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례성사 洗禮聖事
〔라〕Sacrament Baptismi · 〔영〕Sacrament of Baptis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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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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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는 요르단 강에서의 세례로 모든 사명을 완수하도록 성령을 충분히 받았다.
칠성사 중 가장 먼저 받게 되는 성사로서, 가톨릭 교회 공동체에 속하여 신앙 생활을 하려는 사람들이 일정 기 간의 교육을 수료한 후 전례를 통해 받는 성사. 세례성사는 교회의 다른 입문 성사인 견진성사와 성체 성사와 연결되어 있다. "그리스도교 입문의 성사인 세례 성사, 견진성사, 성체성사는 그리스도교 생활의 기초를 놓는다. 그리스도의 은총으로 사람들이 신성에 참여함 은 인간의 자연적 생명의 기원, 성장, 유지와 어떤 유사 한 관계를 가지고 있다. 세례성사를 통하여 새로운 생명 으로 태어난 신자들은 과연 견진성사로 굳건하게 되며, 성체성사로 영원한 생명의 빵을 받는다. 그러므로 신자 들은 그리스도교 입문 성사들을 통하여 하느님의 풍부한 생명을 더욱더 풍부하게 받게 되고 완전한 사랑을 향하 여 나아가게 된다' (바오로 6세, 교황령 <하느님 본성에 참 여>)"(《가톨릭 교회 교리서》 1212항). I . 교회의 가르침 "세례성사는 그리스도교 생활 전체의 기초이며, 성령 안에 사는 삶으로 들어가는 문이고, 다른 성사들로 들어 가는 길을 여는 문이다. 우리는 세례를 통하여 죄에서 해 방되어 하느님의 자녀로 다시 태어나며, 그리스도의 지 체가 되어 교회와 한 몸을 이루어 그 사명에 참여하게 된 다. 세례는 물로써 말씀 안에 다시 태어나는 성사이다" (《가톨릭 교회 교리서》 1213항). 교회는 성령 강림의 바로 그날부터 세례를 베풀어 왔다(사도 2, 38). 그날 이후 사 도들과 그들의 협력자들은 유대인이든지, 이방인이든지 예수를 믿는 모든 사람에게 세례를 베풀어 왔다(사도 2, 41 ; 8, 12-13 : 10, 48 : 16, 15).
사도 바오로는 믿는 이는 세례를 통하여 그리스도의 죽음에 일치하여 그분과 함께 묻혔다가 그분과 함께 부 활한다고 하였다. "그리스도 예수와 하나가 되는 세례를 받은 우리는 누구나 다 그분의 죽음과 하나가 되는 세례 를 받았다는 사실을 여러분은 모르십니까? 과연 우리는 그 죽음 안으로 (이끄는) 세례를 통하여 그분과 함께 묻 혔습니다. 그것은 그리스도께서 아버지의 영광으로 말미 암아 죽은 자들 가운데서 일으켜지신 것과 같이 우리 또 한 새로운 생명 안에서 거닐 수 있기 위함입니다" (로마 6, 3-4). 세례를 받은 사람들은 "그리스도를 (새 옷으로) 입었다"(갈라 3, 27). 성령을 통하여 이루어지는 이 세례 는 죄인을 깨끗하게 하고, 거룩하게 하며 의롭게 하는 목 욕이다(1고린 6, 11 : 12, 13). 그러나 이러한 세례는 신앙 을 전제로 하는 성사이다. 이 신앙은 세례를 위해서뿐만 아니라 세례로 시작한 신앙을 성숙시키고 완전하게 하기 위해서도 필요한 것이다. 우리는 믿음을 바탕으로 한 세 례를 통하여 모든 죄를 용서받고 새 사람이 되어 하느님 의 본성에 참여하며 하느님의 자녀가 되고, 그리스도의 지체가 되어 그리스도와 공동 상속자로서 성령의 성전이 된다. 이렇게 세례를 받은 사람들은 세상 안에서 보편 사 제직을 수행하며 구원의 도구로서 살아간다(《가톨릭 교회 교리서》 1262~1270항).
세례성사 전례는 이러한 세례의 특성들을 드러내고 실 현하는 여러 예식들로 이루어져 있다. II . 사도 교회의 전례적 · 사목적 관습과 이해
〔세례의 의미] 사전적인 의미에서 그리스어 '밥토' (bapto), , '밥티조' (baptizo)는 '물에 넣다' , '물 속에 잠그 다' 라는 뜻이지만, 이 단어는 침몰하는 배를 말하기도 하였고, 그리스에서는 간혹 '목욕하다' , '몸을 씻다' 라 는 뜻으로 사용되기도 하였다. 그렇지만 무엇보다도 이 단어는 '무너진다' 는 뜻을 암시적으로 지니고 있다.
신약성서에서 '밥토' 는 '(물에) 찍다, 적시다 (루가 16, 24 ; 요한 13, 26), '젖다' 라는 의미로만 쓰였고, '밥티 조' 는 때때로 유대인들의 정결례와 관련해서 쓰였지만 (마르 7, 4 ; 루가 11, 38) '세례를 준다' 는 뜻의 전문적인 의식(儀式) 용어로 사용되었다. 신약성서에서 '밥티조'라는 동사가 이처럼 의식을 가리키는 전문 용어로만 사 용되었음은 세례가 다른 예식이나 그 시대의 관습과는 구별되는 의미를 지니고 있음을 보여 주는 것이다. 사실 그리스 종교에도 정결 예식이 있었다. 그러나 오늘날의 학자들은 그리스에서 '밥티제인' (baptizein)이라는 동사 가 몇 차례 종교적인 맥락에서 사용되기는 하였지만 결 코 거룩한 예식을 가리키는 전문 용어로 사용된 적은 없 다고 주장하고 있다.
