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르지오, 라도네즈의 Sergius of Radonezh(1314~13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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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도네즈의 세르지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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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도네즈의 세르지오.


러시아 정교회의 성인. 수도원 설립자. 세례명은 바르 톨로메오이고, 러시아 이름은 세르지 라도네츠츠키(Sergij Radonetschki). 모스크바에서 약 50km 떨어진 자고르 스크(Zagorsk)에 '삼위 일체 수도원' (Troico-Sergievskaja Lavra)을 창설하였으며, 러시아 정교회 수도자들의 아버 지요 '사막의 교부' 의 새로운 원형으로 공경을 받고 있 다. 사망 후에 친척들에 의해 쓰여진 그의 전기를 통하여 생애와 영성이 잘 알려지게 되었고, 이콘 화가 루블료프 (Andrei Rublev, 1360/1370~1430)는 자신의 작품 <삼위 일체>에 세르지오 성인의 생애와 영성에서 받은 영감과 영 향이 많이 반영되었다고 고백하였다. 〔생애와 활동〕 정권이 교체되면서 라도네즈로 추방당 한 귀족 로스토프의 보야르 키릴(Boyar Kirill of Rostov)의 아들로 1314년에 태어나 부모가 세상을 떠난 뒤인 20세 때 세속을 떠날 결심을 하고, 그의 형 스테파노와 함께 코트코보(Khotkovo)의 수도원에 입회하였다. 삭발례를 받기 전에 은둔 생활을 하며 홀로 기도에 전념하기 위해 영성 지도 신부의 허락을 얻어 라도네즈 마을에서 15km 정도 떨어진 숲속으로 들어간 세르지오는, 유일하게 그 를 동행하여 은수 생활에 몰두할 수 있도록 해준 형의 도 움을 받으면서 기도와 성서 독서를 하고 숲을 개간하고 채소를 재배하고 나무를 베어 독방과 기도실을 만들 널 빤지를 만드는 등 지칠 정도로 힘든 노동을 하며 빈틈없 이 짜여진 생활을 하였다. 하지만 형은 세르지오와 같은 엄격한 생활을 이겨내지 못하고 모스크바의 에피파니아 수도원으로 떠나고 말았다. 이 시기에 그는 세르지오라 는 수도명을 받았는데, 때때로 그가 홀로 고독 속에 머물 러 있을 때 악마들의 유혹을 받았으나 이내 빛의 환시로 위안을 받았다는 일화가 있다. 또 성모 마리아의 환시를 체험하였다고 하며, 많은 새들이 모여드는 빛의 환시를 통해 위안을 받았다고도 한다. 은둔 생활 3년 만에 수도 원의 구조를 갖추게 된 세르지오는 그 후로도 몇 년 간 그곳에 계속 머물렀는데, 점차 그의 금욕적이고 거룩한 생활을 본받기 위하여 수도자들이 그 숲으로 몰려들었 다. 세르지오는 개인적으로는 홀로 조용히 은수 생활을 하고 싶었으나, 그를 따르고자 모여든 수도자들을 보며 이것이 특별한 하느님의 뜻임을 깨닫고 그들을 받아들여 수도원을 조직하였다.
겸손하였던 세르지오는 처음에는 사제 서품을 받기를 꺼렸으나 공동체를 위하여 사제 서품을 받았으며, 콘스 탄티노플 총대주교로부터 정식으로 삼위 일체 수도원의 설립을 인가받았다. 처음에 12명으로 제한하였던 지원 자가 해마다 늘어나고 각계각층의 방문자들이 많아짐에 따라 거대한 부지를 기증받게 된 수도원에서는 여기에 큰 성당을 건립하였다. 이렇게 수도원의 기초가 다져진 후 모든 공동체 구성원들의 원의에 따라 수도원장이 된 세르지오는 철저히 금욕적이고 단순한 수도 생활 방식을 회원들에게 가르쳤다. 그때 그의 나이 30세였다. 그 후 세르지오는 모스크바의 대주교 알렉시스(Alexis)를 계승 하도록 요청받았으나, 자신의 소명은 수도 생활이라고 판단하고 강력히 거부하였다. 그렇지만 수도 생활뿐만 아니라 러시아 국민들에 대한 깊은 사랑을 갖고 있었던 그는 타타르족의 침입으로 황폐해진 조국 러시아의 일치 에 큰 몫을 하였고, 제후들의 통합과 일치를 요청하였다. 일화에 따르면, 1380년 쿨리코보(Koulikovo) 전투에서 러시아 병사들이 디미트리 돈스코이(Dimiti Donskoi)의 지휘로 타타르족을 처음으로 물리쳤는데, 이때 세르지오 는 두 명의 수도자를 여기에 파견하였다고 한다.
〔영성과 덕〕 수동적 · 비공격적인 영성 : 세르지오의 영성은 러시아적 '자기 비움' 의 이상을 가장 완전하게 표현하고 있다고 평가된다. 그에게는 비공격적 혹은 수 동적인 심오한 영성이 드러나 있는데, 이러한 영성을 통 하여 그는 새로운 형태의 러시아적인 수도 생활을 주창 한 사람 중 하나가 되었다. 세르지오는 육체적인 고행을 통한 참회보다는 노동 · 자발적인 빈곤 · 인내를 강조하 였던 극단적이 아닌 금욕주의적인 사상에 공감하고 있었 다. 그에 대한 기록에 의하면 세르지오는 귀족의 혈통을 타고났지만 수도자로서 농민과 같이 육체적인 노동을 하 였는데, 거친 땅을 일구고 목수로서 자신의 방과 성당을 지었으며, 전국적인 명성을 얻던 시기에도 여전히 부엌 일과 정원을 돌보았다고 한다. 그리고 그의 온순함은 다 른 성인들에 비해 결코 뒤지지 않은 것이었다. 성 테오도 시오의 사상에서 영향을 받은 것으로 여겨지는 세르지오 의 영성은 그보다 뛰어난 영성을 지녔던 것 같다.
