솅키에비치, 헨리크 Sienkiewicz, Henryk(1846~1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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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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헨리크 솅키에비치.
1905년에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폴란드의 작가. 1846년 5월5일 폴란드의 볼라-오크르제스카(Wola-Okrzejska)에서 몰락한지방 귀족 가문에서태어나 가톨릭적 · 애국적 전통 속에서 성장하였는데, 이러한배경은 솅키에비치로하여금 폴란드의 독립에 관심을 갖고 민족적 · 문화적으로 특별한 역할을 담당하였던 전형적인 도시 지식인의 면모를 갖게 하였다. 1867~1870년에 바르샤바 대학에서 철학 을 공부한 뒤 신문 기자이면서 작가로도 활동하였으며, 1882년에 한 일간 신문의 편집장이 되었다. 1876년부 터 1878년까지 약 3년 동안 미국에 체류하였던 기간을 통해 그는 풍부한 경험을 얻었을 뿐만 아니라 자연에 대 해 보다 확고한 애정을 갖는 계기가 되었고, 또 작가로서 의 본연의 임무를 충실히 수행하려는 의지도 새롭게 하 였다. 이 시기에 발표한 《아메리카에서 보낸 편지》(Lettres de Voyage)는 문학적으로 높은 평가를 받았다. 그 후 2년 동안 프랑스와 이탈리아 등지를 여행하고 바르샤바 로 돌아와 본격적인 저술 활동을 시작하였다. 이때 그는 바르샤바에만 머물렀던 것이 아니라 때로는 치료를 위해 유명한 온천 도시들을 방문하고 때로는 콘스탄티노플 · 그리스 · 아프리카 등지를 여행하면서 자신의 작품을 구 상하기도 하였다. 이를 토대로 그는 소설 외에도 현대 문 학에 대한 논문들을 발표하였는데, 그중 가장 유명한 것 이 1881년에 자연주의에 반대하는 자신의 입장을 정리 한 논문과 1889년에 발표된 역사 소설을 옹호하는 논문 이었다. 이러한 논문들을 통하여 그는 사회주의적 사실 주의를 포기하고, 폴란드의 기사도 정신에 나타난 영웅 적이고 그리스도교적인 전통을 칭송하였다. 특히 역사 소설에 관한 논문은 세기 전환기의 유럽에서 가장 능력 있는 역사 소설가로 인정을 받게 하였다. 문학적 입장과 마찬가지로솅키에비치는 정치적으로반사회주의적인 입장을 견지하였으며, 실제로도 '민주주 의 국민당'에 참여하여 폴란드의 해방을 위해 노력하였 다. 그의 정치적 활동과 무관하지 않았던 그의 작품들은 당시 좌익 성향의 비평가들로부터 신랄한 공격을 받았 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자신의 정치적 · 문학적 노 선을 수정하지 않았으며, 그의 작품은 폴란드뿐만 아니 라 노벨 문학상 수상 이후에는 다른 나라들에서도 대중 적인 인기를 얻었다. 더욱이 그는 정치 활동에 다양하게 참여하였으며, 특히 독일 신문에 발표한 비스마르크의 제국주의적 · 민족주의적인 정치에 관련된 논문과 당시 독일 황제였던 빌헬름 2세에 대한 공개 서한, 그리고 국 제적 연구 단체인 '프로이센과 폴란드' 에의 참여 등을 통하여 폴란드의 국가적 권리를 수호하는 주장을 피력하 였다. 또한 1905년 혁명으로 위협받고 있던 기존 사회 질서를 옹호하기 위해 노력하였으며, 제1차 세계대전 동 안에는 스위스에 머무르면서 훗날 폴란드의 총리가 된 파데레프스키(I.J. Paderewski)와 함께 전쟁 희생자들을 위 한 '폴란드 구호위원회' 를 조직하여 수천 명의 목숨들을 구하기 위해 활동하기도 했다. 그리고 1916년 11월 15 일 스위스의 베베이(Vevey)에서 사망했고 1926년에는 바르샤바 주교좌 성당으로 유해가 옮겨져 안치되었다.
