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르반테스 사아베드라, 미겔 데 Cervantes Saavedra, Miguellde(1547~1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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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르반테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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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르반테스.


스페인의 작가. 《돈키호테》로 널리 알려진 그는 세익 스피어(W. Shakespeare, 1564~1616)와 더불어 세계 문학사 상 가장 위대한 작가로 꼽힌다. 〔생애와 활동〕 1547년 스페인 마드리드 동북부에 위 치한 알칼라 데 에나레스에서 아버지 로드리고(Rodingo de Cervantes)와 어머니 레오노르(Leonor de Cortinas) 사이 에서 7남매 중 넷째로 태어났으며, 아버지가 떠돌이 의 사였기 때문에 그의 가족은 바야돌리드 · 코르도바 · 세 비야 등지로 이주 생활을 하다가 당시 국왕이었던 펠리 페 2세(1527~1598)가 새 수도로 정한 마드리드에 정착하 였다. 세르반테스는 잦은 이사와 불안정한 집안 사정 등 으로 대학 교육을 받을 수는 없었지만 많은 독서를 통하 여 지식을 쌓았으며, 특히 1564년에 유명한 극작가 로 페(Lope de Rueda)의 연극에 감명을 받아 작가의 길을 택 하게 되었다. 그리고 저명한 인문주의자였던 후안 로페 스(Juan Lό pez de Hoyos)의 학교에 다니면서 더욱 폭 넓은 지식을 쌓았다. 1568년에 왕비 이사벨 데 발로아(Isabel de Valois)가 전 국민의 애도 속에 사망하자 후안 로페스 는 왕비를 추모하는 작품집을 냈는데, 여기에 학생들을 대표하여 세르반테스가 시를 씀으로써 첫 작품을 선보이 게 되었다.
1569년 교황 비오 5세(1566~1572)의 특사로 스페인에 와 있던 악과비바(Giuio Acquaviva) 추기경의 시종이 되 어 그를 따라 이탈리아로 간 세르반테스는, 추기경의 심 부름을 하면서 견문을 넓히고 일자리를 찾던 중 그곳에 주둔하고 있던 스페인 군대에 입대하게 되었다. 군인이 된 세르반테스는 로마 · 나폴리 · 밀라노 · 피렌체 등 각 지를 돌아다니며 르네상스 말기의 이탈리아 문화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았다. 그리고 1571년에는 교황청 · 베네 치아 공화국 · 스페인으로 이루어진 그리스도교 연합 함 대가 지중해의 제해권을 위협하는 이슬람 세력인 터키 함대를 레판토 해협에서 격파하였는데, 세르반테스는 이 전투에 참가하여 세 발의 총알을 맞고 평생 왼쪽 팔을 못 쓰게 되었다. 이로 인해 그는 '레판토의 외팔이' 라는 별 명을 얻기도 하였다. 1575년에 군대 생활을 마치고 귀 국 길에 오른 세르반테스는 항해 6일째 되던 날 마르세 유 해안에서 알제리에 근거를 둔 터키 해적들의 습격을 받아 노예가 되었다. 이후 5년 동안 아프리카에서 고달 픈 노예 생활을 하게 되는데, 네 번에 걸쳐 탈출을 시도 하였지만 모두 실패하고 말았다. 1580년에 가족들이 마 련한 몸값과 '삼위 일체 수도회' (Orden de Santísima Trinidad)의 노력으로 세르반테스는 자유의 몸이 되어 스페인 으로 돌아왔다.
집필 생활 : 귀국 후 임시직들을 전전하면서 관직으로 나아갈 것을 희망하였지만 곧 이를 포기하고 1582년에 작가가 되기로 결심하였다. 그 후 문인들과 교류하면서 작품을 쓰기 시작하여 1585년에 처녀작 《갈라테아》(La Galatea)를 출판하였다. 그 외에도 여러 편의 극작품을 썼 지만 이 중에서 《알제리에서의 대우》(EI trato de Argel)와 《누만시아》(La Numancia)만이 전해지고 있을 뿐이다. 한 편 1583년에 아나 프랑카(Ana Franca de Rojas)라는 유부 녀와 사랑에 빠진 세르반테스는 유일한 혈육인 이사벨 (Isabel de Saavedra)을 낳았으며, 그 후 곧 19세의 처녀 카 탈리나(Catalina de Palacios Salazar)와 결혼하였지만 결혼 생활은 순탄하지 않았다.
