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화상

聖畫像

〔라〕sacra imago · 〔영〕saint im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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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해 시기에 그리스도인들은 물고기나 비둘기 등 간단한 상징물로 카타콤바의 벽이나 비석을 장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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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해 시기에 그리스도인들은 물고기나 비둘기 등 간단한 상징물로 카타콤바의 벽이나 비석을 장식했다.


예수 그리스도나 성모 마리아, 성서의 인물과 성인 등 교회 인물들과 그들이 등장하는 성서의 내용이 표현된 그림이나 조각 작품. 미술사 및 교회사에서 이와 관련되 어 일어났던 문제를 소위 '성화상 논쟁' 이라고 하는데, 성화상 공경이 시작된 것은 성화상의 기원 및 그 유형별 발전과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다. 〔공경의 기원〕 예수 그리스도가 태어나 활동할 때인 로마 제국 시대에 로마인들이나 그 이전의 그리스인들은 자신들이 믿는 신들을 조각 작품이나 목판 또는 벽면에 그림으로 남기는 전통이 있었다. 반면에 유대인들은 유 일신 사상과 모세의 율법을 엄격히 따랐으므로 우상 숭 배를 초래하는 신상(神像)을 만들지 않았다. 따라서 유 대교 사상과 연관된 초기 그리스도인들은 상을 만들어 세우는 것에 대해 매우 부정적이었고, 박해 시기에는 그 리스도교적인 주제를 표현한 그림들인 물고기 · 비둘 기 · 돛과 닻이 있는 배 등과 같은 간단한 상징물들로 카 타콤바 벽이나 비석을 장식하였다. 콘스탄틴 대제(+337)에 의해 그리스도교가 공인된 후 누구나 자유로이 그리스도교를 믿을 수 있게 되자, 이때 부터 고대 그리스와 로마의 전통에 익숙해 있던 몇몇 교 부들은 성화상 존재의 여부에 대한 의문을 제시하게 되 었다. 교부 닐로(Nilus, +430)는 신구약 성서에 나타난 장 면들을 벽화에 재현하도록 권장하면서 "그로 인해 성서 를 읽을 수 없는 문맹인들이 그림을 보면서 진정한 하느 님의 종이 될 수도 있으며, 또 영광스럽고 위대한 덕목을 모방할 수 있게 될 것이다"라고 말하였지만, 그렇다고 모든 교부들이 성화상이나 성서 주제의 그림을 승인한 것은 아니었다. 교회사가인 가이사리아의 에우세비오 (Eusebius Caesariensis, 260?~339)는 콘스탄틴 대제의 여동 생이 그리스도상을 원하자, 참된 그리스도인이 그러한 상을 지니는 것은 옳지 않다고 충고하였다. 그러나 에우 세비오는 자신의 저서 《콘스탄틴 대제 전기》(Vita Constantini)에서 대제가 콘스탄티노플의 시장 분수대에 <선한 목자>상과 다니엘 그리고 몇몇 사자상들을 세운 것은 아 주 잘한 일이라고 칭찬하면서도 그리스도상의 재현은 이 교도적인 행위라고 기술하였다. 비슷한 시기에 교부 에 피파니오(Epiphanius, 315~403)는 테오도시우스 황제(379~ 395)에게 쓴 편지에서 성화상 사용에 소극적으로 대하지 말라는 자신의 권유가 비웃음만 살 뿐이라고 불평하면 서, 몇몇 주교들 역시 성화상에 대해 잘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고 한탄하였다. 바실리오(Basilius Magnus, 329~379) 주교 역시 모든 교회가 성화상으로 장식되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작품의 등장〕 회화 : 성화상이 아직 완전히 교리적으 로 승인된 것은 아니었지만, 그리스도나 성인을 재현한 그림들이 서서히 등장하기 시작한 것은 4~5세기경부터 였다. 6~7세기경에 교회 · 카타콤바 · 수도원 · 개인 주 택 등에 성화상이 그려졌으며, 사람들은 성화상을 본격 적으로 공경하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성화상이 병든 사 람을 고쳐 준다는 등 주술적이며 다소 미신적인 관념들 이 등장하였고, 이때부터 성물 공경이 성화상 공경 현상 과 함께 나타나기 시작하였다. 