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록도 본당
小鹿島本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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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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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록도 본당의 직원 성당(왼쪽)과 병사 성당.
광주대교구 소속 본당. 전남 고흥군 도양읍 소록리 1 번지 소재. 1960년 8월 13일 벌교(筏橋) 본당 관할 공 소에서 본당으로 승격되었으며, 주보는 근심하는 이의위로자 성모. 관할 구역은 소록리 전 지역. 〔교 세〕 1963 년 1,150명, 1967년 1,141명, 1970년 750명, 1974년 627명, 1981년 624명, 1986년 688명, 1989년 592 명, 1992년 587명, 1997년 497명. 〔역대 신부〕 초대 마이클스(J. Michaels, 권) 야고보(1960. 8~1964. 1) 2대 브 라질(S. Brazil, 진) 요한(1964. 1~6), 3대 변(E. Byeon) 에 두아르도(1964. 6~1967. 6), 4대 스위니(R. Sweeney) 로베 르토(1967. 6~1968. 2), 5대 차베스(J. Chavez, 강) 요셉 (1968. 2~8), 6대 아리아가(F. Arriaga, 민) 프란치스코 (1968. 8~1971. 8), 7대 마이클스(1971. 8~1972. 9), 8대 페 냐(L. Pena, 배) 알로이시오(1972. 9~1973. 4), 9대 리베라 (J. Rivera, 이) 요한(1973.4~10), 10대 아리아가(1973. 10~ 1977. 10), 11대 디아즈(H. Diaz, 원) 헥톨(1977. 10~1980.9), 12대 라라(S. Lara, 나성화) 야고보(1980. 9~1981. 8), 13대 콘트레라(J.F. Contreras, 고) 요셉(1981. 9~1985. 10), 14대 렌테리아(H. Renteria, 한조룡) 에시키오(1985. 10~ 1988. 12), 15대 세라노(M. Serrano, 이) 마누엘(1988. 12~ 1990. 7), 16대 아리아가(1990. 7~1997. 2), 17대 강길웅 (姜吉雄) 요한(1997.2~현재). 〔전사 및 본당 설립〕 나환우들을 격리 · 수용하기 위하 여 일본 총독부에서는 1916년에 전남 고흥군 금산면(錦 山面, 현 도양읍) 소록리에 약 20만 평의 부지와 가옥 10 채를 매입한 뒤 100여 명의 나환우들을 이곳으로 이주 시켰다. 이어 같은 해 5월 17일 도립 나병원인 자혜의원 (慈惠醫院, 국립 소록도 병원의 전신)이 설립되면서 나환우 에 대한 본격적인 치료가 이루어졌으며, 1920년대 초에 는 프로테스탄트가 진출하여 많은 나환우들과 회복 정착 민 및 병원 종사자들에게 전교 활동을 펼침에 따라 대다 수의 환우들이 프로테스탄트에 입교하여 신앙 생활을 하 였다.
그러던 중 1935년 11월 1일 장순업(張順業, 프란치 스코) · 강기수(姜基洙, 바오로) · 허영원(許永源, 요셉) 등 3명의 천주교 신자가 입원하여 치료를 받으면서 기도 와 공소 예절을 갖는 한편, 입원 환자들에게 교리를 가르 치고 전교하기 시작하였다. 얼마 후 이러한 사정을 알게 된 나주(羅州) 본당 주임 김재석(金在石 요셉) 신부가 이듬해 11월 6일 처음으로 병원을 방문하였고, 그 뒤 몇 차례에 걸쳐 교리를 가르치고 성사를 줌으로써 1938년 11월 24일에는 3명이 세례를 받을 수 있게 되었다. 그 리고 이듬해에는 노안(老安) 본당 주임 김창현(金昌鉉, 바오로) 신부가 방문하여 성사를 주었는데, 당시 신자수 는 17명이었으며 장순업이 전교 회장으로 활동하였다.그러다가 1943년 7월 15일에 나환우들을 위한 병사(病 舍) 공소가 설립되어 나주 본당 주임 김필현(金必現, 루 도비코) 신부의 집전으로 첫 미사가 봉헌되었다. 그 후 이 지역은 한국 전쟁 중에도 교세가 증가하였고, 각종 평 신도 사도직 단체들이 조직되어 활동하였다.
