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합
聖盒
〔라〕pyxis, ciborium · 〔영〕pyx, ciboriu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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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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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체를 넣어 두는 성합은 '치보리움' (왼쪽)과 작은 상자 형태의 '픽시스' 로 구분되며, 6세기경 이집트에서만들어진 상아로 된 그릇(오른쪽 아래)이 그 원형이다.
성체를 넣어 두는 뚜껑이 있는 그릇으로서 감실 안에 보관하거나, 신자들의 영성체를 위한 성체를 담는 전례 용구. 주로 성체를 보관하는 용도로 쓰이지만, 때에 따라 서는 성합으로 성체를 현시할 수도 있다(교회법 941조 1 항). 성반과 같이 평평하고 다리나 받침대 없이 뚜껑이 달린 작은 상자 형태의 성합을 '픽시스' (pyxis)라고 하 고, 성작처럼 받침대와 대가 부착된 둥근 구형체의 성합 을 '치보리움' (ciborium)이라고 한다. 성합의 형태는 일 정하게 정해진 것은 없지만, 반드시 내부를 도금해야 하 며 사용하기 전에 주교나 사제의 축복을 받아야 한다. 축 복은 미사 중에나 혹은 신자들이 쉽게 참석할 수 있는 다 른 전례 거행 중에 하는 것이 좋고, 미사 없는 간략한 예 식은 부제도 집전할 수 있다(《축복 예식서》 1071~1073 항). 〔어 원〕 성합을 가리키는 '치보리움' 은 '일용할 양식' 이라는 뜻의 라틴어 명사 '치부스' (cibus)에서 유래한 것 이고, '픽시스' 는 '나무로 만들어진 그릇' 이라는 뜻의 그리스어 '푸시스' (φύσις)에서 유래한 것이다. 이 용어들 은 성체를 담아 두는 그릇의 기능을 가진 성합의 용도와 관련이 있는데, '픽시스' 는 13세기 이전까지의 초기 형 태의 성합을 일컫던 용어였다. 그리고 13세기 이후에 사 용하게 된 성합의 형태를 '치보리움' 이라고 하는데, 이 것은 처음에 대성전의 제대 윗편에 놓였던 네 개의 기둥 을 가진 닫집(ciborium magnum)을 일컫던 용어였다가 중 세 후부터 성체를 보관해 두는 성당 지붕 모양의 덮개가 달린 작은 성체 용기를 의미하게 되었다. 한편 닫집은 후 에 성체 행렬 때 들고 다니거나 제단이나 주교좌석 위에 있는 천개(天蓋, baldachinus)로서 그 고유한 용도와 용 어가 구분되었으나, 현재는 사용하지 않고 있다. 〔형태와 용도의 변모〕 성합은 성반 과 같이 빵을 놓는 접시 같은 그릇 형 태에서 기원된 것으로 여겨진다. 초기 의 성합은 작고 다리가 없는 모양에 뚜껑이 있는 작은 그릇으로 병자나 감 옥의 죄수들에게 성체를 배령하게 할 때 사용되었으며, 성해함(聖骸函)의 기능도 함께하였다. 6세기경 이집트 에서 세속적인 용도로 만들어진 상아 로 된 그릇(Moggio pyxis)이 이러한 성 합 형태의 원형이지만, 그 초기 형태 는 정확히 알려져 있지 않다. 단지 로 마 카타콤바에서 발견된 그림을 통하 여 당시 성합이 물고기나 빵 등의 상 징들로 장식되었음을 알 수 있을 뿐이다. 5~6세기 동방 교회에서 은으로 만 든 성합 중에는 사각형이나 다각형의 형태를 취한 것도 있다(발티모어, 발터 예술 갤러리 소장). 중세 초에 사용되었 던 서방 교회의 성합들은 축성된 빵을 보관할 때 목재 · 상아 · 유리 등으로 된 상자가 쓰였다는 사실만이 알려져 있을 뿐 현재 전해지지 않고 있다. 