교회의 앱스 천장 부위에 는 <옥좌의 그리스도> 그림이 아래를 내려다보게 배치되 었으며, 성인 무덤에는 봉헌용 그림들이 쌓이기 시작하 였다. 같은 시기 로마에서는 소위 시메온상이 수호자로 공경되었다. 성화상 공경 현상을 단적으로 보여 주는 예 가 544년 에데사(Edessa)의 전설이다. 이에 따르면 그리 스도의 얼굴이 그려진 수건이 나타났다고 하는데, 사람 들은 그 수건에 재현된 그리스도의 얼굴이 십자가의 길 에서 그가 땀을 닦았을 때 수건에 새겨진 것이라고 믿었 다. 이와 같은 그리스도의 얼굴 그림을 '아케이로포이에 토스' (άχειροποίητος) 즉 '사람의 손으로 그려지지 않은 그림' 이라고 부르는데, 그 후 전쟁터나 성문에 이 그림 을 깃발로 달아 놓으면 적을 물리치고 승리를 얻을 수 있 다는 믿음이 팽배해졌다. 이와 같이 순수히 공경 대상으 로 등장한 공경용 성화상은 주로 목판이나 마직천에 그 려졌지만 주형을 이용하여 대량으로 점토판에 찍어 내기 도 하였다. 그리고 그리스도 얼굴 이외에 아기 예수를 안 고 있는 마리아와 존경받는 성인이나 주교도 재현되기 시작하였다. 조각 : 초기 그리스도교 시대와 중세 초기에 그리스도 교적 인물에 대한 회화 작품이 교육적이든 공경의 목적 이든 수없이 제작되었지만, 주목할 만한 점은 독립적으 로 서 있는 입체 작품 즉 조각 작품은 아직 나타나지 않 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그 이유는 물론 조각 작품의 제작 력이 부족했다는 이유도 있었겠지만, 조각 작품이 10세 기까지는 불손한 것으로 여겨졌기 때문이었다. 동방 교 회 지역에서는 현재에도 회화적 성화상 작품은 교회에 배치할 수 있으나 조각 작품은 허용되지 않고 있다. 조각 작품의 등장은 유해 보존과 연계되어 있는데, 유 해를 담기 위해 그 주인공을 재현한 흉상이 필요하게 되 었던 것이다. 교회에 완벽한 환조(丸彫) 작품이 설치되 기 시작한 것은 10세기 중반 이후부터로, 주로 남부 프 랑스와 독일의 라인 강 유역인 베스트팔렌(Westphalen) 지역에서였다. 그리고 점차 고딕 양식으로 성당이 지어 지면서 그 입구에 조각 작품이라기보다는 마치 건축의 일부처럼 보이도록 기둥에 바짝 붙여 원주 성인의 형상 이 제작되었다. 1200~1250년 사이에 제작된 대표적인 작품으로는 프랑스의 샤르트르 주교좌 성당과 랭스 주교 좌 성당 외벽부에 기둥으로부터 독립적으로 떼어져 나와 거의 조각 작품과 같은 느낌의 조상들을 들 수 있다. 또 교회 내부에는 기증자를 재현한 조각 작품들이 설치되기 시작하였다. 〔종 류〕 제단화(Altarbild) : 목재로 만들어진 제대를 장 식하기 위하여 제작된 성화상이라 함은 곧 회화적 성화 상을 의미한다. 교회 내부에는 성가대석 안쪽 앱스에 주 제대가, 회중석 양쪽의 측랑 등에는 독립적인 제대가 설 치되었는데, 이러한 제대는 대체로 양 날개를 여닫을 수 있도록 제작되었고 그 중앙부와 양쪽 날개면 안팎에 그 림을 그렸다. 이러한 제단화를 '3폭 제단화' (tiptych)라 고 한다. 양 날개를 펼쳤을 때 그려지는 주제는 주로 요 한 묵시록에 나오는 '최후의 심판' 에 관한 내용이었는 데, 1422~ 1441년 사이에 활동하였던 네덜란드 출신의 에이크(Eyck) 형제가 그린 <겐트 제단화>(Ghent Altar)가 대표적인 작품이다. 중세 독일에서는 여닫을 때마다 그 림의 내용이 달라지는 소위 '변화 제단화' (Wandelaltar) 가 성행하기도 하였다. 묵상용 성화상(Andachtsbild) : 묵상용 성화상은 회화나 조각 작품을 함께 포함하는 개념이다. 묵상용 성화상을 뜻하는 독일어 '안다흐츠빌트' 는 14세기 초 독일에서 새로이 고안된 도상학적 분류 개념으로, 주요 주제로는 <피에타> · <고통받는 그리스도> · <그리스도와 복음서 저자 요한> · <겉옷으로 사람들을 감싸고 있는 성모> · <성묘> 등을 들 수 있다. 