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바스티아노 델 피옴보 Sebastiano del Piombo(1485>~15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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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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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바스티아노 델 피옴보가 그린 <피에타 : 예수의 죽음을 슬퍼하는 성모>(왼쪽)와 <십자가를 진 예수> .
이탈리아 후기 르네상스의 화가. 이탈리아의 유명한 미술가들의 전기를 집필한 바사리(Giorgio Vasari, 1511~ 1574)에 의하면, 세바스티아노는 1485년경 이탈리아의 베네치아에서 태어났다고 한다. 그의 이름에 붙은 델 피옴보' 는 출신지와 관련된 것이 아니라, 1531년에 교 황 글레멘스 7세(1523~1534)로부터 교회록을 받으며 교 황의 인장과 봉인의 관리를 책임질 직무를 수여받은 데 서 기인된 것이다. 라틴어 플룸붐 (plumbum)에서 유래 된 '피음보' 는 '납' 을 의미하는데, 세바스티아노가 납을 녹여 교황의 문서를 봉인하던 일을 관리하게 되면서 이런 이름을 얻게 되었던 것이다. 바사리는 세바스티아노가 베네치아 출신이라는 점을 고려하여 세바스티아노빈치아노(Sebastiano Vinziano)라고 기 록하였으나, 델 피옴보' 라는 이름을얻기 전까지 그는 루치아니(SebastianoLuciani)라는 성과 함께 불려지곤 하였다. 성악이나 악기 특히 류트를 잘 연주하기로 유명하여 많은 귀족들의 향연에 초대되기도 했던 세바스티아노는,당대의 이름난 노장 화가 벨리니(Gio-vanni Bellini, 1433?~ 1516)에게 회화 수 업을 받으면서 미술가로서의 꿈을 키우게 된 후 조르지오(Giorgio da Castelfranco, 1477/1478~ 1510)로부터 본격적으로 회화를 배웠다. 그리고 미술가 로서의 명성이 점차 높아지자 1511년에 시에나의 은행 가 아고스티노 키지(Agostino Chigi)로부터 로마로 초대를 받아 이때부터 세바스티아노는 사망할 때까지 로마에 체 류하였다. 아고스티노는 그 해 세바스티아노에게 고대 로마의 저술가인 오비디우스(Publius Ovidius Naso)의 《변 신》(Métamorphoses)에 등장하는 장면들과 식인 거인 폴 리페무스(Polphermus, 로마의 파르네지아 빌라 1층에 있는 벽 화)를 그려 달라고 주문하였는데, 세바스티아노는 당시 로마에서 유명했던 라파엘로(Sanzio Raffaello, 1483~1520) 에 대한 경쟁 의식 때문에 최선을 다하여 그렸다고 한다.바사리에 의하면, 그가 세상을 떠난 것은 62세의 나이였 던 1547년이라고 한다.
〔작 품〕 세바스티아노의 초기 작품은 스승 조르지오의 회화 양식으로 제작되곤 하였다. 그는 베네치아의 산 조 반니 그리소스토모 성당에 성녀 막달레나 · 성녀 가타리 나 · 성녀 아네스 등이 등장하는 <성 요한 그리소스토모 와 6명의 성인>(Saint Jean Chrysostome avec six saints)이라 는 그림을 그렸는데, 바사리는 세바스티아노의 베네치아 시절을 대표하는 이 작품이 조르지오의 작품과 너무 흡 사하여 비전문가들은 조르지오의 것으로 판단했을 정도 였다고 하였다. 이 밖에 그의 대표적인 초기 작품으로는 베네치아 미술관에 소장되어 있는 1510년의 작품 <톨로 사의 성 루도비코>와 <성 로무알도> 등이 있다.