작품 집필만으로는 생활이 곤란하자 그는 1587년에 세비야로 가서 당시 영국군과의 전투를 준비하고 있던 무적 함대(Amada Invencible)의 보급 담당관이 되었다. 이때부터 1602년까지 약 15년 간은 세속적인 일에 파묻 힌 문학적인 공백기였다. 1588년에 무적 함대를 위한 밀보리 구입 건으로 교회와 다투어 파문당한 뒤 주로 세 무 공무원으로 있으면서 월권 행위와 공금 횡령 등 여러 가지 누명을 쓰고 감옥을 들락거렸다. 1602년에는 세비 야에서 불분명한 이유로 또다시 투옥되었는데 이렇게 여 러 번에 걸친 감옥 생활을 통하여 《돈키호테》의 작품 구 상을 하였다고 알려져 있다.
1605년 마드리드에서 출판된 《돈키호테》가 큰 성공을 거두어 한 해에 6판까지 인쇄되었지만 판권이 출판사에 있었기 때문에 그는 여전히 궁핍한 생활을 면치 못하였 다. 1606년에 마드리드로 옮겨 온 세르반테스는 이때부 터 가장 왕성하게 창작에 전념하였는데, 1613년에 열두 편의 중편 소설이 수록된 《모범 소설》(Novelas ejemplares) 을 출판했고, 이듬해에는 《파르나소 여행》(Viaje del Parnaso)을 출판하였다. 한편 《돈키호테》가 대성공을 거두 면서 해적판들이 난무하고 특히 1614년에 아베야네다 (Avellaneda)라는 작가에 의해 가짜 후편이 세상에 나오 자 세르반테스는 집필 중이던 《돈키호테》 후편을 서둘러 이듬해에 출판하였다. 또 그 해에는 《여덟 개의 희극과 여덟 개의 막간극》(Ocho comedias y ocho entremeses nuevos) 도 출판되었다.
1616년 4월 2일 병석에 눕게 된 세르반테스는 4월 15일 병자성사를 받은 다음에도 병마와 싸우면서 집필을 계속하여 《페르실레스와 시히스문다》(Persiles y Sigismunda)를 탈고한 후 4월 22일 사망하였다. 그는 작가로 서의 명성은 쌓았지만 집안은 장례 비용을 댈 수 없을 만큼 가난하였다. 마드리드에 있는 '맨발의 삼위 일체 수 도원' (Convento de las Trinitarias Descalzas) 묘지에 묻혔는 데, 그 무덤의 흔적은 오늘날 찾을 길이 없다.
〔작 품〕 세르반테스는 시 · 희곡 · 소설 등 모든 문학 장르에 걸쳐 작품을 썼다. 그는 고정된 문학의 틀을 무시 하고 장르간의 경계를 자유로이 넘나든 작가라고 할 수 있다.
시 : 산문에 비해 많지 않고 대부분 산문 속에 포함되 어 있다. 단행본 시집 중 가장 대표적인 것이 《파르나소 여행》인데, 이는 아폴로 신 앞에 모여 있는 저명한 시인 들을 칭송하는 동시에 자신이 개인적으로 알고 있는 주 변의 작가들을 칭찬하거나 비판한 내용으로 흥미를 끌었 다.
희곡 : 평소에 그가 가장 큰 관심을 보였던 분야였지 만, 불행히도 많은 작품들이 유실되었다. 남아 있는 희곡 들 중에서 《알제리에서의 대우》는 자신이 체험하였던 알 제리에서의 노예 생활을 소재로 한 4막극의 사랑 이야기 이고, 《누만시아》 역시 4막극으로서 기원전 133년에 스 키피오 장군이 이끄는 로마군의 아홉 달에 걸친 포위와 공격에도 불구하고 끝내 항복하기를 거부하고 죽음을 택 하였던 누만시아 사람들의 영웅적인 투쟁이 그려져 있 다. 한편 말년에 쓴 《여덟 개의 희극과 여덟 개의 막간 극》의 16개 희곡들은 각기 다양한 소재를 다루고 있지만 모두 소설적인 문체와 구성을 보이고 있고, 바보와 떠돌 이 등의 전형적인 인물 창조를 통한 치밀한 심리 묘사가 돋보인다.