이와 같은 주제가 묵상의 대상 으로 등장한 배경에는 중세기 독일에서 흥행하였던 신비 주의적 관념과 신앙심이 깃든 서정시 등의 영향이 깔려 있다. 이 당시 작품의 재료로 목재가 주로 사용된 이유는 14~15세기에 목판화가 유행하고 있었기 때문이었으며, 그 결과 목판화로 인해 대량의 묵상화가 싼 가격으로 매 매될 수 있어 널리 전파되었다. 위에 언급한 주제 이외에 성모상이나 특별한 십자가 형태 등도 묵상 대상으로 등 장하였고, 목재로 된 입체적 환조 작품 이외에 위 주제들 이 해당 기도문과 함께 손으로 들 수 있는 크기의 소위 소형 묵상용 성화상으로 표현되는 경우도 있었다. 봉헌용 성화상(Votvbild, Votivtafel) : 봉헌용 성화상의 기원은 순례지에 세워진 교회에서 찾을 수 있는데, 묵상 용 성화상과 마찬가지로 회화와 조각 작품 또는 소형 패 널 등을 포함한다. 이 같은 성화상은 하느님 혹은 특정 성인에게 서원이나 감사를 표현하기 위하여 순례지의 교 회 혹은 '은총의 제단' (Gnadenaltar) 앞에 놓아둘 목적으 로 제작되기 시작하였다. 봉헌용 성화상은 서방의 고대 풍속과 연관된 것으로 원래 귀금속 · 목재 · 테라코타 · 대리석 등으로 만든 봉헌물에서 기원되었는데, 고대인들 은 특별히 신적인 도움을 얻거나 은혜받은 것을 감사하 기 위해 이 같은 봉헌물을 만들었다. 봉헌용 성화상은 중 세 말기부터 생겨나 주로 대중 미술로 발전되었고, 유명 한 순례지는 대단위의 봉헌용 성화상을 보유하였다. 중 세 후기 이래 대부분의 봉헌상들은 주로 밀랍으로 제작 되었으며, 바로크 시대에는 봉헌용 성화상 대신 초가 등 장하기도 하였다. 서원이나 감사의 행위를 하게 된 동기 (병고의 위험이나 사고 · 일상 생활의 어려움)가 곧 봉헌용 성 화상에서 표현되었는데, 이때의 표현은 사실적이거나 반 사실적 혹은 약자화(略字I化)되거나 비밀스러운 기호 형 식으로 이루어졌다. 봉헌용 성화상에는 기도자가 하느님 이나 특정 성인에게 기도하는 자세로 재현되기도 하였 다. 따라서 봉헌용 성화상 한 쪽 윗면에는 도움을 주기 위해 나타난 성인이 그려지거나 구름으로 상징화되어 등 장하기도 한다. 그 외에 봉헌용으로 약자 문자가 함께 새 겨지는데, 중부 유럽에서는 '엑스 보토 (Ex voto), 남부 유럽에서는 '보툼 페치 그라시암 악체피' (Votum feci gratiam accepi, V.F.G.A.) 혹은 '페르 그라치아 리체부타' (per grazia ricevuta, P.G.R.) 등의 글귀를 덧붙였다. 은총의 성화상(Gnadenbild) : 봉헌용 성화상과 유사한 목적으로 제작되는 은총의 성화상은 표현 대상이 주로 그리스도와 성모에 제한된다는 특징을 지니고 있다. 엄 밀히 말하면 은총의 성화상이라고 지칭되는 작품은 신자 들을 위해 순례 교회에 설치된 그리스도나 성모상을 말 하는 것으로, 이 역시 회화나 입체적인 조각 작품을 함께 포함하는 개념이다. 은총의 성화상은 특히 전례력 중에 서 특정 시기 및 사회적 풍속과 연관된다. 따라서 은총의 성화상 역시 봉헌용 성화상과 마찬가지로 민중 미술에 그 바탕을 두고 있으며, 공경이나 흠숭용 성화상이라는 특성을 지닌다. 〔공경의 의미〕 가톨릭 교회는 성화상을 흠숭하는 것을 우상 숭배라고 단죄한다. 다만 거룩한 이의 그림과 초상 이나 조각을 통하여 그리스도를 흠숭하고 성인들을 공경 하도록 명할 뿐이다. 트리엔트 공의회(1545~1563)에서는 이를 다음과 같이 분명하게 규정하였다. "그리스도와 동 정 성모 마리아와 성인들의 성화상을 특히 성당 안에 모 셔 두고 이에 맞갖은 존경과 공경을 드려야 한다. 그러나 이는 이것 자체에 어떤 신성이 있다거나 덕이 있다고 믿 어서 예배하거나 기도를 드리거나 또는 옛 이교도들이 하듯 우상에게 희망을 두는 것이 아니다. 다만 이것을 공 경함은 이것들이 표상하고 있는 근본과 관련되어 있을 뿐이다 . ··· 만일 이런 거룩한 신심 때문에 무슨 남용이 스며든다고 한다면 거룩한 공의회로는 차라리 이를 전폐 하기를 간절히 바라는 바이다." 