〔작 품〕 솅키에비치는 40여 편 이상의 소설을 발표하 였는데, 일반적으로는 극적인 특성을 지닌 구성 방식과 비극적인 결말로 이어지는 대부분의 형식으로 인해 몇 가지 범주로 구분이 된다. 신문 기자로 활동하면서 발표 한 그의 초기 소설을 통해서는 진보적 경험주의자로서의 면모와 다양한 문화 영역에의 관심, 그리고 천부적인 풍 부한 상상력을 갖고 있었음을 발견할 수 있다. 또 다른 범주에 속하는 소설들은 현대적 영감을 받은 것으로 나 타나는데, 그중 대표적인 것이 세기말적 현상의 유형을 분석하려고 시도한 《무교의》 (無敎義, Bez dogmatu, 1891) 와 귀족 및 지방 귀족에 기원을 둔 폴란드 부르주아 계층 을 찬양한 《로드지나 폴라니키치》(Rodzina Polanieckich, 1895)이다. 그렇지만 이 두 소설은 구성이나 내용 면에서 역사 소설보다는 빈약하며 덜 낙관주의적으로, 어떠한 인간도 비난을 받지 않고 도덕적 원칙들을 저버릴 수 없 다는 점을 보여 주고 있다. 《등대지기》(Latanik, 1882)나 《한 포즈난 세무관의 회고록》(Z pamietinika pozánskiego nauczyciela, 1897) 등과 같은 소설은 상당히 뛰어난 문학 적 가치를 지닌 작품으로 평가받고 있고, 말년에는 젊은 이들을 위해 쓴 탐험 소설 《어두운 심연》(W pustyni i puszczy, 1910)을 발표하였다.
그러나 솅키에비치의 문학 세계를 대표하는 분야는 역 사 소설이다. 그의 역사 소설들 중에는 삼부작 즉 《철과 불에 의하여》(Ogniem i mieczem, 1883~1884)와 《대홍수》 (Potop, 1886)와 《볼로지조프스키 각하》(Pan Wolodyjowski, 1887~1888)가 있는데, 이 소설들은 1648~1672년의 폴 란드를 무대로 발생한 군사적인 사건들을 주된 내용으로 하면서 폴란드의 기사도에 대해 묘사하고 있다. 이 세 소 설은 폴란드인과 코자크인 및 스웨덴인들 사이에서 발생 하였던 전쟁들의 민족적 · 사회적 · 종교적 특성을 강조 하였다. 그리고 1900년 유럽 최고의 베스트 셀러가 되 었던 소설 《퀴 바디스》(Quo vadis?, 1895~1896)에서 그는 초기 그리스도교 신자들에 대한 네로 황제의 박해 및 베 드로와 바오로 사도의 위대함을 강조하였는데, 이는 무 신론과 유물론의 거부인 동시에 그리스도교 정신의 칭송 을 의미하는 것이었으며, 폭 넓은 대중성으로 인해 이 소 설은 20세기 초에 발생하였던 유럽의 가톨릭 문학 부흥 에 크게 기여하였다. 15세기의 폴란드와 독일 민족의 대 립과 충돌에 관해 쓴 《튜튼 기사회》(Krzyzcy, 1897~1900) 에서는 1410년 그룬트발트(Grundwald)에서의 독일 군대 의 궤멸을 통하여 폴란드 기사도를 절정에 이르게 하고 있으며, 동시에 그리스도교 정신을 그릇되게 해석하였던 독일 기사도에 대해 비판하고 있다. 다소 가치는 떨어지 지만 소비에스키(Jean Sobieski)에 의한 빈 해방을 소재로 한 《영광의 땅》(Na polu chwaly, 1903~1905)과 나폴레옹 시 대를 배경으로 한 《군대》(Legiony, 1913~1914)라는 소설 이 있다.