소설 : 세르반테스의 재능이 가장 잘 드러나는 분야이 다. 첫 작품인 《갈라테아》는 타호 강변의 목동인 엘리시 오와 갈라테아의 사랑 이야기로 전원의 아름다운 풍경 묘사를 배경으로 한 목가 소설(牧歌小說)이다. 모두 12 개의 중편을 담고 있는 《모범 소설》은 당시 스페인의 사 회상을 잘 묘사하고 있는데, 이 중에서 <링코네테와 코 르타디요>와 <개들이 본 세상> 등은 활력에 넘치면서도 온갖 모순과 악이 난무하는 당시의 생활상을 해학과 풍 자의 언어를 통하여 매우 사실적으로 그려내고 있다. 반 면에 <집시 여인> · <고상한 하녀> · <피의 힘> · <관대한 연인> 등의 작품들은 상류층을 배경으로 하는 사랑 이야 기로, 주로 여성 주인공들이 자유 의지와 굳은 신앙심을 바탕으로 사랑을 쟁취하는 모습을 교훈적으로 그리고 있 다. 한편 《페르실레스와 시히스문다》는 세르반테스가 가 장 심혈을 기울이고 기대했던 소설로서 그의 사후에 출 판되었다. 북부 유럽의 환상적이고 신비적인 세계를 주 된 배경으로 하면서 포르투갈 · 스페인 · 프랑스 등지를 거쳐 로마에 이르기까지 순례 여행 중에 남녀 주인공이 겪는 사랑과 모험이 펼쳐지는 비잔틴풍의 소설이다.
《돈키호테》 : 성서 다음으로 많은 언어로 번역이 되었 다는 세르반테스의 대표작 《돈키호테》의 원 제목은 《기 지 넘치는 시골 양반, 라 만차의 《돈키호테》(EI ingenioso hidalgo don Quijote de la Mancha)이다. 전편은 52장, 10년 후에 나온 후편은 74장으로 엮어져 있고 등장 인물이 659명이나 되는 장편 소설이다. 돈키호테와 산초를 중 심으로 전개되는 주된 줄거리 외에도 <분별력 없는 호기 심> · <포로 이야기> · <그리소스토모와 마르셀라의 사 랑> 등 독립된 작품으로 분류할 수 있는 단편 소설과 시, 그리고 희곡이 곳곳에 삽입되어 작품의 흥미를 더해 주 고 있다.
세르반테스가 살던 당시의 유럽은 신앙에 의해 통합된 중세적 가치관이 잔존하는 가운데 종교 개혁과 중상주의 그리고 신분 계층의 재조정 등을 통하여 새로운 정치· 경제 · 사회 질서가 자리잡고 있었다. 그러나 스페인은 외부 세계의 변화를 차단하고 가톨릭 교의로 대변되는 복고적 질서를 유지시키려고 노력함으로써 역사의 필연 적 흐름에 저항하였다. 이러한 모순에서 비롯되는 공식 적인 질서와 비공식적인 무질서, 유형적인 것과 무형적 인 것, 지상적인 것과 천상적인 것 등의 긴장과 대립은 수많은 걸작을 탄생시킨 스페인 바로크 예술의 본질이라 고 할 수 있다. 그는 당대의 내적 모순과 긴장을 누구보 다도 잘 꿰뚫어 보고 있었으며 이러한 시각은 《돈키호 테》를 통해 언어로 형상화되었다.
세르반테스는 당시 범람하고 있던 기사 소설에 대한 풍자를 하려고 《돈키호테》를 썼다고 하였다. 돈키호테는 몰락한 시골 양반으로서 이미 사라져 버린 중세적 가치 관을 당대의 삶에 적용시키려 한다. 따라서 그는 역사적 필연성을 띠고 등장하는 근대성을 제대로 소화해 내지 못한 스페인의 내적인 갈등과 모순을 상징한다. 기사 소설인 동시에 반기사 소설인 이 작품의 양면성은 당시 스 페인이 겪고 있던 국가적 몰락의 분위기와 아울러 파란 만장한 삶을 체험했던 작가의 세계관에 바탕을 둔 것이 다. 국가를 위해 싸우다가 온갖 고초를 겪었던 전쟁 영웅 임에도 불구하고 임시직 관리로 일하면서 억울한 옥살이 까지 당한 세르반테스는, 자신의 몰락과 일치하는 제국 의 몰락을 보고 이 모든 원인을 기사도로 대변되는 중세 적 가치관에서 찾았던 것이다.
