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품성사

聖品聖事

〔라〕Sacramentum ordinis · 〔영〕Sacrament of ord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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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품성사는 교회의 제도인 동시에 하느님이 제정한 성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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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품성사는 교회의 제도인 동시에 하느님이 제정한 성사이다.


하느님이 제정한 성사로서, 그리스도교 신자들 중에서 선발된 이에게 인호(印號, character)를 새겨 주어 각기 계 층(주교 · 신부 · 부제)에 따라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가르치 고 거룩하게 하며 다스리는 임무를 수행하면서 하느님 백성을 사목하도록 축성하는 성사. 성품성사는 교회의 제도(institutio ecclesiastica)인 동시에 하느님이 제정한 성 사라는 의미에서 하느님의 제도(divina institutio)이다(교회 법 1008~1009조). . 그리고 교회 각 계층의 봉사 직무들이 그 직무들을 수행하는 구체적인 교회 공동체와 그 구성 원들과 뗄 수 없는 관계에 놓여 있기 때문에, 공동체적인 특성과 개별적인 특성을 동시에 갖는다. I . 용 어 주교품과 탁덕품과 부제품을 모두 '성품' 이라고 한다 (1009조 1항). 성품이라고 부르는 이유는 우선 주교(episcopus) · 신부(presbyter) · 부제(diaconus)가 모두 성직자이 며 서품을 통하여 교회의 성직자단(ordo clericorum)에 들 기 때문이며, 또 다른 하나는 주교 · 신부 · 부제 세 등급 이 하나의 성사로서 서품 전례의 핵심 부분인 주교의 안 수와 축성 기도로 특별히 축성(祝聖, consecratio)되기 때 문이다. 《가톨릭 교회 교리서》에도 교회의 전통적인 표 현을 빌려 서품을 '축성' 이라고 하였다(1538항) . 한편 한국 천주교 용어위원회에서는 '신품' 이라는 단어가 신 부품(神父品)만을 뜻하는 제한적인 의미여서 주교 · 신 부 · 부제의 세 등급을 동시에 포괄하지 못한다고 하여 신품성사(神品聖事)를 성품성사로 바꾸었다. 또 신부(神父)와 사제(司祭)라는 용어를 구분해서 사 용할 필요가 있는데, 탁덕(鐸德)이라고도 하는 신부는 주교가 아닌 가톨릭의 사제를 일컫는 호칭으로서 성품성 사의 둘째 등급을 말할 때 사용된다. 그리고 사제(sacerdos)란 교회의 경신례적인 권한이 부여된 자에게 주어진 이름이다. 사제라는 칭호는 처음에 주교에게만 적용되다 가 후에 신부에게도 적용되어 11세기 이후부터는 신부 나 주교에게 공통적으로 쓰였다. 현대에 와서는 라틴어 '프레스비테르' (presbyter)와 '사체르도스' (sacerdos)를 구 분 없이 사제라고 표현하고 있는데, 심지어 제2차 바티 칸 공의회 문헌에서도 구분 없이 사용하였다. 엄밀히 말 하면 전자는 신부, 후자는 사제라고 번역하여야 한다. 교황 바오로 6세(1963~1978)는 1972년의 자의 교서 <미니스테리아 궤담>(Ministeria quaedam)을 통하여 교회 에서 전통적으로 있어 왔던 여러 소품(小品)들을 대폭 줄이고 독서직과 시종직만을 두면서 '소품' 이라는 말 대 신에 '직무' (ministerium)라는 말로 바꾸었으며, 독서직과 시종직이 성직 지망자들에게만 부여되는 것이 아니라 평 신도들도 이 직무에 참여할 수 있다고 밝혔다. 이후로 '소품' 과 '대품' (大品)을 구분하지 않고 주교품 · 탁덕 품 · 부제품의 '대품' 만을 성직자의 품계(ordo) 즉 성품 으로 생각하는 새로운 전통이 생겨났다. 따라서 성품성 사에서 '오르도' (ordo)라는 용어는 아무런 형용사를 붙 이지 않아도 '성품' 이라는 의미로 사용할 수 있게 된 것 이다. II . 설정에 있어서의 신적 기원의 의미 가톨릭 신학은 항상 역사의 예수까지 이르는 교회의 역사적인 현존과 설립에 대해 상세히 추적하려는 경향이 있다. 왜냐하면 그것이 신적 적법성을 확인하는 유일한 방법으로 생각되고, 구체적으로 예수 자신에 의해 창립 된 것만이 신적 기원을 갖는 신법(iuris divini)에 의한 설 정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교회의 현존과 그 본질적인 설 정에 예수와의 관련성을 유지해야 하는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지만, 이러한 관련성에 대해서는 신학적으로 보다 더 폭 넓은 관점에서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트리엔트 공의회(1545~1563)에서는 신법에 의한 고해성사 설정을 선언하면서, 그것은 인간에 의해 개발된 것이 아니라 그 리스도의 명령과 설정에 따라서 교회 초창기부터 알려진 구체적인 형태임을 천명하였다(DS 1706). 그러나 여기서 '설정' 이라는 것은 스콜라 신학에서도 필연적으로 역사 적인 행위와 동일시되지는 않았다. 그것은 부활한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비롯되는 효과로 이해될 수도 있었는데, 이는 교회와 교회의 설정 안에 실제로 현존하는 두 가지 차원을 보여 준다. 즉 하나는 역사적인 근접성이나 연결 성이고 또 하나는 성령의 작용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교 회와 교회의 직무들은 순수 역사적인 방식으로만이 아니 고 삼위 일체적이며 구원 역사적인 방식으로도 설정되었 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역사적인 조건을 규정하는 데 있어서 예수가 지상 생 활을 마치고 떠난 후 곧바로 어떤 발전이 있었으며, 그것 이 예수와 어떤 연결성을 가지고 있는지를 찾는 것은 중 요하다. 초대 그리스도교 공동체는 예수의 파견 임무를 수행하면서 다른 백성들과는 다른 새로운 형태의 인간 공동체 안에서 예수와 그의 메시지를 계속해서 증거하며 현존을 이루어 갔다. 이렇듯 예수의 파견과 메시지 증거 가 지속적으로 반복되는 속에서 역사적인 지속성과 더불 어 '신법' 의 본질적인 요소들을 찾을 수가 있다. 