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라피온, 트무이스의 Serapion, Thmmuensis(?~3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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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인. 교부. 이집트의 수도원장이자 트무이스(Thmis) 의 주교. 알렉산드리아의 증거자. 축일은 3월 21일(콥트 교회에서는 3월 7일). 출생과 사망 연도는 정확하지 않으 나, 서간 등을 통해 339년 이전에 이집트 서북쪽 저지대 인 트무이스의 주교로 성성되었고, 362년 이후에 사망 하였으리라고 추정될 뿐이다. 성 아타나시오(Athanasius, 295~373)와 친분이 두터웠던 그는, 특히 아리우스주의를 신학적인 논쟁으로 배척한 사목자로 유명하다. 〔생애 및 사상에 대한 증언〕 아타나시오의 증언 : 아타 나시오의 증언에 따르면 그는 이집트의 은수자 성 안토 니오(Antonius, 251~356)와 절친한 사이였는데(《성 안토니 오의 생애》 82), 안토니오에게서 아타나시오와 함께 양 가 죽을 하나씩 유물로 물려받았다고 한다(《성 안토니오의 생 애》 91). 세라피온은 아타나시오와 여러 통의 편지를 주 고받았으며, 그중 339년의 '대축일 서간' 에서 아타나시 오는 세라피온을 "사랑하는 형제이며 봉사직의 동료"라 고 부르고 있다(Index syriaque des lettres festales ; PG 26, 1412 이 하) . 이것이 바로 세라피온이 트무이스의 사목자이며 주 교임을 암시하는 대목이다. 편집 연대가 358년의 것으 로 추정되는 세라피온에게 보낸 서간에서 아타나시오는, 아리우스(Anus, +336)가 죽기 전에 교회와 화해했으리라 는 추정은 근거가 없다고 단언하였다. 이는 당시 트리어 (Trier)에서 귀양 중이던 아타나시오가 콘스탄티노플에서 아리우스의 죽음을 지켜보았던 이집트의 수도자이자 사제인 성 마카리오(Macarius, 300~390)에게서 소식을 듣고 증언한 것이다. 특히 아타나시오가 세라피온에게 보낸 네 통의 서간은 성령에 관한 체계적인 첫 논술로 중요하다(PG 26, 529~ 676). 아리우스의 주장을 반박한 이 서간에서 아타나시 오는 성자와 성령의 신성에 대해 언급하였는데, 세라피 온은 그에게 다음과 같은 난점을 제기하였다. "성자의 신성을 부인한 아리우스와 과감하게 결별한 사람들이 있 습니다. 그러나 성령의 신성에 대해서는 계속 의문을 품 고 있습니다. 성령은 천사들보다는 높은 영이지만 어쨌 든 하느님의 시종이라는 생각을 갖고 있습니다." 이것으 로 보아 아타나시오의 첫 서간은 성령의 신성을 부인하 는 새로운 유형의 이단을 배척한 것으로 여겨진다. 이들 이단자들은 성서 구절을 은유적으로만 해석하였기 때문에 '은유주의자' (tropicisti, τροπιχοί)라고 불렸다. 아타나 시오는 성자와 성령의 긴밀한 일치와 그 신성을 함께 고 백하였다. 즉 성령은 성자의 영이다. 왜냐하면 성자가 선 물로 약속하였고 성자가 보내 주었고, 성령은 그리스도 가 우리 안에 살아 있게 하는 생명의 원리이기 때문이다.