따라서 세르반테스는 돈키호테라는 인물을 통하여 기 사도적 낭만주의에서 자본주의적 현실주의로 넘어가는 과도기적 인간의 전형적인 운명을 보여 주었다. 이상과 현실의 간극을 깨닫지 못한 채 르네상스의 신세계로 돌 진하는 중세의 기사 돈키호테에게 눈에 보이는 세계와 환상, 존재와 외양(外樣), 비극과 희극 등은 본질적으로 분리되지 않는 똑같은 현실의 두 얼굴이다. 광기와 이성 이 공존하는 이상주의자인 기사, 그리고 무식함과 삶의 지혜를 동시에 갖춘 현실주의자인 산초가 펼쳐 나가는 드라마는 끊임없는 긴장과 균형의 미학을 산출한다. 그 러나 돈키호테와 산초의 인간형 역시 이분법적인 이상주 의자와 현실주의자의 대립으로만 볼 수는 없다. 이 두 사 람은 끊임없는 대화를 통해 작품 말미에 가서는 돈키호 테가 환멸에 젖은 현실주의자로, 산초는 기사도가 지배 하는 황금 시대를 믿는 이상주의자로 변모하는데 이러한 전위 현상 역시 이 작품이 보여 주는 또 다른 모순과 긴 장의 미학이다. 결론적으로 《돈키호테》는 옛 세계관과 새로운 세계관이 충돌하는 당대의 구체적 현실과 모든 인간의 심성에 내재해 있는 보편적 모순성이 결합된 걸 작이라고 할 수 있다.
〔신 앙〕 세르반테스는 돈키호테처럼 중세와 근대의 가 치관, 특히 신앙과 이성이 한 몸에 모순적으로 체현되어 있는 인물이라고 할 수 있다. 트리엔트 공의회(1545~ 1563) 이후 예수회와 종교 재판소라는 두 축을 중심으로 이루어졌던 반종교 개혁적인 분위기에서 창작 활동을 하 였던 그는, 후안 로페스의 영향을 받아 스페인 정부가 금 기시하였던 에라스무스(Desiderius Erasmus, 1466~1536) 사 상에도 심취해 있었다. 정통 그리스도교 신앙과 새로운 사상 조류인 르네상스적 인문주의의 갈등은 그의 작품 안에서도 그 흔적을 발견할 수 있는데, 예를 들어 《모범 소설》에 등장하는 여자 주인공들은 하느님의 섭리 못지 않게 인간의 자유 의지를 강조하고 구현하는 근대적 인 물로 그려지고 있다. 또한 돈키호테는 군주와 교회를 위 해 봉사하는 중세적 기사상보다는 약하고 억압받는 인간 들을 해방시키겠다는 르네상스적 인문주의자의 모습을 드러내며, 산초 역시 물질주의자인 동시에 순수하고 관 대한 성격을 지닌 인문주의자로 표현되고 있다. 한편 그 의 마지막 작품인 《페르실레스와 시히스문다》는 3세기 의 그리스 소설가인 헬리오도로(Heliodoro)의 영향을 받 은 것인데, 이 그리스 작가가 당시 에라스무스주의자들 에게 매우 애독되고 있었다는 점을 상기해 볼 때 역시 세 르반테스의 사상적인 경향을 짐작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르반테스의 신앙심은 확고 부동 하였으며 스스로도 자신이 착실한 가톨릭 신자라고 끊임 없이 강조하였다. 비록 무적 함대의 보급 담당관 시절에 지나치게 고지식한 업무 수행을 하면서 교회 재산에 손 을 대고 두 번이나 파문당하는 소동을 겪었지만, 그는 일 생을 통하여 가톨릭 교리와 국가 질서 내에 구현되어 있 는 하느님의 능력 앞에서 항상 겸손한 태도를 견지하였 다. 또한 그는 성체 거동 행렬의 단원으로도 참여하였고 부인과 함께 프란치스코회 제3회 회원이기도 하였다. 그 가 헬리오도로의 소설을 본딴 것도 사상적인 측면보다는 근대 소설을 써보겠다는 예술적 야심의 결과였다. 실제 로 《페르실레스와 시히스문다》에서 작가는 자신의 잘못 을 진정으로 회개하는 죄인을 성사를 통해 본래의 수려 한 용모를 되찾게 해줌으로써 당시 반종교 개혁의 교의 와 정신을 구현하였다. 세르반테스는 이 작품을 탈고한 직후 죽음을 맞으면서 "오! 하느님, 감사합니다. 저는 지 금 죽어 가고 있지만 저 세상에서 당신을 뵈올 날을 고대 합니다" 라는 신앙 고백을 하였다고 한다.