또 <전례 헌장>(Sacrosanctum Concilium) 125항의 원칙을 바탕으로 《로마 미사 경본의 총지침》(Institutio Generalis Missalis Romani)에서는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교회의 오랜 전통에 따라 합법적으로 거룩한 장소에 신자들의 공경을 위하여 주님 과 복되신 동정녀와 성인들의 성상을 모신다. 그러나 성 상이 너무 많아도 안되고, 마땅한 질서를 지켜 모셔야 할 것이니, 전례를 거행하는 신자들에게 분심이 들지 않도 록 해야 한다. 한 성인의 성화상을 하나 이상 모시지 말 아야 한다. 성당 장식은 원칙적으로 신자들의 신심을 고 려해서 해야 한다" (278항). 새 교회법전에서도 성당 안 에 신자들이 공경하도록 성화상을 전시하는 관행을 보존 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신자들에게 경이감을 일 으키게 하거나 덜 건전한 신심의 빌미를 제공하지 않도 록 적절한 수량과 합당한 순서에 맞는 배치를 요구하고 있다(1188조). 그리고 성화상들의 보수가 필요할 때에는 직권자의 서면 허가가 없이는 결코 수리하지 못하며, 직 권자는 허가를 주기 전에 전문가들에게 자문하도록 규정 하였다(1189조) . 교회가 지적하고 있듯이 성당 안에 배치된 성화상들은 신자들의 신심을 드높이는 데 그 의미가 있다. 여러 성화 상들 가운데 가장 첫 자리를 차지하는 것은 그리스도의 십자고상이지만, 성당에는 그리스도의 성화상 외에 다른 성화상들도 모실 수 있다. 성인들의 성화상 가운데 으뜸 은 성모 마리아의 성화상이다. 신자들은 이 성화상 앞에 서 혼자 또는 여럿이 기도할 수 있으며, 촛불을 켜거나 꽃으로 장식할 수도 있다. 성모의 성화상은 성모가 그리 스도의 어머니라는 사실뿐만 아니라 신자들의 어머니도 되고, 또 필요할 때에 그분께 전구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알려 준다. 성인들의 성화상도 신자들에게 성인들의 삶 을 기억하게 해서 그리스도인의 삶의 모범이 무엇인지를 깨닫게 해주고, 신자들로 하여금 성인들을 본받아 그리 스도의 증거자가 되게 한다. 성화상들은 하느님의 사랑을 드러내 주는 훌륭한 표지 이다. 하느님은 이 성화상들을 통하여 신자들이 당신의 모습을 보게 하고 만나게 한다. 성화상이 곧 표현하고 있 는 실재는 아니지만 그 실재를 부분적으로나마 보여 주 는 표징이고, 우리는 그 표징들을 통해서 보이지 않는 실 재를 어느 정도 느껴 알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어떤 이 는 '성화상을 눈으로 보는 성서' 라고 표현하기도 하였 다. 이렇듯이 성화상은 표징이라는 차원에서 큰 가치를 지닌다. 성화상을 실재와 혼돈하여 우상화하는 태도에도 문제가 있지만 지나치게 배격하는 데에도 문제가 있다. 왜냐하면 인간은 본질적으로 감각적인 존재이므로 초월 적인 세계를 감지하기 위해서도 감각적인 표징을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 성상 ; 성화 ; → 성모자상 ; 성화상 논쟁) ※ 참고문헌  Günther Howe ed., Das Gottesbild im Abendland, Witten Berlin, 1957/ Lexikon der Kunst, vol. 5, Berlin, 1983/ Th. Klauser ed., Reallexikon für Antike und Christentum, Sttutgart, 1950/ 0. Schmitt . E. Gall · L.H. Heidenreich, Reallexikon zur deutshcen Kumstgeschichte, Stuttgart, 1937/ J. Jahn · W. Haubenreisser, Worterbuch der Kunst, Stuttgart, 1983/ 김종수, 《왜 저렇게 하지? - 전례의 표징》, 한국천주교중앙협 의회, 1998, pp. 94~95/ J.A. Obrien, 정진석 역, 《억만인의 신앙》, 가톨 릭출판사, 1998, 개정판, pp. 499~500. 〔洪珍卿〕