나아만의 일곱 번의 목욕(2열왕 5, 14)은 요르단 강에 서 몸을 씻는 것이 그 당시의 구약성서와 유대교에서 얼 마나 중요한 것이었는지를 보여 준다. 이것은 거의 성사 적인 행위로 여겨졌고, 교부들은 이를 주요 예표 가운데 하나로 생각하였다. 그러나 유대인의 정화 의식은 기원 전 2세기 말 또는 1세기 초에 쓰여진 유딧서 12장 7절 에서 보듯이 매우 후기에 가서야 나타난다. 또 유대교에 서 행해진 목욕은 몸의 더러운 때를 씻어 내기 위한 실질 적인 정화가 아니라 법적인 의식이었다. 학자들 중에는 그리스도교의 성사 예식은 이런 유대인의 의식들을 적절 히 받아들여 이루어진 것이라고 주장하는 이들도 있다. [요한의 세례] 세례자 요한이 요르단 강에서 베푼 세 례는 사람들의 주의를 끌었음에 틀림없다. 그것은 유대 인들의 정화 의식과 새로운 개종자들을 위한 세례와 비 슷했지만 그 예식들과는 근본적으로 달랐기 때문이다. 요한의 세례는 새로운 윤리적인 태도를 요구하였으며, 그가 베푼 세례는 주님의 오심을 준비하고자 회개하게 하는 것이었다. 그것은 곧 예언자들이 선포한 메시아 공 동체에 입적하는 예식이었다(이사 1, 15 이하 ; 에제 36, 25 ; 예레 3, 22 : 4, 14 ; 즈가 13, 1 ; 시편 51, 9). 요한의 세례는 마음의 회개(마르 1, 4 ; 루가 3, 3 : 마태 3, 11)를 위한 참회의 표현이었고, 죄의 용서를 위한 세례였다. 그 러나 요한 자신이 말하였듯이 그것은 또 다른 세례의 예 표였다. "나는 여러분에게 물로 세례를 베풀었지만, 그 분은 성령으로 세례를 베푸실 것입니다"(마르 1, 8). 이러 한 뜻에서 요한의 세례는 그리스도교의 세례와 완전히 다르게 나타난다. 구약성서의 유대교는 생명을 주는 잠 김에 관한 이해를 이미 가지고 있었다(요엘 3, 1 이하 ; 이 사 32, 15 : 44, 3 : 에제 47, 7 이하). 〔예수가 받은 세례] 예수가 요르단 강에서 받은 세례 는 복음사가들에게 충격을 주었다. 그래서 그들은 모두 이 사실을 전하고 있다(마태 3, 13-17 : 마르 1, 9-11 ; 루 가 3, 21-22 : 요한 1, 32-34). 그러나 이 세례를 해석하는 방식에서는 차이가 있었다. 교부들도 예수는 회개도, 죄 의 용서도 필요하지 않은 분이라는 사실을 주장하면서도 이 사실에 대하여 많은 글을 썼는데, 그들은 크게 강조하 지는 않았지만 그 세례를 예수가 메시아요 예언자요 임 금이며 종이라는 것을 공식적으로 선언하는 의례로 보았 다. 여기에서의 '종' 은 이사야 예언자가 말하는(53장) 다 양한 의미를 지닌 종을 가리킨다. 그 종은 또한 희생 제 물이며 사제이다. 예수의 세례 이야기 끝에 들려 오는 하 느님의 말씀은 이 세례에 깊은 의미를 더해 준다. 그것은 곧 '아들의 현현(現顯, epiphania)' 이다. 그분은 독생자이 며 또한 종이라는 선언이다. 이사야 42장 1절의 "여기에 나의 종이 있다. 그는 내가 믿어 주는 자, 마음에 들어 뽑아 세운 나의 종이다" 라는 구절이 이에 관한 분명한 암시이다. 그래서 예수의 세례에 관한 담화와 하느님 아 버지의 말씀은 구원을 선포하고 세상을 새롭게 하시려는 아버지의 뜻을 이루는 희생 제사를 봉헌하라는 파견으로 해석되었다. 그런 뜻에서 예수의 세례에 관한 담화는 세 례에 관한 것이라기보다는 오히려 견진에 관한 의미 있 는 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
세례자 요한이 그랬던 것처럼 예수도 세상의 구원을 위한 사명을 지니고 있었다. 예수가 요한에게 한 "이렇 게 해서 우리는 마땅히 모든 의로움을 이루어야 합니다" (마태 3, 15)라는 말씀은 예수에게 주어진 사명을 암시한 다. 예수의 사명은 구원의 선포와 파스카 신비를 통한 선 포의 실현이다. 요르단 강에서 일어난 일은 예언자요 임 금이요 메시아이며 종이요 제물이요 사제인 예수의 사명 을 공식적으로 드러내는 것이다. 그리고 여기에서 예수 는 자신의 모든 사명을 완수하도록 성령을 충만히 받는 다. 이런 관점에서 교부들은 요르단 강에서 받은 예수의 세례 안에서 견진성사를 보았다. 〔예수와 세례] 요한 복음서의 저자는 예수와 그의 제 자들이 세례를 주었다는 사실을 거듭 전해 주고 있다(요 한 3, 22-23 : 4, 1-3). 그러나 마르코와 마태오는 예수가 부활한 뒤 제자들에게 복음을 전하라는 사명을 맡겼다고 하였다. 사명을 받은 시기가 어떻든 복음서의 저자들은 사도들이 온 민족에게 복음을 전하고, 그들에게 아버지 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그들을 예수 의 제자가 되게 하는 사명을 받았다(마르 16, 15 ; 마태 28, 18-19)는 사실을 정확하게 기록하고 있다. 믿음으로 받 는 세례는 세례받은 이를 구원하고(마르 16 ,16), 예수의 제자요 사도가 되게 한다(마태 28, 19). 초대 교회는 사람 을 구원하고자 예수의 명령에 따라 세례를 베풀었다. [사도 행전과 세례] 사도 행전에서도 루가 복음서에서 처럼 예수가 부활한 뒤에 세례에 관하여 말하고 그것을 요한의 세례와 구분하였다고 하였다. "요한은 물로 세례 를 베풀었지만, 여러분은 며칠 후에 성령으로 세례를 받 게 될 것입니다" (사도 1, 5 : 루가 24, 49).
죄를 용서하시는 분은 분명히 성령이다(요한 20, 22). 사도들과 제자들은 죄를 용서받고자 요한의 세례를 받았 고, 예수가 말하였던 대로 오순절에 성령을 받았다(사도 2, 1-4). 초대 공동체는 물에 잠김으로써 죄를 용서받았 다. 그렇지만 사도 바오로의 활동 안에서 요한의 세례로 부터 성령을 주심으로 옮겨 가는 점진적인 발전의 흔적 을 발견할 수 있다. 에페소의 제자들(사도 19, 1-6)은 처 음에는 '오실 분' 께 대한 믿음을 준비시키는 회개의 세 례인 요한의 세례를 받았지만, 뒤에 사도 바오로에게서 예수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았다. 바오로 사도가 그들에 게 손을 얹자 성령이 그들에게 내렸다. 이처럼 물로 베푸 는 세례이지만 그리스도가 주는 구원에 참여하고 그리스 도 안에 '속하게 하는' 세례, 곧 "예수의 이름으로" 베푸 는 세례가 있다. 예고의 의미를 지닌 세례에서 그리스도 안에 속하게 하는 세례로 넘어가는 것이다. 그리스도는 오순절에 성령을 보냄으로써 당신 사업을 완성하였고, 교회를 이끌도록 파견된 오순절의 성령은 예수의 사명을 완수하신다.
