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례소
洗禮所
〔라〕baptisterium · 〔영〕baptiste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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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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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세기경 두라-에우로포스의 세례소(왼쪽)와 성 요한 라테란 대성전의 세례소 모습.
세례성사를 거행하기 위해 성당과 분리해 지은 건물이 나 성당 건물의 일부. 세례당(洗禮堂)이라고도 하였다. 세례성사는 초기 그리스도교 전례에서 가장 중요하고 장 엄한 예식이었기에 이를 위해 점차 특별한 장소로서 성 당에서 분리된 건물이 건축되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유 아 세례가 등장하고 발전됨에 따라 성인들을 위한 장엄 한 입문 성사 예식은 간소화되었고, 세례를 위한 특별한 장소인 세례소는 성당 내부에 세례대(fons baptismalis)를 설치하는 것으로 대치되었다. 〔기원과 역사〕 유래와 초기 세례소 : 초기의 신자들은 강이나 샘 또는 바다에서 침수하는 예식을 통하여 세례 를 받았다(테르툴리아노, 《세례론》 4 : 유스티노, 《호교론》 1). 이는 요르단 강에서 세례자 요한으로부터 세례를 받은 예수의 세례 예식을 따른 것이었다. 그러나 개인의 집이 나 목욕탕을 이용하거나 세례 전용의 인공 수조나 샘을 만들어 거행하기도 하였고, 마케도니아의 필립비와 에게 해협의 섬들에서처럼 특정 장소에 커다란 대야 같은 것 을 갖다 놓고 세례소로 사용하기도 하였다.
3세기경 유프라테스 강 서안에 있던 두라-에우로포스 (Dura-Europos)의 세례소와 엠마오 초기 대성전의 앱스 (apse) 바로 옆에 설치된 세례소 등이 4세기 이전의 세례 소로 알려져 있다. 특히 두라-에우로포스의 세례소는 전 례와 세례를 위한 상징과 의미를 살려 건물이 형성되었 다는 좋은 증거이다. 이 세례소는 미사 장소와 구별하기 위하여 네 기둥 위에 닫집을 만들고 그 안에 수조(1.61× 0.95×0.65m)를 놓은 형태로, 수조 벽면에는 신구약 성 서의 이야기들로 프레스코 장식이 되어 있다. 세례소 바 로 옆에는 방이 하나 있는데, 이 방은 성유 도유를 위한 공간으로 사용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외에도 로마의 카타콤바에서 세례 예식이 거행되었다는 사실에 근거하 여 이곳에 세례소가 있었다는 주장도 있으나, 대부분 후 기에 제작된 것들이다. 대표적인 것이 폰시아노(Pontianus) 카타콤바의 세례소인데, 이것 역시 6세기 이후의 것 이다.
로마에서 세례소가 등장한 것은 4세기 이후로, 대표적 인 것이 성녀 푸텐시아나(Pudentiana) 성당과 성녀 사비 나(Sabina) 성당이다. 이 성당들은 개인 온천장으로 이용 된 샘터 위에 설립되었는데, 이 온천에서 예비 신자들이 세례를 받았을 것으로 여겨진다. 세례소가 보편화되기 시작한 것은 콘스탄틴 대제(306~337)의 밀라노 관용령 이후이다. 이때부터 성당과 분리된 세례소 건물이 등장 하였는데, 이는 당시의 예비 신자들이 세례를 받기 전까 지 성찬 전례에 참석하지 못하였기 때문이다. 당시 세례 소는 대성전의 한 부분이고 공동체의 예배 공간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었으며, 세례소가 있다는 것은 그 성 당이 주교좌임을 알려 주는 표징이 되기도 하였다.
형태와 위치 : 콘스탄틴 대제 이후 등장한 세례소 중 에서 가장 유명한 것이 성 요한 라테란 대성전의 세례소 이다. 324년경에 콘스탄틴 대제가 누이와 딸의 세례를 위해 두 개의 샘을 세례 장소로 이용하도록 하였고, 이곳 에서 콘스탄틴 대제 자신이 죽기 직전에 세례를 받았다 는 전설이 있다. 그 후 교황 식스토 3세(432~440)가 이곳 에 팔각형의 세례소 건물을 재건축하였는데, 교황은 8면 으로 둘러싼 세례소 벽에 8개의 기둥을 세우고 그 가운 데에 작은 원형의 수조를 배치한 뒤 '재생의 물로써 얻 은 은총' 을 찬양하는 글을 새겨 넣었다. 라테란 세례소 와 비슷한 초기 세례소들이 4~9세기에 건축되었으며, 웅장한 이 건물들의 형태는 매우 다양하였다. 서방 교회 들은 일반적으로 원형이나 다각형을, 동방 교회들은 정 사각형이나 직사각형을 선호하였다.