세라피온은 아타나시오에게 제1 서간의 요약을 요청하였고, 이에 대한 답변으로 아타나시오는 그에게 제2 서간과 제3 서간을 보냈다. 그러나 아타나시오는 그리스 도론만 언급하고 제3 서간에서 삼위의 관계 특히 성자와 성령의 관계를 다음과 같이 설명하였다. "만일 성령께서 피조물이 아니고 천사 중의 한 분도 아니고 성부께로부 터 발하셨다면 그 또한 아들이 아니냐? 그렇다면 성자와 성령은 형제란 말이냐? 그런데 성자를 외아들이라고 했 으니 이 말은 옳지 않다. 그러니 성령은 도대체 어떤 분 이냐? 그렇다면 성부 성자 · 성령의 기술 순서를 보아 그리고 또한 성령이 만일 성자의 영이라면 성부는 바로 성령의 할아버지인 셈이 아닐까?" 아타나시오는 제4 서 간에서 이러한 궤변을 단호히 배격하였다. 따라서 이 서 간들은 1장의 요약이라기보다는 전혀 새로운 독자적인 내용으로 4장 7절의 영광송으로 끝맺고 있다. 이어 4장 8-23절에서는 마태오 복음 12장 32절(성령을 거스른 죄는 용서받지 못한다)의 말씀을 주석하였는데, 이들은 본래 별 개의 서간으로 아타나시오 이전의 것으로 추정된다.
사실 아타나시오는 아리우스파의 모함을 반박하고 자신을 옹호하기 위하여 356년에 세라피온과 그 외 4명의 주교를 황제의 법정 증언에 서도록 요청했으며, 이 일로 인해 세라피온은 추방되고 말았다. 그리고 성 예로니모 (Hieronymus, 347~419/420)는 추방당한 세라피온을 '증거 자' 로 평했고 이후 교회는 그를 증거자로 공경하고 있다.
기타 여러 증언 : 성 예로니모는 《명인록》(De Viris Illustribus, 99)에서 수도원장을 역임한 후에 트무이스의 주교가 된 세라피온을 '박학한 학자' (scholasticus)라고 하 면서 《마니교 반론》(Contra Manichaeos), 《시편론》(De Psalmorum Titulis), 두 편의 서간 등을 저술하였다고 증언 했다. 《시편론》은 유실되었지만 《마니교 반론》은 최근에 발견되었다. 5세기 초의 소조메노(Salmaninius Hermias Sozomenus)는 세라피온이 "높은 성덕과 웅변력을 지닌 성직자"라고 평가하였다(《교회사) 4, 9). 또 에피파니오 (Epiphanius Salaminius, 315~403)의 증언(《이단론) 73, 26)에 따르면, 아리우스파의 프톨레마이오스(Ptolemaios)가 359년에 셀레우치아(Seleucia) 교회 회의에 트무이스의 주교로 참석하였다고 했는데, 이것으로 보아 세라피온이 귀양 중에 그가 주교좌를 찬탈한 것으로 여겨진다. 6세 기경의 가(假) 레온시우스(Leontius Byzantium)가 쓴 《아 폴리나리스 반론》(Adversus Fraudes Apollinistarum)에 의하 면, 아폴리나리스(Apolinaris Laodiceae, 310~390)가 세라피 온에게 보낸 한 단편은 아타나시오가 그리스도론 문제에 관해 고린토로 서간 한 편을 보냈다고 증언하고 있다. 이 것이 에픽테투스(Epictetus)의 서간인데, 이에 따르면 세 라피온의 사망은 359년 가을 이후인 것 같다. 따라서 리 츠만(H. Lietzman, 1875~1942)의 주장대로 이 서간의 집 필 연대인 370년이 분명히 입증되지 않는 한 세라피온 의 사망 연대는 362년 이후로 추정할 수밖에 없다. 〔작 품〕 《마니교 반론》 : 예로니모는 《명인록》에서 이 작품을 '탁월한 책' (egregius liber)이라고 평하였다. 이 책 의 완본이 성립되어 전해진 역사는 매우 복잡하다. 