제자들과 예수와의 연결성은 다음과 같이 두 가지 이 유에 근거한다. 첫째, 예수의 가르침과 제자들 파견에 있 어서 예수 스스로 분명히 공동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 는 사람들과 특별한 방법으로 봉사하도록 부름을 받은 사람들을 구별한 것처럼 보인다. 둘째는, 부활한 예수에 대한 부활 체험이 모든 사람에게 똑같은 방법으로 주어 지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이러한 차이의 근거로 목격자 들과 결정적인 예수의 말씀을 직접 들은 사람들은 역사 적인 예수를 부활한 예수와 동일하다고 증언할 수 있었 고, 또한 그렇게 했어야 했다. 파견과 증언이라는 두 요 인을 바탕으로 교회는 자신을 스스로 '사도적' 이라고 인 식하였으며, 또한 그 인식을 지속시키고 있다. 교회가 첫 제자들과 사도들의 신앙, 특별히 삼위 일체적이고 그리 스도론적인 신앙 고백 안에서, 또 지속되는 신앙 안에서 교회가 복음 선포와 파견을 수행해 나갈 때 넓은 의미에 서 '사도적 계승 (sucessio apostolica)이 교회 안에 현존하 는 것이다. 물론 여기에서 예수와의 실천적인 제자 관계 는 본질적이다. 좁은 의미에서의 사도적 계승은 교회 자 체를 구축하는 증언을 통하여 비롯된다. 즉 교회 직무는 신앙 증언의 동질성과 지속성을 보존한다. 교회 직무는 이렇게 신앙의 동질성과 신앙 고백과 첫 증언 고백으로 부터뿐만 아니라 첫 증언 안의 역사적인 기원을 통해서 도 그 적법성을 인정받을 수 있다. 가톨릭 교회는 사도적 계승의 원칙을 교회의 본질적인 요소와 넓은 의미에서든 좁은 의미에서든 예수 그리스도 의 참된 교회를 위한 기준으로 견지한다. 왜냐하면 메시 지를 전하는 사람들과 그 증인들은 그들의 신앙과 그리 스도교적인 생활을 통해서뿐만 아니라 자신들의 제자 관 계의 적법성을 통해서도 스스로를 입증해야 하기 때문이 다. 이러한 임무는 교회 전체에 맡겨졌는데 메시지를 전 하는 사람들이나 그 증인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특별한 방법으로 현존하게 하는 표지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성 품성사 신학을 위한 근거를 보게 된다. 사도적인 제자 관 계 안에서의 봉사 직무는 교회를 구성하며, 어떤 사람을 이러한 봉사 직무에 장엄하게 받아들이는 것은 하나의 성사가 된다. 봉사 직무에 있어서 본질적인 것은 하느님 이 몸소 교회를 이루며 살도록 이끌어 준다는 것이다. 그 러므로 그 직무들은 성사 안에서 청원되고 현존하는 성 령에 의해 주어진다. 하느님의 이러한 선물은 교회의 전 유물이 아니기 때문에 교회 공동체에 의해 제공될 수 없 고, 결코 이러한 직무를 수행하는 자들 스스로 교회가 될 수도 없다. 결국 성품성사로부터 오는 교회의 직무들은 어떠한 '권한' (potestas)으로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봉 사 (servitium)로 주어진 것이다. 성품성사의 이러한 차원 이 성품성사 설정의 신적 기원을 드러내고 있다. 교회 내의 봉사 직무는 역사를 거듭하면서 봉사 직무 의 내용에 있어서 다소 다른 강조점을 두고 발전하였다. 그리고 이러한 발전은 교회에 의해 예수가 행했던 것에 근거를 둔 적법한 발전으로 생각되어 결국 '신법' 의 테 두리 안에 머물렀다. 그러나 이것은 본래의 내용이 전도 되는 근본적인 수정은 가능하지 않다는 것을 의미한다. 강조점이 다르게 주어졌다면 주요 관점들이 변할 수 있 으며, 아무것도 전적으로 배제되지는 않을지라도 어떤 것들은 잊혀질 수 있다. 성령의 현존을 믿는 한 현행 직 무들처럼 교회 봉사 직무들의 형태에 새로운 양상들이 첨가될 수 있게 그 발전이 미래를 향해 개방되어 있어야 할 것이다. Ⅲ . 교회 직무의 기원 〔성서적 기원〕 직무와 성품 사이의 밀접한 연계성을 고려하면서 신약성서 안에서 두 가지 질문이 가능하다. 교회의 봉사 직무가 처음에는 어떠한 형태로 존재하였는 가? 그리고 직무의 서임에 대한 근거를 어떻게 찾을 수 있는가? 이러한 질문은 엄밀히 말해서 그의 열두 제자에 게만 적용될 수 있다. 예수의 지상 생활 동안에는 사도들 에 대한 언급이 불가한데, '사도' (ἀπόστολος)란 결정적 으로 부활 이후의 개념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열두 제자 의 개념은 부활 이전 시기에 속한다. 그러나 열두 제자가 처음부터 예수에 의해 맡겨진 그리스도교의 원조들처럼 생각될 수는 없다. 왜냐하면 예수의 공생활 초기에는 개 인적인 추종자들로 구성된 백성의 그룹을 함께 불렀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며, 그 후에 이러한 그룹 안에서 예 수의 메시지에 대한 유효성에 의구심이 제기되면서 열두 제자를 선정할 필요성이 제기되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즉 이러한 변화가 최초로 충실한 제자 그룹의 존재를 확 정 짓게 한 계기였던 것이다. 마태오 복음서는 열두 제자 에게 직접적으로 관련된 몇몇 어록들을 인용하면서 다른 편집에서는 모든 믿는 자들(군중)에게 관련된 것으로 같 은 어록들을 반복하고 있는데, 이는 오랫동안 열두 제자 들과 다른 제자들 사이의 구별이 교계적인 구별처럼 생 각되지 않았다는 사실을 암시한다. 따라서 열두 제자의 설정은 모든 이스라엘을 함께 모으려는 예수의 지속적인 원의를 나타내는 하나의 상징 행위라고 볼 수 있다. 부활 이전의 열두 제자에서 부활 이후의 사도들에게로 어떻게 변천해 갔는지, 교회 전체에서 직무 구조가 어떻 게 전수되었는지에 대하여 신약성서에는 상세하게 명시 되어 있지 않다. 신약성서 안에서 발견할 수 있는 것은 몇몇 지역 공동체들 안에 있었던 다양한 직무 구조들뿐 이다. 따라서 열두 제자들로부터 사도들을 통해 주교들 에게까지 이르는 '사도적 계승' 의 직접적인 발전 과정을 신약성서에서 찾으려는 것은 옳지 않다. 또 바오로의 가 장 오래된 저술 안에 언급된 카리스마들을 직무에 반대 되는 증언으로 설정하거나 카리스마적인 역할과 비카리 스마적인 역할을 구별하는 것도 옳지 않다. 바오로는 교 회 공동체에서 어떤 기능들을 수행하는 자들을 부르고 그들에게 '감독' (ἐπίσκοπος)이나 '봉사자' (διάκονος)라 는 칭호(필립 1, 1)를 부여하고 있음을 받아들이면서도, 감독 직무를 특별히 중요시하거나 꼭 필요하다고 여기지 는 않았다. 뿐만 아니라 직무 지위에서 승진할 수 있는 어떠한 등급의 계층도 밝히지 않았다. 