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성체 대회
世界聖體大會
〔라〕Congressus Eucharisticus · 〔영〕Eucharistic Congr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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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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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81년 프랑스 루르드에서 열린 제42차 세계 성체 대회(왼쪽)와 1985년 케냐 나이로비에서 열린 제43차 세계 성체 대회.
성직자 · 수도자 · 평신도들이 함께 모여 성체에 대한 이해와 사랑을 증진시키고 성체 신심을 앙양(昂揚)하며, 지극히 거룩한 성체 안에 현존하는 예수 그리스도에 대 한 신앙 고백을 통하여 성대하게 하느님께 영광을 드리 는 전세계 차원의 모임. 보통 특별한 주제를 선정하여 대 회가 준비되는데 이 주제에 맞추어 성체에 관한 강의 · 세미나 · 토의 등을 하고 있으며, 현대 생활과 연관시키 는 학술 연구 모임과 그리스도교 정신과 신앙 생활에 보 다 전적으로 투신하도록 인도하는 전례와 외부 행사 등 두 가지 요소로 구성되어 있다. 그리고 규모에 따라 세계 성체 대회 · 국가 성체 대회 · 지역 성체 대회 · 교구 연합 성체 대회 · 교구 성체 대회 · 지구 성체 대회 · 구역 성체 대회 · 본당 성체 대회 등으로 구분된다. 〔기원과 정착〕 세계 성체 대회는 19세기 후반 프랑스 에서 프로테스탄트 정신이 확산되고 얀센주의가 팽배해지면서 수도회를 억압하는 칙령이 이미 발효되었고 이성 (理性)만을 중시하는 합리주의(rationalism)의 영향으로 사회적 · 종교적인 혼란이 빚어지던 시기에 시작되었다. 즉 당시 프랑스 투르(Tours)에서 타미지에(Marie Marthe Emilia Tamisier, 1834~1910) 여사가 성체와 관계된 기적이 일어난 성지를 순례할 것을 권장하면서 시작되었던 것이 다. 1873년에는 그리스도가 알라코크(Margarita Maria Alacoque, 1647~1690) 성녀에게 자신을 계시한 파레-르-모니 알(Paray-le-Monial) 경당에서 60여 명의 프랑스 의회 의 원들이 무릎을 끓고 있는 것을 본 타미지에는, 프랑스 정 부의 세속화 정책에 대항하여 그리스도교 신앙의 가치를 확산시킬 것을 다짐하였다. 탁월한 조직력과 깊은 성체 신심을 지녔던 그녀는, 성체 대회 기원에 큰 공적을 남겨 '성체의 사도' 라고 불리는 성 에이마르드(Petrus Julianus Eymard, 1811~1868)와 '리용의 돈 보스코 라고 불린 복자 세브리에(Antoine Chévrier, 1825~1879) , 그리고 자주 영성 체할 것을 권고한 세귀르(Louis Gaston de Ségur, 1820~ 1881) 몬시놀에게서 많은 영향을 받았다. 특히 얀센주의 자들의 엄격주의와는 달리 세귀르 몬시놀은 프랑스의 성 체 관련 기적이 일어난 여러 장소들을 열거한 《지극히 거룩한 영성체》(La trés sainte communion, 1860)라는 책에서 가능하다면 매일 혹은 이틀에 한 번, 적어도 일주일에 한 번은 영성체를 하도록 권하였다. 타미지에는 성 에이마르드처럼 성체성사를 통해서 실현될 세상 구원의 협력자로 부름을 받았다는 것을 확신 하면서 당시 가톨릭 세계의 평신도와 성직자들 중에서 유능한 사람들을 성체 신심 운동에 참여하도록 권하였다. 그리고 1874년 예수 부활 대축일 때 1226년에 완공 된 뒤부터 하루도 빠짐없이 성체 현시를 하는 '아비뇽 참회자들의 신심 깊고 훌륭한 회' 의 경당을 순례하면서 성체 순례가 시작되었다. 그 해 아르스와 방데(Vande) 의 순례객들을 시작으로 1875년에 두에(Douai) 순례객 들, 1876년에는 아비농 순례객들, 1878년에는 파베르 네(Favernay) 순례객들이 뒤따랐다. 점차 성체 신심은 그 녀의 노력으로 성체 순례, 성체와 관련된 활동의 모임, 성체 대회 등 세 단계로 발전되었다. 성체 순례는 중간 지점에 성체 기적으로 유명해진 성지를 방문하는 것이 포함되어야 했는데, 이것은 당시 루르드와 살레트(Salette) 성지에서 시작된 성모 마리아 순례를 모방한 것이었다.