1957년 6월부터는 가난으로 생계 유지에 어려움을 겪 는 나환우들에게 미국 가톨릭 복지 협회(N.C.W.C)로부 터 원조를 받아 도움을 주었고, 이듬해 7월 1일에는 동 산동(東山洞) 본당 주임 이민두(李敏斗, 타대오) 신부와 벌교 본당 주임 모리시(M. Morrisey, 모) 신부의 노력으 로 병원 종사자들을 위한 직원(職員) 공소가 설립되었으 며, 1959년 11월 10일에는 벌교 본당의 마이클스 신부 가 파견되어 병사 공소와 직원 공소의 성당 건립을 추진 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인 결과 1960년 8월 13일에 이 두 공소가 소록도 본당으로 승격되었다.
〔성장과 변모〕 초대 주임으로 부임한 마이클스 신부는 1961년 10월 11일 170평 규모의 성당을 신축한 데 이 어 이듬해 5월 10일에는 광주대교구장 헨리(H. Henry, 玄海) 대주교의 집전으로 병사 성당의 성모 동굴과 판석 축성식을 거행하였으며, 1964년 12월 15일에는 성모 동굴 앞에 십자가를 건립하였다. 한편 본당 설립 초에 이 곳에 분원을 개설한 까리따스 수녀회에서는 미감아(未感 兒) 수용소인 보육소의 운영과 본당 사목에 협조하고 나 환우들의 재활과 자립을 위해 양재 학원을 설립 · 운영하 였으며, 1962년 2월 24일에는 오스트리아 그리스도 왕 시녀회 소속 수녀들이 부임하여 영아원과 병원 등지에서 봉사하였다.
1968년 2월에는 본당 사목권이 골롬반 외방선교회에 서 과달루페회로 이관되어 차베스 신부가 5대 주임으로 부임하였고, 이어 인보 성체 수도회(1973. 2~1975. 7)와 메 리놀 수녀회(1974. 5~1987. 12) 수녀들이 본당과 병원 등 에서 봉사와 전교 활동을 전개하였으며, 1978년 4월 28 일에는 샬트르 성 바오로 수녀회의 분원이 마련되었다.그리고 같은 해 7월 10일 한국 가톨릭 나사업가 연합회 의 지원으로 병사 성당의 보수 공사를 실시하였고, 7월 27일에는 직원 성당의 제의실과 고백소 등의 확장 및 보 수 공사를 완료하였다. 또 1984년 5월 4일에는 한국 천 주교회 창설 200주년 기념 대회 및 103위 시성식에 참 석하기 위해 내한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방문하여 병사 성당에 대형 십자고상을 마련해 주기도 하였다.
본당 설립 당시 1,200여 명을 헤아리던 신자수는 그 동안 많은 수가 자활촌으로 이주해 1970년대에 700여 명, 1980년대에 600여 명에 이르던 것이 현재는 500여 명으로 격감하였다. 또한 초기부터 진출하여 활발한 활동을 벌여 온 프로테스탄트의 영향으로 그 신자수가 천주교 신자수에 비해 약 6배 가량 많은 실정이라 지속적인 교세 신장 방안이 모색되어야 할 것이다. (→ 광주대 교구)
※ 참고문헌 《가톨릭 사전》 본당사 보유편/ 한국 가톨릭 나사업 연합회, <다미안> 22호(1986. 6), pp. 8~9/ 천주교 광주대교구 편, 《광 주대교구 50년사》, 빛고을출판사, 1990. 〔李裕林〕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