공동체 안에서 책 임을 지며 조절하는 요체는 직접적으로 예수 그리스도에 게 속한 지역 공동체 전체였고, 이들은 모두 예수 그리스 도의 몸을 이루는 것이다(1고린 12장). 중요한 것은 아무 도 모든 역할을 동시에 수행할 수 없다는 것이며, 공동체 전체와 바오로 사도의 관계는 공동체를 일치시시키며 이 끌어 주는 성령의 능력' 에 대한 신뢰에 의해 유지된다는 것이다. 사도 바오로의 '에페소인들에게 보낸 편지' 는 교회 직 무의 발전에 대한 중요한 자료이다. 때때로 부활한 예수 에 의해 직접적으로 비롯된 봉사 직무들에서 규범과 기 준이 되는 것은 사도들과 예언자들이 하던 설교였다. 왜 냐하면 '직무' 는 곧 복음을 전수시키는 하나의 기능이기 때문이다. 설교와 지도의 기능들이 곧 교회를 구성하는 요건이었고, 공동체 안에서 가르치는 직무와 다스리는 직무는 확고하게 서로 연결되어 있었다. 이러한 방법으 로 직무가 부여되었고 그 능력이 입증된 사람들은 그들 스스로 계시를 받지 않았어도 '사도들의 계승자' 로 간주 될 수 있었다. 이때 물론 성령의 현존과 은총의 작용이 포함된다. '에페소인들에게 보낸 편지' 이후에 곧바로 저술된 '베드로의 첫째 편지' 는 공동체의 은사가 다스리는 직무 와 어떤 관련이 있는가를 보여 주고 있다. 여기에서 사도 시대 이후의 공동체 생활을 알 수 있는 단서가 발견되고 있는데, 조금 후기에 쓰여진 '사도 행전' 과 '야고보의 편 지' 에서처럼 '베드로의 첫째 편지' (5, 1 이하)에서도 이 미 지도자 그룹으로 알려진 '장로' 들의 그룹이 나타나고 있다. 그러나 부활한 그리스도 자신이 신자들의 목자이 며 보호자이지(1베드 2, 25), 공동체의 지도자들이 목자 라고 불리지는 않았다. 그 이유는 그들 안에서 작용하는 이는 곧 부활한 예수 그리스도이기 때문이다. 사도 행전에는 원로 직무가 더 이상의 설명 없이 나타 나며(11, 30) 감독 직무와 관련을 맺고 있다(20, 28). 사 도 행전의 저자는 바르나바와 바오로에 의한 원로단 임 명에 관심을 보이고 있는데(14, 23), 원로단 임명은 카리 스마 공동체가 아니라 인위적으로 설정된 것이지만 성령 에 의한 것이다. 원로들은 성령의 도움을 받아 하느님이 몸소 간택한 백성들을 돌보아야 하였으며, 특히 내외적 으로 거짓 가르침에 대해 사도 전승을 안전하게 지킬 의 무가 있었다(20장). 결국 성령 현존과 교회 직무는 각각 고유한 방식으로 교회를 창조하는 요소가 되었던 것이 다. 이처럼 80년경에 쓰여진 성서 문헌들에서 사도 전승 을 규범처럼 강조하고 그것을 변질되지 않도록 보호하려 고 시도한 흔적을 볼 수 있는데, 이러한 노력의 발전에 대한 후기의 증언들이 사목 서간들과 '베드로의 둘째 편 지' 에서 발견되고 있다. 직무 위탁과 관련해서 사도적 가르침이 그 내용으로 강조되었지만 안수 행위와 같은 의식을 통하여 열두 제자들이나 바오로에게까지 소급되 는 직무의 계승을 제시하지는 않았다. 물론 안수와 기도 를 통한 봉사자 서임(사도 6, 6)이 성령의 현존을 간청하 고 전해 주는 축성의 모델로 제시되기는 하였지만, 신학 자들 사이에서도 신약성서에서 언급된 안수가 '서품' (ordinatio)으로 간주될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일 치하지 않고 있다. '사제' (ἱερεύς)라는 말은 구약성서에서는 사제에게 적 용되는 용어이지만, 신약의 '히브리인들에게 보낸 편지' 에서는 그리스도에게 적용되었고 '베드로의 첫째 편지'와 '요한의 묵시록' 에서는 교회(백성)에 적용되었다. 초 기에는 경신례적인 모든 의미가 그리스도교 직무의 의미 에서 제외되었는데, 그것은 유대교의 경신례에 대한 비 판에서 비롯되었으며 그리스도를 통하여 전적으로 새로 운 의미로 변화되었다. 그리스도만이 하느님과 인간을 화해시키는 유일한 사제이며, 그리스도 외에는 아무도 사제라고 불릴 자격이 없었다. 그분이 몸소 우리를 위하 여 '예물과 제물' (에페 5, 2)이 되었다. 그런데 그분이 몸 소 최후 만찬에서 제사를 드리고 전례 양식을 남겨 주었 으며 마지막으로 제자들을 떠날 때 그들을 축복해 주었 다(루가 24, 50-51). 그래서 신자들은 그분의 사제직을 나누어 갖게 되었다(히브 10, 14-25 ; 13, 16). 이와 같이 신약성서는 그리스도교 직무의 기원에 대해서 말하면서 서서히 발전된 모습을 보여 주고 있고, 그리스도교 직무 의 제도적 설정의 기원이 될 만한 증거도 곳곳에서 발견 되고 있다. 그리고 이것에 의해 후기의 특수 직무들, 품 계들, 그리고 여기에 속한 신학들이 생겨날 수 있었다. 〔교부 시대의 발전〕 구조적 형성과 변화 : 1~2세기 이후에는 교회 직무들의 지속적인 발전과 고정화 과정이 있었으나 서품을 구체적으로 사건화하지는 않았다. 그리 고 신학적인 관점에서 신앙과 그 가르침에 있어서는 물 론 제도적인 측면에 있어서도 사도적 전통에 충실하려고 하였다. 교황 글레멘스 1세(90/92~101?)는 1세기 말경 고린토 교회에 한 통의 편지를 썼는데(《제1 고린토 서간》), 여기서 그는 사도로부터 이어져 내려오면서 제정된 직무 조직 즉 신약성서적인 의미에서의 감독 · 원로(πρεσβύτερος) · 봉사자의 직무에 대해 언급하면서 이 직무들은 하느님의 의지와 명령에 따른 것이라고 하였고, 유대교의 직무 조 직과 처음으로 비교를 하였다. 또 안티오키아의 이냐시 오(Ignatius Antiochenus, 35?~110?) 주교가 소아시아 교회의 특수 상황으로 이미 성품성사의 세 등급(주교 · 신부 · 부 제)을 언급하기는 하였지만 모든 교회의 상황이 그렇지 는 않았다. 그러나 이냐시오 주교의 저술에서 '군주적 주교직' (monarchical episcopate)을 향한 발전이 이루어졌 음을 알 수 있다. 그의 신학 안에서는 형상적이고 유형주 의적인 사고로써 주교가 하느님 아버지의 형상이고, 부 제들은 예수 그리스도처럼 존경받으며, 신부들은 사도단 에 비교되었다. 이는 후기 가톨릭 신학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것이다. 그리고 이냐시오에게 있어서 교회 직무는 성령 활동의 우선적인 장소였는데, 그는 이러한 직무가 있는 곳에 교회가 현존하는 것으로 생각하였다. 주교는 전례를 주례하며 교회 공동체의 일치에 대해 책임을 진 다. 리용의 이레네오(Irenaeus Lugdunensis, 130~200) 주교 는 사도적인 요소를 교회 구성의 규범으로 생각하였다. 그에 의하면, 교회가 진실로 교회인 것은 오로지 교회가 사도들의 교회와 함께하는 지속성 안에 머물러 있을 때 뿐이다. 가톨릭 교회의 사도적 계승을 직무의 계승 안에 서 볼 수 있다고 하였다. 