성체 순례가 성체 대회 행사로 연결된 데에는 특히 성 에이마르드의 두 아들인 르로예(Leroyer)와 테스니에르 (Tesniére)의 영향이 컸다. 1875년부터는 매번 성체 순례 와 성체 대회 관계를 연구하고 동시에 성체 신심의 열의 를 높이며 성체 대회의 발전을 촉진하기 위한 회의가 소 집되었으며, 성체 순례에서 규모가 큰 기도 모임을 강조 하고 성체 신심 활동에 관한 조직에서 의무적인 연구를 강조하는 등 성체 대회의 특징적인 내용들이 확정되었다. 그리고 1881년 1월 17일 파리에서 세귀르 몬시놀이 주재한 한 모임에서 세계 성체 대회의 기본적인 틀이 확 정되었는데, 이 회의에서는 릴(Lille)에서 '성체 전파와 사제직' 을 주제로 그 해 6월 28~30일 제1차 세계 성체 대회를 개최할 것을 결정하였다. 첫 성체 대회 조직의 주 역인 프랑스 북부 가톨릭 단체의 지도 신부 브로(Philibert Vrau, 1829~1905)는 대회에 대한 계획을 세우고 재정적인 도움을 제공하였을 뿐만 아니라 교황 레오 13세(1878~ 1903)의 승인을 얻기 위해 로마에 가기도 하였다. 1881 년 5월 16일 교황 레오 13세는 그의 청원을 받아들여 교서를 통하여 이 대회를 공식적으로 인정하는 메시지를 발표하였다. 〔역 사〕 역대 개최지 : 1881년 프랑스에서 시작된 제 1차 세계 성체 대회부터 1997년 폴란드에서 개최된 제 46차 세계 성체 대회까지의 개최국과 개최 도시 및 개최 연월일, 주제는 다음의 표 <세계 성체 대회 연보>와 같다.
발전과 변모 : 제1차 세계 성체 대회부터 국제적인 대 회로 인정을 받았는데, 이 대회에는 네덜란드 · 벨기에 · 스위스 · 스페인 · 영국 등 유럽 대륙뿐만 아니라 멕시코 와 칠레 등 세계 여러 곳으로부터 800여 명이 참가하였 다. 그리고 이 성체 대회 동안에는 세계 성체 대회가 지 속적으로 추진되도록 하기 위하여 의장단의 평의회와 일 반 회원으로 구별되는 조직이 결성됨으로써, 파리에 본 부를 둔 국제적인 상설위원회가 창설되었다. 이 위원회 에는 지역 교회의 성체 관련 운동에서 능력을 발휘하는 성직자나 평신도들이 위원으로 초빙되었고, 부이예리(de la Bouillerie, 1881~1882) 몬시뇰 · 뒤스퀘네(Dusquesney, 1882~1885) 몬시뇰 · 메르미요(Mermillod, 1885~1890) 몬 시뇰 · 두트를루(Doutreloux, 1890~1901) 몬시놀 등이 의장 을 맡았다. 특히 옐랑(Heylen) 몬시뇰은 1901년 제13차 앙제 세계 성체 대회 때부터 1937년까지 21차례나 의장 직을 맡아 최장수 의장을 기록하기도 하였다.
교황들은 항상 세계 성체 대회 조직 요원들을 격려하며 대회의 발전을 도모하였는데, 유럽 대륙 밖에서 처음 으로 열린 1893년 예루살렘 세계 성체 대회 때에는 최 초로 로마 교황청에서 교황 사절을 파견하였다. 이후 1902년에 열린 제14차 나뮈르(Namur) 세계 성체 대회 부터는 교황 사절 파견이 상례화되었고, 교황이 직접 처 음으로 참석한 1922년의 제26차 로마 세계 성체 대회에 서는 2년마다 세계 성체 대회를 열기로 결정하였다. 또 1932년 제31차 더블린 세계 성체 대회 이후부터는 마지막 예식을 마무리하는 의미에서 교황이 라디오 메시지를 보내는 등 지대한 관심을 보였다. 그리고 1950년에 교 황 비오 12세(1939~1958)는 교황청 국무성을 통하여 세 계 성체 대회 본부를 로마로 옮기고 횟수를 줄여 4년마 다 대회를 열고 장소는 교황청에서 선정하도록 하였다. 세계 성체 대회와 관련된 종합적인 계획은 그 후 성체 대회가 열리는 도시의 본부에 위탁되었는데, 홍보 · 인쇄 · 교통 · 숙박 문제 등 특별한 분야는 관련 있는 여러 위원 회를 통하여 추진하도록 하였고 그 기간은 통상적으로 5 일 간으로 정하였다.
