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네리, 파올로 Segneri, Paolo( 1624 ~ 16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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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권

파올로 세녜리 신부.
이탈리아의 예수회설교가. 고전 작가. 1624년 3월 21일 로마 근교의 네투노(Net-tuno)에서 18형제 중 장남으로 태어나 10세 때 예수회에서 운영하는 콜레지오 로마노(Collegio Romano, 현교황청 그레고리오 대학교)의 분교인 '로마 기숙사' 에 입학했다. 동료 학생들 중에서도 뛰어났을 뿐만 아니라 특히 수사학에 탁월한 재능을 보여 1637년 예수회에 입 회한 후에는, 예수회 총장이자 교황청의 설교가가 된 올 리바(Oliva) 수련장 신부의 지도로 첫 서원을 하였다. 세 네리는 1648년 24세의 젊은 나이에 라틴어로 쓰여진 스 트라다(F. Strada)의 고전 수사학과 시를 이탈리아어로 번 역하여 《피안드라의 전쟁에 대하여》(Dalla guerra di Fiandra) 라는 책을 출판할 정도로 실력이 뛰어났으며, 트리엔트 공의회(1545~1563)에도 많은 공헌을 하였다. 그는 훗날 추기경이 된 스승 팔라비치노(S. Palavicino) 신부로부터 학문뿐만 아니라 인격 형성에서도 많은 영향을 받았는 데, 팔라비치노 신부는 세네리의 자질을 인정하여 장차 그가 교회의 훌륭한 설교가가 될 것을 확신했다고 한다. 1650년에 신학 공부를 끝마치고 이듬해 '피스토이아 (Pistoia) 신학교'에서 문법을 가르쳤으며, 1653년에는 피렌체에서 사제 서품을 받았다. 이때 그는 그리스도를 위해 순교하기를 간절히 원하였고, 이 순교는 구원을 기 다리는 아시아 특히 인도인들에게 선교하는 것이라고 확 신하였다. 그래서 1641년, 1643년, 1654년에 걸쳐 예 수회 총장에게 자신의 결심을 밝혔지만 허락을 얻지 못 하였다. 그러나 '피스토이아 신학교'에서 설교하던 중 설교가 곧 선교임을 확신하게 된 세네리는, 자신에게 맡 겨진 사명이 설교임을 깨닫고 온 정열을 기울였다. 그리 고 설교를 더 잘하기 위해서 성서와 교부들의 사상을 연 구하였으며, 특히 치체로(M.T. Cicero, 기원전 106~43)의 수사학을 연구하였다. 설교 활동 : 1655년부터 1663년까지 세네리는 이탈 리아 전역의 예수회 소속 수도원과 본당을 돌아다니며 설교하였는데, 특히 사순 시기 설교에 최선을 다하였다. 당시 도시를 중심으로 이루어지고 있던 설교와는 달리 도시 외곽의 일반 신자들을 대상으로 설교하였던 그는, 1663년 12월에 볼로냐에서 신심이 두텁고 수도회 활동 에 개방적인 코시모(Cosimo) 대공과 그 가족들과 친분을 갖게 되었으며, 이 만남을 계기로 예수회는 대공으로부 터 경제적 지원까지 받게 되었다. 설교 활동은 1692년 까지 계속되었는데, 설교를 통한 그의 선교열은 맡은 본 당뿐만 아니라 본당이 소속된 교구 전체에까지 미쳤다. 그는 일반 신자들을 위해 개방된 장소에서 설교를 하였 고, 밤에는 속죄의 행렬 · 기도 · 공동 고백과 영성체 등 을 행했다. 또 1692년에는 교황 인노천시오 12세(1691~ 1700)의 초청을 받아 교황청 신학부에서 설교를 하게 되 었는데, 열성과 권위 있는 설교로 교황과 교황청 주교들 의 호감을 받아 교황청 내사원과 주교들을 위한 고해 신 부로 임명되었다. 그러나 1694년 7월에 중병에 걸리고 말아 그 해 12월 9일 예수회 지원소에서 사망하였다. 