즉 파괴되지 않은 공적인 연결 성이 사도들로부터 주교들에게 이르는 것을 통하여 신앙 과 교리에 대한 사도적인 전통이 보존되며 왜곡되지 않 는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사도들의 계승자들' 은 참으로 분명한 은사를 받았기 때문이다. 테르툴리아노(Quintus Septimius Florens Tertullianus, 160~ 223)는 주교를 '최상의 사제' (summus sacerdos) 혹은 '대 사제' 라고 부른 첫 번째 교부였다. 아마도 그는 멜키세 덱에 따른 사제 신학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여겨지는데 (시편 110, 4 : 히브 5-7장), 이 당시에는 신학적으로 구약 의 제도가 신약에서 성취되었다는 생각이 일반적이었다. 그는 또 교회의 직무 수행자들에게 집합적인 의미로 라 틴어 전문 용어를 사용하여 '오르도' (ordo)라는 이름을 붙였다. 그는 로마인들 사이에서 백성과 대조하여 특수 그룹에 적용되었던 이 개념을 시편 110편 4절의 번역에 서 발견했던 것이다. 그리고 이때 성품성사를 나타내기 위한 표현으로 라틴어 '사크라멘툼 오르디니스' (sacramentum ordinis)를 사용함으로써 교황 글레멘스 1세의 편 지에서 희미하게 암시되었던 것이 분명하게 드러나게 되 었다. 즉 대사제 · 사제 · 신분 · 계층과 같은 비그리스도 교적인 개념들을 그리스도교 직무에 관계되는 언어로 적 용하였던 것이다. 이를 더 발전시킨 사람이 치프리아노(Cyprianus Carthaginensis, 200~258) 주교였는데, 그에게 있어서 '사제직' (sacerdotium)은 미사의 제단과 관련이 있었다. 그는 신분 때문에 하느님과 특별한 관련이 있는 사람들에 대하여 '성직자' (clericus)라는 말을 사용하였다. 오리제네스(Origenes, +253/254)도 신명기 4장 20절과 9장 29절 그리고 사도 행전 1장 17절에 성서적 근거를 두고 유사한 용어 를 사용했으며, 일반 백성을 위해 사용된 개념인 '백성' (λαικος)은 일찍이 교황 글레멘스 1세의 편지에도 나타 나 있다. 치프리아노는 하나의 품계(ordo) · 계층(gradus) 안에서 여러 직무들을 언급하였고, 2세기 그노시스주의 자들의 가르침을 논박하는 입장에서 교회는 방어적인 입 장을 취하면서 교회 안에서 성령 활동의 현존을 인정하 면서도 품계 밖의 카리스마 공동체 기능을 점점 더 적게 언급하였다. 히폴리토(Hippolytus Romanus, 170~236)는 저 서 《사도 전승》에서 성품성사의 전례와 신학에 대하여 중요한 자료를 제공하였는데, 그에 의하면 주교 직무는 설교와 사목과 사제직의 봉사 의무와 함께 기도와 안수 를 통해 주어지는 교회 직무의 온전한 형태라고 하였다. 또 주교에 비해 신부들에 대한 언급은 분명하지 않지만, 신부들은 사제단의 구성원으로서 주교가 자기 의무를 다 할 수 있도록 협조해야 한다고 하였고, 부제들은 신부들 에게 종속되는 것이 아니라 주교에게 속하며 주교와 공 동체 사이에서 중개적인 봉사를 수행한다고 하였다. 이 렇듯 《사도 전승》은 3세기 교회 직무의 구성을 분명하게 전해 주고 있을 뿐만 아니라 계승의 규범도 전해 주고 있 다. 즉 직무를 구성하는 것이 사도성이며, 직무는 교회를 구성한다. 세 가지 직무(주교 · 신부 · 부제)의 수여가 성사 적으로 이해되는데 그중 두 직무(주교 · 신부)는 미사와 관련된 권한을 지니고 있다. 이처럼 교부 시대에 교회 직무들의 구조가 형성되었고, 그 구조 안에서 사도성의 근거 위에 신학적으로 입증 된 주교 지위의 지배적인 권리를 밝혀 주고 있다. 5세기 경 로마에서는 신부들을 주교 다음의 '두 번째 품계'(secundus ordo)에 위치시켰고, 6세기부터 차츰 미사의 봉 사 직무가 중심을 차지하게 되면서 사제들은 새로운 계 약의 제사를 드리는 자들로서 성품성사를 통하여 성체를 축성하는 권한이 주어졌다. 동시에 주교 직무에 대한 신 학이 쇠퇴되면서 주교의 역할이 목자의 직무로서 더 높 이 평가되거나 해석되지 않고 사제직의 충만을 채우는 것으로 해석되었다. 그러나 주교에게 있어서 지배적인 지위는 법적인 지위였다. 서품식의 변화 : 서품식에도 변화가 있었다. 3세기부 터 주교 · 신부 · 부제 서품식의 핵심은 안수와 더불어 함 께하는 기도였다. 초기 3세기 동안의 안수는 단순한 선 택이나 선발의 의미가 짙었고, 이와 비슷하게 '서품을 주다' (ordinare)라는 말은 '지명하다' 라는 의미에 가까웠 다. 4세기 초에는 서품식을 위한 고정된 개념들이 점차 적으로 설정되었는데 특히 '안수' . '축복' (祝福, benedictio) . '축성' (consecratio) 등이었다. 또한 세 등급(주 교 · 신부 · 부제)의 직무에 부연해서 동방 교회와 서방 교 회에 일련의 소품 봉사 직무들이 있었음이 밝혀졌는데, 동방 교회는 알렉산드리아의 글레멘스와 오리제네스에 의해 처음으로 증언되었고, 서방 교회는 테르툴리아노와 치프리아노에 의해 처음으로 증언되었다. 소품의 등급은 둘에서 여덟까지 변화되었으며 이 가운데 어떤 소품은 여성에게도 주어졌다. 《사도 전승》에 따르면 백성들로부터 선출된 주교는 다 른 주교로부터 안수를 받았다. 그러나 325년의 니체아 공의회와 314년의 아를(Arles) 교회 회의 이후 주교 축 성은 3명의 주교에 의해 수행되어야 했고, 안수에 복음 서를 머리에 얹는 예식이 첨가되었다. 신부들은 안수를 통하여 주교에 의해 축성되었고 《사도 전승》의 시대부터 참석한 신부들도 후보자에게 안수를 하였으며, 부제들은 주교 혼자만의 안수를 통해 서품되었다. 451년의 칼체 돈 공의회는 여섯 번째 법령에서 신부들과 부제들과 다 른 교회 직무들의 '절대 서품' 을 금하였다. 다시 말해 동 방 교회와 서방 교회에서 서품되는 사람은 모두 교회나 수도원 같은 특수 공동체와 관련이 있어야 하였는데, 이 를 '상대 서품' 이라고 한다. 7세기부터의 주교 축성은 머리에 기름을 바르고 지팡 이 · 반지 · 관 수여가 포함되어 마치 주교의 권한이 군 주' 로 여겨졌다. 신부 서품은 손에 기름을 바르는 것 · 빵과 포도주가 든 성작과 성반 수여 · 죄 사함의 권한을 주는 두 번째 안수가 포함되었다. 신부의 봉사 직무는 우 선 전례적인 것으로 여겨졌으며, 이러한 영향으로 1099 년의 로마 교회 회의에서는 '절대 서품' 을 허용하였다. 라틴 교회에서는 '소품들' 을 위한 새로운 축성 전례가 10세기경에 규정되어 각 봉사 직무의 내용에 따라 전례 용 도구가 수여되었는데, 그 소품 직무들에는 수문직 · 구마직 · 시종직 · 차부제직이 포함되었다. 이러한 직무 들은 공동체 내에서 더 이상 실제적인 기능을 하지 않았 으며, 그 직무들은 사제 직무의 여러 측면에서 후보자들 을 준비시키는 사제직을 향한 단계들이었다.