《돈키호테》의 주인공 역시 비록 광기와 르네상스적 이 성을 동시에 보여 주고 있지만, 작품 내에서 가톨릭 신앙 에 위배되는 행위는 결코 일으키지 않았으며 시종일관 모범적인 신앙인으로 그려지고 있다. 하츠펠트(H. Hatzfeld)는 이 작품이 이념적인 측면에서 반종교 개혁의 도 덕적 이상을 온전히 표현하고 있으며 트리엔트 공의회의 미학적 규범을 충실히 따르고 있다고 하였고, 심지어 철 학자 우나무노(Unamuno de Miguel, 1864~1936)는 돈키호 테의 모습에서 일체의 육체적 욕구를 자제하는 스페인 교회의 진정한 사제상을 발견한다고까지 하였다. 《돈키호테》가 신앙의 관점에서 유일하게 비판을 받는 것은 그 가 작품 내에서 미사 참례와 고해성사 그리고 기도 등 구 체적으로 신앙 행위를 하는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는 점 이다. 그러나 이러한 신앙 행위들은 당시 일반적인 기사 소설에서 주인공들이 상투적으로 행하는 요식 행위였다 는 점을 감안할 때, 기존의 기사 소설을 풍자하기 위하여 쓰여진 《돈키호테》에서는 그런 장면들이 작가 자신의 신 앙과는 관계없이 의도적으로 생략된 것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영 향〕 모든 걸작들이 그렇듯이 세르반테스의 작품 들, 특히 《돈키호테》는 시대에 따라 다양한 평가를 받아 왔다. 작품이 출판된 당시에는 단지 유머와 해학이 넘치 는 재미있는 미치광이의 이야기로 인기를 끌었지만, 낭 만주의 시대에 돈키호테는 이상과 현실 사이에서 타협을 거부하고 '정언 명령' (categorical imperative)을 실천에 옮 긴 영웅으로 각광받았다. 또 20세기 초 스페인에서는 우 나무노 등의 사상가들에 의하여 몰락한 스페인을 재건하 기 위해 추구되어야 할 불굴의 스페인 정신으로 전형화 되었는가 하면, 실존주의 시대에는 실존적 행동이 존재 론적 관념에 우선하는 실존주의자의 전형으로 재해석되 었다.
한편 《돈키호테》는 문학사적으로도 후세에 지대한 영 향을 끼쳤는데, 18세기의 영국 작가들(필딩 · 스턴 등)과 독일의 낭만주의 작가들(레싱 · 슐레겔 형제 · 헤르더 · 괴테 등)에게, 그리고 19세기의 작가들(디킨스 · 스탕달 · 플로베 르 · 멜빌 · 마크 트웨인 · 도스토예프스키 등)에게 지대한 영 향을 미쳤다. 또한 20세기의 작가들(카프카 · 제임스 조이 스 · 버지니아 울프 등)에게도 영감의 원천이 되었으며, 특 히 포스트모더니즘 문학의 선구자로 꼽히는 아르헨티나 의 보르헤스(Jorge Luis Borges, 1899~1986)를 비롯하여 현 대 소설가들(가르시아 마르케스 · 움베르토 에코 등)에게 미 치는 영향은 절대적이다. 이렇게 《돈키호테》가 오늘날까 지도 광범위한 영향을 주고 있는 것은 주제의 보편성 못 지않게 언어적인 측면에서 보여 주고 있는 소설 미학의 현재성 때문이다. 즉 《돈키호테》에는 세르반테스 외에도 가상적으로 설정된 세 작가의 목소리가 뒤섞여 등장하고 있고, 돈키호테와 산초 판자, 그리고 심지어는 작가인 세 르반테스조차도 다른 등장 인물들에 의해 언급되고 평가 되는 등 자기 반영성을 갖춘 메타 픽션(meta fiction)의 성 격을 보여 주었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음성학적 · 구문론적 · 의미론적으로 펼쳐지는 언어의 유희를 통하여 작품 전체가 미끌어지는 작품 전개 구조를 갖춤으로써, 최초의 근대 소설이면서 동시에 가장 현대적인 첨단 학을 구현하고 있다. (→ 가톨릭 문학, 스페인의 ; 스페인)
※ 참고문헌  Miguel de Cervantes, Don Quijote de la Mancha, de Martin de Riquer ed., Madrid, Planeta, 1995/ Helmut Hatzfeld, Estudios sobre el barroco, Madrid, Gredos, 1966/ Angel Rosenblat, La lengua del Quijote, Madrid, Gredos, 1971/ Carlos Fuentes, El espejo enterrado, México, Fondo de Cultura Economica, 1992/ Ricardo Gullon, Diccionario de Literatura Española e Hispanoamericana, Madrid, Alianza, 1993/ Harold Bloom, The Westem Canon, New York, Harcourt Brace & Co., 1994. 〔申政桓〕