〔사상 및 저서〕 신학 및 영성 : 이탈리아 전역을 돌면 서 사순 시기 동안 행한 설교와 피스토이아 신학교에서 의 문법 교사 시절에 겪은 설교 경험들을 바탕으로 쓴 《사순 시기 설교》(Quaresimale)가 1679년에 출판되어 코 시모 대공에게 헌정되었는데, 이 책은 독일어 · 영어 · 스 페인어뿐만 아니라 아랍어 등 여러 언어로도 번역되었 다. 신앙의 원칙과 신자들이 준수해야 할 계명, 즉 사랑 의 실천뿐만 아니라 사회적이며 경제적인 문제까지 언급 한 이 책은 이탈리아 수사학과 교회에 큰 영향을 미쳤다. 세네리는 진리와 실천해야 할 덕목에 무디어져 있던 당 시 사람들을 일깨우기 위해 설교대에서 열정적으로 설교 하였으며, 인간 영혼의 번뇌와 욕정을 이기도록 진지하 고 엄격하고 웅변적으로 연설하는 것이 그의 설교 방식 이었다. 결국 그의 설교 내용은 용서와 구원의 신비보다 는 하느님의 심판과 죄에 대한 형벌에 관한 것이 많았고, 따라서 그는 웅변인 · 재판관 · 영감을 불러일으키는 설 교가로 여겨졌다. 또한 그는 사람들의 회개를 위해서라 면 자신의 내면에서부터 우러나오는 사도적 · 신앙적인 열의로 많은 선교사들과 교회 지도자들, 그리고 일반 신 자들을 위해서 설교하는 것을 마다하지 않았다.
1691년에는 그가 사용하는 단순하고 명확한 언어로 《크루스카 단어집》(Vocabolario della Crusca) 편찬 작업에 협력해 줄 것을 요청받고 참여하였으며, 1693년까지 그 가 한 설교들이 이듬해에 책자(Prediche dette nel Palazzo Apostolico e dettate alla Santitá di nostro signore Papa Innocenzo XII da Paolo Segneri della Compagnia di Gesù)로 출판되었다. 13부로 구성된 이 책을 통해 세네리는 그 당시 교회 지도자들의 악습을 폭로하고 그들에게 필요한 덕목을 강조하였으며, 지방에 사는 일반 신자들의 생활과 교황청 안의 생활을 비교하 기도 하였다. 거의 같은 시기에 세네리는 교황청 전례 성 사성으로부터 사목적 열성과 수많은 저서들로 인해 유명 해진 스페인의 팔라폭스(J. Palafox y Mondoza, 1600~1654) 주교가 쓴 《내적 삶》(Vita interiore)에 대한 평가를 의뢰받 았는데, 그의 평가는 부정적이었다. 그는 이 저서가 많은 성인들에게서 볼 수 있는 하느님께 대한 복종이나 겸손 이 없으며 자기 찬사와 자만심으로 가득 차 있고 신학자 들이나 신비가들의 이론을 거슬러 육체적인 환시 현상을 이성적 직관보다 더 중요시하고 있다고 비판하면서 주교 가 쓴 표현법 역시 매우 미숙하다고 평하였다.
이러한 비평을 뒷받침하는 그의 신학 사상에는 실천적 · 도덕적 면이 강하게 나타나 있다. 또한 아우구스티 노와 토마스 아퀴나스의 신학 사상과 신비 신학은 물론 프로테스탄트 학파까지 여러 신학 사상을 절충하여 그리 스도교 신자로서의 삶과 균형 있게 조화를 시키고 있다. 세네리에게 있어서 그리스도교 인간학은 하느님께 완전 히 자신을 맡기는 겸손한 인간에 있었으며, 겸손은 인간 이 하느님으로부터 기인하고 '그분' 께 완전히 의존되어 있다고 하는 것에 대한 인식이었다. 하느님의 뜻에 따르 기 위해 항상 준비되어 있는 전적인 복종으로서의 겸손 은 신적 은총으로의 초대를 받아들이는 것이며 '그분' 의 뜻을 완성시키는 것이었다. 또 하느님과 인간을 향한 완 전한 자기 개방은 바로 인간의 진정한 본성이었으므로, 최상의 자유는 하느님의 뜻을 완성하는 것이었고, 그 절 정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볼 수 있는 것이었다.