사도 행전은 세례가 무엇인지를 이해하게 하는 세례 교육의 예를 전해 주고 있다. 에티오피아 여왕 간다케의 내시의 예(사도 8, 26-39)는 하나의 준비 과정을 보여 주 며, 고르넬리오의 이야기는 총체적인 차원의 세례 교육 을 전한다(사도 10, 37-43). 여러 차례에 걸친 바오로의 연설은 매우 충분한 교리 교육을 담고 있다(사도 16, 3132 ; 17, 22-31 : 19, 2-5). 그 밖에도 교리 교육에 관한 것으로 여길 수 있는 몇몇 기록들을 사도 행전에서 찾아 볼 수 있다(2, 14-19 : 3, 12-26). 세례 예식은 에티오피 아의 내시의 예에서 보듯이 매우 단순하였다. 여기에서 는 동작에 따르는 어떤 말씀도 찾아볼 수 없고, 완전히 물 속에 잠겼는지도 알 수가 없다. 그리고 다른 한편으로 는 안수도 사마리아 사람들의 예(사도 8, 15)에서 보듯이 세례 뒤에 꼭 이루어진 것도 아니었다. 고리넬리오의 집 에서 보면 세례 전에 안수는 행해지지 않았지만 성령은 "모든 사람에게 내렸다"(사도 10, 44). [사도 바오로와 세례] 성령은 세례 안에서도, 안수로 써도 주어진다. 사도 행전에서 자주 발견되는 전례적인 묘사는 바오로 사도에게서는 찾아볼 수 없다. 죽음으로 그리스도와 함께 묻혔고 그분과 함께 다시 살아났다고 말하는 로마서 6장 4절을 세례 전례에 대한 암시로 여기 는 것은 옳지 않다. 바오로 사도에게서 세례를 특징짓는 요소는 세 가지인데, 즉 예수 그리스도 안의 세례, 성령 안의 세례, 그리고 세례를 받는 이가 속하게 되는 그리스 도의 몸을 이루는 세례이다. 예수 그리스도 안의 세례란 영적인 의미만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죽음과 무덤에 묻힘과 그분의 부활에 실제로 참여한다는 의미의 세례 행위를 동반하는 양식이다. 로 마서 6장 4-10절은 성사 신학을 위한 구체적이고 중요 한 뜻을 지니고 있다. "그리스도와 같이" '(그리스도처럼)라 는 닮음(6, 5 : opuorow, likeness)의 신학 개념은 단순히 영적이고 윤리적으로 가까워지는 것을 뜻하지 않는다. 그것은 파스카 신비의 실현이다. 그러한 뜻에서 그것은 모든 전례의 기초이며, 이를 교황 레오 1세는 '성사' (sacramentum)라는 용어로 번역하였다. 성령 안의 세례는 사실 그리스도 안의 세례와 비슷하 다. 바오로 사도에게 있어서 "하느님의 영" (로마 8, 9-11. 14)과 "그리스도의 영"(로마 8, 9 ; 2고린 3, 18 ; 갈라 4, 6)은 같은 의미였는데, 히브리서나 교부들과는 달리 그 는 성령의 활동과 성령을 은사로 받는 것을 구분하지 않 았다. 세례 때에 성령을 받고, 세례를 통하여 그리스도 안에 산다는 것은 성령 안에 사는 것을 의미하였다(로마 8, 2). 이것이 바로 바오로 사도가 세례를 안수와 구분하 여 '스프라지스' (sphragis, 표시, 인호)라는 단어를 사용하 지 않은 이유이다. '스프라지스' 라는 단어는 이 표시로 수세자가 약속의 상속자가 되고 동시에 하느님의 백성인 그리스도 공동체의 일원이 되게 하는 세례 예식 전체를 가리킨다(2고린 1, 22 ; 에페 1, 13 : 4, 30). 성령의 개입 을 나타내는 이 세례의 표는 그리스도의 몸에 들었음을 나타내는 표시이기도 하다. "한 몸을 이룬다"는 것은 그 자체로 계약을 실현하는 것을 뜻한다(1고린 12, 13). 이 처럼 바오로 사도의 예형에 관한 설명은 교리 교육과 세 례성사의 신학을 위하여 매우 중요하다. 〔요한 복음서의 세례〕 요한 복음서의 저자는 물을 성 령 안에 잠기는 것과 같은 것으로 보았을 뿐만 아니라 물 의 세례는 성령의 세례와 강림을 암시하는 것이었다. 요 한 복음서에서 물과 성령은 서로 연결되어 있다(요한 7, 37-39 ; 4, 10. 14 : 5, 7 : 9, 7 : 19, 34-35). 이미 요한 복 음서의 저자는 예수가 받은 세례가 지닌 모든 뜻을 예수 가 그 세례로 사명을 받고 성령으로 가득 찼으며 또한 성 령을 주실 것이라는 사실 안에서 찾고자 하였다(요한 1, 32-34 : 3, 34). 요한 복음서에 따르면 그리스도인은 세 례자 요한이 베푼 세례를 받을 필요가 없고, 그 대신 교 회에 주어진 성령, 그리스도의 죽음과 영광에 오르심의 결과인 성령을 받아야 한다(요한 7, 39 : 16, 7)고 하였다. 성령 안에 잠김은 믿는 이들을 구원할 것이다. 구체적으 로 그리스도인의 세례는 예수의 늑방에서 흘러 나오는 물 안에 기초를 두고 있다(요한 19, 34). "나를 믿는 이는 (마시시오). 성경이 말한 대로 '생수의 강이 그의 속에서 흐를 것입니다. 예수께서는 당신을 믿는 이들이 받게 될 영을 두고 이렇게 말씀하셨다" (요한 7, 38-39).
예수가 니고데모와 만나 대화한 내용(요한 3, 1-21)은 요한 복음서에서 세례에 관하여 설명하는 중심적인 대목 이다. 3장 1-15절은 예수와 니고데모의 대화를 전하여 주고 있는데, 여기에서 기본적이고 필수적인 조건은 '사 람의 아들' 의 말씀과 그분이 지니신 새롭게 하는 권능을 믿는 것이다. 위로부터 난다는 것은 물과 성령으로 나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위로부터 나고자 하는 이는 물과 성령으로 나야 한다는 것이다. 하느님께로부터 나려면 믿음이 필요하고, 그 믿음은 예수의 탄생에 개입하셨던 성령의 활동으로 주어지는 것이다. 요한이 즐겨 쓰는 표 현에 따르면 세례는 '··로부터 나는 것' 을 뜻한다. 요한 의 첫째 편지에서는 "하느님에게서 난다"(1요한 2, 29 ; 3, 9-10 : 4, 7 : 5, 1. 4. 18)는 표현과 "성령에게서 난다" (3, 5. 6. 8), "물에서 난다" (3, 5), "육에서 난다" (3, 6)는 표현이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하느님의 자녀" , "하느님 에게서 난 존재", 하느님에게서 지음 받은 존재가 태어 난다(1요한 3, 1-2 ; 요한 1, 12 : 11, 52). 3장 16-21절은 예수에 대한 깨달음을 전해 준다. 이 깨달음은 사목적으 로 매우 중요하다. 세례는 하나의 은총이지만 믿음 없이 는 있을 수 없음을 깨닫게 한다. 세례는 충만한 믿음을 갖게 되었다는 표시이다. 그러므로 믿는다는 것은 세례 가 효력을 내게 하는 조건이다. 우리는 믿음으로 세례를 받고 예수 안으로 들어간다. 요한 복음서는 이러한 '쇄 신' 과 새로워짐의 주제를 발전시켰는데, 요한 복음서에 서 물과 성령으로 다시 나는 세례는 새로운 인간의 창조 요 새로운 공동체의 창조이다. [사도 교회의 세례에 관한 예표와 베드로의 편지] 예 표는 성사 특히 세례성사를 연구하는 데 있어서 매우 중 요하다. 예표는 그리스도가 제정한 성사가 어떻게 세기 를 지나면서 준비되었는지, 또 어떻게 옛 양식이 새로운 뜻을 지니게 되었는지를 깨닫게 한다. 세례성사 예식은 신약성서 안에서 인용되었고 훗날 교부들에 의해서 발전 된 예표를 물의 축복을 통해 매우 일찍부터 활용하였다. 베드로의 첫째 편지는 사도들이 활용한 매우 뜻 깊은 교리 교수법의 예를 밝혀 주고 있는데, 대표적인 '예표 들 로는 바오로가 언급한 홍해(1고린 10, 1-5), 베드로가 언급한 홍수(1베드 3, 19-21), 출애굽기 17장 6절의 호렙 의 바위(요한 7, 38), 이집트에서의 탈출 이야기 등이다. 자연스럽게 구약성서를 언급하고 있는 다른 예들도 있 다. 많은 학자들은 베드로의 첫째 편지를 세례에 관한 교 리 교육으로 보고 있는데, 이는 전례 안에서 행해진 것으 로 보인다(1베드 1, 3-4, 11). 그리고 이 편지의 나머지 부분은 이제 막 그리스도인 생활을 시작하면서 도움과 격려가 필요한 첫 입교자들을 위해 쓰여졌다(1베드 4, 12 -5, 14). 베드로는 구원을 주는 세례의 물 안에서 홍수 의 '원형' (原型, antitypus)을 보았다. 그러나 베드로가 홍 수에서 구원의 상징을 본 첫 사람은 아니고, 이미 이사야 예언자가 하느님 심판의 도래로 새로운 홍수를 이야기하 였다(이사 28, 17-19). 그것은 모든 것을 없애 버릴 것이 지만 구원될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이사 54, 9). 시편도 같은 주제를 다루고 있는데, 물 · 방주 · 구원된 여덟 사 람은 베드로가 든 예들이다. 물 속에 잠긴 그리스도인들 은 예수의 부활로 구원되고, 그리스도가 다시 오시는 날, '여덟 번째 날' 에 이르기까지 결정적인 구원을 향하여 걸어간다.