Ⅳ. 교리의 발전 〔초대 교회부터 스콜라 시대까지〕 초기의 성품성사 신 학은 우선 주교에게 집중되어 있었다. 주교단(ordo episcoporum)에 받아들여지는 축성 전례에서 교회는 주교가 자 기 임무를 다할 수 있도록 기도하였고, 교회의 일치를 수 호하기 위하여 어떤 임무들은 주교에게 유보되었다. 그 래서 주교에게 세 가지 주요 임무 즉 복음 선포와 전례 봉사와 공동체를 돌보는 일이 주어졌다. 결국 마지막 책 임이 주교에게 있었으므로 복음 선포와 전례 봉사도 공 동체를 돌보는 일 가운데 하나라고 생각하게 되었던 것 이다. 당시의 신학은 주교를 성령의 능력 안에서 성부로 부터 오는 예수 그리스도의 봉사와 파견 안에 포함된 것 으로 간주하였는데, 이는 주교가 사도들로부터 물려받은 신앙을 확고히 하고 충실하게 보존하기 위하여 성부의 모습(typos)으로나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4세기 이후)으로 서 항상 눈에 보이지 않게 현존하는 분을 볼 수 있고 감 지할 수 있는 방법으로 드러내도록 하느님의 은총을 받 았다는 것을 의미하였다. 동방 교회와 서방 교회는 4세기부터 직무 수행자들의 영적 '능력' 에 초점을 맞추고 주교와 신부의 신학적인 동등성을 주장하는 경향이 있었으나, 이와 반대로 주교 들은 의도적으로 신부의 사제직을 '두 번째 계열의 직 무' (secundi meriti munus)라는 종속적인 직무로 묘사하였 다. 주교와 신부의 신학적 동등성에 대한 증언은 프랑크 신학자들에 의해 이루어져서 스콜라 신학으로 이어졌다. 그리고 교회 직무들은 단순히 '능력' 이 아닌 '권한' 을 부여받는 것으로 이해되면서 이 권한은 곧 성사들과 관 련 있는 권한이라는 인식으로 발전되었다. 이에 따라 신 부가 서품을 통하여 성체성사와 고해성사에 대해 전적인 권한을 가지며, 주교 서품으로 그 권한이 더 이상 증대될 수 없는 것으로 간주되었다. 베드로 롬바르두스(Petrus Lombardus, 1095~1160)와 그의 영향을 받은 신학은, 주교 서품은 하나의 성사가 아니며 12세기 중엽 성사에 대한 개념이 밝혀진 이래 신부의 서품이 바로 성품성사로 간 주된다고 가르쳤다. 주교 직무의 특수한 성격은 그 대신 법적인 권한 즉 사목적 권한에 관련된 것이라고 했다. 신 부들에게는 '성체에 대한 권한' (potestas in corpus eucharisticum)이 있고 주교들에게는 '신비체에 대한 권한' (potestas in corpus mysticum)이 있다고 분리함으로써, 주교의 본 분과 신부의 본분은 다르게 나타나게 되었다. 주교품의 성사성(聖事性)은 제2차 바티칸 공의회에 가서야 분명 하게 정립되었다. 〔트리엔트 공의회 이전〕 교회의 공적인 첫 가르침은 이단이나 이교들 심지어는 성직 매매자들에 의해 주어진 성품들에 대한 '유효성' 에 관련된 것이었는데, 그것들이 유효하다는 것이다(DS 478 : 705). 칠성사를 논하면서 성품성사를 여기에 포함시킨 1274년의 제2차 리용 공의 회는 갈라진 동방 교회로 하여금 소품들을 받아들이도록 요구하지 않았다. 또 갈라진 아르메니아 교회와의 일치 를 위한 회의 중 하나인 1439년의 피렌체 공의회에 의 해 채택된 조항 안에는 소품들과 차부제품과 부제품에 이어 여섯 번째 성사가 성품성사라는 스콜라 신학의 사 상이 포함되었다(DS 1326). 이는 교의적으로 연결된 양 식은 아니지만 그 당시 교회의 가르침을 대변하고 있으 며, 주교 축성이 성품성사에 대한 설명에서 언급되지 않 은 것은 특이할 만하다. 여기에서 성사의 핵심 요소는 전 례 도구의 수여와 제사를 봉헌할 권한 부여였다. 〔트리엔트 공의회〕 종교 개혁자들의 입장 : 종교 개혁 자들(M. Luther, P. Melanchton, J. Calvin, M. Bucer)이 생각한 '성 품' 은 다음과 같다. ① 성품은 성사가 아니고 말씀과 성 사 집행자들을 선출하고 임명하는 데 필요한 하나의 의 식에 불과하다. ② 교회의 사정을 모르는 사람들에 의해 만들어진 인간적인 허구 작품이다. ③ 소품들은 사제품 을 지향하는 품계들이 아니다. ④ 교계 제도란 존재하지 않는다. 모든 그리스도인이 동등하게 사제이다(omnes christianos ex aequo esse sacerdotes). 그러나 이 사제직이 실 천되고 수행되기 위해서는 백성의 권위와 동의 요청이 필요하다. 한 번 사제가 된 사람은 다시 평신도가 될 수 있다. ⑤ 신약성서 안에는 가시적이며 외적인 사제직도 없으며 주님의 몸과 피를 축성하거나 그 제사를 지내거 나 죄를 사해 주는 어떤 영적인 권한(potestatem aliquam spiritualem)도 없다. 복음을 가르치는 목적을 가진 기능 (officium tantum)만 있을 뿐이며 복음을 설교하지 않는 자 들은 진정한 의미에서 사제가 아니다. ⑥ 도유(塗油)는 성품 수여에서 필요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해로우며 다 른 모든 의식들처럼 그것을 경멸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서품에서 성령은 베풀어지지 않는다. 또한 주교들은 수 품자들에게 '성령을 받으라' 고 말하면서 무례함을 범하 고 있다. ⑦ 주교들은 신부들보다 위에 있지 않다. 그들 은 봉사자들을 서품할 권리도 없다. 만약 그들이 이러한 권리를 가지고 있다고 한다면 신부들도 함께 가지고 있 으며, 신자들의 동의 없이 거행된 서품들은 무효가 된다. 공의회의 입장 : 종교 개혁자들의 견해에 반대하여 트 리엔트 공의회에서는 가시적이며 외적인 사제직의 존재 를 방어하면서 '사제의 봉사 직무' (sacerdotii ministerium) 는 '하느님의 명' (Dei ordinatione, divina res)에 따른 것이 며, 이것이 교계 제도 안에 질서 지워진 제도를 뒷받침하 는 개념이라고 선언하였다. 동시에 성품성사의 존재에 대한 가르침을 강조하였다. 성품성사에 대한 공의회의 가르침은 1563년에 제13 회기로부터 비롯되는 네 개의 장(제1장 새로운 계약에 의한 사제직 설정, 제2장 일곱 품계, 제 3장 성품의 성사성, 제4장 교계 제도와 서품 : DS 1764~ 1769)과 성품성사에 관한 여덟 개의 법령(DS 1771~ 1778) 안에 나타나 있다. 트리엔트 공의회에 의해 사제직은 전례와 특히 사제들 에게 유보된 '권한' 에 근거해서 해석되었다. 특히 여섯 번째 법령에 따르면 교계 제도는 '신적 명령' 에 의거한 다. "어느 누가 가톨릭 교회 안에 주교와 신부와 봉사자 들로 구성된 하느님의 명에 의해 제정된 교계 제도가 없 다고 말한다면, 그는 파문될 것이다." 