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리

稅吏

〔그〕τελώνης · 〔라〕publicanus · 〔영〕tax collec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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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예수는 말씀을 듣기 위해 돌무화과나무에 올라간 세관장 자캐오를 서슴없이 신앙 공동체에 받아들였다.

예수는 말씀을 듣기 위해 돌무화과나무에 올라간 세관장 자캐오를 서슴없이 신앙 공동체에 받아들였다.


세금을 징수하는 일을 담당하는 사람. 〔신약 시대의 세금 제도〕 로마 제국에서는 세금을 거 두는 데 있어서 두 가지 정책을 사용하였다. 각 지방(속 주, 속국)에 세무서를 두어 직접 일정한 세금을 거두는 것 이 일반적이었으나, 지방의 특수성을 감안하여 어용(御 用) 정부를 통해 간접적으로 세금을 징수하는 정책도 병 행하였던 것이다. 개인과 단체로부터 거둔 세금은 경제 적으로는 물론 정치적으로도 대단히 큰 비중을 차지하였 다. 기원전 63년 폼페이우스에 의해 팔레스티나가 정복 된 후 이스라엘도 로마 제국의 세금 제도에 자동적으로 편입되었다. 헤로데 대왕 때(기원전 37~4)에는 이스라엘 의 세금을 황실에서 거두어 로마에 상납하였으나, 기원전 6년에 로마가 유대 지방을 직접 통치하면서부터는 로 마 제국의 관리가 세무를 담당하였다. 그렇지만 헤로데 안티파스가 다스리던 갈릴래아 지방은 헤로데 대왕 시기 의 간접적인 세금 정책이 그대로 유지되었다.
세금의 종류는 매우 다양하였다. 사람들의 머릿수대로 받아 가는 인두세(人頭稅)와 땅의 크기에 따른 토지세 (土地稅)는 로마의 세무 관리들이 직접 거두었고, 특정 지역의 통행세(通行稅)나 육로나 해로로 수송되는 물품 (노예도 포함)에 대한 관세(關稅)는 청부업자에게 그 권리 가 맡겨졌다. 특히 통행세는 에즈라서 4장 13-14절과 7 장 24절에 언급되어 있을 정도로 오래된 세금이다. 고대 그리스의 도시 국가들에서도 세금을 거두어들이는 행정 관리가 있고 계약을 맺어 그 일을 대신 해주는 청부업자 가 있었는데, 이 제도를 로마 제국이 도입한 것이다. 청 부업자들은 선금으로 계약금을 지불하여 징세권을 따냈 는데, 그것이 악용되어 세금을 과다하게 징수할 위험성 이 있었다. 즉 로마에서 정해 준 세액에 따라 자신의 돈 으로 세금을 로마에 지불하고 나서 모든 수단을 동원하 여 백성들로부터 실제의 세금보다 많은 돈을 세금이라는 명목으로 거두어들였고, 또 이를 통해 그는 엄청난 부자 가 될 수 있었다. 이스라엘에는 앞에서 거론한 세금들 외 에도 성전세나 십일조와 같은 종교세까지 있었기 때문에 당시의 서민들에게 세금은 큰 부담이었다.
〔예수 시대의 세리〕 예수 시대의 유대인 세리들은 세 집단으로 분류할 수가 있는데, 즉 로마 관리들에게 고용 되어 사람들로부터 세금을 직접 거두어 가던 유대인 하 급 관리들과 관리직에 있는 세관장(예를 들어 루가 19, 110의 자캐오), 그리고 통행세나 관세를 거두기 위하여 세 관에 근무하는 관리들(마르 2, 14 : 마태 10, 3 ; 루가 5, 27)이었다. 예수는 세 부류의 세리들과 골고루 관계를 맺었던 것으로 보인다. 세금을 징수하는 일을 관리하던 사람은 5년 간의 임차권을 받았으므로 비교적 자유롭게 자신을 위해 돈을 걷을 수 있었다. 그러나 세리들에 의해 직권을 남용하는 경우가 빈번해지자 지방 기관들을 감독 하고 직접세를 감독하던 지방 행전 장관들이 세금을 담 당하게 되었다. 그렇지만 간접세를 위한 세금 징수 도급 은 계속되었으며, 그러한 권한들은 보다 소규모 지역으 로 나누어져 계약되었다.