세례소는 일반적으로 성당의 동쪽에 배치되었다. 그리 고 그 위치는 지방에 따라 남쪽이나 북쪽에 있든가 제대 후진(abside) 근처나 측면의 한 공간에 배치되기도 하였 고, 안마당(atium)이나 성당 입구의 현관(narthex)에 있 기도 하였다. 서방 교회에서는 세례소를 성당과 분리해 서 독립적인 건물로 세우는 것이 일반적이었으나, 시리 아 · 소아시아 에게 해의 여러 섬들과 같은 동방 교회에 서는 성당에 연결하여 건축하였다. 후자의 경우에는 주 로 제대 측면의 익랑(翼廊, transept)에 세례소를 배치하 였는데, 예외적으로 제단에 연결해 배치하거나 카스틸리 오네(Castiglione)의 성당들처럼 제대 밑 지하에 만들기도 하고 크레타 섬의 고르티나(Goryna) 성당처럼 예배 공간 내에 배치하는 경우도 있었다. 제대 측면의 익랑에 세례 소를 배치한 성당들이 많이 등장한 것은 4세기 중엽 오 스티아(Ostia)에서였다.
장식과 부속 방 : 화려한 장식을 곁들인 세례소들도 등장하였는데, <연대 교황표>(Liber Pontificalis)에는 원형 의 수조를 갖춘 4세기 중엽의 세례소에 대하여 기술하고 있다. 이에 따르면, 수조 속으로 들어가는 계단 입구에 반암(斑岩)이 놓여 있고 수조 가장자리에 세워진 한 마 리의 양과 금으로 만든 일곱 마리의 수 사슴 상(像)들의 입에서 물이 흘러 나와 수조 속으로 들어가도록 되어 있 었으며, 주변에는 살아 있는 듯한 그리스도와 세례자 요 한의 상이 서 있었다고 한다. 5세기경 라벤나에는 아리 우스주의의 전례를 거행하는 팔각형 세례소가 세워졌는 데, 무덤을 연상시키는 듯한 둥근 천장은 화려한 모자이 크로 장식되었다.
세례소는 화려한 장식을 곁들였을 뿐만 아니라, 여러 가지 전례적인 용도에 따라 부수적인 방들도 있었다. 지 방마다 달랐지만 물로 씻는 세례를 위한 수조가 있는 방 과 주교가 성유 도유식을 거행하는 방 즉 견진실(consignatorium, crismarion) 등 두 개의 공간을 갖춘 것이 일반적 이었다. 후자의 방에는 성유 도유식을 거행하는 주교의 자리가 놓이는 후진이 있었던 것으로 보아 세례소 안에 서 세례성사와 견진성사가 함께 거행되었음을 알 수 있 다. 이외에 세례자들이 세례 예식을 받기 전에 준비를 하는 방으로서 교육을 받는 방과 특히 여성 세례자들을 위 한 탈의실 등이 있었다. 예비 신자들은 세례 예식이 거행 되는 순서에 따라 다음과 같이 각 공간으로 움직였다. 즉 입구에서 교리실을 거치면서 교육을 받고 세례를 받기 위한 영적인 준비를 갖춘 다음, 세례소와 대성전 사이에 위치해 있는 문을 통과하여 벽면을 따라 길게 마련되어 있는 의자들이 있는 방으로 가서 예식의 진행을 기다렸 다. 그리고 자기 차례가 되면 탈의실에 가서 옷을 벗고 세례대가 있는 곳으로 인도되어 구마식을 하고, 수조에 세 번 잠기는 예식을 치른다. 세례를 받은 이는 한쪽 벽 면의 둥근 공간에 놓인 의자에 앉아 있는 주교에게 가서 도유를 받은 다음 성찬 전례에 참여하기 위해 대성전으 로 들어간다. 이러한 순서로 예식이 진행되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전례적으로나 건축학적으로 완전한 형태의 초 기 세례소의 대표적인 예가 살로나(Salona) 성당의 세례소이다.
쇠퇴 및 간소화 : 유아 세례가 급증함에 따라 커다란 수조를 갖춘 세례소는 더 이상 필요 없게 되었고, 점차 사라지는 추세를 보였다. 그러나 10세기까지 이탈리아 에서는 분리된 세례소 건물들이 계속 설립되었다. 12~13세기에 서방 교회에서는 성당에서 분리된 웅장한 장식의 세례소들이 건축되어서 세례자 요한에게 봉헌되 었다. 그렇지만 오늘날의 세례소는 매우 간소화되어 세 례대가 있는 단촐한 경당이나 방이 성당 내에 배치되거 나 세례대로 대치되는 것이 일반적인 현상이다.