바오로 사도도 다른 자리에서 세례에 관한 교리 교육 을 하면서 예표를 활용하였다. 고린토인들에게 보낸 첫 째 편지에서 탈출의 예표를 다시 들면서(10, 1-5) 탈출의 유형을 이집트로부터의 탈출과 세상 끝 날의 탈출(10, 11)로 구분하였다. 이 두 탈출 사이에 구원의 때가 펼쳐 진다. 두 번째 탈출은 그리스도의 부활로 시작되었고, 바 다를 건너 하느님의 영광의 구름의 보호를 받아 걸어간 다. 이것은 죽음에서 생명으로, 바다에서 하느님의 구름 으로 넘어가면서 다시 태어나는 세례를 받고 옛 사람에 대해 죽는 것, 죄에 대해 죽는 것을 뜻한다. 그러므로 '원형' 은 구원 자체, 더 정확하게 말하면 구원 실재의 정점 사건인 그리스도이다. 그리스도가 구원 사건의 정점 이요 실재라면 구약의 모든 역사는 그 실재를 암시하고 준비하는 '예형' (type)이다.
이러한 논거는 요한 복음서에서도 펼쳐진다. 요한 복 음서에서 보면 그리스도는 구원의 실재, 아버지를 향한 세상의 넘어감, 파스카라는 점에서 원형이다. 흩어진 자 녀들이 하느님 자녀들의 일치 안에서 다시 하나가 되는 순간에 이 재일치를 준비한 모든 것의 실재와 실현을 그 리스도 안에서 손으로 만지게 된다. 그리스도는 그러한 재일치를 알린 모든 형상의 실현이다(요한 11, 52). 요한 복음서의 저자는 예수의 행동과 '기적' (표징)들 안에서 성사들의 예고와 예형을 보았다. 사순 시기의 전례는 아 주 일찍부터 예비신자들의 교육을 위하여 요한의 신학을 따라 복음 독서를 선택하고 있다. 사순 제3 주일 가해에 는 사마리아 여인에 관한 복음을 읽는데 , 여기에서 물은 은총을 주고 새롭게 하는 바로 그 물의 '예형' 이다(요한 4, 5-42). 또 제4 주일에는 세례받은 이의 조명의 '예형'인 태생 소경의 복음을 읽고, 제5 주일에는 그리스도와 그분께 붙어 있는 존재인 우리의 부활의 '예형' 으로서 라자로의 부활 기적을 선포한다(요한 11, 1-45). Ⅲ 3세기까지의 세례 기록 여기에서는 세례 전례와 신학을 위하여 중요한 요소들 을 전해 주는 증거들만을 소개하고자 한다. 〔문헌에서의 기록] 이 시기의 문헌들은 비록 고정적인 예식을 전해 주지는 않지만 주목할 만한 정확한 정보들 을 우리에게 제공하고 있다.
《디다케》 : 세례에 관해 언급하면서 전례에 관한 정보 를 제공하고 있는 이 문헌에서는 살아 있는 물(흐르는 물) 로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도록 규 정하고 있다. 그 뒤에 후기의 관습인 살아 있는 물이 없 을 때에는 다른 물을 사용할 수도 있다는 규정이 이어진 다. 또 찬물이 없을 때에는 더운물로 세례를 줄 수 있고, 물이 충분하지 않을 때에는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 으로" 하고 말하면서 세례 후보자의 이마에 세 번 물을 붓는다(7, 1-4). 이로써 물에 잠그는 세례(浸禮)뿐만 아 니라 이미 물을 붓는 주수식(注水式) 세례가 시작되었음 을 확인할 수 있다. 세례 양식과 관련하여 위에 언급한 말씀 안에서 마태오 복음 28장 19절이 전하는 성삼의 이름으로 베푸는 세례 양식을 보는 것은 옳지 못하다. 성 삼의 이름으로 베푸는 세례는 더 후기에 나온 양식이다. 문맥으로 볼 때 세례는 죄의 용서를 위한 것이고, 이 문 헌의 서두에서 제시하고 있는 두 길(생명의 길과 죽음의 길) 가운데 하나(생명의 길)를 선택하고자 하는 공동체에 들어감을 가리킨다. 그러나 이 밖의 다른 교의적인 요소 들은 찾아볼 수 없다. 《솔로몬의 송가》(Odae Solomonis) : 세례 예식과 관련 된 암시적인 이야기를 전하고 있는데, 예를 들어 물에 잠 김은 지옥에 내려가는 것 등이다. 그러나 그것은 해방을 뜻하기도 한다(22절). 저자는 인호(sphragis)라는 용어를 사용하였으나 이것이 세례를 가리키는 것인지, 십자 표 시를 가리키는 것인지 아니면 도유를 가리키는 것인지 확실하지 않다.
헤르마스의 《목자》 : 세례 예식에 관해 전해 주는 이 작품에서 저자는 교회를 물위에 세운 탑으로 소개하였는 데, 이것은 그리스도의 몸을 이루는 세례에 대한 분명한 암시이다. 옷과 표식을 받은 뒤에 탑으로 들어가는 사람 들(환시 3)과 화관 · 흰 옷 · 날인 등이 언급되었다(비유 8). 세례는 사람 안에 하느님께서 머무르시게 하고, 그 사람을 하느님께 온전히 충실한 새로운 삶을 살게 한다 (비유 9, 16, 5). 그러나 화관이 무엇을 뜻하는지를 이해 하기는 쉽지 않다. 세례에서 받은 영광을 가리키는 하나 의 표상 아니면 실제로 고유한 화관을 쓴 것인지도 모른 다. 흰 옷에 대해서도 실제로 흰 옷을 입었는지 아니면 헤르마스가 흰 옷을 성령 은사의 표징으로 보았는지 확 실하지 않다. 〔학자들의 증언] 주요 학자들을 통해 세례에 관한 정 확한 묘사들을 확인할 수 있다. 그 묘사들은 때때로 발전 한 신학에 관련된 것들인데, 테르툴리아노 안에서 이미 확정된 과정이 눈에 뜬다. 유스티노 : 성 유스티노 순교자는 분별을 유지하면서 외교인인 안토니우스 피우스 황제(138~161)를 상대로 《호교론 I》을 저술하였다. 그래서 성사를 상세히 묘사하 기에는 역부족이었지만 세례가 무엇인지, 또 배운 것을 믿고 이 가르침에 따라 살고 기도하기를 배우며 죄의 용 서를 청했음을 알려 주고 있다. 또한 공동체 전체가 입교 후보자와 함께 단식을 하였으며, 그 뒤 후보자들은 물이 있는 곳으로 인도되어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았는데 물로 씻김을 받았다고 하였다. 이 씻김 을 '조명' (ilumininaion)이라고 하였다(《호교론 I》, 61, 2. 3. 10-13 : 65, 1). 세례는 죄를 용서하고 조명하는 효과 를 가지고 있다. 유스티노는 세례 자체를 '포티스모스' (photism6s), 곧 조명이라고 정의하면서 그리스도를 믿고 세례를 받으면 빛을 믿는 이에게 '조명' 을 준다(《호교론 I》, 61, 12)고 하였고, 세례는 더 나아가 성찬의 빵을 나 누도록 공동체에 들어가게 한다(《호교론 I》, 65)고 하였 다. 《트리폰과의 대화》(Dialogo con Trifone)에서는 유대인 인 대화자에게 매우 친숙한 예형을 사용하여 세례받은 사람을 물에서 구원된 노아에 비유하고(19, 2 : 29, 1.2), 세례를 할례에 비유하였다(138, 2).