신학적 논쟁 : 세네리는 교황 인노첸시오 11세(1676~ 1689) 때 일어난 정적주의(靜寂主義, quietismus)와 개연 론(蓋然論, probalilismus)에 관한 신학적인 논쟁에 참여한 주된 인물이었다. ① 정적주의 : 그는 16~17세기에 사제나 수도자 그 리고 평신도의 영적 길잡이가 되고 있었던 '영성 수련' (exercitia spiritualis)과 트리엔트 공의회의 영성 신학에 도 전하는 정적주의자들의 새로운 기도 방법과 실천들에 반 대하였다. 당시 신적 현존을 느끼고 하느님과 일치하기 위한 여러 기도 방법들이 밀라노를 중심으로 수많은 기 관들이 설립되면서 전통적인 그리스도교의 기도법과 다 른 기법들이 보급되고 있었다. 세네리는 인간의 힘으로 얻어지며 인간의 감수성을 강조하는 명상을 비판하면서, 정적주의적 명상법은 하느님과 일치되며 그리스도를 중 심으로 하는 십자가의 성 요한(1542~1591)이 보여 준 신 비적 명상과는 다른 것이고, 인간의 지성이나 의지를 무 화시키는 수동성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고 모방하 여 그리스도교 신자로서의 지상적 삶을 영위하는 데 방 해가 된다고 언명하였다. 또 인간 성화를 위해서는 자기 애(自己愛)에서 벗어나 하루에도 몇 번씩 양심 성찰과 심리적 내관(內觀)을 통해서 내적이며 금욕적인 삶을 살 아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그는 정적주의자들 특히 스페 인의 몰리노스(M. Molinos) 신부의 사상에 대항하였는데, 이를 통해 호교론적인 저서(Concordia tra fatica e la quiete nell'orazione, espressa ad un religioso in una risposta da Paolo Segneri della Compagnia di Gesù)를 출판하기도 했다. 3부로 구성된 이 책 에서 그는 묵상과 명상은 타협될 수 없으며, 진정한 명상 과 거짓 명상을 구별할 수 있는 9개 조항을 언급하였다. ② 개연론 : 이외에도 당시 신학적인 논쟁을 일으킨 것은 엄격주의(嚴格主義, rigorismus)와 이완주의(弛緩主 義, laxismus) 사이에서 논쟁의 대상이 된 '안전 개연론' (安全蓋然論, probabiliorismus)과 '개연론' 이었다. 이 논 쟁은 예수회 총장인 곤잘레스(Thyrsus Gonzalez)가 예수회 의 동료 교수들이나 협력자들의 충고에도 불구하고 독일 에서 1694년에 출판한 《기초 윤리 신학》(Funamentum Theologiae Moralis)에 의해 가속화되었다. '개연론' 을 둘 러싼 당시의 교황의 견해나 신학적 흐름과는 달리 얀센 주의 영향을 받은 곤잘레스는 하느님을 진정으로 사랑하 는 사람은 이 세상의 어떠한 법도 어겨서는 안된다고 하 였다. 그는 개연론을 따르는 이들은 이완주의자들과 동 일하다고 보았고, 세상의 법을 위반한다는 것은 지상에 서 하느님의 활동을 저지시킨다는 이유로 종교적 엄격주 의를 주장했던 것이다. 그리고 '안전 개연론'의 사상을 보급시키기 위해 예수회 안에서뿐만 아니라 저술을 통하 여 혼신의 힘을 다하였으며, 개연론을 따르게 되면 세상 이 도덕적인 면에서 이완주의를 불러일으키게 되고 성서 의 가르침을 약화시켜 많은 죄를 짓게 된다고 보았다.
