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례대

洗禮臺

〔라〕fons baptismalis · 〔영〕baptismal fo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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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화려한 유형에 속하는 시에나 주교좌 성당의 세례대.

가장 화려한 유형에 속하는 시에나 주교좌 성당의 세례대.


세례성사 때에 사용될 축복된 세례수를 담아 보관해 두는 저장 용기로서 세례성사를 거행하는 장소. 현대의 세례대는 일반적으로 돌이나 대리석으로 제작되며, 세례 수를 보관할 뿐만 아니라 세례성사를 집전할 때 세례자 들의 머리에 붓는 세례수를 받을 수 있도록 제작되고 있 다. 현 교회법에서는 세례성사가 신자 생활의 시작이므 로, 모든 주교좌 성당과 성당에는 세례대가 설치되어 축 복된 세례수가 흘러 나오거나 보관되도록 하여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또 교구 직권자가 본당 신부의 의견을 들 어 본당이 아닌 다른 성당이나 경당에도 세례대를 설치 하도록 허가하거나 명할 수 있다(858조 1~2항 ; 《축복 예 식서》 833항)고 규정하고 있다. 〔역사와 변모〕 546년경의 레리다(Lenida) 교회 회의에 서 세례수를 저장할 용기의 필요성이 거론되면서 6세기 이후 세례대가 등장하기 시작하였는데, 처음에는 세례소 에 있는 수조(水槽)가 그 기능을 하였다. 그러나 이후 유 아 세례가 급증하면서 장엄한 세례성사 예식은 간소화되 고 세례성사가 더 이상 주교만의 권한으로 제한되지 않 자, 성당 내에서 특별히 분리된 세례소 건물이 세례대로 대치되었다. 초기의 세례소가 무덤을 상징하였듯이 초기 세례대 역시 무덤의 모양을 본딴 것이 일반적이었다. 그 래서 초기 세례대는 깊게 패인 수조나 통 모양이었으나, 세례 예식이 기존의 침수하던 관례에서 세례수를 붓거나 뿌리는 예식으로 변모하면서 세례대는 속이 깊이 패인 작은 수조 모양을 띠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10세기 이후 에는 주춧대로 받친 원형이나 직사각형의 우묵한 그릇 모양을 띠었는데, 그 모양은 성수통과 차이가 있었다. 중세의 대다수 성당들은 세례가 교회 공동체로 들어가 는 문임을 상징하기 위하여 세례대를 성당 출입구 가까 이에 배치하였다. 1559년에 밀라노의 대주교 보로메오 (C. Boromaeus, 1538~1584)는 성당 내에 경당 형태의 세 례소를 지을 때 그 안에 지면까지 파인 세례대와 그 주변 에 사람들이 설 수 있을 만한 적당한 여유 공간을 두고 세례소를 문으로 닫아 두도록 지시하는 훈령을 발표하였 다. 이는 예식을 더 엄숙하게 거행할 수 있도록 하기 위 해서였다. 당시 세례대의 기본 유형은 두 가지였는데, 하 나는 성당과 분리된 세례소 건물 안에 있는 수조나 베로 나 성당에 있는 붉은 대리석으로 제작된 원형의 세례대 처럼 거대한 통 모양의 세례대이고, 또 하나는 지면과 떨 어져서 사람 허리 정도의 높이에 위치한 원형이나 직사 각형의 우묵한 그릇이나 통 같은 유형이었다.
세례대의 장식 문양은 다양하였다. 초기에는 장식 없 는 단순한 형태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조각 장식을 하였 다. 화려한 문양의 장식이 돋보이는 로마네스크 양식의 세례대들은 용 · 독수리 머리에 사자의 몸을 한 날개 달 린 괴수 등 기이하고 환상적인 짐승들로 장식되었는데, 이는 악의 세력이 세례성사를 통해 멸망함을 의미하였 다. 또한 미카엘 대천사가 악마를 지옥에 던지는 모습으 로 하느님과 악마의 싸움을 표현하기도 했고, 선과 악의 투쟁을 의인화한 전사들과 위험에 빠진 영혼을 구하는 그리스도가 묘사되기도 하였다. 13세기 이후부터는 초 기의 생동감 있고 강렬한 묘사는 거의 사라지고 평이한 모습을 띠게 되었다. 가장 일반적인 세례대의 장식과 형 태는 주로 복음 이야기를 묘사하거나 추상적인 그림이나 잎 모양 혹은 문장으로 장식된 팔각형이었다. 일반적으 로 이 당시 세례대들은 세례수를 훔쳐 가는 것을 방지하 기 위해 덮개로 덮어 두었다. 14~15세기에는 구체적인 형상이나 목각 탑 모양의 덮개가 있는 세례대들이 등장 하였는데, 때로 이렇게 장식된 덮개 달린 세례대들은 마 치 성합이나 유해함 같은 모양으로 제작되기도 하였다. 그리고 16~17세기에 와서는 덮개가 있는 세례대 유형 이 더욱 유행했고 성합과 유사한 모양을 띠었다.