겸허함과 부드러움 : 세르지오는 겸손과 부드러움의 가치를 높이 평가하였는데, 그에게 있어서 부드러움은 단지 겸손함을 드러내는 수단이 아니라 이 둘은 사실상 세르지오의 인성을 형성하는 내적 실체였다. 전기에 따 르면, 어떠한 교활함이나 영악함도 없는 단순한 사람이 었던 그는 아기를 안아 주거나 그들을 모아 놓고 장난감 을 만들어 주는 가운데 큰 기쁨을 찾곤 하였다고 한다.
러시아 정교회에서 '우밀레니에' (umilenie) 즉 부드러움 과 겸손은 러시아 사람들 마음속에 자리잡고 그들의 삶 안에서 실천되어 온 영성 가운데 하나이다. 이 영성은 러 시아의 모든 성인들의 겸손한 삶 안에서 회개와 복음적 인 온유함으로 드러나며, 특히 세르지오의 영성 안에 깊 이 뿌리박고 있다. 러시아 정교회의 중요한 신학적 주제는 복음적 부드러 움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복음적 부드러움은 성 스러운 갈망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것으로, 자만으로 마 음이 무감각해지는 것을 경계하고 그럼으로써 복음을 받 아들이도록 준비하는 것이다. 이를 통해 복음적 부드러 움의 또 다른 의미 즉 '겸손' 에 도달하게 된다. 겸손한 사람만이 진정으로 따스한 마음과 부드러운 마음을 지닐 수 있는데, 이 겸손은 러시아의 복음적 의미로는 '자기 비움' 혹은 '자기 부정' 을 지칭한다. 이 자기 부정을 통 해서 교회적인 의미의 봉사가 이루어지고 심오한 친교가 이룩되며, 이러한 과정 속에서 우정뿐 아니라 형제애 즉 우리 자신에 대한 심오한 영적 지식에 기반을 둔 인간의 보편적 형제애가 드러나게 된다.
가난 : 세르지오는 영적 · 물질적 가난 등 인간의 가난 함에 대한 사랑으로 가득 차 있었다. 하느님이 그에게 허 락한 기적조차 그는 자신의 겸손을 심화시키는 데 이용 하였다. 그는 수도원 내에서 기도로 분수의 기적을 일으 킨 적이 있었는데, 수도자들이 이를 '세르지오의 샘' 이 라고 부르려 하자 "이 기적은 내가 만든 것이 아니라 하 느님께서 그것을 받을 가치도 없는 보잘것없는 우리에게 주신 것입니다" 라고 하면서 그렇게 부르지 못하게 하였 다. 그 밖에도 그에 의해 일어난 기적들은 항상 이웃을 도와 주기 위한 것이었다.
〔영향과 의의〕 세르지오는 묵상을 즐겨 하고 항상 기 도하는 영성적인 사람으로서 러시아 최초의 신비가로 불 려지기도 한다. 그러나 그는 홀로 격리되고 고립된 은수 생활에 전념하는 신비주의적인 생활을 고집한 수도자는 아니었으며, 그의 순수하고 단순한 신비주의는 인간에 대한 사랑으로 가득 차 있었다. 1422년 7월 5일 러시아 정교회에 의해 노브고로도에서 시성되었으며, 그 후 그 를 주보 성인으로 모신 성당이 세워졌고, 진정한 수도자 의 소명을 실현한 성인으로 공경받으며 '천상의 사람' 이 라고 불렸다. 그가 세운 삼위 일체 수도원은 아직까지도 러시아인들의 종교적 삶의 중심으로 자리잡고 있는데, 약 50개의 분원과 이 수도원의 정신을 따르는 40여 개 의 수도원이 설립되었고 세르지오 사후 150년 동안 수 백 명의 성인들을 배출해 냈다. 복음을 실천하는 삶을 산 선도자이며 지나친 금욕적 생활을 요구하지 않는 비공격 적 · 수동적 영성의 대가이자 부드러움과 겸손의 표양을 보였던 세르지오는, 기도하는 사람 · 관상가 · 신비가였 으며, 러시아의 민족적 통일을 이루는 데 커다란 역할을 한 사람이기도 하다. → 러시아 정교회 ; 루블료프, 안 드레이)
※ 참고문헌  I. Kologrivot, santi russi, milano, 1985, pp. 103~105, 115~116/ F. Wigzell, TMERSH, vol. 34, 1983, pp. 77~80/ G. Fedotov, A Treasury of Russian Spirituality, New York, 1948, pp. 50~51, 55~84/ G. Manzoni, La spiritualita della Chiesa ortodossa russa, Bologna, 1993/ P. Kovalevskj, Saint Serge et la spiritualité russe, Paris, 1958/ A. Joos, Dalla Russia con fede, Roma, 1991, pp. 31~32, 541 N. Arsenév, La piété russe, Neuchatel, 1963, p. 1221 T. Spidlik, I grandi mistiei russi, Roma, 1977, p. 91/L. Bouyer, Spiritualità bizantina e ortodossa, Bologna, 1968, pp. 96~971 Élisabeth Behr-Sigel, 《Dsp》 10,pp. 1595~1596. 〔郭承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