트리엔트 공의회 에서는 주교의 축성이 하나의 성사인지 아닌지 그 성사 성에 대해 분명하게 말하지는 않았지만, 교계 제도에서 주교들은 (교황에 대한 특별한 언급 없이) 최상의 권위 를 가진 자로 묘사되었다. 또 서품에서 각인되는 인호가 성령을 통하여 하느님 은총이 취소할 수 없이 주어진다 는 하느님의 충실성에 대한 인식만을 내포하는 것이 아 니라, 적극적인 의미에서 인호는 서품된 자들이 받은 봉 사 직무가 그들의 전 존재에 요구되게 하며 그것이 단지 하나의 기능에 불과할 수는 없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 다고 가르쳤다. 트리엔트 공의회의 본문과 법령의 구분 형식과 내용의 의도는 오로지 종교 개혁자들의 입장을 논박하는 데 있 었지 성품성사에 대한 온전한 신학을 소개하려는 것이 아니었다. 실제로 공의회 준비 기간 동안 더 풍부한 여러 제안들이 있었지만 마지막 문헌에서는 채택되지 못하였 다. 그래서 트리엔트 공의회의 성품성사에 대한 결론을 '깡마른 결론' (nuda doctrina)이라고 비판하기도 하였다. 결과적으로 성서적인 근거를 둔 실천적 시도가 전무하 며, 일방적으로 종교 개혁자들에 대해 반대하는 입장을 취하였다고 평가된다. 그렇지만 분명히 트리엔트 공의회 는 말씀 선포나 신자들의 공통 사제직(sacerdotium commune)의 중요성을 부인할 의도가 없었을 뿐만 아니라, 주교 선임에 있어서도 백성의 참여를 거부하려 하지 않 았다고 확언할 수 있다. 공의회의 의도는 다만 종교 개혁 자들의 견해를 논박하는 데 있었을 뿐이었다. 성품성사 신학에 있어서 특별히 중요한 문헌은 1947 년 11월 30일 교황 비오 12세(1939~1958)에 의해 발표 된 <사크라멘툼 오르디니스>(Sacramentum Ordinis)라는 교 황령이다(DS 3857~3861). 오랫동안 문제되고 논의되어 온 주교 · 신부 · 부제품의 성사적 질료와 형상에 대해 분 명하게 밝힌 이 교황령에 따르면, 주교 · 신부 · 부제품의 '질료' 는 안수뿐이며 '형상' 은 이 질료 사용을 규정하는 말씀이라고 하였다. 그리고 주교 신부 · 부제의 세 등급 이 하나의 성품성사로 나타나고 있는데, 소품들과 차부 제품은 법령 안에 언급되지 않고 있으며 이러한 품계들 은 성품성사의 단계들처럼 고려되지 않았던 것 같다. 성 사의 효과는 성품의 권한(potestas ordinis)과 성령의 은총 으로 나타났다. 결과적으로 이 교황령은 전례적인 도구 의 전달이 더 이상 서품의 성사적 부분이라고 주장하지 않았고, 이러한 내용들은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성품성 사 신학이나 그에 따른 전례 개혁의 기초가 되었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가르침〕 20세기의 새로운 신 학 연구 운동을 통하여 성품성사 신학의 발전은 새로운 궤도에 접어들었으며, 특히 성서학 · 교부학 · 전례 역사 에 대한 연구가 성품성사 신학 발전에 기여하였다. 이러 한 노력들은 제2차 바티칸 공의회 문헌인 <교회 헌장> (Lumen Gentium)과 <전례 헌장>(Sacrosanctum Concilium) 안에 투영되었으며, 주교들과 신부들의 직무와 생활에 관해서는 <주교 교령>(Christus Dominis)과 <사제의 직무 와 생활에 관한 교령>(Presbyterorum Ordinis)에서 언급되 었다. 성품성사의 발전 과정에서 새롭게 정리되고 정립 된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주요 가르침은 다음과 같다. 사제직 :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교회를 '하느님의 백 성' 으로 규정하면서 이 백성의 구성원은 "주교로부터 마 지막 평신도에 이르기까지"(교회 12항) 성직자 · 수도 자 · 평신도 모두를 포함한다고 하였다. 그리고 하느님 백성의 '공통 사제직 (sacerdotium commune)에 대해 말하 면서 요한의 묵시록 1장 6절과 베드로 전서 2장 4-10절 을 인용하였다(교회 10항). 다시 말해 모든 그리스도인들 은 세례를 통하여 사제로 축성되며 영적 제사를 바치고 그리스도를 증거할 임무를 띠게 되며, 결국 이 사제직은 교계적인 '직위적 사제직' (sacerdotium ministeriale)과 함께 예수 그리스도의 유일한 사제직에 참여한다고 하였다(교 회 10항).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중세와 트리엔트 공의회 시기 처럼 직위적 사제직을 더 이상 예외적인 직무 개념으로 보지 않았다. 즉 공통 사제직과 직위적 사제직은 상호 보 완적으로 관련되어 있으며 함께 그리스도의 사제직에 참 여하고 교회의 직무에 참여한다. 공통 사제직이 없는 직 위적 사제직을 생각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직위적 사제 직이 없는 공통 사제직도 생각할 수 없다. 이것이 '하느 님의 백성' 인 교회의 본질적인 모습이다. 이 백성은 그 리스도의 사제직뿐만 아니라 그리스도의 예언직에도 함 께 참여한다(교회 12항)고 하였다. 이러한 의미에서 공의 회는 평신도들의 교회 내의 특수 사명을 위하여 '사도 직' (apostolatus)이라는 표현(교회 33항)과 '여러 직무들' (varia ministena)이라는 표현(선교 15항)을 서슴지 않고 사 용하였다. 따라서 이제 더 이상 성직자와 평신도 사이의 이원론적인 구분은 없어졌다. 사도적 계승 : "거룩한 공의회는 '하느님이 정하신 제 도를 따라' (ex divina institutione) 주교들이 교회의 사목자 로서 사도들의 자리를 이어받았다고 가르친다"(교회 20 항). 공의회는 교회의 교계적 구조에 대해 언급하면서 특 별히 주교직을 중심으로 교회 구조를 설명하였는데(교회 3장), 이는 3세기부터 교부들이 사용한 전통적인 방법에 따른 것이었다. 여기에서 신부들과 부제들은 주교의 협 력자와 봉사자로 소개되고 있다. 그리고 주교들을 사도 들의 계승자로 천명하면서 교회의 '사도적 계승' 이 신적 설정 혹은 신법에 기원을 두고 있음을 분명히 하였다. 그 러나 사도적 계승이 직접적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설정에 기원을 둔 것으로(ex Christi institutione) 표현되지 않고 '하 느님이 정하신 제도에 따른' (ex divina institutione) 것으로 표현된 것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 이는 성품성사의 주교 품과 탁덕품과 부제품이 직접적으로 예수 그리스도에 의 해 설정된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하느님 아 버지의 의지가 교회 안에 현존하는 성령 안에서 설정되 었다는 신적 설정의 기원 의미를 보다 폭 넓게 드러낸 것 이다. 