솅키에비치는 역사 소설에서 많은 역사 자료들을 효과 적으로 인용하고 있는데, 주로 역사의 극적인 사건들 즉 역사의 영웅들이 서로 다른 진영을 구축하고 각각 국가 의 이성을 대표하면서 대립하는 전쟁 장면들이나 극적인 순간들을 인용하는 것을 선호하였다. 사실상 그는 스코 틀랜드의 시인이며 소설가인 스코트(W. Scott, 1771~1832) 의 전통적인 소설 구성 양식을 충실하게 따랐던 것이다.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 양식을 그대로 모방한 것은 결 코 아니었고 오히려 더 발전시켰다고 할 수 있다. 솅키에 비치는 감성적인 이야기만을 제공해 줄 수 있는 반허구 적인 영웅과 민족적 · 사회적 · 종교적 충돌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였던 실제의 역사적 인물들을 함께 등장시 킴으로써 상상과 실제를 교묘히 결합시켰다. 그에게 있 어서 두 종류의 영웅들을 구분하는 중요한 기준은 '정 의' 였다. 서사시적인 영웅적 행위들은 정의라는 잣대를 통해 적대적인 태도를 취하는 진영에 있는 영웅들뿐만 아니라 그에게 가까운 진영(폴란드 혹은 그리스도교)에 있는 영웅들에게 상호 다른 특성을 부여하였다. 그리고 이 와 같은 놀라운 해학성은 그가 자신의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영웅적 행위를 객관적으로 평가할 수 있게 하 는 중요한 실마리로 작용하였다.
솅키에비치의 역사 소설에 나타나는 극적인 대립 및 절망적인 상황들 속에는 최악의 불행을 극복하려는 영웅 적인 행위와 희생을 통한 궁극적인 승리가 내재되어 있 다. 이러한 개념은 그의 소설이 광범위한 대중적인 인기 를 얻도록 하였는데, 즉 일반적으로 상상할 수 있는 영웅 적 행위나 신화적 이야기에 집착하기보다는 그 영웅들에 게 생명력을 부여하는 힘의 원천이 무엇인가를 밝히는 그의 구성 방식은 대중적 인기의 요인이었다. 더욱이 그 의 소설을 읽는 독자들이 끊임없는 긴장감을 느낄 수밖 에 없는 이유는 절망적인 상황이 어떤 기적적인 해결책 을 통해 극복되는 것과 마찬가지로 계속적으로 반복되는 고통들 속에는 그 고통을 벗어나게 만드는 다양한 의외 성이 잠재되어 있기 때문이었다. 결국 그는 문학에서 아 주 보편화되어 있으며, 바로 그 점 때문에 독자들에게도 친숙하게 혹은 때로 진부하게 느껴지는 소설의 동기들을 자신의 독특한 필치를 통해 전혀 다른 흥미를 유발시킬 수 있도록 하였다.
〔평 가〕 솅키에비치는 자신과 비슷한 시기에 살았던 폴란드 작가 프루스(A.G. Prus, 1847~1912)와 함께 경험주 의와 사실주의 시대의 폴란드 문학에서 가톨릭 사상을 대표하는, 또한 문학과 종교를 접맥시키려고 노력하였던 위대한 인물로 평가받고 있다. 그의 소설들은 40여 개 이상의 언어로 번역되었으며, 그중 상당수가 영화화되었 을 정도로 그가 살아 있을 당시뿐만 아니라 오늘날까지 도 변하지 않는 인기를 누리고 있다. 그 작품들이 문학사 안에서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는 점 또한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러나 솅키에비치의 작품들이 지니고 있 는 예술적 · 미적 · 사회적 가치들이 비평의 대상이 된 것 역시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일반적으로 언급되고 있 는 상대적인 지적 취약성에도 불구하고, 또 과거를 바라 보는 그의 예술적인 견해를 파악할 수 있는 중요한 역사 적 사건에 대한 통찰력의 결여에도 불구하고, 솅키에비 치가 거둔 성공은 그에 대한 긍정적 혹은 부정적 비평과 함께 그의 작품이 단순한 역사적 호기심과는 전혀 다른 수준이라는 점을 보여 준다. (→ 폴란드)
※ 참고문헌 S. Frybes, Henryk Sienkiewich, 1846~1916, 《EU》 20, pp.1060~1061/ J.F. Cotter, 《CE》 10, p. 921 T.F. Domarsdzki, 《NCE》 13, pp.202~203/ 시엔게에비르, 최진영 역,《폴란드 문학의 세계》, 남영문학 사, 1987/ D. 치제프스키, 최선 역, 《슬라브 문학사》, 민음사, 1984/ V.D. Mihailovich et al. ed., Modern Slavic Literatures, 1976. 〔편찬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