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원 본당

高原本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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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원 면속구(德源免屬區) 소속 침묵의 본당. 함남 고원군 고원읍 신정리(新井里) 소재. 1933년 덕원 본당에서 분리 설립되었으며, 이해 10월 28일 초대 주임으로 콜러(E. Kohler, 景) 신부가 부임 하였다. 이 지역에는 이미 원산 본당 시절인 1910년대에 공소가 설립되었고, 여기에 20여 명의 신자가 있었으나 얼마 안되어 폐쇄되었다. 그러다가 1920년 원산교구가 분리 독립된 이후 교통과 산업의 발달로 신자수가 증가하면서 1930년대 덕원 본당의 로트(L. Roth, 洪) 신부가 공소를 재건하였다. 그리고 1932년 9월 18일 읍내 중심부에 부지가 마련되었으며, 다음해부터 공사가 시작되어 초대 주임 콜러 신부가 부임한 뒤인 11월 19일에는 성당을 축성할 수 있었다. 당시 본당의 신자수는 약 190여 명이었다. 이어 본당에서는 1936년 3월 12일에 3개의 종을 들여와 축성하였고, 같은 해 6월 3일에는 이전의 교리 학교를 보통 학교로 인가받아 개교하였으며, 12월 10일에는 상내면(上內面) 천내리(川))에 공소 강당을 건립하였다. 그 무렵 신자수는 약 500명 정도로 증가되어 있었는데, 이 중에는 고원 읍내의 신자들이 매우 많았다. 초대 주임 콜러 신부는 이처럼 본당을 안정의 궤도에 올려놓은 뒤 1937년에 이임하였고, 그 뒤를 이어 피셔(W. Fischer, 許) 신부가 2대 주임으로 부임했으나 이듬해 병사(病死)하였다. 그리고 같은 해 지베르츠(E. Siebertz, 池) 신부가 3대 주임으로, 그 후 정글라인(J. Zenglein, 宋) 신부가 4대 주임으로 부임하여 사목하였다. 그러나 해방 후 북한에 공산 정권이 수립되고 교회에 대한 탄압이 가중되면서 1949년 5월 9일 교구장 사우어(B. Sauer, 辛) 주교를 위시하여 여러 신부 · 수사들이 체포되고, 이어 5월 11일 본당 주임 정글라인 신부가 체포됨으로써 본당이 폐쇄되었다. 폐쇄되기 직전까지 고원 본당 관내에는 11개의 공소가 있었다. (→ 침묵의 교회) 〔車基眞〕