신학적으로 표현하자면, 결과적으로 '하느님이 정 하신 제도에 따른' 사도적 계승은 그리스도론적인 동시 에 성령론적이면서 삼위 일체인 하느님의 구원 경륜에 근거를 두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근거를 토대로 공의회는 특히 이레네오 교부가 밝힌 '사도적 계승' 의 의미를 강조했는데, 결국 주교들의 사도적 계승은 사도 들에게 주어진 본래의 계승에 기원을 두며, 이로써 주교 들은 교회의 교계 구조에 속하게 되고 이것이 성품성사 를 통해 계승된다. 이러한 의미에서 《가톨릭 교회 교리 서》는 성품성사를 '사도직의 성사' 라고 하였다(1536항). 주교품의 성사성 :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주교품이 '성품성사의 충만' 이라고 하면서 주교품의 성사성을 분 명하게 밝혔다(교회 21항). 토마스 아퀴나스는 성품성사 를 미사 거행 권한의 수여로 정의하면서 미사 거행 권한 에 있어서는 주교도 신부와 다를 바가 없기 때문에 주교 품이 성사적으로는 탁덕품과 구별되는 것이 아니라고 생 각하였다. 그리고 주교품에서 그리스도의 신비체인 교회 에 대한 특별한 권한이 성사적인 방법이 아니라 법적으 로 부여된다는 토마스의 생각은 오랫동안 주교품의 성사 성을 인정하는 데 방해가 되었다. 그러나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주교품이 바로 성품성사의 충만이라고 하였는 데, 이러한 선언은 '주교품이 신적 설정에 기원을 두고 있다' (ex divina institutione)는 교의의 결과이다. 또 주교들 은 자기 교회에 대하여 직무적으로 그리스도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는데 이러한 주교 직무의 의미가 다음과 같 은 선언을 가능하게 하였다. "특히 전례 의식과 동서 교 회의 관습에서 볼 수 있는 성전에 따라, 안수와 축성의 말씀으로 성령의 은총이 내리고, 인호가 각인됨으로써 주교들은 볼 수 있고 탁월한 방법으로 스승이시요 목자 이시며 대사제이신 그리스도의 역할을 나누어 받으며 그 리스도를 대행하게 된다는 것이 명백하다"(교회 21항). 주교품의 성사성에 대한 긍정은 세 등급의 성품에 주 어진 오직 하나의 성품성사를 제안한다. 따라서 교회 전 통에 따라 세 등급의 성품이 함께 사도 직무로서 교회의 교계적 구조에 속한다. 그렇지만 공의회는 이러한 세 등 급의 구별에 있어서 그 본질이나 기원에 대해서는 분명 하게 밝히지 않고 단지 주교품이 성사의 충만성을 구축 하며 탁덕품과 부제품은 여기에 부분적으로 참여하고 있 다고 하였다. '사제직' 의 개념에 대해서 교회의 전례 관 습과 교부들이 주교들을 '대사제' 혹은 '성직의 정점' 이 라고 불렀던 사실에서, 공의회는 주교직에 대한 오래된 전통 두 가지를 상기시키고 있다. 하나는 '사제' 라는 칭 호가 '두 번째 등급' 의 신부들에게 확장되기 이전에 우 선적으로 주교들에게만 적용시켰던 가장 오래된 교부들 의 증언이고, 또 다른 하나는 오래된 전통이 주교의 직무 안에서 신부들의 직무를 보았던 증언이다. 이러한 의미 에서 볼 때 주교품은 당연히 성품성사의 충만성을 드러 낼 뿐만 아니라 사제 직무의 충만성도 드러내고 있는 것 이다. 또한 공의회는 주교 축성으로 성화의 임무(사제직) 와 함께 가르치는 임무(교도직)와 다스리는 임무(사목직) 가 수여된다고 하면서, 성품의 두 권한(사제직, 교도직)과 법적인 권한으로 생각하였던 특수 권한(사목직)을 성사적 인 단일성 안에 함께 모았다. 그러나 이러한 직무 수행은 주교단의 으뜸인 교황과 주교단 전체의 일치 안에서만 행사될 수 있다면서, 주교품의 성사성과 아울러 교계적 인 친교도 동시에 강조하였다. 성품 직무의 유기적인 관계 : 주교직 · 신부직 · 부제직 의 성품 직무는 각각 고유한 방법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삼중 직무인 예언직 · 왕직 · 사제직에 참여하며, 성사적 인 방법으로 이 직무를 나누어 받고 있다(교회 21항, 28~ 29항). 그러나 이 직무는 공통적으로 하느님의 백성을 위 해 봉사하는 데 그 목적이 있다. 그리고 공의회는 주교들 의 주요 임무 중에서 설교하는 임무가 첫째라고 선언하 였는데(교회 25항), 이러한 입장은 트리엔트 공의회 당시 종교 개혁자들의 주장이었다. 그들은 주교와 신부가 복 음을 설교하지 않으면 이미 주교와 신부가 아니라고까지 하였던 것이다. 트리엔트 공의회는 종교 개혁자들에 대 한 반작용으로 이를 그대로 받아들일 수가 없었지만, 제 2차 바티칸 공의회는 설교 직무에 대한 가톨릭 교회의 소홀함을 인정하면서 종교 개혁자들의 입장을 그대로 수 용하였다. 주교의 첫째 임무가 복음 설교라면 주교의 협 력자와 봉사자로 일하는 신부들과 부제들의 첫째 임무 또한 복음 설교라고 말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공의회는 또 주교의 사목 직무에 대해서 말하면서 봉 사 직무(ministerium)의 의미를 성서적인 표현으로 '봉사'라고 분명하게 밝혔는데(교회 24항), 이는 성품 직무가 '권한' 의 성격에서 '봉사' 의 성격으로 전환되어 설명되 는 새로운 관점이다. 1971년에 개최된 '직위적 사제직'에 관한 시노드에서 분명하게 밝혔듯이 엄밀한 의미에서 '권한' 이란 주님의 '권한' 밖에 없다. "서품자에게 권위 와 봉사의 이중적인 측면에서 안수가 베풀어지는데, 이 때 권위는 엄밀한 의미에서 직무에 속하지 않고 결국 주 님의 '권한' 을 드러낼 뿐이다"(<직위적 사제직> 5항). 서품은 단순히 직무를 서임하는 데만 그치지 않고 성 령 청원 기도(Epiclesis)의 형식 아래 성령을 받는다. 이는 끊임없는 교회 신앙이기도 하다. 서품된 자들은 교회 안 에서 성사적인 방법으로 그리스도의 역할을 수행하며 그 리스도를 현존하게 한다. 그렇지만 서품된 자가 그리스 도의 이름으로' (in persona Christi) 성품 직무를 수행할 때 자기 직무를 수행하는 것이기는 하지만 개인의 자격으로 부재(不在)하는 예수 그리스도의 대리자가 되는 것은 아 니다. 오히려 성령 안의 그리스도 현존이 성품 직무 수행 을 가능하게 하는 것이다. 