예수가 활동하던 때의 세리들은 이스라엘 땅에서 죄인 취급을 받았는데, 그것은 우선 하느님의 땅인 이스라엘 을 짓밟은 정복자 로마 제국의 앞잡이 노릇을 한다는 민 족적인 이유 때문이었다. 유대인들은 성전을 위해서, 더 크게는 이스라엘 민족을 위해서 걷는 세금만을 정당한 것으로 생각하였기 때문에, 로마를 위해 세금을 걷는 것 은 적과 협력하는 것으로, 민족에 대한 반역으로, 또 이 스라엘의 유일한 왕이신 하느님을 모독하는 것으로 간주 하였다. 또한 세리들이 자신들의 잇속을 채우려고 과다 한 세금을 부과하여 서민들의 생활을 곤궁하게 만든다는 윤리적인 이유도 있었다. 실제로 세리들은 주먹구구식으 로 세금을 책정하여 막대한 부를 누리는 위치에 올라설 수 있었다. 율법 학자들의 문헌에 따르면 세리들은 도둑 이나 살인자 또는 죄인들과 같은 부류로 여겨졌고, 어떤 거래에서도 그 진실성을 믿을 수 없으며, 그들이 하는 어 떤 종류의 맹세도 믿지 않았기에 법정의 증인이 될 수 없 었다(미슈나 바바 캄마 10, 2 ; 미슈나 느다림 3, 4). 이처럼 세리들은 유대인들로부터 '천대받는 부류' 에 포함되어 있었다.
신약성서에서 세리들은 종종 죄인이나 창녀들과 한 짝 이 되어 부도덕한 인물들의 표상으로 간주되었으며(마르 2. 15 ; 마태 9, 10 ; 11, 19 : 21, 31 ; 루가 7, 34 : 15, 2), 이방인보다 나을 것이 없는 존재로 취급을 받았다(마태 5, 46-47 : 18, 17). 물론 이러한 생각은 당시의 사회적인 통념이었다. 예수의 말씀 중에도 세리가 등장한다. 루가 복음 18장 9-14절에 보면, 어떤 바리사이는 성전에 들 어가 저 혼자 "하느님 당신께 감사드립니다. 사실 나는 강탈하는 자나 불의한 자나 간음하는 자 따위의 다른 인 간들과는 같지 않을 뿐더러 이 세리와도 같지 않습니다"라고 강조하지만(18, 11), 세리는 스스로를 죄인으로 부 르며 하느님께 자비를 청한다(18, 13). 이 예화를 통해서 도 당시에 세리가 죄인의 대명사처럼 취급받았다는 사실 을 간접적으로 알 수 있다.
〔예수와 세리〕 예수는 종종 세리들과 관계를 맺었다."세리들과 죄인들"이 모두 예수의 말씀을 들으려 몰려왔 으며(루가 15, 1-2), 세관장 자캐오는 예수의 말씀을 듣기 위하여 돌무화과나무에 올라갔다가 예수를 자기 집에 모 시는 영광을 얻었고(루가 19, 1-10), 예수는 세리의 집에 서 "많은 세리들과 죄인들"과 함께 식사를 나누었으며 (마르 2, 15-17), 열두 제자들 중에 마태오는 전직이 세리 였다(마태 10, 3). 그런가 하면 사람들이 예수를 두고 "보 아라, 먹보요 술꾼이며 세리들과 죄인들의 친구로구나"라고 말한 것으로 보아 예수는 '세리와 죄인의 친구 였 던 셈이다(루가 7, 33-34).
예수는 세리라고 해서 편견을 갖고 대하지 않았는데, 이는 당시의 종교 지도자들과는 판이한 태도였다. 예수 는 세리들과 식사 공동체를 이루었고, 세리도 제자 공동 체의 일원이 되었으며, 세관장이었던 자캐오가 "보십시 오, 주님, 저는 제 재산의 반을 가난한 사람들에게 주렵 니다. 그리고 제가 남의 것을 등쳐먹은 일이 있다면 네 곱절로 갚아 주렵니다"라고 하자, 예수는 서슴없이 그를 신앙 공동체에 받아들였다(루가 19, 9-10). 예수는 '잃어 버린 자들' 에 대해 깊은 관심을 갖고 있었다. 그래서 창 녀 · 죄인 · 어부 · 여자 등 사회적으로 소외받고 불평등 을 당하는 사람들과 친밀한 하느님 공동체를 만들어 갔 다. 세리 역시 당시 사회에서 멸시받는 입장에 놓여 있었 고 율법에서도 내놓은 존재들이었으므로, '세리는 구원 받을 수 없다 는 통념이 유대 사회에 자리잡고 있었다.그러나 예수는 이들도 역시 하느님의 사랑하는 자녀들이 며, 얼마든지 구원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여러 비유를 통 하여 강조하였다(루가 15, 1-7. 8-10. 11-32 등). (→ 성전 세 ; 십일조)
※ 참고문헌  J. 예레미아스, 번역실 역, 《예수 시대의 예루살렘》, 한국신학연구소, 1988/ 정 양모 역주, 《마태오 복음서》, 천주교 200주 년 기념 성서, 분도출판사, 1990/ 정태현 편역, 《성서 비평 사전》, 성 서와 함께, 1993/ 1독교 대백과 사전》 9, 기독교문사, 1980, pp.473~474/ 《TDNT》 8, pp. 88~105/ J.R. Donahue, (ABD》 6, pp. 337~338/ The Mishna, trans. by H. Danby, Oxford, 1983/ J. Gnilka, Das Evangelium nach Markus I, 《EKK》2-1, Benziger · Neukirchen, 1978. 〔朴泰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