셀, 헤르만 Schell, Hemma(1850~1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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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권
독일의 가톨릭 교의 신학자. 1850년 2월 28일 독일 프라이부르크에서 태어나 김나지움을 졸업하고, 교구 신 학생으로 프라이부르크 대학교에서 2년 간(1868~1870) 철학과 신학을 공부하였다. 이어 밖르츠부르크 대학교로 옮겨 아리스토텔레스 사상을 근세의 사상과 연결하고자하였던 브렌타노(F. Brentano, 1838~1917) 교수의 지도를 받아 쓴 <아리스토텔레스 철학의 원리에 따른 영혼의 단 일성에 관하여>(Die Einheit des Seelenlebens aus den Prinzipien der aristotelischen Philosophie entwickelt)라는 논문으로 1872년에 프라이부르크 대학교에서 철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그리고 이듬해 밖르츠부르크 교구에서 사제 서 품을 받고 영성 지도 신부로 활동하였으며, 1883년에는 <삼위 일체이신 하느님의 활동>(Das Wirken des dreieinigen Gottes)이라는 논문으로 튀빙겐 대학교에서 신학 박사 학 위를 받았다. 이듬해 밖르츠부르크 대학교 조교수로 임 명되어 호교론 외에 그리스도교 예술사와 고고학을 담당 한 셀 신부는, 1888년에 정교수가 되어 가톨릭 신학부 교과 과정에서 최초로 비교 종교학을 강의하였으며, 여 러 차례 신학부 학장을 거쳐 1896년에 총장으로 선출되 었다. 1898년 12월 15일에 그의 저서들은 '위험하다' 는 이 유로 금서 처분을 당하였는데, 그 저서들에 나타난 자 기 원인' (Selbstursache, Causa sui)이라는 하느님 개념과 이 개념에서 도출된 삼위 일체론이 잘못된 인격 개념 및 자 유 개념에 입각해 있고, 스콜라 신학자들의 명예를 훼손 하였으며, 종말론에서 교회의 전통적인 가르침에 위배되 게 대죄의 범위를 축소시키고 영원한 지옥 벌을 폐지시 킬 소지가 있으며, 윤리적인 이웃 사랑을 최후 심판의 기 준으로 제시하고 있다는 것 등을 그 이유로 밝혔다. 이 조치 이후 셀은 오해의 여지가 있는 하느님 개념인 자 기 원인' 을 '자기 현실' (Selbstwinklichkeit)로 수정하고, 교회에 순명을 서약하였다. 이러한 입장 수정 이후에도 강의와 저술 활동은 계속되었는데, 그의 이론에 찬반 양 론으로 갈린 학자들의 논쟁과 그의 사상이 지나치게 이 성적이고 근대적이며 프로테스탄트적이라는 의혹이 끊임없이 학계와 교회에 제기되었다. 셀은 독일 교사 연합 회 주최로 베를린에서 열릴 예정인 성령 강림 대축일 초 청 강의 내용을 준비하던 중 1906년 5월 31일 심장 마비로 사망하였다.
[저 서] 두 학위 논문 외에 《가톨릭 교의론》(Katholishche Dogmatik, 6권, 1889~1893), 《하느님과 성령》(Gott und Geist, I ~ Ⅱ, 1895~1896) , 《진보의 원리인 가톨리시름》(Der Katholozismus als Prinzip des Fortschritts, 1897), 《새 시대와 옛 신앙》(Die neue Zeit und der alte Glaube, 1898) , '그리스도 교의 옹호 (Apologie des Christentums) 시리즈 제1권 《종교 와 계시》(Religion und Offenbarung, 1901)와 제2권 《야훼와 그리스도》(Jahwe und Christus, 1905), 《그리스도, 복음과 그 세계사적 의미》(Christus, Das Evangelium und seine weltgeschichtlichen Bedeutung, 1903)가 있다. 그 밖에 여러 철학 잡지 · 신학 잡지 · 신문 등에 기고한 글을 수록한 《소논 문 모음집》(Kleine Schriften, 1909), 철학 스승인 브렌타노 교수와 교환한 편지와 강의록을 모은 《헤르만 셀,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선구자》(Heman Schell, Als Wegbereiter zum II . Vatikanischen Konzil, 1978), 신학교 제자인 바오로 (Hugo Paulus)에게 보낸 편지 모음집 《어느 청년 신학자에게 보내는 편지》(Briefe an einen jungen Theologen, 1974) 등이 출판되었다.