로마에 온 후, 화풍에 있어서 라파엘로에 대해서는 적 대적이었던 세바스티아노는 당대의 거장인 미켈란젤로 (Michelangelo di Lodovico Buonaroti Simoni, 1475~1564)에 대 해서는 우호적이었다. 그리고 그들간에 유지되었던 다소 사무적인 친분 관계는 1530년대까지 이어지면서, 세바 스티아노의 작품은 미켈란젤로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게 되었다. 폴리페무스의 근육질의 신체나 조각적인 느낌의 여러 인체 표현들은 미켈란젤로의 시스티나 성당 천장화 에 묘사되어 있는 것과 유사한데, 실제로 미켈란젤로는 세바스티아노의 작품에 등장할 인물의 밑그림을 제공해 주기도 하였다. 미켈란젤로의 후원으로 명성이 널리 알 려진 세바스티아노는 1516년에 비테르보(Viterbo)에 있 는 산 프란체스코 경당의 주문을 받아 이듬해 <피에타 : 예수의 죽음을 슬퍼하는 성모>를 완성하였다. 미켈란젤 로의 인물 묘사 양식을 빌려 표현한 이 그림은 어둠이 짙 은 전원을 배경으로 땅에 눕혀진 건장한 예수의 몸을 바 라보며 성모 마리아가 비탄에 빠진 장면을 묘사한 작품 이다. 여기서 세바스티아노는 자신의 베네치아 화풍 혹 은 조화를 지향하는 고전 양식의 틀을 말끔히 제거하였 는데, 그의 다른 어떤 작품도 이 작품만큼 미켈란젤로로 부터 받은 정신적 영향이나 형식을 보여 주지는 못하였 다. 런던의 국립 미술관에 소장된 <라자로의 부활>도 미 켈란젤로의 영향을 보여 주는 작품이다. 미켈란젤로의 도움으로 1516~1519년에 제작된 이 그림을 통하여 그 의 화풍은 극적인 효과가 극대화되면서 긴장감이 넘치고 열정적인 장면 묘사를 하게 되었다.
비슷한 시기에 세바스티아노는 각종 인물의 초상화를 제작하면서 이 분야의 전문가가 되었는데, <젊은 여인의 초상, 도로테아>(1513, 베를린 국립 미술관) · <교황 글레멘 스 7세>(1526, 나폴리 가포디몬테) · <델 몬테 추기경〉(더블 린, 아일랜드 국립 미술관) 등 수많은 초상화가 남아 있다.이러한 그림들에서는 미켈란젤로의 영향이 보이기도 하 지만, 오히려 그와 적대 관계에 있었던 라파엘로의 고전 적 특성이 담겨 있는 가운데, 베네치아 화풍의 온유한 색 채나 털옷의 섬세한 표현 같은 것들은 세바스티아노 특 유의 화풍이 조화를 이룬 것임을 보여 주고 있다. 또 세 바스티아노 회화의 특징 중 하나는 새로운 기법을 도입 하였다는 사실이다. 즉 벽화를 제작할 때 기존 기법인 프 레스코를 지양하고 더 뚜렷하고 오래갈 수 있도록 벽면 에 유채를 시도하였는데, 대표적인 작품이 1516년에 실 제 벽면을 유채로 상감하여 그린 로마 몬토리오의 산 피 에트로(San Pietro in Montorio) 성당의 보르게리니(Bongherini) 경당 제단화 <채찍질당하는 그리스도)이다. 이 그림 에서 원주에 묶인 채 채찍질당하는 그리스도의 뒤틀려진 상체는 거의 미켈란젤로의 작품으로 느껴질 정도로 그의 영향을 많이 받고 있다.
이외에도 주목할 만한 작품으로는 1520년에 제작된 <성녀 아가타의 순교>(피렌체, 피티 미술관 소장), 이듬해 프랑스 왕가를 위하여 제작한 <성모 마리아의 엘리사벳 방문>(파리, 루브르 미술관), 로마의 산타 마리아 델 포폴 로(Santa Maria del Popolo) 성당에 있는 키지(Chig) 경당 제단화로서 1532년에 제작된 <마리아의 탄생>, 1530년 경에 제작된 <십자가를 진 예수>(마드리드, 프라도 미술관) 등을 들 수 있다. 세바스티아노는 1531년에 교황 글레 멘스 7세로부터 '피옴보의 직무' 를 수여받은 이후 더 이상 작품 제작으로 생계를 꾸리지 않아도 되었으므로, 1530년대 이후부터는 <로돌포 비오 추기경〉(1536, 비엔나 미술관) · <레지날도 폴 추기경>(1536, 에르미타주 미술관) 등 주로 교회 내의 고위 성직자들이나 귀족들의 초상화 들을 남겼을 뿐이다.
※ 참고문헌 J.R. Hale ed., The Thames and Hudson Encyclopaedia of the Italian Renaisance, London, 1992/ Kindlers Malerei Lexikon, vol. 15, Miinchen, 1982/ Lexikon der Kunst, vol. 5, Berlin, 1983, Leipzig, 1978/ La Pittura Italiana, Electa, 1997, pp. 186~187/G. Vasari, 李根培 역, 《이탈 리아 르네상스 미술가전》, I~ Ⅲ , 탐구당, 1995. 〔洪珍卿〕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