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교자. 축일은 9월 27일. 쌍둥이 형제로서 일찍이 사도 바울로에 의해 복음이 전파된 소아시아의 칠리치아 주 에게아의 명문 가정에서 태어났다. 시리아에서 의학을 공부한 후 의사가 되어 외교인들에게 복음을 전파하기 위해 환자들과 가축들을 무료로 치료해 주었는데, 의료 기술이 남달리 뛰어나 명의라는 칭송을 들었다. 특히 약으로 되지 않는 병은 간절한 기도로 도와줌으로써 육신의 치유는 물론이고 환자의 영혼 구제에도 각별히 마음을 기울였다. 그들의 인술과 자선에 대한 명성은 널리 전파되어 신자뿐만 아니라 비신자들로부터도 존경을 받았다. 그러나 293년 로마 제국에서의 열번째 박해인 디오클레시아노 황제의 박해 때 체포되어 모진 고문을 받았다. 전설에 의하면 집정관 리시아는 고스마와 다미아노에게 배교하라고 강요했지만 요구를 끝내 거절하자 이 형제들을 돌로 쳐죽이려 했다. 그러나 돌이 되돌아와 돌을 던진 사람이 다치고, 다음에는 십자가에 묶어 놓고 활을 쏘았으나 이번에는 화살이 되돌아와 궁노수의 가슴에 꽂혔고, 다시 타는 불속에 던졌으나 그래도 죽지 않자 마침내 목을 베는 참수형에 처하였다고 한다. 이때 고스마와 다미아노 외에 그들의 형제인 안티모, 유프레피오 그리고 레옹씨오도 함께 처형당하였다. 이들의 순교 후에 많은 기적이 일어났고, 또 그들의 높은 신앙심을 증명하는 일들이 자주 일어났다고 전해 온다.
고스마와 다미아노는 약제사의 수호자이고 루가 복음사가 다음으로 의사들의 수호 성인이다. 많은 의사들이 고스마라는 본명을 따르는 데 비해 다미아노는 그 수가 적다. 그 이유는, 다미아노가 한 번은 어떤 환자의 간절한 청을 거절하지 못해 치료비를 받은 실수를 범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들에 대한 존경은 5세기 동방 교회에서 시작되었는데 고스마와 다미아노에게 기도한 후 많은 병자가 낫게 되었기 때문이다. 순교 100년 뒤 유스티니아누스 황제는 이들을 위해 콘스탄티노플에 성당을 지었고 로마에서는 교황 펠릭스 4세(526~530)도 이 형제 순교자들을 위해 거대한 성당을 봉헌했다. 축일인 9월 27일은 이 성당의 헌당식 날짜라고도 하고 치명일이라고도 한다. 오늘날도 미사 전문과 성인들의 호칭 기도 속에 기억되고 있는 고스마와 다미아노의 조건 없는 봉사와 희생의 삶은 의사와 약제사는 물론이고 모든 신자들도 본받아 이 각박한 세상에 하느님이 사랑이심을 온 세상에 증거해야 한다. (⇦ 다미아노)
※ 참고문헌 김정진 편역, 《가톨릭 聖人傳》, 가톨릭출판사, 1987/ 최정오 편, 《가톨릭 성인 사전》, 계성출판사, 1987/ 배문한, 《그리스 도의 향기》, 성모출판사, 1993/ John Coulson, The Saints, Guild Press, New York. 〔裵文漢〕
고스마와 다미아노(?~303?)
Cosma et Damianus
글자 크기
1권

약제사의 수호자인 고스마와 다미아노(안젤리코 작).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