〔상징과 의미〕 사도 바오로는 그리스도인들의 세례가 그리스도의 죽음에 동참하는 것이라고 했다(로마 6, 4 ; 골로 2, 12). 성 암브로시오(339?~397)는 이러한 바오로 신학을 근거로, 세례는 죽음과 같은 것이며 세례 예식은 임종의 형식을 띤다고 하였다(《성사론》 2, 6, 23 ; 3, 1, 1). 이러한 성서적이고 신학적인 근거를 따르는 세례 예 식의 의미가 초기 세례소의 형태에 그대로 반영되었다. 예비 신자들이 세례로 인하여 이교인에서 그리스도인으 로 변모됨은 곧 그리스도와 함께 무덤 속으로 내려가는 것이며 죄 없는 상태인 부활로 나아가는 것이었다. 따라 서 사각형의 건물에 둥근 천장으로 덮여 있는 초기 세례 소의 모양은 그리스도가 죽어 묻힌 후 다시 부활한 그리 스도의 무덤을 상징하는 것이었고, 대다수 이교도 문화 권에 나타난 무덤의 형태를 딴 것이었다.
다각형의 세례소는 이러한 무덤의 의미 외에도 숫자의 상징적인 의미와도 결합되었는데, 예컨대 팔각형의 801 라는 숫자는 그리스도의 부활을 상징하는 여덟 번째 날 인 일주일의 첫날 일요일을 의미하였다(암브로시오, 《시편 주석》 XLVI, 1 ; 《바르나바 편지》 15, 9). 따라서 팔각형의 세례소는 세례 예식을 통하여 그리스도와 함께 부활함을 상징한다. 또 육각형 세례소의 6이라는 숫자는 여섯 번 째 날인 금요일 즉 그리스도가 십자가형에 처해진 날을 의미하며, 십자가형의 세례소는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상 징한 것이고, 삼엽형(三葉形)과 사엽형(四葉形)의 둥근 천장은 순교자들의 묘지와 왕의 묘지를 본딴 것이다. 여 기서 세례소가 순교와도 상징적인 관련성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세례소는 단지 그 위치나 형태에만 의미가 들어 있는 것이 아니라 장식이나 문양에도 상징과 의미가 숨어 있 다. 초기의 세례소는 단순히 텅 빈 공간이었을 뿐이나, 점차 프레스코와 모자이크 장식으로 화려하게 장식된 세 례대를 갖추게 되었다. 이러한 장식들은 건축학적으로 세련되었을 뿐만 아니라 상징적인 의미를 내포하였다. 초기 세례소를 장식한 그림의 주제는 주로 별이 가득한 천공 · 착한 목자 · 무덤가의 여인들 · 물위를 거니는 예 수 · 우물가의 사마리아 여인 등 다섯 가지였다. 이러한 그림들 중에서 예수의 기적이나 여인들에 관한 그림들은 예비 신자를 부활로 인도할 수 있는 신적인 권능이나 세 례를 통한 부활에 대한 기대의 표현이었다. 별이 가득한 천공이 그려진 천장은 천국을 나타내는 것으로, 정화된 영혼들이 천상의 고향으로 가리라는 관념과 기대를 표현 한 것이다. 또 착한 목자의 그림은 예비 신자들이 세례로 구원을 받아 착한 목자인 그리스도의 양 떼 중 하나가 된 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이 밖에도 사슴이 중요한 상징을 지닌 그림으로 등장하였는데, 사슴의 그림은 시편 42편 1절의 "암사슴이 시냇물을 찾듯이, 하느님, 이 몸은 애 타게 당신을 찾습니다"라는 구절에 대한 당시의 성서 주 석에 근거한 것이다. 사슴이 신선한 물을 찾아 나아가듯 이 예비 신자들도 죄의 용서의 원천인 그리스도를 향해 나아감을 의미하였다.
세례소에 장식된 이러한 여러 가지 상징들은 그리스도 의 생명 · 영적인 정화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부활함 등 을 의미하였는데, 이는 세례와 관련되어 점진적으로 발 전된 그 당시의 세례 신학을 반영하고 또 그에 따른 것이 었다. 이렇게 상징들을 매개로 세례 신학을 반영한 세례소는, 비록 세상 안에 살지만 세상에 죽고 하느님 안에 다시 태어나 새로운 삶을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의 정체 성을 상징적으로 드러내고 일깨워주는 것이다. (⇦ 세 례당 ; → 세례대 ; 세례성사)
※ 참고문헌 김종수, <세례당(1 · 2)>, <경향잡지> 1528 . 1529호 (1995. 7 · 8),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John Gordon Davies, 《TRE》 5, pp. 197~205/ F.X. Murphy, 《NCE》 2, pp. 74~751 Peter & Linda Murray, The Oxford Companion to Christian Art and Architecture, Oxford New York, Oxford Univ. Press, 1996, pp. 44~46/ Denis-Boulet, 《Cath》 1, pp. 1234~1236/ 《DL》, p. 56/ J.H. Emminghaus, 《LThK》 1, p. 1232/ Dennis McNally, S.J. The New Dictionary of Sacramental Worship, Peter E. Fink ed., Collegeville, Minnesota, 1990, pp. 127~129. 〔梁蕙貞〕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