테르툴리아노 : 그는 호교론의 전형적인 공격성을 지 니고 있지만 《세례론》(De Baptismo)에서 전례에 관한 정 확한 정보를 제공하고 있는데, 특별히 관심을 끄는 것은 세례 예식의 해설을 찾아볼 수 있는 《세례론》의 첫 부분 이다. 여기에서 테르툴리아노는 예식을 설명하면서 교리 를 가르치는 교부들의 교리 교육 방법을 다음과 같이 알 려 주었다. 세례 예식은 죄를 끊어 버림과 삼위 일체에 대한 세 번의 물음과 함께 물에 잠그는 예식으로 진행하 였다. 그에 앞서서 테르툴리아노는 물의 상징성에 관하 여 언급하였는데, 이것은 로마의 히폴리토가 말하고 있 는(《사도 전승》, 21) 물의 축복을 생각하게 한다. 모든 질 문에 후보자는 "믿습니다"라 대답하고 그때마다 물에 잠겼고, 물에서 나온 세례받은 이에게는 기름이 발라졌 다. 《세례론》은 표식(signatio)에 대해서는 암시하지 않고 있다. 그러나 성령의 은사를 베푸는 안수를 하는데, 이 안수는 야곱의 축복과 연결되는 것이었다(《세례론) 8). 테 르툴리아노는 성령의 오심을 준비하고 깨끗하게 하는 세 례의 행위와 성령이 주는 은사를 구분하였으며, 성사적 으로는 구분되지만 모든 것은 같은 전례 안에서 거행되 었다(《세례론) 6 : 8).
히폴리토 : 《사도 전승》(Traditio apostolica)에서 로마의 히폴리토는 자신이 이해하고 있는 세례 예식에 대한 개 념을 이렇게 설명하였다(21). 어떤 양식으로 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닭이 울 때 물을 축복하였다. 어린이들이 가장 먼저 세례를 받았는데 이 또한 어떻게 진행되었는 지 알 수 없다. 할 수 있다면 어린이 자신이 삼위 일체에 대한 물음에 답을 하고, 그렇지 않으면 물음에 대답하는 것은 부모나 가족 가운데 한 사람의 몫이었다. 어린이 세 례에 이어 남자들이 세례를 받고 마지막에 여자들이 받 았는데, 이때 여자들은 머리에 아무것도 쓰지 않고 머리 를 푼 채로 나왔으며, 장신구도 일체 걸치지 않았다(21). 처음에 '감사의 기름' 이라고 하는 크리스마가 축복되고 '구마 기름' (지금의 예비자 성유에 해당)이 축복된 뒤 사제 는 끊어 버리는 예식을 거행하였다. 이것은 뒤에 고전적 인 양식이 되었다. "나는 너, 사탄과 너의 모든 허영과 행실을 끊어 버린다." 그리고 난 다음 후보자는 구마 기 름을 받았는데, 이때 주례자는 "당신에게서 모든 악령은 물러가라" 말하였다. 이어 그의 옷을 벗기고 세례를 주기 위해 물가에 있는 주교 또는 사제에게 데려갔으며, 후보자가 부제와 함께 물에 내려가면 세례를 베푸는 이 가 안수하면서 삼위 일체 신앙에 대해 묻고 후보자가 "믿습니다" 하고 대답할 때마다 후보자를 물에 잠갔다. 물에서 나올 때 사제에게서 감사의 기름으로 기름 부음 을 받고, 세례를 받은 사람은 옷을 입고 주교가 안수하려 고 기다리는 성당으로 인도되었다. 주교는 안수를 하고 이마에 십자표를 한 뒤(21), 주교는 뒤이어 거행되는 미 사에서 빵과 포도주, 그리고 젖과 꿀을 섞은 것(이루어진 약속의 상징)과 물(세례의 상징)에 감사의 기도를 드렸다. 그리고 영성체 때에 새 영세자와 견진자-이때에는 세 례성사와 견진성사를 함께 받았다-는 빵과 물, 꿀을 섞 은 젖과 포도주를 받았다. Ⅳ. 예식의 발전 〔세례수 축복] 《디다케》에서는 살아 있는 물로 세례를 주었다고 하였고, 테르툴리아노와 히폴리토는 이 물을 축복하였다고 하였다. 그러나 어떤 양식으로 축복하였는 지는 알 수 없다. 치프리아노는 이 축복을 매우 강조하였 으며, 테르툴리아노는 세례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이렇게 "모든 ················· 하느님께 간구하여 성화의 성사가 된다" (《세례론》 3)라고 하였고, 치프리아노도 "세례를 받은 사 람의 죄가 씻어질 수 있도록 먼저 사제가 물을 깨끗하게 하고 거룩하게 해야 한다"(《편지》 70)고 하였다. 아우구 스티노는 치프리아노와 마찬가지로 이 축복을 세례의 유 효 조건으로 생각하여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복되지 않으면 구원의 물이 아니다"라고 하였으며, 암브로시오 는 "사제가 들어서자마자 물의 피조물에 구마를 하고, 그 다음에 샘을 거룩하게 하고 영원한 삼위 일체께서 거 기에 현존하시도록 하느님을 부르며 기도한다" (《성사론》 1, 18)라고 썼다. 《젤라시오 성무 집전서》(Sacammetatin Gelasianum)와 《그레고리오 성무 집전서)(Sacamenenanum Gregorianum)에 하나의 축복 기도가 나타나는데, 이것은 후에 《그레고리 오 성무 집전서》에서 하나의 감사송이 되었다. 이 축복 기도는 구마로 시작하여 축복과 성령 청원으로 이어지 며, 8세기경에는 물 축복 기도에 몇 가지 예식이 첨가되 어 13세기 교황 예식서(Pontiicalis Curiae Romanae) 안에 서 고정되었다. 이에 따르면, 부활 초를 물에 세 번 잠그 는 것은 그리스도 또는 성령을 뜻하는 것이고, 세 번 숨 을 불어넣는 것도 성령의 숨을 뜻하는 것이라고 하였다. 그 다음에 신자들에게 물을 뿌렸는데, 이 물 축복 예식은 제2차 바티칸 공의회 때까지 보존되었으며, 공의회의 전 례 개혁은 물 축복 기도문과 예식을 단순화하였다. 사제 는 손으로 물을 만지며 물을 축복하였다. 물 축복 기도문 은 창조 때부터 준비된 물의 여러 유형을 이야기한다(《어 린이 세례 예식서》 54항 ; 《어른 입교 예식서》 215항). 물을 축복하기 전, 세례대 또는 세례를 받으러 제대 앞으로 행 렬해 가는 동안에 성인 호칭 기도를 노래한다. 현행 예식 서에서는 물 축복을 위해 두 가지 기도문 중 하나를 선택 하여 사용하도록 하였다. 두 번째 것은 신자들의 주의를 집중시키고자 축복의 기도를 세 부분으로 나누고 신자들 에게 화답하게 하였다(《어른 입교 예식서》 389항).