[사 상] 호교론적 교의 신학 : 이단에 맞서 강력하게 대응하였던 초기 교부들의 입장에 선 사람들이 셀을 비 가톨릭적이라고 비난하였던 것과는 달리, 사실 그는 철 저한 호교론자였다. 그는 《하느님과 성령》 · 《종교와 계 시》 · <야훼와 그리스도》 등의 저서들에서 호교론을 "이 단자들을 추격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을 그들의 사상과 언어로 설득하고, 그들이 신앙으로 돌아오도록 도와 주 는 것으로 새롭게 이해하였다. 그래서 그는 당대의 사상 적 동향과 문제를 진지하게 다루었고, 그 사상 안에 있는 진리의 핵심을 알고자 하였으며, 다른 세계관과 체제에 속한 사람들을 적이 아니라 말씀과 구원을 필요로 하고 구원의 가능성이 있는 동료로 보았다. 이런 그의 신학은 대화의 신학 내지 공동체주의(KKmmmmiminisis)라고 볼 수 있다.
신앙의 근본 진리가 문제시된 당시의 상황을 직시하고, 신앙의 신비와 계시의 진리를 전달하기 위해 교의 신 학을 저술하여 "호교론은 교의 신학으로, 교의 신학은 호교론적으로" 되어야 한다고 주장한 셀은 또한 '호교론 적 교의 신학자' 이기도 하였다. "교의 신학은 계시를 통 해 알게 되는 하느님의 개념을 학문적으로 설명하는 것"이고 "호교론은 신앙의 철학"이므로 교의 신학과 호교론 은 서로 불가분의 관계를 가진다고 본 셀은, 《가톨릭 교 의론》 · 《하느님과 성령》 · 《그리스도, 복음과 그 세계사 적 의미》 등에서 신앙의 이해를 통해 "내면에서 도출된 '삼위 일체론의 호교론' "을 제시하려고 하였다. 이로써 그의 신학은 "그리스도교의 계시와 신앙의 중심적인 신 비"인 삼위 일체의 신비에 집중되었다. 셀은 삼위 일체 의 세 위격을 완전한 '자기 원인' 으로서 시간 · 개념 · 관 계에서 서열이 없이 모두 '원초자' (原初者, Urerste)이고, "절대적으로 하나이지만 관계에서 삼위"이며, 세 위격 각각 신적인 완전성을 소유한 동등한 하느님으로 보았다. 그리고 이런 '자기 원인' 인 하느님의 개념은 인간의 사고를 통해서는 증명될 수 없는 신비이기 때문에 계시 를 통해서만 이해될 수 있다고 설명하였다. 또 셀은 스콜 라 철학의 존재론이나 근대의 경험론적인 철학만으로는그리스도교의 호교론을 온전히 제시할 수 없다고 보고, 이 두 사조를 종합하고 신앙의 빛을 통해 근대인에게 그리스도교의 하느님을 전달하고자 하였다.
진보와 가톨리시즘 : 《진보의 원리인 가톨리시즘》과《새 시대와 옛 신앙》에서 셀은 진보와 개혁 자체가 가톨 릭의 고유한 속성에 내재하고 있다고 보고 가톨리시즘을 진보의 원리로 주장하였으며, 가톨릭의 '보편성' (Universalität)에 부합되게 프로테스탄트와 타종교에 대해 개방 적인 자세를 가질 것을 요구하였다. 또 진보적인 사고와 학문의 자유를 통하여 근대 사회에서의 가톨리시즘을 개 혁할 것을 촉구하였다. 즉 그는 독일 가톨릭 신자들의 지 적인 열등함을 문제로 지적하면서 당대 철학과 여타 학 문들을 받아들여 시대적 삶에 적극 대처할 수 있도록 사 제와 신자들을 교육시킬 것을 주장하였고, 교회 생활에 서 성사가 기능주의에 빠질 위험을 경고하였으며, 평신 도의 적극적인 교회 생활 참여 · 타종교에 대한 편견 타 파 · 신학 강의와 전례에서의 자국어 사용 등을 요구하였 다. 이러한 개혁적인 태도 때문에 그는 19세기 말과 20 세기 초 독일을 중심으로 일어났던 개혁 가톨릭주의(Reformkatholizismus)의 대표적인 주창자가 되었고, 그의 주 요 저서들이 금서 처분을 받게 되었던 것이다.
