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양로 본당

昭陽路本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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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천교구 소속 본당. 춘천시 소양로 2가 1구 78 소재.1949년 1월 죽림동(竹林洞) 본당으로부터 분리 · 설립 되었으며, 주보는 성 파트리치오. 관할 구역은 근화동, 호반동, 사우동, 우두동, 사농동, 신동, 소낙동, 소양로, 요선동, 봉의동과 신북읍 서면, 사북면 일대. 〔교 세〕 1968년 2,574명, 1973년 2,098명, 1978년 1,920명, 1983년 1,782명, 1988년 1,935명, 1993년 2,229명, 1998년 2,298명. 〔역대 신부〕 초대 콜리어(A. Collier, 고) 안토니오(1949. 1~1950. 6), 2대 선종완(宣鍾完) 라우 렌시오(1954. 8~1955. 8), 3대 버클리(J. Buckley, 부) 야고 보(1955. 8~1961. 9), 4대 맥파든(M. McFadden, 남) 미카 엘(1961. 9~1962), 5대 키어니(D. Kearney, 강) 디오니시 오(1962~1967.9), 6대 이응현(李應鉉) 디모테오(1967.9 1975. 3), 7대 김종석(金鍾石) 토마스(1975. 3~1979. 4), 8 대 박청근(朴淸根) 베네딕도(1979. 4~1982. 12), 9대 송성 식(宋聖植) 토마스(1982. 12~1987. 5), 10대 배종호(裵鍾 浩) 토마스(1987. 5~1993. 9), 11대 이흥섭(李興燮) 라우 렌시오(1993. 9~1998. 9), 12대 송문식(宋文植) 베드로 (1998. 9~현재). 8 · 15 광복 무렵 죽림동 본당 관할이었던 소양로 지 역의 신자수가 그 후 나날이 늘어나자 사목적 차원에서본당 설립이 시급히 요청되었다. 이에 따라 1949년 1월 에 소양로 본당이 설립됨과 동시에 초대 주임으로 골롬반 외방선교회 소속의 콜리어 신부가 부임하였는데, 설립 당시 신자수는 약 250명이었고, 이때 발산 공소와 금 산 공소가 소양로 본당 관할이 되었다. 그러나 이듬해 한 국 전쟁이 발발하자 콜리어 신부는 교구장 퀸란(T. Quinlan, 具仁蘭) 몬시뇰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본당에 남아 신자들을 돌보고 부상자들을 치료하다가 복사 김가브리엘과 함께 생포되어 6월 27일 인민군에 의해 사 살되고 말았다. 이로써 콜리어 신부는 골롬반 외방선교회 소속 선교사 가운데 한국 전쟁의 첫 희생자가 되었는 데, 이로 인해 한국 전쟁기에는 본당에 신부가 파견되지 못하였다. 그 후 휴전이 되면서 1954년 8월에서야 서울 대신학교(현 가톨릭대학교) 교수로 있던 선종완 신부가 2 대 주임으로 부임하게 되었다.
이렇듯 여러 가지 어려운 상황으로 인하여 소양로 본당은 설립된 지 7년 만에 성당을 마련할 수 있었다. 즉 1956년 4월에 3대 주임 버클리 신부가 성당 신축 공사 에 착수하여 같은 해 9월 3일 90평 규모의 성당을 완공 하고 봉헌식을 거행하였던 것이다. 그 후로도 계속 골롬 반 외방선교회 소속 선교사들이 부임하다가 1967년 9월 15일 풍수원(豊水院) 본당의 이응현 신부가 6대 주임으 로 부임하면서 본당은 비로소 활기를 찾게 되었고, 이때 부터 각종 신심 단체들이 결성되기 시작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 춘천교구 ; 죽림동 본당)
※ 참고문헌  춘천교구 50년사 편찬위원회, 《춘천교구 50년사》, 천주교 춘천교구, 1989/ 《죽림동 본당 70년사》, 천주교 죽림동 교회, 1990. [편찬실]