세네리는 곤잘레스가 생각을 바꾸지 않자 이완주의와 개연론을 분명히 구별한 내용의 서한 3통을 그에게 보냈고, 이로써 개연론이 사람들 사이에 확산되었다. 즉 개연 론에 의하면 인간의 행위는 하느님과의 관계까지 확대될 수 있는 것으로 이 세상에서 선을 실현할 수 있고 영원한 행복에 참여할 수 있기 때문에 그 자체로서 가치를 지닌 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 세상의 법이 절대적인 것은 아 니고, 인간의 행위에 따라 하느님은 인간에게 상을 줄 수 도 있고 벌을 줄 수도 있으므로 하느님을 항상 법을 어기 는 인간을 감시하고 벌을 주는 존재로만 생각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하였다. 인간이 선한 의도와 정직함으로 행 동한다면 인간 행위는 긍정적인 것이 된다는 것이었다. 이러한 내용을 담은 세네리의 3통의 서한은 그가 사망한 후인 1703년에야 빛을 보게 되었다.
사목을 위한 저서들 : 사목 경험을 바탕으로 일반 신 자들을 위해 저술한 영성적 · 도덕적 · 교육적인 세네리 의 저서들은 다음과 같다. 충만히 실현된 그리스도인 즉 보통 사람이 할 수 없는 영웅적 행위나 깊은 덕을 실천함 으로써 그리스도교 신자로서 충만한 상태에 이른 사람 (대표적인 예로 성모 마리아)을 찬양하는 16세기풍의 독특 한 표현법으로 쓰여진 《송가》(Panegirici Sacri, 1657, 1664) 가 있다. 또 《고해를 잘하기 위해 준비된 속죄자》(II Penitente istruito a ben confessarsi, 1669)는 그리스도교인이 죄를 범한 후에 하느님의 은총으로 하느님께 되돌아가는 방법 과 여러 가지의 질문을 통해 양심 성찰을 잘하도록 하고 특정 기도를 통해 참회의 정신을 계속 유지하도록 고해 자를 인도하고 도와 주는 소책자이고, 《준비된 고해 신 부》(II Confessore istruito, 1672)는 신부들이 고해성사를 어 떻게 하면 효과적으로 줄 수 있는지에 대한 지침서이다. 이 책에서 세네리는 고해 신부의 두 가지 역할 즉 질문을 하고 사면을 주는 재판관과 같은 역할과 죄에 떨어진 나 약하고 무지한 병든 영혼을 회복시켜 주는 의사와 같은 역할을 설명하면서, 고해 신부의 주요 임무는 조심성과 인내를 가지고 고해자의 말에 귀기울이며 사랑을 가지고 조언을 해주는 것이라고 언급했다. 《잘 교육받은 그리스 도교인》(II Cristiano istruito nella sua legge, 1686)은 일반 신자 들을 위한 세네리의 신학적 · 영성적인 가르침이고, 《준 비된 본당 신부》(Ⅱ Parocco istruito, 1692)에서는 신자들을 지도한다는 것은 그들을 믿음으로 인도하는 것뿐만 아니 라 영혼을 치유하여 신앙을 실천하게끔 하는 데 있다고 했다. 일반 신자들이나 영적인 것을 원하는 사람들을 위 해 쓴 매일의 묵상집 《영혼의 만나》(La manna dell'anima, 1673~1680)에서는, '만나' 는 영혼이 매일 섭취해야 하는 천상의 양식이며, 사막과 같은 이 세상에서 순례하는 신 자들에게 성서와 교부들의 가르침은 마치 샘에서 흘러 나오는 물 같은 삶의 교육이라는 것을 알려 주고 있다.