프란 치스코 데 토레스(Francisco de Torres, 1509~1584)의 라틴어 역본이 가니시오(Petus Canisius, 1521~1597)의 《옛 독서집》 (Antiquae Lectiones)에 최초로 언급되었고, 함부르크 시립 도서관에 보존된 17세기의 유일한 필사본을 근거로 하 여 바스나주(Jacques Basnage, 1653~1723)가 처음으로 그리 스어판을 출간하였는데 여기에는 티투스(Titus Bostrae, 4 세기경)의 《마니교 반론》이 포함되어 있다. 모든 그리스 본의 원본 구실을 한 것이 이 필사본이었다. 그러나 피트라(Jean Baptiste Francois Pitra, 1812~1889)가 제노바(Gènova)의 성 가롤로 도서관에서 11세기경의 새 로운 자료를 발견하였는데, 이것은 함부르크의 것과 같 이 세라피온의 단편 필사본을 담고 있고, 티투스의 《마 니교 반론》 다음에 수록되어 있었다. 이것이 바로 함부 르크본의 원본인 동시에 로마의 17~18세기 필사본의 원본이었다. 그런데 브린크만(A. Brinkman)이 중요한 새 로운 사실을 발견하였다. 즉 이제까지 그의 작품은 완본 으로 전해진 것이 없었는데, 제노바 필사본에 대한 세밀 한 연구와 분석을 통해 이 작품의 4분의 3 가량이 옛날 에 이미 잘못 제본되었다는 점과 그 작품 중 한 장만 유 실되었을 뿐 나머지는 모두 티투스의 작품에 흩어져 있 다는 것이다. 그 결과 세라피온의 전 작품을 재구성하여 1894년에 처음으로 인쇄하였다. 브리크만에 따르면 《그 리스 교부 전집》(PG 40, 900~924)에 수록된 세라피온의 작품은 4분의 1뿐이라는 것이다. 그 후 1924년에 에우 스트라티아데스(Eustratiades)와 아르카이도스(Arkaidos) 가 아토스 산 바토페디스(Vatopedis) 수도원 도서관에서 목록을 출간할 때, 알려지지 않은 12세기의 필사본 중에 서 세라피온의 완본 즉 《마니교 반론》을 발견하였다. 그 리고 1년 뒤 케시(R.P. Casey)가 유실된 한 장이 포함된 복사본을 발견함으로써 브린크만의 주장이 사실로 확증되었다. 세라피온의 완본은 1931년에 케시가 아토스본 과 제노바본을 근거로 신판을 출간하면서 처음으로 빛을 보게 되었다.
이로써 예로니모가 세라피온을 학자라 부르고, 그의 작품이 훌륭하다고 평가한 이유가 분명히 밝혀진 것이다. 사실 이 작품에는 수사학 · 철학 · 신학 등이 세련된 문체로 담겨 있다. 하지만 세라피온은 알렉산델(Alexander Licopoli, 3세기)이나 아우구스티노(Augustinus Hipponensis, 354~430)와 같이 마니교 사상을 전체적으로 다루 지는 못했고, 다만 마니교의 핵심인 이원론 체계 즉 선악 원리, 구약과 신약의 일부에 대해서만 언급하였을 뿐이 다. 그러나 마니교의 모순과 궤변을 날카롭게 지적한 점 은 높이 평가되고 있다. 그리스도론에서 특기할 점은 그 가 비록 아타니시오와 친분이 두터웠지만 '동일한 본성' 이라는 뜻의 그리스어 '호모오우시오스' (ὁμοούσιος) 대 신에 '호모이오스' (ὅμοιος)라고 기술한 점이다. 오히려 피조물은 그 누구도 창조주와 '동일한 본성' 일 수 없다 는 표현에서 이를 강조한 것으로 여겨진다. 25장 13-18 절과 37장 11-13절에서 마르코 복음이 마태오 복음보 다 첫 자리에 기술된 점은 눈여겨볼 일이다. 29-30장에 서는 마귀와 지옥(루가 8, 31)에 대해 언급하였는데, 그가 비록 지옥을 책벌의 장소로 이해했지만 그것은 결국 교 육과 교정의 한 방법일 뿐, 지옥은 유한하고(30, 1-5) 끝 이 있다고 주장하였다. 이것은 개연적으로 오리제네스 (Origenes Alexandriae, 185~254)의 영향을 받은 듯하다.
