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라피노, 몬테그라나로의 Seraphinus almmegeammmo(154~1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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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권
성인. 증거자. 카푸친 프란치스코회의 수사. 본래 이름 은 펠리체 피암피아니(Felice Piampiani). 축일은 10월 12 일. 1540년 이탈리아의 몬테그라나로에서 가난하지만 신심 깊은 가문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부터 양치기로 생 계를 도와야만 했다. 열심한 기도와 신심 생활을 하였던 그는, 부모가 사망한 후 맏형 밑에서 일을 하게 되었다. 그러나 구두쇠에다 모질고 냉혹한 형 밑에서 지내기가 어려워 마침내 집을 떠나기로 결심하였다. 처음에는 은 수자가 되기를 열망하였으나 곧 카푸친회에 입회하기로 마음을 정하였다. 그리고 톨렌티노(Tolenino)에 있는 수 도회에 입회 허가를 요청하였으나 여러 번 거절을 당한 끝에 마침내 허락을 받을 수 있었다. 16세가 되던 1556 년에 집을 나온 그는 '카푸친 프란치스코회' (Ordo Fratrum Minorum Capuccinorum, O.F.M. Cap.)에 입회하여, 1년 뒤 서원을 하고 세라피노라는 수도명을 받았다. 좋은 성품과 열심한 신앙심을 지녔던 세라피노는 열심 히 덕을 닦아 영성적인 생활에는 진일보하였으나, 평수 사로서의 일상적인 의무에는 소홀하여 다른 형제들로부 터 비난과 불평을 듣기도 하였다. 그렇지만 수도 회칙에 충실하고 애덕 실천을 열심히 하여 사람들로부터 인정을 받았다. 밤마다 성체 앞에서 세 시간 동안 기도를 드린 그는 아침 미사 후에야 방으로 가곤 하였으며, 원장의 허 가를 받아 가난한 사람들을 돕는 일에 최선을 다하였을 뿐만 아니라 미신자들과 더불어 노동자처럼 일하기도 하 였다. 이렇듯이 그는 변하지 않는 단순성과 고행, 순종과 가난한 사람들을 향한 사랑이 남달랐으며, 성체와 성모 마리아에 대한 특별한 신심을 지녔고, 마음의 비밀을 읽 는 은사를 받았다. 그래서 그는 비록 문맹이었지만 그와 영성적인 담화나 상담을 나누려고 찾아온 많은 이들과 교회 지도자들로부터 높은 존경과 사랑을 받았으며, 심 지어는 그들의 추종을 받을 정도로 사람들에게 풍성한 덕의 모범을 보여 주었다. 또 그는 기적을 행하고 예언을 하는 은사도 받았는데, 한 번은 그가 로레토(Loreto) 성 지로 순례를 가던 중 홍수로 불어난 강을 건너지 못할 때 하느님의 도움을 청하는 기도를 하여 맨땅을 밟고 강을 건넜다고 한다. 또 한 번은 수도원에서 재배한 배추를 가난한 이들에게 나누어 주려다 받을 사람이 너무 많아 걱정을 하고 있는데 밭에 돌아와 보니 배추들이 그대로 있 어 날마다 배추들을 나누어 준 적도 있었다고 하며, 십자 성호로 병자들을 치유하였다고도 한다. 성 세라피노는 1604년 10월 12일 아스콜리 피체노 (Ascoli Piceno)의 수도원에서 사망하여 그곳에 묻혔으며, 1610년에 복자품에 올랐고, 1767년 7월 16일 교황 글 레멘스 13세(1758~1769)에 의해 시성되었다. ※ 참고문헌 E. Schmidt, 《NCE》 13, p. 105/ Bonaventura v. Mehr, 《LThK》 9, p. 682/Ferdinand Heckman, trans. by Fr. Sereaphin Conley, The Catholic Encyclopedia, New Advent Inc., 1997/ Les Bénédictins de Ramsgate réd., Dix Mille Saints Dictiomaire hagiographique, Brepols, Belgique, 1991, p. 453/ Donald Attwater, The Penguin Dictionary of Saints, The Penguin Group, 1983, p. 174. 〔편찬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