이외에도 그는 시편 50편을 주석하였으며(Esposizione del Miserere dato a considerare con accuratezza a qualunque anima pia del Paolo Segneri della Compagnia di Gesù, 1692) , 하느님의 부성(父 性)과 섭리를 56개의 고찰로써 다루기도 하였다(Dichiarazione del "Pater Noster" divisa in cinquanta sei considrazioni di Paolo Segneri della Compagnia di Gesù, 1694). 또 그의 미완성 작품으 로 그가 사망한 후 출판된 저서로 하느님이 거저 주는 선 물과 무한한 사랑을 찬양하는 성서의 '마리아의 노래' (루가 1, 46-55) 중 다섯 번째 절까지를 주석한 것도 있다 (II Magnificat spiegato, 1701). 세네리는 일반 신자들을 위해 성 모 신심 서적 (Ⅱ divoto di Maria Vergine istruito nei motivi e nei mezzi che lo conducono a ben servirla, 1677)을 저술하였고, 민요를 이 용하여 그리스도교 윤리와 교의를 인식시키고 보급하기 위한 작품(Laude spirituale nella quale si contengono le parti principali della dottrina cristiana)도 저술하였으며, 그리스도교 신자들이 신앙으로 죽음을 잘 맞이하도록 도와 주는 저서(Proteste da farsi ogni giorno per ben morire, 1853)도 있다. 하느님이 존재하 고 있음을 사람들의 양심과 창조물을 통해 설명하고, 영 혼이 하느님을 갈망하는 것은 인간 본성 안에 있는 영원 불멸성에 의한 것이기에 종교는 인간에게 필연적이라고 주장한 작품(L'incredulo senza scuza. Opera dove si mostra che non puo non conoscere quale sia la vera religione chi vuol conoscerla, 1690)도 있는데, 여기에서 그는 참 종교와 거짓 종교를 구별하는 것이 중요하며, 가톨릭이야말로 유일하고 사도적이며 거 룩하고 보편된 교회로서 구원의 방주라고 주장하였다. 세네리는 이 저서를 통하여 당시 성행하던 점성학이나 마술적 혼합주의에 대항하기 위해 16~17세기 호교론자 들의 이론을 빌려 교회와 성전(聖傳)을 설명하였으며, 이단자와 유대인들에 대해서도 언급하였다. 〔의 의〕 1665~1692년의 설교를 통한 세네리의 선교 사업은 수도자로서의 삶이 많은 희생과 어려움을 동반한 다는 것을 보여 주었다. 그는 이탈리아 전역을 돌아다니 며 설교를 하던 중 많은 박해나 굴욕을 받기도 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설교나 저서들에서 발견되는 그의 사상은 신자들을 교육시킴으로써 무지로부터 해방시켜 구원에 이르도록 도와 주는 열성이었고, 인간 의지를 자극함으 로써 지성의 최종 목적인 하느님의 선함을 받아들이게 하는 데에 설교 목적을 두었음이 강하게 나타나고 있다. ※ 참고문헌 G. Boero(a cura di), Lettere inedite del P. Paolo Segneri di C.d.G, Napoli, 1848/ A. Landi, La polemica del P. Paolo Segneri contro il quietismo, Roma, Dissertatio in Pontificia Universitas Gregoriana, 1941/ A.M. Saba, I Modi di predicare di Paolo Segneri nel Quaresimale, Tesi all'Università di Roma, 1969/ B. Andreose, Linguaggio e spiritualità di Paolo Segneri, Roma, Tesi all'Istituto Maria Assunta, 1957/ Ezio Bolis, L'uomo tra peccato, grazia e libertà nell'opera di Paolo Segneri Sj(1624~ 1694), Roma, Pubblicazione del Pontificio Seminario Lombardo, 1996/ La manna dell'anima del p. Segneri, aggiumtovi il volgarizzamento dei passi latini, 1930/ G. Bakdanza, Segneri apologeta, Divus Thomas 65, 1962, pp. 168~201/ G. Archi, Analisi sopra di alcuni più scelte prediche, Faenza, 1756/ La vita spirituale, vari aspetti e stati di vita -la vita religiosa, Roma/ J. De Guibert, La spiritualité de la Compagnie de Jésus, Roma, 1953/ C. Raimondi, Trattatisti e narratori del Seicento, Milano · Napoli, 1960/ M. Scotti · S. Bartoli, prose seclte, Torino, 1967/ P. Pifano, La predicazione nelle opere di Paolo Segneri, Excerpta ex dissertatione in Pontificia Universitas Gregoriana, Salerno, 1969/ G. Marzot, Un classico della controriforma P.S., Palermo, 1950/ G. Minozzi, Il padre P.S., vol. 2, Amatrice, 1949/ S. Giannini, Lettere ined. del padre P.S., al granduca Cosimo Ⅲ, Firenze, 1857/ A. Casoli, Missioni del P. P.S. nel territorio di Brescia e della repubblica Veneta, 《Civ. Catt.》, ser. 18, V/ V. Soncini, II padre P.S. nella storia dei Famese a Pamma con lettere e documenti inediti, Torino, 1925. 〔李再淑〕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