《찬미 기도문》 : 디미트리예브스키(A. Dimitrijewsky)가 1894년에 최초로 발견하여 출간한, 아토스 산 라우라 (Laura) 수도원에 소장된 11세기의 필사본에는 세라피온 의 작품으로 추정되는 《찬미 기도문》(Euchologium)이 실 려 있었다. 그러나 예로니모는 이 사실에 대하여 언급하 지 않았다. 왜냐하면 전례의 역사에서 큰 의의를 지니는 이 성무 집전서가 과연 세라피온의 것인가 하는 의문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30개의 기도문이 수록된 이 필사본 은 확실히 이집트에서 기원한 것으로, 350년경의 것으 로 추정된다. 세라피온의 이름은 첫 기도문과 열다섯 번 째 기도문에만 암시되어 있지만 그 외의 기도문도 모두 그의 것으로 추정된다. 《찬미 기도문》을 담고 있는 이 필 사본이 처음 출간된 후 보베린(G. Wobberin)은 이런 사실 을 모른 채 4년 후에 제2판을 출판하였다. 그 후 브라이 트바른(F.E. Brightwarn)이 수정본을, 뒤이어 푼크(Franz Xaver Funk, 1840~1907)가 신판을 출간하였는데, 이 작품 은 초기 교회의 전례에 대한 원천적인 자료를 제공하는 성무 집전서로서 중요한 의의를 지닌다.
이 《찬미 기도문》을 문체와 내용에 따라 구분하면 성 찬례에 관한 18개의 기도문, 세례 · 견진의 7개 기도문, 성품의 3개 기도문, 올리브 축성과 장례식 등 2개 기도 문 등이고, 교의적인 작품인 《성부 성자에 관한 서간》 (Letter concerning Father and Son) 다음에 실려 있다. 봉헌 의 기도는 후렴이며, 그 뒤에 '거룩하시다' (Sanctus) · 봉 헌 · 성체 설정 · 말씀의 호칭 기도 · 산 이와 죽은 이를 위한 기도 · 십계명과 봉헌자들을 위한 기도가 이어지고 있다. 이 후렴은 여러 가지 특징을 지니고 있는데, 특히 성변화 전에 '거룩하시다' 가 언급된 것은 이것이 처음이 다. '거룩하시다' 는 성체 축성 이후에 언급되는 것이 이 집트 전례의 특징이다. 그런데 특기할 것은 성체 설정 , 즉 빵과 포도주의 축성 사이에 '교회 일치를 위한 기도' 가 삽입된 점이다. 이것은 《디다케》의 내용(9, 4)과 자의 적으로 동일하다. 즉 감사송의 여러 구절이 성 마르코의 전례와 같다. 이 후렴에 나타난 또 다른 특징은 여러 구 절이 신학적인 관점에서 상당히 그노시스주의적인 경향을 나타내고 있다는 점인데, 이것은 세라피온 개인의 생 각으로 여겨지며 그의 과감한 독창성을 입증하고 있는 것이기도 하다. 즉 그는 새로운 기도문을 만들고 초기 기 도문을 수정하고 보완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성변화 기 도는 전례사에서 전승상 제2급의 종속적인 것으로 간주 된다. 말씀의 호칭 기도는 세라피온의 독자적인 것으로 추정된다. 왜냐하면 알렉산드리아의 교부 베드로(Petus Alexandriae, +311)와 테오필로(Theophilus Alexandriae, 385~412)의 증언에 의하면, 아타나시오와 알렉산드리아 전례는 빵과 포도주 잔 위에 말씀의 호칭 기도를 하고 있 지 않기 때문이다. 어쨌든 이것이 그노시스주의의 흔적 을 드러내고 있는 것만은 분명하다.