1964년 인도 봄베이에서 개최된 제38차 세계 성체 대 회는 교황 바오로 6세(1963~1978)가 참석한 대회로서 역 사적인 의미가 있었다. 왜냐하면 로마가 아닌 다른 지역 에서 더구나 전체 인구의 2%에 불과한 비그리스도교 국 가에서 개최되는 성체 대회에 교황이 직접 참석한 최초 의 대회였기 때문이다. 1989년 10월 5~8일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참석한 가운데 열린 제44차 서울 세계 성 체 대회는 그리스도 우리의 평화' 라는 주제로 평화 · 감 사 · 회심 · 일치를 기원하며 서울에서 개최되었다. 아시 시의 성 프란치스코 축일인 10월 4일 전야제 '평화의 날' 을 시작으로 5일 '감사의 날' 에는 "제찬과 성찬" 심 포지엄에 이어 개회 미사가 봉헌되었고, 6일 '회심의 날' 에는 "세계 평화와 교회" 강연회와 "그리스도교 관점 에서 본 한반도의 평화" 심포지엄 및 젠 베르데의 "깨어 나라" 라는 주제의 공연에 이어 참회 예절과 철야 기도회 가 이어졌고, 7일 '일치의 날' 에는 성공회 성당에서 각 교파 그리스도교 지도자들이 참석한 가운데 그리스도교 일치 기도회가 열렸으며 한반도의 분단 지점이 보이는 도라산에서는 "하나 되게 하소서"라는 주제로 민족의 화 해와 일치를 위한 평화 통일 기원 미사가 봉헌되었다. 또 이날 오후 서울에 도착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논현 동 성당에서 '엠마우스 성시간'을 주재한 뒤 '젊은이 성 찬제' 에 참석하였다. 대회 마지막 날인 8일 '축제의 날'에는 65만여 명의 국내외 신자들이 참석한 가운데 세계 성체 대회의 절정인 장엄 미사가 여의도 광장에서 봉헌 되었는데, 교황은 이날 강론을 통하여 인류라는 한 가족 을 갈라놓는 장벽을 헐어 버리기 위해 모두가 서로에게 생명의 빵이 되어 주고 참 평화의 도구가 되자고 역설하 였다. 제45차 세비야 세계 성체 대회도 교황이 직접 참 석한 가운데 그리스도 인류의 빛' 이라는 주제로 진행되 었는데, 교황은 그리스도의 성체와 성혈 대축일이자 대 회 마지막 날인 1993년 6월 13일 폐막 미사 강론을 통 하여 전세계 복음화 500주년을 기념하는 교회 축하 행 사의 마지막을 장엄하게 장식하였다. 1997년 폴란드에 서 열린 제46차 브로크로브(Wroclaw) 세계 성체 대회는 '성체와 자유' 라는 주제로 진행되었고, 제47차 세계 성 체 대회는 '새 생명의 빵이신 세상의 유일한 구세주 예 수 그리스도' 라는 주제로 2000년 6월 18~25일 로마에서 개최하기로 결정되었다. (⇦ 국제 성체 대회 ; 성체 대회 ; → 성체 신심) ※ 참고문헌 강우일, <세계 성체 대회의 신학적 의의>, <사목> 129호(1989. 10),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pp. 32~38/ 김희중, <세계 성 체 대회의 생성 배경 및 의의>, <사목> 129호(1989. 10), pp. 38~53/ 최 용록, <서울 세계 성체 대회의 역사적 의의>, <사목> 129호(1989. 10), pp. 54~671 제44차 세계성 체대회 준비위원회, 《그리스도 우리의 평 화- 제44차 세계 성체 대회 공식 화보》, 가톨릭출판사, 1990, 《한국 천주교중앙협의회 회보》 77호(1993. 9),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pp. 5~10/ 0. Köhler, Forms of Piety, History ofthe Church, vol. 9, ed. by H.Jedin, New York, 1981, pp. 257~269/ B. Spini, 《EC》 4, pp. 350~352/ S.Tramontin, Vita di pietà e vita di parrochia, Edixzione Paoline, 1990, pp. 101~108/ J. Vaudon, L'Oewre des Congrès eucharistiques, ses origines, Paris, 1911/ J.C. Willke, 《NCE》 5, pp. 617~618. [金喜中]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