가장 화려한 세례대 유형은 르네상스 양식의 세례대 로, 1417~1430년에 제작된 시에나 주교좌 성당의 세 례소에 있는 것이 대표적이다. 이 육각형의 대리석 세례 수 통에는 살로메가 세례자 요한의 머리를 헤로데 왕에 게 바친 이야기가 청동 부조로 묘사되어 있고, 각각의 모 서리에는 금박을 입힌 6개의 청동상이 서 있다. 또 중앙 에 높이 돌출한 육면체의 대리석 덮개에는 6명의 예언자 들이 부조되어 있고, 그 꼭대기에는 세례자 요한의 상이 세워져 있다. 근대 이후 세례대의 형태와 장식은 비교적 단순하고 분명한 형상으로 변모되어 갔다. 현대에 들어 서면서 점차 성당에서 세례대의 위치와 필요성은 불분명 해졌으며, 세례성사는 주로 제대에서 행해지는 것이 상 례가 되었다. 특히 한국의 경우에는 새로 세워지는 성당 내에 세례대를 배치하는 경우가 드물다. 〔설치와 축복〕 《축복 예식서》에 따르면, 세례대를 설 치하거나 세례수 보관소를 마련할 때에 특별히 주의할 점은, 그곳에서 세례성사 예식이 품위 있고 합당하게 거 행될 수 있도록 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세례대는 세례성사가 하느님의 말씀과 입문 성사의 절정인 성체성 사와 깊이 관련되어 있음을 명백히 드러낼 수 있는 자리 에 배치되어야 한다고 하였다. 또 세례대의 세례수 보관 부분은 적합한 재료로 아름답게 만들고 고정되어 있어야 하며, 청결해야 하고, 경우에 따라서는 예비 신자가 잠길 수 있을 정도로 마련되어 있어야 한다(833~837항).
새 세례대를 마련하는 경우에는 특별한 축복식을 거행해야 한다. 《축복 예식서》에 따르면, 세례성사는 그리스 도를 믿는 신자들의 대사제인 주교에게서 어느 정도 흘러 나오고 속하게 되는 영신 생활의 시작이므로 자기 교 구 안에 건립되는 세례대를 주교가 축복하는 것이 마땅 하다고 하였다. 그러나 주교는 다른 주교나 사제에게 축복의 임무를 위임할 수 있다. 특히 신자들을 위해서 세례 대가 세워졌다면 그 신자들의 사목 임무 수행에 협력하 는 주교나 사제에게 위임할 수 있다. 세례대의 축복일은 일반적으로 주일로 정하되 특히 부활 시기의 주일이나 주님 세례 축일로 정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재의 수요일 이나 사순 시기의 주일, 위령의 날에는 거행하지 못한다. 새 세례대를 마련하는 일은 신자 공동체의 영신 생활에 대단히 중요한 일이므로, 사목자는 세례대 축복을 신자들에게 알려야 하며 능동적으로 참여할 수 있도록 준비 시켜야 한다. 특히 세례대의 뜻과 상징에 대하여 교육시 켜야 하고 세례성사와 그 상징인 세례수에 대하여 존경과 사랑을 갖도록 교육시켜야 한다(838~841항). (⇦ 세례반 ; → 세례성사 ; 세례소) ※ 참고문헌  J. de Mahuet, 《Cath》 4, pp. 1433~1434/ A. Thomas, 《LThK》 9, pp. 1328~1330/ 《DL》, p. 55/ Peter & Linda Murray, The Oxford Companion to Christian Art and Architecture, Oxford New York, Oxford Univ. Press, 1996, pp. 183~185/ C. Neubberg, 《NCE》 2, p. 71/ 정진석, 《교 회법 해설 교회의 성사법》 7,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1997, p. 106/ 《축복 예식서》,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1986, pp. 281 ~284. [梁蕙貞]