《찬미 기도문》 다음에 수록된 《성부 성자에 관한 서 간》은 익명의 작품이다. 비록 문체가 《마니교 반론》과 《찬미 기도문》과는 다르지만 보베린은 세라피온의 것으 로 추정하였다. 마지막 영광송, 곧 "볼 수 없고 지혜로우 신 하느님께, 영광과 권능과 큰 위엄이 처음과 같이 이제 와 항상 세세에 영원히 계시나이다. 아멘"은 생소한 표 현이다. 왜냐하면 매 기도문 끝에 세라피온이 성부 성자 성령에게 바친 특유의 성삼 영광송과 표현이 다르기 때 문이다. 제3위인 성령에 대한 세라피온의 인식은 다소 모호하나, 성자 그리스도에 관한 그의 인식은 교회의 전 통적인 가르침을 따라 성부와 함께 영원하다는 사실을 분명히 고백하고 있다. 이것은 개연적으로 그가 아리우 스 논쟁 이전의 인물임을 추정하게 한다.
서간 : 예로니모는 세라피온이 유익한 서간을 남겼다고 증언하고 있다. 피트라는 23편의 편지가 수록된 서간 집이 존재했었고, 그중 3편의 서간만이 발견되었다고 한 다(Analecta sacra 2, Paris, 1884, proleg. p. 40 ; Analecta sacra et classica 1, Paris, 1888, p. 47). 그중에서 마이(Angelo Mai, 1782~1854) 추기경이 그리스어본으로 된 두 통의 서간을 발견하였는 데, 병중에 있는 '에우독시오(Edoxius Constantinopoli, 300~370) 주교를 위로하는 편지' (Ep. ad Eudoxium ; PG 40, 924~925)와 '알렉산드리아의 수사들에게 보낸 격려의 편지' (Ep. ad monachos ; PG 40, 925~941)로서, 여기에서 세 라피온은 '본체가 같으신 삼위' (Ὁμοούσιος Τριάς)란 표현 을 사용하였다. 마지막으로 성 안토니오가 사망한 후에 세라피온이 '안토니오의 제자들에게 보낸 서간' (Ep. ad Antonii discipulos) 시리아본 한 통은 드라구에(R. Draguet)에 의해 최근에 발견되어 출간되었다. 한편 1885년에 출간 된 아르메니아어본 서간과 완본으로서 진본으로 추정되는 시리아어본이 있는데, 이 모두는 유실된 그리스어본 에서 번역된 것으로 추정된다.
이 밖에 피트라는 《동정녀에 대한 강론》(Homily on Virginity) 중 시리아어 발췌본과 《증거자 서간》(Letter to Confessors)이라는 교의적인 단편집을 출간하였지만, 그 친저성이 의심된다(Analecta sacra 4, Paris, 1883, pp. 214~215, 443~444). 또 드브레세(R. Devreesse)는 창세기 주석의 몇몇 단편을 출간하였다. 아랍어본 《세례자 요한의 생애》(Life of John the Baptist)도 세라피온의 것으로 전해지지만 역시 친저는 아니다. (→ 교부 ; 그리스 교부) ※ 참고문헌  R.P. Casey, Serapion of Thmuis against the Manichees, Cambridge, Mass., 1931/ Donald Attwater, The Penguin Dictionary of Saints, The Penguin Group, 1983, p. 295/J. Quasten, Patrologia II , Torino, 1980, pp. 81~ 871 -, 《NCE》 13, pp. 105~106/ 《ODCC), p. 1485/ A. Hamman, 《LThK》 9, pp. 682~683/ D. Dufrasne, 《Dsp》 14, pp. 643~651/ G.T. Stokes, 《DCB》, p. 889/ Les Bénédictins de Ramsgate réd., Dix Mille Saints Dictiomaire hagiographique, Brepols, Belgique, 1991, pp. 453~454 〔咸世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