교황 레오 4세(847~855)는 교서를 통하여성체는 반드시 성합 (pyxis)에 담아 축성한 뒤 제대 위에 놓아야 한다고 지시 하였다. 12세기에는 납작하고 평평한 구형체의 성체 그 릇에 작은 받침이 달린 성합들이 사용되었을 것으로 여 겨지며, 13세기에 사용된 성합들 가운데 가장 오래된 것 은 1250년경 프랑스 리모주(Limoges)에서 사용된 유약 이 칠해진 '픽시스' 형태의 구리 성합들이다(프랑크푸르 트 예술 박물관 소장). 크기가 작은 이 성합들은 비둘기 형 상을 띠거나 유약이 칠해진 납작한 구리 성체 그릇 · 원 뿔형의 뚜껑 · 그 위에 부착된 십자가로 구성되었고, 아 브라함의 번제 · 빵의 기적 · 무덤가의 여인 등 상징적인 그림들로 장식되어 있다. 뚜껑에 달린 십자가는 본래 고 리가 부착된 것에서 발전된 것으로 추정된다. 14~15세기에는 리모주의 성합 형태에서 좀더 발전 된 원뿔형 뚜껑이 달린 원기둥 모양이나 구형체의 뚜껑 이 달린 사발 모양의 성합 등으로 더욱 다양해졌다. 즉 점차 크기가 커져 성작처럼 기둥과 같은 다리와 받침대 가 달린 형태로 발전하였으며, 목재 · 구리 · 상아 등의 재료로 만들어졌던 것이다. 이러한 형태를 일컬어 '치보 리움' 이라고 한다. 그리고 점차 성체를 보관하는 용도로 쓰이면서 감실이나 문이 달린 벽감(壁龕)에 안치되었고, 성체를 현시하는 성광의 역할을 하기도 하였다. 그 후 이 러한 여러 가지 모양의 성합은 주로 긴 대로 받쳐졌는데, 초기 고딕 시대에는 이 대의 길이가 점점 길어지는 경향 을 보였으며, 받침 모양의 대와 여러 가지 모양의 중간 마디(nodus)가 있는 성합들은 성작과 유사한 형태를 띠 게 되었다. 이렇게 성합은 15세기 이후부터 오늘날에 이 르기까지 성작과 같은 형태를 띠게 되었으며, 중세의 '픽시스' 형태의 성합에 부착되었던 십자가 역시 15세 기 이후부터 그대로 전수되고 있다. 바로크 시대에 약간 의 변화가 있기는 하였지만, 그 변화는 당시의 시대풍에 맞는 장식에 한정되었었다. 트리엔트 공의회(1545~1563) 이후에는 영성체자들이 늘어나면서 미리 축성한 성체를 성합에 담아 감실에 보 관하였으므로, 미사 중 성찬 전례에서 성합을 성작과 같 이 사용하게 되었다. 그리고 이러한 용도로 사용되기 위 해서 성합의 크기도 그만큼 더 커지게 되었던 것이다(J. Braun, Das christliche Altargerät, pp. 328~330). 최근의 성합은 매우 다양한 모양을 하고 있지만, 기본적인 구성 요소는 성작과 마찬가지로 받침대와 중간 마디 · 잔 · 십자가가 달린 뚜껑이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단단한 귀금속이나 내구력이 강한 재질로 제작되며, 빵을 담던 넓은 초기 형 태로 되돌아가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현재 '픽시스' 는 봉성체 때 사용되는 성합만을 지칭한다. (→ 전례 용구) ※ 참고문헌 Robert Lesage, 《Cath》2, p. 1119/G. Mathon, 《Cath》 12, pp. 324~326/ 《ODCC》, pp. 353, 1353/ Jovian P. Lang, O.F.M., 《DL》, pp. 113~114, 533/ C.W. Howell, 《Cath》3, p. 870/ - 《NCE》 11, p. 1057/ M. Burch, 《NCE》 8, pp. 872~8731 Ch. Just, (LThK) 8, pp. 909~910/ J.H. Emminghaus, 《LThK》 10, p. 1364/ Reinhard Mumm, 12, pp. 400, 403/ Joseph A. Jungmann, S.J. The Mass of the Roman Rite : Its Origins and Development Ⅱ, Benziger Brothers Inc., 1950, pp. 306, 409, 411/ 《축 복 예식서》,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1986, p. 125. [梁蕙貞]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