예전에 이 물의 축복은 세례성사를 거행하는 날로 고 정되었던 부활과 성령 강림 때에만 이루어졌지만 현재는 부활 시기와 세례성사를 거행하는 모든 때에 물을 축복 하여 세례를 주도록 하고 있다. 〔사탄을 끊어 버림] 이 예식은 서로 다른 양식으로 이 루어졌으며, 그 자리도 달랐다. 유스티노는 《호교론 I》 에서 이 예식을 언급하였고, 테르툴리아노의 《세례론》에 의하면 세례받는 바로 그 자리에서 후보자를 물에 잠글 때 이 예식이 거행된 것으로 보인다. 히폴리토의 《사도 전승》에서는 이 예식이 물의 축복 다음에 이루어졌는데, 이 예식 후 후보자는 구마 기름(예비자 성유)을 바르고 물 에 내려갔다. 암브로시오도 이 예식들을 거행하였다. 그 러나 사탄을 끊어 버리는 양식에는 여러 가지가 있었다. 테르툴리아노는 "물에 들어갈 때 우리는 우리의 입으로 마귀와 그의 허례 허식과 그의 졸개들을 끊어 버렸다고 고백한다" (《De Spectaculis〉 4, 1)고 하면서 '허례 허식' 은 우상 숭배이고, 그의 '졸개' 들은 사탄의 졸개들이라고 설명하였다. 성 암브로시오는 '허례 허식' 이 무엇인지를 설명하면서 밀라노에서 사용한 양식 문구를 전해 주었 다. "당신은 마귀와 그의 행실과 그의 세상과 쾌락을 끊 어 버립니까?(《성사론) 1, 5) 《젤라시오 성무 집전서》에 서는 다른 모든 로마 전례서들과 마찬가지로 다음과 같 은 질문의 양식을 전해 주고 있다. "당신은 사탄을 끊어 버립니까?···또한 그의 모든 행실을 끊어 버립니까? 또 한 그의 모든 허례 허식을 끊어 버립니까?"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전례 개혁에 따라 새로 나온 현행 《어른 입교 예식서》는 《젤라시오 성무 집전서》의 질문 양식을 두 번째 양식으로 선택하면서(217항) 다른 두 가지의 양식을 더 마련하였다. "여러분은 마귀와 그 모든 행실과 유혹을 끊어 버립니까?" (제1 양식) "여러분 은 하느님의 자녀로서 자유를 누리기 위하여 죄를 끊어 버립니까?···죄의 지배를 받지 않기 위하여 악의 유혹을 끊어 버립니까?" 여기에서 보면 두 번째 양식이 가장 구 체적이다.
동방 교회들에서는 이 세례 예식에 극적인 요소들을 첨가하였는데, 예루살렘의 치릴로와 여러 교리 교사들이 전하는 내용에 따르면 세례 후보자는 맨발로 거친 천 위 에 서서 참회복을 입고 서쪽을 향하여 사탄을 끊어 버리 고, 서쪽으로 세 번 숨을 내순 뒤 동쪽으로 돌아서서 하 늘을 향하여 손과 눈을 들고 그리스도께 속하여 있음을 고백하였다고 한다. 밀라노와 아프리카 그리고 에스파냐 에서도 거친 천 위에 서서 이 사탄을 끊어 버리는 예식을 거행하였다. [세례 전 도유) 이 예식의 자리는 여러 가지로 나타난 다. 히폴리토는 사탄을 끊어 버리는 예식 바로 뒤에 하였 으나(《사도 전승》, 21), 밀라노에서는 그에 앞서서 이루어 졌다. 이 도유에 관하여 성 암브로시오는 "당신은 그리 스도의 선수로 도유되었으니, 마치 경기하듯이 이 세상 에서 싸우게 될 것입니다"(《성사론) 1, 4)라고 그 뜻을 설 명하였다. 《젤라시오 성무 집전서》와 《그레고리오 성무 집전서》에서도 똑같은 관습을 찾아볼 수 있으며, 《젤로 네(Gellone) 성무 집전서》에서는 십자 표시로 기름을 발 라 주었다고 언급하였다(2306). 그러나 이 도유는 세 번 의 끊어 버리는 응답이 있은 뒤에 이루어졌다. 여기에서 집전자는 세 번의 도유를 하였는데, 그 첫 두 번의 도유 는 가슴에, 그리고 세 번째 도유는 등에 하였다.
동방 교회에서는 예루살렘의 치릴로의 것으로 알려진 <신비 교리 교육》에서 온몸에 행한 기름 바름에 대해 설 명하고 있다. 교황 예식서는 9세기 예식서(Ordines)의 관 습에 따라 기름을 바르면서 "나는 당신에게 구원의 기름 을 바릅니다" 라고 하였다고 전하는데, 이 도유는 끊어 버리는 예식 뒤에 이루어졌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예식서는 이 도유를 어른의 경 우에는 세례를 준비하는 중에 하거나 끊어 버리는 예식 전에 하도록 하였다(130항, 132항, 207항, 218항). 기름을 바르면서 집전자는 "나는 여러분에게 구원의 표시인 이 기름을 바릅니다. 구세주 그리스도께서 당신의 능력으로 여러분을 강하게 해주시기를 법니다" 라고 말한다. 〔세례와 신앙 고백] 테르툴리아노, 히폴리토 그리고 암브로시오의 전통에 따르면 세례는 보통 신앙 고백과 함께 물에 잠그는 예식(浸水洗禮)으로 이루어졌다. 그러 나 침수라고 해서 언제나 몸 전체를 물에 잠근 것 같지는 않다. 현재까지 전해 오는 몇몇 세례소(baptitecium)의 구 조를 보거나 옛 모자이크들을 보면 무릎 높이까지만 물 에 내려갔음을 알 수 있다. 세례대의 구조를 볼 때 물에 완전히 잠길 수는 없지만 온몸을 물에 잠그는 예식도 행 해졌다. 이러한 침수 세례는 오랫동안 지속되었는데, 성 토마스 아퀴나스는 그 시대에도 이 침수 세례가 행해졌 음을 증언하면서 이를 찬양하였다(《신학 대전》 Ⅲ, q.66, a.7). 이 침수 세례가 서방 교회에서 사라진 것은 14~ 15세기에 이르러서지만, 그리스 사람들에게서는 지금도 이러한 예식을 찾아볼 수 있다. 옛 로마 예식서(Rituale Romanum)에서도 지역의 전통을 존중하면서 이러한 침 수 세례를 허용하였다. 현행 《어른 입교 예식서》에서는 침수 세례를 주수(注水) 세례와 같이 정상적인 세례 양 식으로 보고 있고(220항), 더 나아가 침수 세례가 세례의 적극적인 의미를 드러내는 데에 더 효과적일 수 있다고 암시하고 있다. 침수 세례는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에 동참하며 물과 성령으로 다시 나는 상징성을 더 잘 드러 내 보여 주는 반면에 주수 세례는 죄의 정화를 드러내는 데에 초점을 맞추고 있기 때문이다. "물로 씻는 예식은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에 참여하는 것을 뜻하며, 그로 써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죄에 대해서 죽고 영원한 생명 으로 부활하는 것이므로 세례 예식에서 이런 내용이 충 분히 드러날 수 있도록 하여, 물로 씻는 예식이 단순히 정결례가 아니고 그리스도와 일치를 드러내는 성사라는 것이 잘 이해되도록 지역적 전통과 환경에 따라 각 경우 에 맞추어 물에 잠그는 예식이나 물을 붓는 예식 중 어느 한 가지를 선택해야 한다" ( '일러두기' 32항). 오랫동안 세례는 세 가지 질문에 이어 베풀어졌다. 세 례를 받는 이가 어린이일 때는 히폴리토(《사도 전승》, 21) 가 전해 준 관습에 따라 부모나 대부모가 질문에 대답을 하였는데, 이러한 세 가지 질문은 "나는 당신에게 세례 를 줍니다"라는 양식으로 이어졌다. 그러나 《젤라시오 성무 집전서》는 이 양식을 전하지 않고 있으며, 파스카 토요일 예식에 질문을 담고 있다. 그러나 8세기의 《젤라 시오 성무 집전서》는 《젤로네 성무 집전서》와 마찬가지 로 "나는 당신에게 세례를 줍니다" 라는 양식을 사용하고 있고, 《그레고리오 보충 성무 집전서》(Supplementum Gregoriani)도 이 관습을 따르고 있다.