특히 주교와 신부의 사제 직무 수행 때 이러한 사실이 적용된다. 주교와 신부의 관계에 있어서 "신부들은 비록 대사제 직의 절정인 주교품을 지니지 못하였으므로 권한 행사에 있어서 주교에게 매여 있지만 사제로서의 영예(sacerdotali honore)만은 주교와 함께 지니고 있으며, 성품성사의 힘으로 영원한 대사제(summi atque aetermi Sacerdotis)이신 그리스도의 모습을 따라 신약의 참 사제로서(veri sacerdotes) 복음을 전하고 신자들을 사목하며 하느님께 예배를 드리기 위하여 축성되는 것이다"(교회 28항). 사제의 품 위에서 주교와 신부의 품위는 동일하며, 이때 신부의 사 제직의 원천은 주교의 사제직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사제 직이다. 이는 사제직의 관점에서 주교와 신부의 동질성 을 끊임없이 주장해 온 교회 전통에 따른 것이다. 부제들은 "사제직을 수행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오직 봉사하기 위하여" 안수를 받으며, 전례와 말씀과 사랑으 로 그리스도의 삼중 직무에 참여함으로써 하느님 백성을 위해 봉사한다(교회 29항). 공의회는 또한 교회의 선익을 위하여 필요하다면 '종신 부제직' 을 둘 수 있다고 하면 서 이 직무도 성품 직무에 속함을 분명히 하였다. 성품 직무 전체와 관련해서 공의회는 "주교들이 신부들과 부 제들의 조력과 함께 하느님 백성을 위해 봉사하는 직무 를 받는다" 고 함으로써(교회 20항), 주교 · 신부 · 부제품 의 성품 직무가 적용 측면에서는 다소 다르더라도 서로 가 유기적인 관계 안에 설정되어 있음을 강조하였다.
V . 여성들의 서품 문제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전의 성품성사 신학에서는 여 성들에 대한 사제직 불허(1917년의 교회법전 986조)가 크 게 문제시되지 않았었다. 그러나 여성 운동의 영향과 '여성들에 대한 사제직 불허가 계시나 신법에 근거하고 있는가? (K. Rahner)라는 등의 신학적인 문제가 제기되어 새로운 논쟁의 장을 열게 되었다. 그렇지만 신앙 교리성 은 1976년 10월 15일에 선언 <인테르 인시니오레스> (Inter insigniores)를 통해 가톨릭 교회는 여성에게 사제 서 품을 허락하지 않는다고 밝히면서 "교회의 전통은 여성 들이 사제 서품이나 주교 서품을 유효하게 받을 수 있다 고 한 번도 허락한 적이 없다" 고 부언했다. 이 선언이 여 성 서품 불허에 대한 논거 제시에 있어서 많은 비판을 받 았음에도 불구하고 1983년의 새 교회법전 1024조는 여 전히 여성의 서품을 불허하고 있다. 1992년의 《가톨릭 교회 교리서》(157항)도 마찬가지이지만, 이러한 불허가 '신법 설정' 에 의한 것이라고는 단언하지 않고 있다. 여기에서 보다 더 설득력 있는 신학적인 이유를 제시 할 필요가 있는데, 현대 신학에서는 여성 서품 불허에 대 한 두 가지 근거를 신중하게 제안하고 있다. 첫째, 거의 2,000년 동안의 지속적인 발전 과정 중에 드러난 사실 은 교회의 직무 구조 형태가 전적으로 남성적이었고, 이 러한 발전이 어느 한 순간 갑자기 중단될 수는 없다. 오 로지 새로운 확장된 형태의 의미 안에서 장래에 재검토 될 수 있을 뿐이다. 둘째, 교회 일치 차원의 맥락에서 올 바른 사도 전승의 옹호자로 스스로 생각하는 갈라진 동 방 교회와 함께 문제를 풀어 나가야 한다. 동방 교회가 동의하지 않는 여성 사제직 허용은 우리의 교회 일치 노 력에 금이 가게 할 것이다. 그러나 여성 부제직에 대한 문제는 전적으로 다른 문 제였는데, 교회 역사에서 하나의 지속된 전통으로 여겼 던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2세기부터 소아시아 교회에서 시작된 여성 부제직은 서방 교회에서는 부분적으로 거부 되었지만, 로마 교회에서는 11세기에도 존속하였고 동 방 교회의 비잔틴 교회에서는 15세기까지 존속하였다. 또 동방 교회에서는 여성 부제들을 성직자 계열에 포함 시킨 적도 있었다. 이러한 교회 전통들을 감안할 때 여성 부제직 허용이 절대 불가하다고 단언하기는 어렵다. 그 래서 여성 부제직에 대한 교회의 공식적인 불허 입장에 도 불구하고 신학적으로뿐만 아니라 실천적으로도 문제 를 제기하면서 여성들에게 이 직무가 허용되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1975년에 열린 독일 밖르츠부 르크(Würzbourg) 시노드에서는, 평신도들에게 공적으로 허용되는 독서직과 시종직의 설정 직무를 남성들에게만 유보하지 말 것과 현대의 신학적인 인식과 사목적인 상 황의 관점에서 여성 부제직 문제를 검토하고 가능하다면 여성들에게 부제직을 허용할 것을 공식적으로 교황에게 건의하였다. 아직까지 교회는 공식적으로 여성들에게 부 제 서품을 허용하지 않고 있지만, 교회 내에서는 이 문제 에 대해 비공식적이나마 신학적 또는 사목적으로 연구와 검토를 거듭하고 있다. 그러나 한국 교회가 처한 특수 상 황을 고려한다면 한국은 '여성 부제직' 문제를 논의하기 이전에 제2차 바티칸 공의회가 권유하고 있는 '종신 부 제직' 도입부터 연구 검토하는 것이 오히려 단계적인 순 서일 것이다. (⇦ 신품성사 ; → 부제 ; 사제 ; 사제직 ; 서품식 ; 성무 집행 ; 성사 ; 성직자 ; 성품 공고 ; 신부 ; 여부제 ; 주교) ※ 참고문헌  Albert Chapelle, Pour la vie du monde : le sacrement de I'Ordre, Bruxelles, Institut d'Etudes Théologiques Editions, 1978/ Herbert Vorgrimler, Skramententheologie, Düsseldof, Patmos Verlag, 1987, pp. 261~309(trans. by Linda M. Maloney, Sacremental Theology, Minnesota, The Liturgical Press, 1992, pp. 237~282)/ André Duval, Des sacrements au concile de Trente, Paris, Les Editions du Cerf, 1985, pp. 327~404/ Joseph Moingt et al., Eglise, société et ministères, Travaux et Conférences du Centre Sèvres, Paris, Centre Sèvres, 1986. 〔權赫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