[평 가] 생존시 적대자들로부터 '가톨릭의 배반자' 라 고 비방받고 의심받았던 셀은, 사후 그의 학설을 둘러싼 신학자들의 격렬한 논쟁과 수많은 학위 논문 및 그에 관 한 서적의 출판 등을 통하여 화제의 대상이 되었다. 그는 현대 신학자들로부터 '지난 세기 가톨릭의 탁월한 신학 자' 라고 칭송을 받고 있는데, 특히 세계로의 개방, 타종 교 및 프로테스탄트와의 대화를 지향한 그의 사상은 제2 차 바티칸 공의회 정신을 선도했기에, 그는 '제2차 바티 칸 공의회의 선구자' 로 불리며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철학과 종교학에 대해 풍부한 지식을 갖추고 교회의규정과 종교적 실천의 개선 요구를 통하여 시대에 맞게 그리스도교 신앙을 옹호하고자 하였던 셀은, "진리가 교회의 본질이고 교회는 진리의 현장" 으로 진리와 교회는 서로 분리될 수 없는 것으로서 교회의 개선을 통한 진리 의 추구가 교회가 추구해야 할 당면한 과제라고 보았으 며, 근대의 다원적인 세계에 개방되고 진보적이며 개혁 적인 교회를 추구하였다. 그러나 당시 교회는 근대의 진 보적인 사상과 진보에 대한 믿음 앞에서 기존의 신앙이 위협받을 것을 두려워하여 '개혁' 과 '진보' 에 극히 방어적으로 대처하였기 때문에, 셀의 낙관적이고 이상적인개혁주의를 수용할 수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가 사망한 후 "셀의 신학의 많은 부분이 현 재 교회의 가르침과 생활 속에서 실현"되고 있으므로 그 의 신학에 대한 새로운 평가와 회복은 "제도 교회의 양 심적인 의무" 라고 주장한 하젠푸스(J. HasenfuB)를 비롯 한 여러 학자들의 복권 노력에 힘입어, 금서 처분당한 저 서 《가톨릭 교의론》이 교회의 인가를 받아 1968년 이후 재출판되었다. 그리고 1970년 6월 18일에는 밖르츠부 르크 대학교에 '헤르만 셀 연구소' 가 설립되었다. → 교회와 타종교 ; 브렌타노)※ 참고문헌 H. Schell, Katholische Dogmatik I , Miinchen .Paderborn · Wien, Schöningh, 1968/ -, Herman Schell als Wegbereiter zum Ⅱ. Vatikanischen Konzil sein Briefwechsel mit Franz. Brentano und Nachschriften seiner Vorlesumgen iiber Friedrich Nietzsche, iiber christliche Kunst und iiber Fundomementaltheologie, herausgegeben von J. HasenfuB, Miinchen · Paderborn · Wien, Schoningh, 1978/ -, Briefe an einen jungen Theologen, herausgegeben von J. HasenfuB, Miinchen · Paderborn . Wien, Schoningh, 1974/ K. Hennemann Hg., Herman Schell im Lichte zeitgenossischer Urteile bei seinem Tode, Paderborn, Schoninge, 1909/ J.HasenfuB Hg., Herman Schell. Als Existentieller Denker und Theologe, Wiirzburg, Echter, 1956/ V. Berning, Gott, Geist und Welt. Herman Schell als Philosoph und Theologe, Miinchen · Paderborn · Wien, Schoningh, 1978/ -, Systematischees Philosophieren zwischen Idealismus und neuscholastik um die Jahrhundertwende. Studien zur christlichen Philosophie Herman Schells, Miinchen . Paderborn · Wien, Schoningh, 1984/ P. Wacker, Glaube und Wissen bei Hemman Schell. Christichess und modermes Denken in Begegmng, Miinchen · Paderborn . Wien, Schöningh, 1961/ 0. Schroeder, Aufbruch und Mulβverstinchinis. Zuur Geschichte der Reformikatholischehen Bewegumg, Graz . Wien . Köln, Styria, 1969/ H. Fries Hg., Katholische Theologen Deusccllands im 19. Jahrhundert Ⅲ , Miinchen, Kösel, 19571 L. Scheffczyk Hg., Theologie in Aufbruch und Widerstreit. Die deutsche katholische Theologie im 19. Jahrhumdert, Bremen, Carl Schiinemann, 1965/ H. Fries, Hochland 52, 1959~ 1960, Pp. 505~517/ P.W. Scheele, Impulse Herman Schells fiir die Dogmatik der Gegenwart, (ThGl) 61, 1971, PP. 99~105/ B. Biser, Herman Schell als Initiator einer Neubegrinddung der Fundamentaltheologigie, (ThGl) 61, 1971, pp. 106~109/ J. Engert, 《LThK》 9, pp. 232~2331 J. HasenfuB, (LThK》 19, pp. 383~385/ M. Schmaus, (NCE》 12, p. 1124. [吳善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