du Christ, (LO) 40, 1967/ Th. J. Talley, Le temps liturgique dans I'église ancienne, état de la recherche, 《LMD》 147, 1981, pp. 39~48. 〔金寅寧〕