신앙 고백은 물로 씻는 예식 전에 이루어졌으며, 대부 모들이 질문에 대한 답을 하였다. 현행 예식은 이 양식을 어른들의 세례에 보존하여, 어른들은 세례를 받기 전에 자신들의 신앙을 고백하도록 하고 있다(《어른 입교 예식 서》 219~220항). 어린이 세례 때는 부모가 자녀들을 위 하여 신앙 고백을 한다(《어린이 세례 예식서》 58~60항). 〔세례 후 기름 바름] 테르툴리아노는 기름 바름에 대 해서 "영혼이 깨끗해지도록 육신을 씻고, 영혼이 축성되 도록 육신에 기름을 바른다..."《육신 부활론》 8)라고 하였 고, 히폴리토의 《사도 전승》에서는 이 도유를 세례를 마 감하는 예식으로 묘사하였다. "그 다음에 물에서 올라왔 을 때 사제는 그에게 거룩하게 된 기름을 바르며 말한다. 나는 당신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거룩한 기름을 바릅니다" (21). 성 암브로시오도 이 기름 바름과 조금은 달라졌지만 앞으로 사용하게 될 기도문 양식에 관하여 언급하였는데, 이 기도문은 내용이 좀 늘어나 제2차 바 티칸 공의회의 개혁에 이르기까지 사용되었다. 암브로시 오의 도유 기도문은 다음과 같았다. "전능하신 아버지 하느님께서는 당신을 물과 성령으로 다시 나게 하시고 당신의 죄를 없애 주시며 영원한 생명으로 몸소 당신에 게 기름을 바르십니다"(《성사론) 2, 24). 또 《젤라시오 성 무 집전서》에서는 "하느님께서는···물과 성령으로 모든 죄인들의 죄를 용서하시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 름으로 몸소 당신에게 구원의 기름을 바르십니다"(450) 라고 하였는데, 이 기도문 양식은 후대에 그대로 전해져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구원의 기름' (chrisma salutis)이 라는 표현까지 그대로 인용하였고, 훗날 "주님의 백성이 된 이들이 사제이시요 예언자이시며 임금이신 그리스도 의 지체로서 살다가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소서" 라는 표 현을 추가하였다(《어른 입교 예식서》 224항). 여기에서 분 명히 드러나듯이 이 도유는 이제 막 재생의 세례에서 이 루어진 일들을 밝혀 주는 예식이다. 그러나 견진성사에 서는 이 도유가 안수로 주어진 성령의 은사를 밝혀 주는 의미를 지닌다. 〔흰 옷을 입힘과 촛불을 켜줌] 이 예식의 기원은 사도 바오로의 말씀에 있을 것이다. "그리스도와 하나가 되는 세례를 받은 여러분은 누구나 그리스도를 (새 옷으로) 입었습니다"(갈라 3, 27). 흰 옷을 입는 것은 부활을 상징 적으로 드러내기 위한 것인데(마태 17, 2 ; 묵시 4, 4 : 7, 9. 13), 이 예식에 관하여 분명한 증언을 전해 준 첫 번째 사람이 4세기 중엽 몹수에스티아의 테오도로이다(<강론> 3, 26). 성 암브로시오는 《성사론》에서 이 예식을 들어 윤리적인 관점에서 설명하면서 흰 옷은 죄를 벗어 버리 고 깨끗하게 된 이의 표시라고 하였다(《성사론) 34).
《봅비오 미사 경본》(Missale Bobbio)에는 이 흰 옷을 입 히는 예식이 수록되어 있다(250항). 《젤라시오 성무 집 전서》에는 이 예식이 언급되어 있지는 않지만 《12세기 교황 예식서》가 전해 준 예식문을 조금 변형시킨 것이 최근까지 전해졌고, 현행 예식서는 이 예식문에 도입부 의 표현인 "여러분은 이제 새로이 창조되어 그리스도를 옷 입게 되었으니" 를 추가하였다. 현행 예식서 예식문의 뒷 부분은 옛 예식서에서 그대로 따온 것이다. 새로 세례 를 받은 이들은 이 흰 옷을 부활 팔부 축일(지금의 부활 제 2 주일)까지 입었으며, 이날에 흰 옷을 벗고[卸白] 신자 들 사이에 자리를 잡았다. 그래서 부활 다음 주일은 '사 백 주일' 로도 불린다.
촛불을 켜주는 예식에 대해서는 《12세기 교황 예식 서》 안에서만 분명한 증거를 찾아볼 수 있는데, 그 예식 문은 현재 우리가 알고 있는 것보다 더 단순하다. 이 예식문은 슬기로운 동정녀가 등불을 준비한 복음서의 이야 기를 생각하게 한다. "나무랄 데 없는 등불을 받으십시오. 주님께서 혼인 잔치에 오실 때 천상의 방에서 그분께 나아갈 수 있도록 당신의 세례를 지키십시오"(32 28). V . 《어른 입교 예식서》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전례 개혁에 따라 1972년에 간행된 현행 《어른 입교 예식서》(Ordo Initiationis Christianae Adultorum)의 전체 구조를 간략하게 살펴보면 다음 과 같다. '일러두기' 를 보면 교회는 세례 · 견진 · 성체의 세 입 문 성사들을 세 단계로 나누어져 있는 하나의 성사로 생 각한다. 이 가운데 성체성사는 입문과 그리스도의 지체 에 완전히 속하게 하는 절정의 성사이다. 이 '일러두기' 안에서는 모든 성사를 다른 성사들과 완전히 분리하여 개별화하는 신학을 경계하려는 뜻이 분명히 확인된다. 여기에서는 견진성사와 성체성사에 대해 말하지 않고는 세례에 대하여 이야기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고 있고, 세례와 성체에 대하여 말하지 않고 견진을 말하는 것도 불가능하다는 것도 알고 있다. 마찬가지로 성체성 사도 세례와 견진과 연결시키지 않고서는 완전히 이해될 수 없다. [일러두기] 모두 67개 항으로 되어 있으며, 세 가지 입문 성사의 일체성에 대한 매우 중요한 지침들이 언급 되어 있다. 그리고 단계적인 어른 입교 예식을 설명하고 있는데, 먼저 첫 복음화의 시기로서 '전(前) 예비 기간 이 있고, 그 다음에 교리 교육을 위한 '예비 기간' 과 정 화와 조명을 위한 시기 를 거쳐 입문 성사를 받는다. 그 리고 이어지는 마지막 시기가 '신비 교육 기간' 이다. 신 비 교육을 위한 가장 적합한 시기는 부활 시기 주일들이 다(4~40항). 이러한 단계적인 입교 절차는 새로운 것이 아니고, 이미 히폴리토의 《사도 전승》과 고대 전례서들 안에서 찾아볼 수 있는 많은 요소들을 되살린 것이다. 또 한 입문 성사의 집전자들과 그들의 직무에 대해서도 이 야기하고 있는데, 처음으로 예비 기간 동안 예비 신자들 을 위하여 기도하고 모범을 보이며 사랑으로 보살펴 주 어야 할 그리스도 공동체와 신자들의 본분에 대해서 언 급하고 있다. 온 공동체는 말과 행동으로 그리스도를 전 해야 하며, 이 공동체는 예비 기간 동안에 행해지는 여러 단계적 예식들에도 참여하여야 한다(41항).
후보자는 그를 잘 알고 그를 도와 줄 준비가 되어 있는 후견인의 인도를 받아 예비 신자로 등록하고(42항), 대 부모는 예비 신자 자신이 선택하고 지역 공동체가 대표 자로 정하고 사제가 인정한 사람으로서 예비 신자에게 복음의 실천을 자신의 삶과 또 사회 안에서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보여 주고, 의심과 고통을 겪을 때 예비 신자를 도와 주어야 한다. 이 대부모는 선발일부터 그 직무를 공 적으로 수행하며 회중 앞에서 예비 신자의 증인이 된다 (43항). 교회 공동체와 후견인의 직무에 대해 이야기하 고 있는 41~43항은 히폴리토의 《사도 전승》에서 언급 한 것들이다.
44~48항은 주교와 사제, 부제 그리고 교리 교사의 직무에 대한 내용이다. 주교는 후보자를 예비 신자로 받 아들이고 입교를 허락하는 책임을 진다. 또 할 수만 있다 면 사순 시기 전례의 주례가 되어 선발 예식을 집전하고 부활 성야에 입문 성사를 집전한다(44항). 사제는 예비 신자들을 세심하게 돌보며 입교 절차 전체에 걸쳐 완전 하고 적합한 예식이 이루어지도록 할 임무를 지닌다(45 항). 부제들은 장소와 상황에 따라 구체적인 도움을 주는 중요한 임무를 수행할 것이다(47항). 교리 교사는 예비 신자들에게 교리를 가르칠 뿐만 아니라 입교를 준비하 는 모든 예식 때에 능동적으로 참여하며 주교에게서 위 임을 받았을 때에는 기도와 안수를 할 수 있다(48항). 이 것도 히폴리토의 《사도 전승》에서 찾아볼 수 있는 내용 이다. 교리 교사는 할 수 있는 대로 입교를 준비하는 여 러 단계적인 전례 거행들에 능동적으로 참여해야 한다.
49~63항에서는 입교의 시기와 장소에 대하여 다루 고 있는데, 어른 입교 예식은 보통 사순 시기 동안에 이 루어진다. 첫 번째 주일에 등록식(선발 예식)을 거행하나 필요하다면 며칠 앞당길 수도 있고 첫 주간 평일에 거행 할 수도 있다. 수련식은 사순 제3~5 주일에 거행하며, 필요하다면 주교는 수련식의 일부를 관면할 수도 있다. 여러 수여식도 사순 시기 동안에 거행한다. 파스카 토요 일에는 "하던 일을 중단하고 기도와 정신 수련으로 하루 를 지내며 단식재도 지키도록 권고하는 것이 좋다" (26 항). 그러므로 이날에 '신경 수락식' , '에페타(열려라) 예 식' 을 거행하고, 아직 새 이름(세례명)을 지어 주지 않았 다면 이날 새 이름을 정해 준다. 예비 신자 성유의 도유 식도 거행할 수 있는데, 이 도유식은 개정된 것이다.
세 가지 입문 성사는 일반적으로 하나씩 거행한다. 주 교가 없을 때에는 주교의 위임을 받아 사제가 견진을 준 다. '일러두기' 에는 사순 시기 동안에 입교 준비 예식들 을 거행할 수 없는 경우에 대해서도 언급되어 있다. 또 전례 거행 장소는 환경과 조건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여기에서는 세례소에 대해서 언급하지 않고 있는데, 사실 세례소는 늘 가능한 것은 아니다. 많은 신자들이 참여 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는 이동이 가능한 세례대를 쓰 는 것이 더 좋을 수도 있다. 그렇지만 새로운 성당을 건 축할 때나 이미 건축된 성당이라 할지라도 제대와 독서 대와 함께 성당 공간의 중요한 요소인 세례대의 설치와 그 위치에 대하여 충분히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마지막으로는 주교의 권한에 관하여 관심을 기울이고 있는데(66항), 주교는 자기 교구 안에서 예비 신자들을 잘 교육할 수 있는 지침을 마련할 수 있고, 주교만이 사 순 시기가 아닌 때에 수련식을 거행하게 하거나 그 수련 식의 하나나 둘을 관면할 수 있다. 주교는 또한 예식서 안에 마련된 간략한 예식을 사용하여 세례식을 거행하게 할 수 있으며, 예식서에서 지시하는 대로 예비 기간 동안 에 교리 교사들에게 소구마식과 축복식을 거행하게 할 수도 있다. 한국과 같이 예비 신자들이 많은 곳에서는 불 가능한 일이기는 하지만 적어도 주교좌 성당에서만이라 도 선발 예식은 가능하다면 주교가 거행하는 것이 바람 직하다. 67항에서는 이 예식서를 사용하는 집전자들에 게 맡겨진 여러 가능성들에 대해서도 언급하고 있다. 여 러 가지 선택이 가능한 양식들과 권고들 그리고 기도 지 향들이 있음을 강조하고 있는데, 이것들은 각 예식의 정 신을 더 잘 드러낼 수 있도록 한 것이다. [단계적인 입교 예식] 이 입교 예식은 모두 세 단계로 이루어진다. 제1 단계 예식은 그리스도교 신자 공동체에 들기를 바라는 이들을 예비 신자로 받아들이는 예식으로 되어 있다. 교회 공동체와 친구들은 적극적으로 이 예식 에 참여하여야 한다. 여기에 채택된 어떤 예식과 기도는 《젤라시오 성무 집전서》의 것들이다. 제2 단계 예식은 선발 예식과 등록식 그리고 정화와 조명의 시기로, 여러 차례의 수련식과 수여식, 준비적인 예식들로 이루어진 다. 제3 단계는 입교 예식 자체를 거행하는 것이다. 그리 고 현행 《어른 입교 예식서》에는 상황에 따라 한 번에 전 체 세례 예식을 다 거행할 수 있도록 '간략한 어른 입교 식' 도 준비해 놓았다. (V 성세 ; 성세성사 ; → 대세 ; 수세 ; 유아 세례 ; 혈세 ; 화세) ※ 참고문헌 경신 성사성, 《어른 입교 예식서》(Ordo Initiationis Christianae Adultorum), 19721 M. Andrieu ed., Le Pontifical Romain au Moyen-Age, tome 1~3, Citttà del Vaticano, 1938~1940/ 一, Les Ordines Romani du Haut Moyen Age, 2~5, Louvain, 1961~1985/ 《열두 사도들의 가르침 - 디다케》, 교부 문헌 총서 7, 분도출판사, 1993/ 히폴리투스, 《사도 전승》, 교부 문헌 총서 6, 분도출판사, 1992/ Tertullianus, De Baptismo, CCL I./ Ambrosius, De Sacramentis, SC 25 bis/ A. Nocent, Battesimo, in D. Sartore, A.M. Triacca ed., Nuovo Dizionario di Liturgia, Roma, 1984, pp. 140~157/ A. Nocent(a cura di), Tre Sacramenti dell' Iniziazione Crisiana, in I Sacramenti-teologia e storia della celebrazione, Animmesis 3-1, Genova, 1986, pp. 11~86. [金宗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